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Excellent Lives [Part One]: Spiritually
탁월한 삶을 살라(1): 영적으로
"When you bring blind animals for sacrifice, is that not wrong? When you sacrifice crippled or diseased animals, is that not wrong? Try offering them to your governor! Would he be pleased with you? Would he accept you?" says the LORD Almighty."(Malachi 1:8)
Well, for the next four weeks we're going to look at the Book of Malachi. Rather than me burying you with a whole lot of detail about the background and the circumstances that prompted the writing of this little book, all you really need to know for our purpose in the next few weeks is that a prophet named Malachi was commissioned by God with one purpose in mind. And his goal was to reestablish standards of excellence amongst God's people.
앞으로 4주 동안 말라기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다음 몇 주 동안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이 작은 책이 쓰여지게 된 배경과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모든 것을 설명하기 보다는, 선지자 말라기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한 가지 사명을 주셨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말라기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탁월함에 대한 기준을 재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Now today, I'm going to read a section from Malachi chapter 1. And this section of Scripture rocked my world almost 30 years ago. And so that you catch the context let me give you just this much background. Hundreds of years prior to this, God had told his people that whenever it was time for them to bring a lamb to the temple as a worship offering, they should walk through their herds and find the very best lamb. "Make an excellent worship offering when you make one," was God's request. "Make an excellent offering."
오늘, 저는 말라기 1장의 한 부분을 읽어드릴 것입니다. 성경의 이 부분은 약 30년 전에 제 삶을 뒤흔들었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배경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수백 년 전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성전에 제사 제물로 양을 가져올 때는 항상 양 무리 중에서 가장 좋은 양을 골라서 가져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물을 드릴 때는 최상의 제물을 드려라."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최상의 제물을 드려라."
That's the standard. Part of the reason why God wanted them to bring their best lamb was because hundreds of years thereafter, at the point where he would send Jesus Christ into the world as his Lamb that would take a way the sins of the world, God knew he was going to give his best Lamb.
그것이 바로 기준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가장 좋은 양을 가져오라고 하셨던 이유 중 하나는, 수백 년 후 하나님이 세상의 죄를 담당하는 어린 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때, 하나님은 그분의 가장 좋은 양을 보내실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So he told the people, "The standard for lambs is very high. You give me your best lamb because I'm going to give you mine." For a time, all of the people of God honored that standard of excellence. And they brought their prized lambs to the temple for offering. But then came Malachi's day, and listen to what was happening. And listen to God's response to it Malachi 1:8.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양에 대한 기준은 매우 높다. 너는 가장 좋은 양을 가져와야 한다. 나도 너희에게 가장 좋은 양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그 탁월성의 기준을 존중했습니다. 가장 좋은 양을 제물로 성전에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말라기 시대에 이르렀을 때 일어난 일을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들어보십시오. 말라기 1장 8절입니다.
"'When you bring blind lambs to sacrifice on the worship altar, is that not wrong? When you bring crippled and diseased lambs to my altar, is that not wrong? Try offering that to your governor! Would he be pleased? Would he accept them? Oh, that one of you would shut the temple doors, so that you would not light useless fires on my altar. I am not pleased with you,' says God. 'I will accept no such offering from your hands. My name is to be great among the nations, from the rising of the sun to the going down of the same.'" Do you get the picture? Instead of people searching their flocks, trying to identify the very best lamb to bring to the temple for offering, they're doing precisely the opposite.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이해가 되십니까? 백성들은 자기의 양떼를 살펴서 제물로 드리기 위해 성전에 가져갈 가장 좋은 양을 찾아 성전에 제물로 가져가지 않고, 정확히 그 반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Now, you've got to know something about my life during the time when I read this text for the first time. I read this text for the first time when my whole spiritual gain was figuring out how to do the barest minimum for God without incurring his displeasure. It's the same game I had played with academics. I tried to do the least amount of study without falling off the honor roll.
제가 처음으로 이 말씀을 읽고 있었을 당시 제 삶이 어떠했는지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때, 제가 영적으로 구한 것은 하나님의 분노를 초래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가장 최소한의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학문을 대할 때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우수자 명단에서 빠지지 않도록 하면서 최소한의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You know, during this time in my life, it never even dawned on me to try to give God my best. All I had ever done was give God leftovers leftover time, leftover energy, leftover talent, leftover money and leftover love. And do you want to know what's even scarier? It never even occurred to me that giving God leftovers might be offensive to him. In my youthful arrogance, I thought God would be tickled pink with any little scrap of attention.
