이무웅씨는 2006년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이집트에서 열린 사하라사막 마라톤을 완주했다.
이미 고비와 아타카마사막 마라톤 도전에 성공했기 때문에 남극 마라톤만 완주하면 이른바 ‘극한 레이스’를 모두 정복하게 된다. 그의 사하라사막 도전기를 게재한다.
이번에 참가한 사막마라톤대회는 7일간의 식량과 침구가 들어 있는 배낭을 메고 6박7일간 뛰거나 걸어서 주최측이 지정한 거리를 완주하는 대회다. 대회의 정식 명칭은 ‘2006 Sahara Race’로, 지난해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이집트의 서부 사하라 지역에서 열렸다.
17개국에서 61명이 참가했고, 한국 참가자는 여성 2명을 포함하여 9명인데 이 중에는 나보다 생일이 조금 늦은 동년배 한 분이 참가했다. 일본에서는 67세로 참가자 중 최고령인 분을 포함하여 5명이 참가하였다.
주최측이 정한 각 스테이지(Stage)별 거리와 내가 완주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스테이지1: 30.8km, 5시간57분16초 ▶스테이지2: 31.7km, 5시간46분34초 ▶스테이지3: 38.0km, 6시간47분18초 ▶스테이지4: 38.5km, 6시간53분35초 ▶스테이지5: 90.0km, 19시간33분50초 ▶스테이지6: 12km, 1시간29분27초 ▶합계 241.0km, 46시간28분00초.
이번 대회가 나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2005년에 고비사막 마라톤(Gobi March), 2006년에 아타카마사막 마라톤(Atacama Crossing)과 사하라사막 마라톤 등 모두 3개의 ‘극한 대회’를 완주함으로써 남극 마라톤(The Last Desert) 참가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남극 대륙(Antarctica)’을 왜 ‘마지막 사막(The Last Desert)’이라고 표현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남극 마라톤에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참가한 사람이 없고, 이제 나를 포함해 네 사람이 최초로 참가하게 된다. 이 대회는 과연 어떤 대회인지 정보가 없어 궁금하다.
2005년에는 근육경련으로 중도 포기
이번 대회는 2005년에 이은 두 번째 참가로, 악연이 있는 대회다. 2005년에는 대회 초반에 양쪽 다리에 심한 근육경련이 생겨 포기했기 때문이다. 대회 전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불운이었다. 출발 전에 2005년의 악몽이 떠올라서 걱정과 긴장으로 몸이 팽팽해진다.
출발 시간이 아침 9시여서 여유가 있다. 아침식사도 제대로 해 먹고, 느긋하게 준비를 한다. 2005에는 60대에서 1등 할 욕심에 초장부터 부산스럽게 준비한 것이 근육을 잔뜩 긴장시켜서 경련을 일으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한다.
이번 대회에는 같은 양천마라톤클럽의 홍현분(46·본지 2006년 12월호에 소개)씨가 참가했다. 2005년의 악몽으로 그러잖아도 부담이 되는 대회인데, 처음 참가한 그녀를 사막마라톤의 분위기에 젖도록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까지 갖게 되어 이중으로 부담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나보다 더 좋은 기록으로 완주하였다.
대회 첫날에는 사막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는 의도에서 나는 그녀와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뛰거나 걸었다. 초반에는 평탄한 길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뛰다가 힘들면 걷고 하여 쉽게 ‘CP(체크포인트) 1’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 후 다시 출발했다. 오는 동안 주위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가끔 사진도 찍으면서 여유를 부렸다. 기온은 38∼40℃로 사막에서는 그렇게 더운 날씨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모래가 들어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신발 속으로 모래가 들어간다. 주최측이 제공한 테이프로 신발 앞부분을 감쌌지만 약한 접착력 때문에 이내 떨어지고 만다. 가는 도중 신발을 벗어서 모래를 털어 내고 다시 신는 일이 시간을 지체한다. 서너 번 털면서 어렵지 않게 스테이지 1을 완주했다.
오후 3시경 캠프에 들어와서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지난 번에 참가한 아타카마사막 마라톤에 비하면 신선놀음이다. 당시에는 일몰 후에 캠프에 들어와서 저녁 먹고 내일을 위해 곧 잠을 자야 할 정도로 시간이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너무 시간이 많다.
일찍 들어온 한국팀 참가자들이 더운 날씨 때문인지 주최측이 제공한 페트병의 물로 머리를 감고 발도 씻고 해서 자신에게 배정된 물의 대부분을 사용하였다. 사막에서는 물이 생명이고, 주최측은 참가자에게 일정량 이상의 물을 지급하지 않는다. 물을 한국에서처럼 쓰면 나중에 물 부족으로 곤란을 겪는다.
