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 1:1-20
▣ 책망받는 거짓 교리들-디모데전서 1장-
디모데가 사임하고 싶어했으므로, 바울의 첫번째 부담감은 디모데로 하여금 머물러 있어 임무를 완성하라고 격려하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 일꾼들은 그만두고 싶어했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휫튼 대학(Wheaton College)학장이신 레이몬드 에드만(V. Raymond Edman) 박사가 늘상 말씀하시듯 “그만둔다는 것은 언제나 너무 빠른 결정이다.“
바울은 본 장에서 젊은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에서의 그의 지위와 하나님께서 그가 승리하는 것을 보고 싶어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 격려한다.
1. 청지기-하나님은 너에게 사역을 맡기셨다(1:1-11)
디모데는 바울이 그를 데살로니가에 보냈기 때문에 에베소에 있지 않았다. 그에게 그 중요한 교회에서 사역하도록 임무를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신뢰하여 사역을 맡기신 것처럼(1:11), 디모데에게 역시 특별한 청지기 직분을 주셨으며 충성을 다할 것을 기대하셨다.
4절에서 “하나님의 경륜“(또는 거룩한 교훈)이란 “하나님의 청지기 직분“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에베소에 있는 거짓 선생들은 그들 자신의 프로그램에 따라서 일하고 있었으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청지기 직분은 아니었다.
청지기의 책임에 있어 첫째로 요구되는 것은 그의 주인에게 충성하는 일이다(고전 4:1-7) 에베소에는 율법 교사들로서 이름을 내려고 하는 거짓 선생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이들은 말씀의 진리에서 돌아섰고 우화(신화)와 끝 없는 족보에 귀를 기울였으며, 그들이 대답할 수 있기보다는 질문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사이비 종교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 이들의 “사역“은 그리스도인이나 지교회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논쟁과 분열을 촉진한다.
5절에서 바울은 거짓 선생들과 그들의 사역을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참된 청지기의 사역과 대조시킨다. 하나님께 속한 청지기가 목표로 하는 것은 사람들이 마음과 선한 양심과 진지한 믿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는 일이다. 그러나, 거짓 선생들은 끝 없는 논쟁, 분열, 그리고 헛된 공론을 증진시킨다 !
바울은 율법의 의의를 디모데에게 설명하는데,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구원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보여 주기 위하여 주신 것이라고 지적한다. 율법을 정당하게 사용하는 일은 필요하다(롬 7:16). 9-10절에서 바울은 율법이 정죄하고 있는 죄인들의 명단을 열거하는데, 이 명단을 출애굽기 20장과 비교한다면 실제적으로는 모든 계명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바울과 디모데에게 영광스러운 복음을 맡기셨던 것이지 율법의 제도를 맡기신 것은 아니었다!(고후 3-4장 참조) “건전한 교리“는 문자 그대로는 “건강한 교훈“, 즉 영적인 건강을 증진시키는 교훈을 뜻한다. “위생학, 건강법“(hygiene)이라는 영어 단어는 헬라어 단어에서 왔으며, 여기서는 “건전한, 바른“으로 번역되었다(딤후 1:13/딤후 4:3/딛 1:9/딛 1:13/딛 2:1-2/딛 2:8 참조).
디모데후서 2장 17절에서 바울은 거짓 교훈들이 “썩은 것“을 삼킨다고 경고한다. 의사인 누가는 바울이 의학에 관해 많이 언급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없었다 !"
딤전 1:12-17
2. 종-하나님은 맡은 일을 감당될 능력을 주신다(1:12-17)
여기서 바울은 은혜로 말미암아 효과적으로 봉사할 수 있게 된 자신을 하나의 본보기로 제시한다. 12절에 나오는 “직분“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디아코니아인데, “종“이란 뜻을 가진 영어 단어 “디콘“(deacon)은 여기서 온 말이다.
디모데는 그가 어리다는 이유와 사역할 만한 자질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으로 말미암아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나를 보라 !“고 사도는 말한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전에 나는 훼방자요 살인자였다 ! 만일 하나님의 은혜가 살인자를 선교사로 만들 수 있다면 당신도 성공시킬 수 있다“(고전 15:10).