인생의 그 시기에, 저는 하나님께 최선을 드리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남은 찌꺼기- 남은 시간, 남은 힘, 남은 재능, 남은 돈, 남은 사랑-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남은 찌꺼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 것입니다. 젊은 날의 교만으로, 저는 아주 조금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And the day I read this passage, I heard God saying to me just so clearly, "Bill, I'd rather you give me nothing at all, than to give leftovers to me when it's convenient for you. I don't want your scraps. I want your best or nothing at all."
이 말씀을 읽었을 때, 저는 하나님께서 "빌, 네가 편리한 대로 나에게 찌꺼기를 주려거든 차라리 아무 것도 주지 않는 것이 좋겠다. 나는 너의 일부를 원하지 않는다. 너의 최선이 아니라면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Excellent God
뛰어나신 하나님
This made me rethink everything. In fact, it made me ponder the whole concept of divine excellence. And I went all the way back to the beginning and decided God demonstrated excellence at creation. By any standard of measurement, God did a good job when he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I mean, spend a single morning in the mountains or an afternoon along the seashore, an evening under the stars. Give God a grade. Go to the Grand Canyon or Niagara Fall give God a fair, a good, or an excellent. You'd better put excellent.
이 일로 인해서 저는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최선에 대한 온전한 개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최상의 것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평가 기준에 의해서이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정말 잘하셨습니다. 산 속에서 아침을 맞이하거나 바닷가에서 오후를 보내거나 별빛 아래서 저녁을 보내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점수를 매겨보십시오. 그랜드 캐넌이나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보십시오. 하나님께 보통, 우수, 최우수 중 점수를 준다면 아마 최우수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Then I thought of the wonder of God creating human beings man and woman, with bodies and minds and spirits and souls marvelously complex creatures with physical and emotional and spiritual capabilities that boggle the imagination. Excellent you've got to give God an excellent for that.
그리고 인간을 만드신 놀라우신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 몸과 마음과 영혼을 가진 남자와 여자-상상을 초월하는 육체적이고, 정서적이고, 영적인 능력을 복합적으로 가진 놀라운 존재입니다. 최상입니다--그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최우수 점수를 드려야 합니다.
And then I thought of how these magnificent human beings balled up their fists, and rebelled against God pretty early on in the story. And instead of God stomping them out for their insurrection, God demonstrates excellent forbearance and excellent patience. He keeps loving and working with these rebellious creatures century after century. He has excellent forbearance.
저는 이렇게 뛰어난 인간이 인류 초기에 주먹을 쥐고 하나님을 배반했던 것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반란에 대해서 인간을 멸하지 않으시고, 최고의 관용과 최고의 인내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반역한 창조물을 수세기가 지나도록 사랑하시고 함께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관용을 보여주셨습니다.
One time he led his people across a barren wilderness from Egypt to Canaan hundreds of miles with a guidance system more sophisticated than the space shuttles of our day. God guided his people with excellent guidance. I think of a time in the Old Testament when God delivered his people from the hand of their enemies even though they were outnumbered 100 to 1. God gave his people excellent protection. From time to time, he would deliver his people from famine and drought and offer them excellent provision water from a rock, manna from heaven.
과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수백 마일의 메마른 광야를 지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지금의 우주선보다도 더 정교한 시스템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정말 잘 인도해 주셨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100대 1로 수적으로 열세함에도 불구하고 그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셨던 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최고로 잘 보호해 주셨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기근과 가뭄에서 백성을 구해내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실 정도로 아주 풍성하게 공급해주셨습니다.
The Old Testament is filled with the excellent acts of God. And then you come into the New Testament and you read that God gave the absolute best he had to give his Son. Jesus set the eternal standards for excellence in teaching. No one had ever taught like Jesus taught. He had excellence in wisdom and excellence in integrity so even his detractors couldn't find fault with this life. He had excellence in love. No one had ever loved like Jesus loved.