이런 내용을 설명하고 플라스틱 페트병 뚜껑에 구멍을 내서 즉석 샤워기를 만들어 앞으로는 이것을 사용하면서 물을 경제적으로 소비하도록 하였다. 밤이 되니까 쌀쌀해지고, 새벽녘에는 춥기까지 해서 고슴도치 자세로 잠을 자야 했다. 이 추위는 대회 내내 계속되어 참가자들을 괴롭혔다.
삭막한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
참가자들의 텐트에는 고유한 이름이 주어지는데, 한국팀 텐트는 ‘베르베르(The Berbers)’로 명명되었다. 이 말은 북아프리카 원주민인 베르베르인을 가르키는 말이다. 이 종족은 한때 북아프리카를 지배했으나 수세기가 지나면서 외세에 밀려나 지금은 사하라사막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둘째 날은 아침 8시에 출발한단다. 지형 설명서에 보니 어제와 같이 ‘샌드 앤 스토니(Sandy and Stony)’로 되어 있다. 신발은 보수했지만 걱정이다.
어제는 홍현분씨에게 사막 분위기를 익히게 하려고 함께 경기했지만, 오늘은 혼자 능력껏 뛰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먼저 출발하라고 했다. 어제 내가 너무 느리게 달리는 것에 대해 약간 불만이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출발하자마자 예상대로 저만치 앞서서 날아간다. 닉네임처럼 ‘야생마’ 기질이 발휘되는 것이다. ‘어제는 얼마나 뛰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미안한 생각이 든다.
분당검푸마라톤클럽의 이종배씨도 어제와 달리 앞서간다. 나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알게 모르게 경쟁이 되는 듯하다. 경쟁은 운동하는 인간의 본성인가? 그를 의식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뒤처지면 따라붙어서 추월해야 마음이 놓인다. 어제는 사진 찍고, 주위를 구경하면서 갔는데, 오늘은 그와의 경쟁 아닌 경쟁으로 그럴 겨를이 없다.
간식을 먹으면서 쉬고 있는데 제주MBC 취재 차량이 지나간다. 나를 보더니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싶은지 나에게로 온다. 2005년, 내가 초반에 탈락했을 때 KBS PD가 아주 좋아하던 일이 떠오른다. 당시 그 PD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선생이 탈락한 것은 아주 좋은 반찬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난 쉬고 있는 것이다. MBC PD가 오더니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쉬고 있는 중이고, 주위를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풍경을 구경하지 않고 달리기만 하는 게 무슨 재미냐?”고 대답한 뒤 10여분 인터뷰하는 동안 이종배씨가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주위를 구경하면서 뛰다가 걷기를 계속하여 캠프에 오후 2시 전에 도착했다. 도착한 뒤에는 페트병을 이용하여 머리도 감고 등목도 했다. 물을 닦지 않고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이때 바람이라도 불면 추워서 소름이 돋는다. 사막인데 낮에 추울 수 있는 것이다.
코스 벗어나 지름길 달리면 경고
셋째 날은 어제보다 한 시간 이른 아침 7시에 출발한다. 오늘의 지형 브리핑 메모를 보니 3km 정도가 어려운 것으로 되어 있다. 이곳이 대체 어떤 곳이기에 ‘아주 어려움(Extremely Diffi- cult)’이라 표현하였을까?
CP1을 무난히 지나고, CP2로 향하는데 이때부터 어려움이 닥쳐온다. 예상은 했지만 끝없는 모래평원에 강한 바람이 불어와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CP2는 왼쪽 언덕 위에 보이는데, 깃발 방향은 오른쪽으로 반원을 그리면서 꽂혀 있다.
CP2에 빨리 도착하고, 강한 바람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가로질러 가고 싶지만 주최측이 주자들이 지름길을 택하도록 유혹하는 방향으로 깃발을 꽂아 놓은 데는 어떤 저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묵묵히 깃발을 따라 힘겹게 간다. 그래도 조금은 가로질러 갔다.
CP가 가파른 모래 언덕 위에 있어 오르기가 버겁다. CP 텐트를 강한 바람이 부는 이곳에 설치한 이유는 주자들이 깃발 방향으로 오지 않고 가로질러 가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서임을 알게 되었다. CP 자원봉사자가 나에게 “앞으로 깃발 방향을 따라가지 않고 가로질러 가면 페널티가 주어진다”고 경고한다.