주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은(모든 신자들은 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며(엡 2:8-9), 또한 은혜를 통하여 봉사하게 된다(롬 12:3-6).
14절에서 바울은 그의 생애에 있어 동기를 부여한 세 가지 힘, 곧 은혜, 믿음, 사랑을 열거한다. 그리스도와 또한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한 그의 사랑은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그를 강압하였고(고후 5:14-) 그리스도를 믿는 그의 믿음은 그에게 능력을 주었으며(엡 1:19)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생활에 역사하심으로 그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히 12:28).
바울은 자기가 구원받은 것을 하나님이 잃어버린 죄인들을 위하여, 특히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시는 일의 본보기로 여긴다. 오늘날 불신자들은 바울과 같이 빛을 보거나 음성을 듣는 방식으로 구원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이스라엘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장차 어느 날 그리스도를 보고, 회개하고, 믿으며,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바울은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구절을 여러 번 인용하고 있는데, 15절에서 그 첫번째로 사용한 것을 본다(3:1/4:9/딤후 2:11/딛 3:8). 이것은 초대교회의 신약 예언자들로 말미암은 예언의 말이라고 생각되는데, 교회의 주된 가르침을 요약한 말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참고할 만한 기록된 성경이 없었으므로 이 “말들“은 믿음에 대한 권위 있는 진술로서 그들에 의해 인용되었다."
딤전 1:18-20
3. 군사-하나님은 전쟁을 위해 너를 준비하셨다(1:18-20)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경기장이 아니라 전쟁터였다. 디모데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 군사로 등록되었다(딤후 2:3-4). 바울은 이 젊은 목회자에게 몇 년 전에 있었던 성직 수여식을 상기시킨다. 지교회에 있는 선지자들 중의 몇 명은 성령에 의해 미혼인 디모데를 불러 특별한 봉사 사역을 위하여 안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행 13:1-3/딤전 4:14/딤후 1:6).
“하나님이 너를 먼저 준비시키지 않고서는 너를 부르지 않으신다“라고 바울은 격려한다. “하나님의 영이 너에게 인을 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네가 전쟁을 뚫고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보실 것이라는 증거이다“(빌 1:6 참조). 이러한 성령의 약속은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디모데가 종사하고 있는 영적인 전쟁의 무기들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양날 가진 날카로운 칼처럼 사용하며 사단을 무찔러야 하는 것이다(엡 6:17/히 4:12).
그러나, 정확한 교리를 가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인 군사들은 정확한 생활을 가져야만 한다(믿음과 선한 양심, 19절).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내는 이 목회서신들에서 양심이라는 단어를 몇 차례 사용한다(딤전 1:5/딤전 1:19/딤전 3:9/딤전 4:2/딤후 1:3/딛 1:15).
양심이란 단어는 라틴어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함께 안다“는 뜻이다. 양심은 우리의 행위들을 증거하는 내적인 재판관이다(롬 2:15). 신자가 죄를 숨기고 살면서도 정통 교리를 유지해 가기란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영적인 파선으로 인도해 가는 방법이다. “양심을 버린다“는 것은 죄와 사단에게로 가는 문을 열어 놓는 것이다. “순전한 양심“은 “더럽혀진 양심“이 되며 궁극적으로는 영적으로 어떠한 느낌도 없는 “화인맞은 양심“이 된다.바울은 에베소에서 디모데에게 문제를 일으킨 두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데, 그들은 후메내오(딤후 2:17)와 알렉산더(딤후 4:14)이다. 이 두 사람은 분명히 에베소 교회의 회원들이었는데 훼방하는 것(아마도 거짓 교리)때문에 바울에게 징계를 당했을 것이다. 20절의 “배운다“는 말은 “징계로 말미암아 배운다“는 뜻이며, 사단이 불리한 환경들을 통하여 그들을 다루게 되는 것을 암시한다.
젊은 디모데가 하나님의 진리로써 이러한 사람들을 직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교회의 순전함과 능력을 보존하려고 한다면 이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어제의 거짓 교사들에게 저항하였더라면 오늘날 거짓 교리들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