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시인하는 영
2023.11.26.(성령강림후마지막주일)
선한목자교회 김 명 현 목사
1/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가를 시험하여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영입니다. 3/ 그러나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대자의 영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이 세상에 벌써 와 있습니다. 4/ 자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며, 여러분은 그 거짓 예언자들을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5/ 그들은 세상에서 났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6/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에게서 나지 아니한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알아봅니다. (요한일서 4:1-6)
들어가는 말
지난 목요일, 현대아산재단에서 열린 시상식에 다녀왔습니다. 물푸레나무공동체 이정아대표가 사회봉사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시상식이 시작되기 전, 여러 수상자들의 공적 내용들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35년간 이어진 시상식의 역대 수상자들 명단도 훑어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가톨릭, 신부, 수녀라는 명칭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대상을 받은 곳도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이며, 대표 신부님이 수상자였습니다. 명단 중에는 착한목자수녀회도 있더군요. 안타깝게도 교회와 목사라는 명칭은 찾지 못했습니다. 유명한 목사들도 많고, 교세도 가톨릭에 비해 월등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은 없었습니다.
시상식 전 오찬이 있었습니다. 주요 수상자 3명과 동반자, 그리고 정몽준 이사장과 심사위원장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함께 수상한 또 한 분은 의사였습니다. 20년 전에 베트남 롱안 지역에 ‘롱안세계로병원’을 세우고 지금까지 운영해 오신 분입니다. 그분의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원장님도 목사였습니다. 고신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의료인이자 목사로 선교지에 나간 것입니다. 하지만 수상식과 안내서 어디에도 목사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의료선교를 한 이태석 신부는 의사 이전에 신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는 의사라는 명칭에 가려질 뿐입니다.
개신교의 세속화된 이미지
목사와 교회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 것은 오래된 일입니다. 조용기 목사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목사라는 이미지는 ‘성장을 추구하는 자’로 각인되었습니다. 오늘날 목사는 성공을 위해 예수를 팔아먹는 이들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와 교회는 선한 일,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가려져 있는 것이 낫습니다. 교회와 목사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그 일이 성공과 부를 쌓으려는 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신부와 수녀는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로 인정됩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성공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지만, 고 조용기 목사는 오직 성공의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미지 아래 신부와 수녀들의 모든 일은 사회와 이웃을 위한 일이라고 포장되지만, 목사와 교회의 모든 일은 성공을 위한 일이라고 오해되는 것입니다. 이는 개신교회가 하나님의 일에 충실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합니다. 물론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하면 했지, 덜 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어떤 면에서는 사실입니다. 조용기 목사의 성공주의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비판하는 겸손한 목사들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내는 목소리의 가치조차도 헌신과 희생이 아닌 성공에 따른 것이기에 개신교회의 이미지를 바꿀만한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개신교의 틀을 가진 신천지의 이만희교주나 기독교복음선교회 JMS의 정명석교주나 그 외 많은 이단의 교주들도 성공주의에 물들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중이 교회와 그들을 굳이 구별할 이유가 없습니다. 개신교를 대표하는 목사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검소하게 수도원적 청빈을 바탕으로 가정과 교회를 이끄는 목회를 한다면 개신교 목사의 이미지는 완전히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드러내지 않고 사회와 이웃을 위해 봉사하던 목사와 신도들이 발견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영을 받아들인다
그러면 대중들은 그들을 목사, 장로, 권사, 집사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이름들이 자랑스러워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개신교인들은 지금도 많기에 순식간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하지만 사명감을 가진 정직한 목사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하고 청빈을 실천하려고 할지라도 이미 그가 성공주의에 기초한 교회를 맡고 있는 한, 성공을 바래서 구름같이 몰려온 교인들은 그러한 목사의 변화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이런 목사가 등장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요한일서는 영지주의자들과 대결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이어진 구절은(7절 이하) ‘서로 사랑하자’고 말하는데, 오늘 말씀은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가를 시험하여 보십시오.”(1) 영이란 육체와 의식으로 이루어진 자연적 인간에 외부로부터 더해진 ‘무엇’을 말합니다. 특히 요한이 말하는 영이란 신으로부터 오는 종교적 정신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믿음 가운데 그 영은 우리에게 와서 육체, 의식과 더불어 존재의 세 번째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되는 영은 하나님에게 올 수도 있지만 다른 신에게서 올 수도 있습니다.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인 영이 하나님의 영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영입니다.”(2) 당시에는 가현설을 주장하는 예언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을 영지주의자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은 맞지만, 예수님은 인간과 같은 육체를 지니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육체를 지녔다면 예수가 신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그들의 영은 인간적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사랑을 드러낸다
영지주의자들은 신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신은 영으로 존재하시므로 인간에게 주어진 영적인 지식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오직 필요한 것은 영적인 지식입니다. 여기서 육체와 생명에 대한 사랑은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구원의 요소가 아니게 됩니다. 기독교는 영지주의를 완전히 배제하지만, 오늘날 우리 개신교의 모습을 보면 영지주의를 닮아 있습니다. 구원은 교리의 고백에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을 교리로 삼아 고백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교회의 주권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영입니다.”(2) 이 말씀은 우리의 교리에 대한 고백을 정확하게 지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재 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 영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해야 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인’은 우리가 말로 고백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헌신과 연대의 정(compassion)을 우리에게 온 영이 스스로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이렇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있는 영은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한 영은 그리스도의 적대자의 영일뿐입니다. 그런데 적대자의 영은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3) 적대자의 영이 이미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육신으로 보내셨던 하나님의 영을 받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 등장한 것입니다.(4)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드러납니다. 인간의 육체와 의식을 영과 분리하면 영적 지식만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에게서 난 영은 인간의 육체와 의식을 영과 분리하지 않습니다.
나가는 말
이 가운데서만 진정한 사랑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사랑 때문에 요한은 “여러분은 그 거짓 예언자들을 이겼습니다.”(4)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선언할 수 있는 이유를 밝힙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분이 세상이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4) 거짓 예언자들은 세상에서 났습니다.(5)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5) 그들은 영적 지식을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영적 지식을 준 적이 없으므로, 실제로는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할 뿐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에 속해 있기에 세속적인 그들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종교지도자들과 종교인들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게서 나야 합니다.(6)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속에 내재하는 영으로 말미암아 ‘인정’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모든 것은 사랑의 실천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에게서 나지 아니한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합니다.”(6) 우리의 말은 사랑이며,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은 사랑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6)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