얼마를 갔을까. 선행 주자가 모래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부터 ‘Extremely Difficult’ 3km인가? 가파른 모래 산을 오르는데 자꾸 미끄러진다. 여기에 좌측 모래 평원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내 몸을 우측으로 밀어낸다. 우측은 내리막이다. 이곳으로 떨어지면 다시 여기로 올라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강한 바람이 실어 오는 모래알이 다리를 때릴 때는 대나무 회초리로 맞는 아픔을 느낀다. 모래 산을 올랐다가 내려가기를 한참 했다. ‘이제 저 산만 넘으면 CP가 보이겠지’ 하는 기대는 산을 넘으면 앞에 산이 또 있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 만다.
기대와 실망이 얼마나 교차했을까. 고맙게도 깃발이 CP를 향하여 좌측으로 꽂혀 있다. CP로 향하는 내리막길이다. 얼마나 반갑던지…. CP에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그들도 이 코스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런 환영을 해주는 것이리라.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이제는 오늘 잘 수 있는 캠프로 향한다.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어려운 코스를 무난히 통과하였다는 자부심에서 우러나오는 기분이었다. 이 맛 때문에 이곳에 오는 것인가?
캠프가 고약한 장소에 있다. 평평한 곳에 설치하면 힘든 코스를 통과한 주자들이 편할 텐데, 높은 모래 언덕에 설치해 놓아서 주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속으로 주최측을 욕하면서 마지막 힘을 내어 올라간다. 힘들었지만 오늘도 완주했다. 캠프에 들어오니 우리 팀원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해 힘들어서 저녁을 푸짐하게 먹었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깻잎과 오징어젓·창란젓이 전부인 데도 아주 맛있었다.
넷째 날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아침 7시에 출발한다. 코스 브리핑에 의하면 지형은 ‘샌디(Sandy)’, 난이도는 ‘어렵다(Difficult)’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도 쉬운 하루가 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코스 중간에 오아시스가 있다는 것이다. 출발하면서부터 신발이 모래에 푹푹 빠진다. 신발 속으로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테이프를 붙였지만 미세한 모래먼지는 어김없이 들어간다. 신발 속에 모래를 넣고 부자연스럽게 뛰고 걷고 하다보니 CP1에 도달하는 시간이 꽤 길어졌다.
물이 계속 솟아오르는 신기한 오아시스
끝이 안 보이는 모래평원, 구름 한 점 없는 쪽빛 하늘, 내리쬐는 태양열, 발이 푹푹 빠지는 지형을 ‘언젠가는 오아시스가 나타나겠지’ 하는 기대로 꾹 참고 간다. 저 멀리 희미하게 푸른 숲이 보이는 듯하다. 과연 오아시스일까, 아니면 신기루?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발걸음은 더디고, 더딘 속도에 조바심이 난다.
어느덧 오아시스의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차량도 보이고, 사람 모습도 보인다. 그래도 그곳까지 가려면 30∼40분은 족히 걸릴 것이다.
힘겹게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이 반가이 맞아준다. 배낭을 풀자마자 물탱크 있는 곳에 가서 바가지로 물을 뒤집어썼다. 이렇게 시원할 수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상쾌한 물을 덮어쓴 적이 있었을까?
이 오아시스는 참 신기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모래평원인데, 이곳 50여 평에만 나무가 있고 바닥에서 물이 계속 솟아올랐다. 만년설에서 흐르는 물도 없고, 비도 오지 않고, 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에 인접해 있는 것도 아닌데 사막 밑에서 물이 계속 솟아오른다. 이 물은 도대체 어디서 흘러오는 걸까?
오아시스를 지난 후에는 평탄한 길이 쭉 이어졌다. 앞서가는 주자 서너 명을 추월하면서 계속 뛰었다. 그러자 다시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평원이 나타난다. 할 수 없이 걸어서 간다. 높은 모래언덕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평원을 걷는 것은 상당히 지루하다. 소요되는 시간과 체력 소모에 비해 주행 거리가 길지 않아서 짜증이 나기도 한다.
오늘은 오아시스에서 쉰 시간이 길어서인지 어제보다 늦은 시각에 캠프에 도착하였다. 그래도 일몰 전이라 휴식시간이 길어서 좋다. 캠프에 항상 비치돼 있는, 설탕을 넣은 뜨거운 ‘엘 아로자 차’(이집트 특산품으로 홍차와 비슷하다)는 원기 회복에 좋다. 서너 잔을 마신 것 같다. 그리고 저녁은 그동안 아껴 두었던 마늘종과 오징어 젓갈을 곁들여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내일부터는 이틀 연속 뛰어야 하는 롱 데이(Long Day)이므로 미리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서다. 그런 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출발시간은 아침 6시였다.