구약은 하나님의 탁월하신 행동으로 가득 합니다. 신약에 와서도 하나님이 주셔야 했던 절대적인 최선, 즉 그분의 아들을 주신 것을 읽게 됩니다. 예수님은 가르침에 있어서 탁월함에 대한 영원한 기준을 세우셨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것처럼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성실성에 있어서도 매우 뛰어나셨기 때문에 그분을 참소하던 사람들도 그분의 삶에서 결점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있어서도 뛰어나셨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만큼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His was love of another kind. And when it came time for Jesus to pay the price for your sin and mine, he died an excellent death. Did you ever think of that? Jesus died an excellent death. He carried his own cross. He forgave those who were pounding spikes into his hands and feet. He said, "Father forgive them. Don't lay this charge against them. They don't know what they're doing. They don't realize who they're killing."
예수님의 사랑은 다른 차원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과 저의 죄를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셔야 했을 때 그분은 위대하게 죽으셨습니다. 그것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가장 위대한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손과 발에 못박은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저들은 누구를 죽이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Within moments of his final breath, he made room for one more sinner in his coming kingdom the thief on the cross next to him. And then he said, "It is finished." And he died an excellent death. No one has ever died a death as excellent as Jesus' death because he died voluntarily. He died for a cause. And you're the cause, and I'm the cause. He died an excellent death. And, of course, he pulled off an excellent resurrection.
And then he sent his excellent Spirit, the Holy Spirit, so that each of his followers could become carriers of his power and his presence. God won't get any Bs, Cs, or Ds from you or me just excellents.
예수님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가게 될 천국에 한 명의 죄인, 예수님 옆에서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하게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위대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유가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이유이고, 제가 바로 그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위대하게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위대하게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뛰어나신 성령을 보내주셔서 제자들이 그분의 능력과 임재를 전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B, C, 또는 D가 아닌 최우수 점수를 받으셔야 합니다.
Our Response to God (1): the best devotion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응답 (1): 최선의 헌신
Back to Malachi, chapter 1, where the prophets simply asks the question to the people of his day, "How should a human being respond to the excellent activities of God?" What kind of response, what kind of worship offering, what kind of lamb do you bring to an excellent God?
말라기 1장으로 돌아와서, 선지자들은 그 당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뛰어난 행하심에 대해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뛰어나신 하나님께 어떠한 반응, 어떠한 예배 제물, 어떠한 양을 드려야 하겠습니까?
Malachi would say, "A blemished lamb is not the right answer. The one leaning against the fence ready to die don't bring that one. The blind one, the crippled one, the worthless one don't you bring the wrong kind of lamb to the one who gave his best for you. Don't do it." God won't take your leftovers or your scraps. Better you bring no lamb at all than you bring that stuff. Sooner or later you're going to have to answer Malachi's question and decide the quality of lamb you're going to offer to the God who has given his very best for you.
말라기 선지자는 "흠이 있는 양은 정답이 아닙니다. 죽을 때가 되어서 울타리에 기대고 있는 양을 가져오지 마십시오. 눈 멀고, 다리를 절고, 값어치가 없는 양 - 여러분을 위해서 최선의 것을 주신 분께 그렇게 좋지 않은 양을 가져오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남긴 것이나 찌꺼기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런 것을 드리려고 한다면 아예 아무 것도 드리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조만간에 여러분은 말라기 선지자의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 가장 최선의 것을 주신 하나님께 어떤 양을 드려야 할 지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When I first read this passage, it became very clear to me that I needed to make an excellent commitment back to God. I needed to make an unconditional commitment to God. And at that point in my life, I had never made an unconditional commitment to anything or anyone because I was an options guy.
제가 처음으로 이 말씀을 읽었을 때, 하나님께 최상의 헌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매우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께 무조건적으로 헌신해야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제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떤 것에나 누구에게나 조건없는 헌신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What's an appropriate commitment to someone who paid the ultimate price in his commitment to me? Now, I remember wrestling with this, and I decided I had to make a carte blanche commitment to God. So with a trembling voice almost 30 years ago, I said these kinds of words to God, "God, I take the limits and the conditions off my commitment to you. I'll do your bidding, whatever it is. I'll obey your will and your ways. I'll go where you ask me to go. I'll say 'yes' to the promptings of your Spirit as I understand them. I'll live out this unconditional commitment even if it costs me everything."
나에게 헌신하기 위해 최고의 값을 지불한 사람에게 적절한 헌신은 어떤 것일까요? 이 문제로 씨름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전권을 위임하는 헌신을 해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30년 전에 떨리는 목소리로,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 대한 제 헌신에 있어서 한계와 조건을 버립니다. 어떤 것이든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길에 순종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시는 대로 갈 것입니다. 제가 알아듣는 대로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무조건적인 헌신의 삶을 살 것입니다."
I even memorized a verse in the Bible where Paul expressed his commitment unconditionally. It's in Acts 20. Paul says, "I no longer count my life as 'do unto myself,' only that I would achieve the mission given to me by God." I made an unconditional, carte blanche commitment to God because of his unconditional, carte blanche commitment to me my best for his best, his best for my best.
저는 바울이 자신의 무조건적인 헌신을 표현한 성경 구절 하나를 암송했습니다. 바로 사도행전 20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무조건적인 헌신, 하나님께 전권을 위임하는 헌신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무조건적이고 전권을 위임하는 헌신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최선에 대한 저의 최선이며, 저의 최선에 대한 하나님의 최선입니다.
And as strange as this might sound to some of you, as I remove the limits and the conditions off my commitment to God, instead of feeling a sense of disappointment or regret, I felt precisely the opposite kinds of feelings. I felt a God-guided adventure coming on. I felt liberated from a self-led, self-limiting life.
어떤 분들에게는 낯설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하나님께 대한 헌신에서 한계와 조건을 버렸을 때 저는 실망이나 후회의 느낌이 아니라 그 정반대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모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내 자신이 이끌어야 하고, 내 자신이 제한해야 하는 삶에서 해방되었다고 느꼈습니다.
And this much I know: God has done a heck of a lot better leading my life than I would have. And I stand before you today as a person with no regrets from making a carte blanche commitment deal to God. Sometimes I wish I could go from person to person to person, look you right in the eyes and say, "Have you, formally, thoughtfully, irrevocably, made a carte blanche commitment to God? Have you? Have you? Have you still got a bunch of limits and conditions on your commitment? Have you said, 'God, I'll do whatever you ask me to do; I'll go wherever you ask me to go. I'll turn over the helm of my life to you lead it. I'll follow you if it costs me everything.'"
그리고 이것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보다 훨씬 더 잘 제 삶을 인도해오셨습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께 전권을 위임하는 헌신을 했던 것에 대해 전혀 후회함 없이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때로 저는 각 개인을 찾아가서 그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고, "당신은 정식으로, 깊이 생각해서, 취소할 수 없도록, 하나님께 전권을 위임하는 헌신을 하셨습니까?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렇게 하셨습니까? 아직도 헌신하는데 있어서 많은 한계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가라고 하시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내 삶의 조종 키를 하나님께 넘겨드리겠습니다. 제 삶을 인도해주십시오. 모든 것을 잃는다할지라도 하나님을 따를 것입니다.' 라고 기도하셨습니까?" 라고 묻고 싶습니다.
Do you know what the interesting thing is when I say words like that? Some of you think those of us who have made carte blanche commitments to God are noble. But do you know what Malachi would say? That's why this guy rocks so many people's world. "If you're living with a commitment less than a full commitment to God, you're offering him a blemished lamb."
제가 그렇게 말할 때 재미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 전권을 위임하는 헌신을 했다고 해서 우리들을 고결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는 어떻게 말씀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말라기 선지자가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흔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흠이 있는 어린 양을 드리는 것이다"
Some of us pat ourselves on the back for a 50% commitment to God. Some of us pat ourselves on the back for an 80% commitment to God. Some of us pat ourselves on the back for a 90% commitment to God. And Malachi would simply say, "A 90% commitment to God is 10% short. It's a blemished lamb. Better you offer no lamb at all than a blemished lamb."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50% 헌신하는 것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대견스러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80% 헌신하는 것에 대해 자기 자신을 대견스러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90% 헌신하는 것에 대해 자기 자신을 대견스러워합니다.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라면 단순하게 "하나님께 90% 헌신하는 것은 10% 모자란 것이다. 그것은 흠이 있는 어린 양이다. 흠이 있는 어린 양을 드리는 것보다는 아예 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Our church has 10 values. Do you know what our final, tenth value is? We say it this way: "We believe that full devotion to Jesus Christ is normal for every believer." That's the full devotion, carte blanche. That's normal. Anything less is subnormal. God has never done anything less than his best in any activity he's put his hand. God has never demonstrated less than an excellent love and provision, protection and guidance for you.
우리 교회에는 10가지 가치관이 있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가치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헌신이 모든 성도들에게 정상적인 것이라고 믿습니다." 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헌신이며 전권을 위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모자란 것은 어떤 것이든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손으로 행하신 일에 있어서 어떤 것도 그분의 최선이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최상의 사랑과 공급, 보호와 인도가 아닌 것은 행한 적이 없으십니다.