90km를 달리는 롱 데이
롱 데이는 1박2일 또는 무박2일 동안 뛰는 사막마라톤의 하이라이트로, 이번 대회의 클라이맥스나 다름없다. 나는 이날을 기다려 왔다.
그 이유는 천천히 뛰거나 걸으면서 사막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고, 야간에는 주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서 잡념 없이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싫증나지 않을 정도로 감상할 수 있고, 낮에 데워진 몸으로 사막의 싸늘한 찬공기를 느낄 수 있고, 롱 데이를 이상 없이 완주하면 대회를 성공적으로 끝낸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100km 울트라마라톤을 10여 회 완주한 경험이 있어서 거리에 대한 심적 부담은 없었다. 어제 얘기로는 롱 데이의 주행 거리가 100km라고 했는데, 막상 출발하는 날 아침의 코스 브리핑 용지에는 90km로 나와 있다. 예상하고 있던 거리보다 10km가 짧아져서인지 마음이 한결 가볍다.
1부 그룹(1∼20위)은 오전 9시에 출발하고, 속도가 더딘 나머지 주자들은 오전 6시에 출발한다. 나는 2부 그룹에 속해 있어서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여야 했다. 새벽 4시에 기상해 아침밥을 먹고 출발 준비를 하다보니 경황이 없다.
출발 전까지 고민했던 것은 ‘홍현분씨와 함께 갈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달리기 능력으로 봐서는 그녀 혼자 출발하는 것이 좋겠지만, 야간 주행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처음에는 그녀가 야간에도 혼자 갈 수 있도록 아주 밝은 헤드램프를 배낭에 매달아 주었다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함께 가기로 했다.
브리핑 용지에는 7개의 CP가 있고, 난이도는 마지막 코스를 제외하고 모두 ‘보통(Moderate)’이라고 나와 있다. 구간별 거리는 10∼12km이고, 마지막 구간의 거리가 13.5km에 난이도는 ‘보통’과 ‘어려움(Difficulty)’이 혼합되어 있다. 마지막 날 마지막 코스가 전 코스 중에 가장 길고 어려운 것으로 보아서 이 코스가 이번 대회에서 주자들을 제일 골탕 먹일 것 같았다. 출발하자마자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기어오른다. 롱 데이의 지형은 초반에 해발 250m로 올라갔다가 모래평원을 지나 마지막에 다시 내려오는 형태이다.
홍현분씨의 걸음이 늦어진다. 이유를 물으니 발가락이 아프단다. 절뚝거리면서 걷는 폼이 물집이 잡힌 것 같다. 길가에 앉아서 발가락을 살펴보니 물집이 아니라 조금 곪았다. 좁쌀 정도 크기로 발가락 앞부분이 곪았는데 이것이 발걸음을 어색하게 만들고, 사람을 짜증나게 만든 것이다. 사혈침으로 그곳을 콕 찔렀더니 병아리 눈물만큼 누런 고름이 나온다. 손가락으로 더 짠 다음 알코올 솜으로 소독한 후 출발하였다. 처음에는 종전과 같이 절뚝거리더니 이내 발걸음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이장(내 닉네임이다)님은 확실히 ‘사막의 명의’입니다”라고 나를 치켜세웠다.
CP6까지는 특이 사항이 없다. 그저 걷고 뛰고 그것뿐이다. 오르막과 내리막도 없고, 정말로 지루한 주행이다. 어느 지점에서는 오전 9시에 출발한 1부 그룹 주자들 중 선두가 우리를 추월하였다. 이 중에는 한국팀의 호프인 안병식씨도 있었다. CP6을 지나 CP7로 향하는 중간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중간에 간식으로 점심을 때워서 서서히 시장기를 느낀다.
내 느린 속도에 맞춰 오던 홍현분씨가 “CP7에 미리 가서 저녁을 준비할 테니 천천히 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속도가 느린 나와 함께 CP에 가서 저녁을 만들어 먹기에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아 “그러라”고 하였더니 그녀는 이제야 살았다는 기분인지 냅다 달린다. ‘얼마나 달리고 싶었으면 저리 빨리 달리나’ 생각하니 미안해졌다.
나중에 그녀는 그런 지형을 km당 5분30초 페이스로 뛰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때 체력을 너무 소모해 그녀는 마지막 8km를 죽을 고생을 하면서 가게 된다.
참가자 골탕먹이도록 설계된 코스
그녀가 그렇게 가고 난 후 나도 느리게 갈 수 없어서 열심히 뛰었다. CP 7에 도착하니 그녀가 저녁을 만들어 놓고 기다린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아주 맛있게 먹었다. 후에 그녀는 ‘이때 먹은 밥이 그동안 먹어본 밥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고 기억을 되살리곤 했다.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편히 쉴 수 있는 캠프로 향했다.
달빛이 있어서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진 않았지만, 헤드램프가 없으면 주행하기가 곤란했다. 자원봉사자가 “이곳부터 평지에 내려갈 때까지는 급경사이니 착지에 특히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서 있는 자리에서 먼 곳을 보니 마을의 불빛이 보이고, 희미하게나마 야광 막대기(Glow Stick)가 보이는 것 같다. 이제 저 곳을 지나면 캠프가 있다는 생각에 빨리 가고픈 마음이 앞선다. 앞을 환히 비쳐주는 헤드램프로 밑을 보니 자원봉사자의 주의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지면은 거의 직벽이고, 미끄러지기 좋은 모래와 흙이 섞여 있으며, 형태는 지그재그여서 주자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그리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짜증나는 코스를 반복해서 주행하게 한다. 지면의 돌출 부분을 피해야 하고, 미끄러지지 않을 곳을 찾아야 하고, 방향을 지시하는 깃발을 찾아야 하는 등 전진하는 데 이중 삼중으로 어려움을 준다. 다 내려왔나 싶으면 깃발은 오르막을 향하여 꽂혀 있다.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온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우리 둘은 오직 평평한 지면이 빨리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주최측이 꽂아 놓은 깃발을 충실하게 쫓아간다. 얼마쯤 왔을까, 앞에 언덕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평지로 내려온 것이다. 이제는 돌출 부분이나 미끄러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깃발이 아주 이상하게 꽂혀 있다. 비유를 한다면, 축구장 본부석에서 보았을 때 우측을 반원 모양으로 빙 돌아가면서 야광 막대기와 깃발이 함께 꽂혀 있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란 이럴 때 유혹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인가. 참가자들은 빨리 캠프로 가고픈 마음에 빙 둘러 가는 것보다 본부석 건너편으로 바로 질러가고 싶은 것이다.
유혹을 간신히 뿌리치면서 억지로 깃발을 따라가는데 주최측 진행용 지프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캠프까지 몇 km 남았느냐’고 물었더니 8km 정도 남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열심히 온 거리가 겨우 5km 정도란 말인가. 맥이 탁 풀린다. 절반 이상은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묻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뻔하지 않았나’ 하고 후회했다. 그런데 이 차가 규정된 깃발을 따라가지 않고 질러가는 주자들을 감시하는 차량인 줄은 그때는 몰랐다.
마침내 도착한 썰렁한 결승점
홍현분씨가 자꾸 처진다. 마을 뒷길을 가는데 숲이 우거져서 짐승이라도 튀어 나올까봐 메고 가던 폴을 꺼내 손에 들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앞장서서 가면서도 뒤를 수시로 돌아보며 그녀의 속도에 맞춰 간다.
이제 2km 남았다. 그런데 그 거리가 그렇게 멀 줄이야…. 마을로 들어섰다. 좌우에 집들이 늘어서서 ‘곧 캠프에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미로를 헤매는 그런 느낌이다. 홍현분씨는 탈진 일보 직전이고 거의 울상이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 모래 언덕이 나타난다. 미끄러지면서 기를 쓰고 오르다가 나중에는 네 발로 기어오른다. 마침내 올라간 그곳이 그렇게 기다리던 캠프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자를 괴롭히는구나’ 하는 생각이 치밀자 야속하고 억울한 느낌이 들어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는다.
캠프에 도착하면 완주의 기쁨에 마음이 들뜰 줄 알았는데 오히려 허탈한 느낌이 든다. 많은 사람이 환영하는 상황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를 맞이하는 분위기가 썰렁하니까 섭섭한 마음이 든다. 새벽에 출발하여 장장 19시간30여분간 뛰고 걷고 하여 도착한 곳의 덤덤한 분위기가 가뜩이나 추운데 더 춥게 만든다. 특히 깜깜한 밤을 헤집고 이곳에 오기까지 고생한 생각을 하면 주최측의 처사가 좀 심한 것 아닌가 하는 서운함까지 든다.
텐트에 들어가니 냉동창고에서나 느낄 수 있는 냉기가 추위에 언 몸을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나는 모닥불 옆에서 몸을 녹인 후에야 텐트에 들어가서 잘 수 있었다.
글·이무웅 1943년 서울 출생. 용산고·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1976년 구진산업 창업, 현재 대표이사. 1998년 달리기 시작, 풀코스 30회(최고기록 3:49:25), 100km 울트라마라톤 16회 완주. 양천마라톤클럽·용달사모 회장 역임. 고비·아타카마·사하라사막 마라톤 완주 이어 남극 마라톤 도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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