And when he saved you, he saved you with an excellent salvation. So he says, "Make an excellent commitment back to me. Bring me the best commitment you can bring me." Are you going to do that? No scraps, no leftovers. Your best for his best.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셨을 때 최상의 구원으로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최상의 헌신을 나에게 돌려주어라. 네가 할 수 있는 한 최상의 헌신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일부분도 안되고 찌꺼기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최선에 대해 여러분의 최선을 드려야 합니다.
Our Response to God (2) : the best affection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응답(2) : 최선의 사랑
Another dimension in my response to the passage we're looking at today is that I realized that God deserved a more sincere form of affection from me. He deserved a carte blanche commitment, but he also deserved a more sincere form of affection from me. This was uncharted water for me because I didn't grow up in a family where affection was expressed all that freely.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구절에 대해 제가 다른 차원으로 응답한 것은, 나의 사랑을 더 진실하게 표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전한 헌신을 받으실 만한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가 사랑을 좀더 진지한 모습으로 표현하여 드릴만한 분입니다. 이것은 저에게 지도에 없는 우물이었습니다. 저는 애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가정에서 성장하기 않았기 때문입니다.
So I was a novice in the giving and receiving of love. But I discovered through this text, and many other texts, that God loved me in an unbounding way, and his was an excellent love, a costly love, a self-giving, altruistic, well-meaning, heartfelt affection for the likes of me.
저는 사랑을 주고 받는 일에 있어서 서투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과 또 그 외 다른 많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한하신 사랑으로 저를 사랑하고 계시며 그분의 사랑은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한 최상의 사랑이며, 희생하는 사랑이고, 자신을 주고, 이타적이며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진심어린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And when you feel the powerful, personal love of God, how do you respond to an excellent love? I felt that I needed to give God a more heartfelt expression of my love for him. So as I moved out of my comfort zone, I began to experiment with expressions of affection that I had never done before.
하나님의 강력하고 개인적인 사랑을 느낄 때 여러분은 그 최상의 사랑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저는 하나님께 제 사랑을 더 애정어린 모습으로 표현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전지대로부터 나와서 전에는 해본 적이 없었던 사랑을 표현하는 실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I wrote some letters to God. "Dear God, I've never expressed loving feelings well, but I want to try in my relationship with you. So help me figure out ways to show you in my heart that I love you and I'm overwhelmed with your love for me. Signed, your son, Bill."
저는 하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더 노력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받고 있음을 마음으로 하나님께 보여드릴 수 있는 방법들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의 아들, 빌."
Because I've never been literary or poetic in any way, I thought, "Maybe God would like it if I read poetry to him." So I turned to the Psalms, and I would just do this kind of thing. I'm in Psalm 86. "You are a great, great God and you do marvelous deeds. Teach me your way, O Lord, and I'll walk in your truth, and I'll walk with an undivided heart. I praise you, O Lord, my God, with all my heart. I glorify your name for great is your love for me. You, O Lord, are compassionate and gracious,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love and faithfulness."
저는 어떤 식으로든 문학이나 시를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 하나님은 내가 시를 읽어드리면 좋아하실 거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편을 펴서, 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편 86편입니다. "대저 주는 광대하사 기사를 행하시오니 주만 하나님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오리니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가 크사 …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And I would just read it to God as kind of a loving, poetic expression of my heart toward his. In those days, cars didn't have cassette players or CD's. They only had eight tracks. Remember that? And I bought some Christian eight-track music and put it in my car. I remember how awkward it felt the first time when I cranked it up and I sang along. God had never heard me sing privately to him before. And I'd defend God in conversations with people who were speaking about him disrespectfully. People would be trashing God, and I just couldn't stay silent.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제 마음을 애정어리고 시적으로 표현한 것을 찾아 읽어드리곤 했습니다. 그 당시 차에는 카세트나 CD 플레이어가 없었습니다. 8트랙 테이프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그래서 저는 찬송가 8트랙 테이프를 사서 차에 가지고 다녔습니다. 처음 그 테이프를 들으면서 노래를 따라불렀던 것이 얼마나 어색했었는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노래를 불러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에 대해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게 되면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시시하게 취급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I'd just go, "Excuse me, I for one don't share your cynicism. I found out that God loves the likes of me, and I'm trying to love him back." But what was driving this new affection these new expressions of my affections for God was not a list of rules or expectations from a pastor or a teacher.
"죄송하지만, 저로서는 그렇게 비꼬는 말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같은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분께 그 사랑을 돌려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저의 사랑을 새롭게 표현한 것은 어떤 규칙이나 목사님이나 선생님의 기대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It was, simply, a response to an excellent love. Paul one time said, "The love of God constrains me." The phrase means, "It has me in its grip." And when God's love gets you in its grip, then you want to give him a carte blanche commitment, and you want to give him a more sincere form of expression of your love back.
단지 최상의 사랑에 대한 반응이었을 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강권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구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잡고 있다"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붙잡을 때, 전권을 위임하는 헌신을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사랑을 좀더 신실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을 것입니다.
I don't know what you need to do. I don't know if you need to start writing things to God, reading Psalms to him, get some worship music. But when you find out the quality of God's love, you want to return a quality of love back to him. You want to give the best lamb you've got in terms of a heart expression back to God, don't you? I think you do. So I responded to an excellent God by wanting to make an excellent commitment, a more sincere expression of affection, and then just one more thing before we close.
저는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어떤 글을 써야 하는 지, 하나님께 시편으로 찬양해야 하는 지, 찬양을 들어야 하는 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때 그런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표현하는 의미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양을 드리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그럴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뛰어나신 하나님께 최상의 헌신을 하기 원하는 것과 사랑을 더 신실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응답했습니다. 마치기 전에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Our Response to God (3): the best contributions of skills and talents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응답 (3): 기술과 재능을 최선을 다해 드리는 것
That is I wanted to do something with my skills and abilities. I felt that I needed to do something with my skills and abilities. For some reason, I've kept all of my monthly calendars since 1972. I don't know why. I just stuck them in a drawer. And because this is our 25th anniversary year as a church, this week I dug out my 1975 calendar to see what was going on in my life 25 years ago this week.
그것은 바로 나의 기술과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내 기술과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저는 1972년부터 달력을 모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서랍 속에 넣어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가 우리 교회 25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이번 주에 25년 전 이번 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싶어서 1975년도 달력을 찾아냈습니다.
Twenty-five years ago this coming week like, starting tomorrow I was wrestling so much with whether or not to obey the prompting of God to start this church that I checked in to a room in downtown Chicago for four days to duke it out with God. It's right on my calendar.
25년 전 이번 주에 - 가령, 내일을 시작하면서 - 저는 이 교회를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할 것인지에 대해 무척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문제로 하나님과 담판짓기 위해 4일 동안 시카고 시내에 있는 호텔에 묶고 있었습니다. 제 달력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That boxing match in downtown Chicago was so intense I still remember some of the issues. I was fighting over fears of inadequacy or feelings of inadequacy, I should say. I felt very inadequate trying to be a senior pastor when you're 23 years old. I didn't have a seminary degree, and I felt I had the wrong personality. Most days, I still feel like I have the wrong personality to be a pastor.
시카고 시내에서의 그 싸움은 매우 격렬해서 아직도 몇 가지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무능력에 대한 두려움 또는 내가 부적절한 사람이라는 느낌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23살의 나이로 담임목사가 된다는 것이 정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신학교 학위도 없었고, 성격도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목회자가 되기에는 좋지 않은 성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And then I was wrestling with fear of failure. And that fear of failure was quite real because we had no people, no money, and no facilities. And then, there was one over-arching issue but the issue was, was I willing to invest the best years of my life, the best energies of my life, the best talents and skills at my disposal was I really willing to invest that in a God, which was going to require servanthood and sacrifice?
그리고 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도 싸우고 있었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너무도 실제적이었는데, 사람도 없었고, 돈도 없었고, 시설도 하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 내 인생의 최상의 에너지,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재능과 기술을 기꺼이 드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종의 도와 희생이 필요한 일인데 하나님을 위해서 그것을 기꺼이 드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When at that very time, I had a marketplace opportunity wide open to me where I knew I could eventually acquire some wealth and some power, and maybe, a little freedom and pleasure along with it. The question boiled down to whether I was willing to give God the best I had to give, the best years of my life, the best skills and energies, or was I going to reserve my best for investments of my own choosing?
바로 그때, 저에게는 부와 권력과 그리고 그로 인한 약간의 자유와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경제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내가 드려야 하는 최선의 것, 내 인생의 최고의 시기, 최상의 기술과 힘을 하나님께 드릴 것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투자할 수 있도록 그것을 남겨둘 것인가로 모아졌습니다.
And you don't even want to know how hard I wrestled with that one four days in a room in downtown Chicago. It was like a spiritual brawl. What eventually wore me down was just reflecting on God's willingness to take the very best he had to give. And I realized God has never put his hand to anything where he did less than his best for me.
시카고 시내의 한 방에서 4일 동안 그 문제로 씨름한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실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이었습니다. 결국 저를 넘어뜨린 것은 하나님이 주셨던 그 최선의 것을 하나님이 다시 받으시기 원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하나님의 최선이 아닌 것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So eventually, I surrendered and I said, "God, I will do what you're asking. I'll give the best years of my life and the best skills and talents I have to further your cause here on earth." And again, I didn't do it out of fear of punishment. I didn't do it out of guilt. I did it because I wanted to give my best for the one who gave his best for me.
그래서 결국, 저는 항복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제 인생의 최고의 시기, 제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기술과 재능을 드리겠습니다." 형벌에 대한 두려움에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죄책감에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자신의 최선을 주신 분에게 나의 최선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Do you know what Malachi would say? He'd say, "Hey, it's no big deal for you to give a scrap of your talent and a scrap of your time to God. In fact, better you give nothing at all. God doesn't want your scraps or leftovers. He wants you to wrestle with how you can take your best talents and your best abilities and the best energies of your life, and figure out how to invest them in ways that further his purposes in this world." "Don't give God blemished lambs," Malachi would say.
말라기 선지자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자, 네 재능의 일부분과 남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사실, 그럴 거라면 아무 것도 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 하나님은 일부분이나 찌꺼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네가 너의 가장 좋은 재능과 최상의 능력과 네 삶의 최상의 에너지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그것을 어떻게 드릴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 흠이 있는 양을 드리지 말라"고 말라기 선지자는 말할 것입니다.
I've thought and prayed about this all week long. I just want Malachi to rock your world like he did mine. I want you to see what the standard is. Here's the standard: your best your best commitment, your best affection, and the best contributions of your skills and talents for the one who's never given less than his best for you every day of your life. And that will go on all the way through eternity.
이번 주 내내 저는 이 일에 대해 생각하고 기도했습니다. 말라기의 말씀이 제 삶을 흔들었던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그러기를 바랄 뿐입니다. 기준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시기 바랍니다. 기준은 이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에 최선이 아닌 것은 절대로 주시지 않는 분을 위해서 여러분의 최선-최선의 헌신, 최선의 사랑, 기술과 재능을 최선을 다해 드리는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영원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Someday, your eyes are going to behold God and his glory and Jesus in his splendor. And you will be so glad that you gave the prized lamb of your commitment, your affection, your skills and talents to God every day of your life. And you'll regret every blemished lamb you ever brought his way.
언젠가 여러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과 광채로 빛나는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날마다 하나님께 헌신과 애정과 기술과 재능의 가장 좋은 양을 드렸던 것으로 인해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렸던 흠 있는 양에 대해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So as we close, let me just have you think one last time. You are wonderfully, and excellently made. You are. God has placed you in an excellent creation. He has loved you with an excellent love. This moment, seekers included, even though you're not in a relationship with God, he loves you with an excellent love. God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e best he had to give, for your forgiveness of sin and mine.
설교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경이적으로 최상급으로 지어졌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최상의 창조세계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최상의 사랑으로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하나님과 관계가 없을 지라도 하나님은 최상의 사랑으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그분이 주셔야 했던 최선, 그분의 독생자 아들을 주셨습니다.
And he gave us his excellent Spirit and this excellent church. And he's given us life in all it's fullness and an excellent eternity to be anticipated after we're done with this life. The final question is, "What do you give him in return?" Do not give him a blemished lamb.
그리고 하나님은 훌륭하신 성령과 훌륭한 교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셨고, 우리가 이 생을 마친 후에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영생을 주셨습니다. 마지막 질문을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보답으로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습니까?" 흠이 있는 어린 양을 드리지 마십시오.
Sometimes I wonder what would happen in our church if all of us were giving God our best lambs. Man, can you imagine? Let's do that, friends. Not because I'm asking you, but in response to the excellent activity and love of our great God.
때때로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최상의 어린 양을 드릴 때 우리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그렇게 해보십시오. 제가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의 뛰어나신 행하심과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그렇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