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순시대 9년 홍수 치수사업, 단군조선의 도움
요순임금 때 9년 홍수의 치수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자.
1. 서경
치수사업에 급한 우(사공 우)는 결혼한 후 고작 나흘을 지내고 떠났는데, 그 아들 계가 태어났다라고 기록하고 있고, 또 서경에서 기자가 답하여 가로되, "나 듣건대 옛적 곤(우의 아버지)이 홍수에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오행의 법을 어겼으므로 제(? ->단군왕검!)가 노하시어 홍범구주를 주지 아니하니 법도가 어그려졌습니다. 곤이 참을 당하고 우가 그 뒤를 이어받아 천제(? ->단군왕검!)가 에 홍범구주를 주시니 법도가 자연스레 되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2. 회남자
제후를 도산국에 소집하니 그 수가 만에 달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3. 역대신선통감
문득 북방의 도사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어 우가 맞아들여 절하고 물으니, 도사 말해 가로되, "나는 북방 수정의 아들이니라. 상제께서 그대가 9역의 수토를 다스려 만민을 구하려 한다는 말을 들으시고 기뻐하시어, 나 그대를 도우러 왔노라. 여기에 옥토로 만들어 전문(?->단군조선의 진서!)으로 새긴 옥인(옥으로 만든 도장:나침반?) 한개가 있으니 이것을 차고 다니면 험한 곳을 지나도 위태롭지 아니하고 흉한 것을 만나도 해를 받지 아니할 것이다. 또한 신침(신의 바늘:자->금척?) 한 개가 있으니 이것으로써 물의 깊고 앝음과 그 변화의 무궁함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령스러운 보물 옥부(옥으로 만든 부적?)가 있으니 이 부로써 무릇 험난한 물을 진압하여 영원히 평온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삼보를 너에게 주나니 큰 공을 이룩할 지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4. 오월춘추
요순 때에 9년 홍수가 나서 하우(하나라 시조 우 : 순임금 우나라의 사공)를 명하여 이를 다스리라 하니 우가 8년동안이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매우 걱정하여 남악 형산에 이르러 백마를 잡아 하늘에 제사하여 성공을 빌더니 꿈에 어떤 남자가 스스호 현이(북쪽의 이족: 동이족 : 단군조선의 진한)의 창수사자라 칭하면서 우에게 가로되, "구산 동남의 도산(회계산?)에 신서(신의 책)가 있으니 삼월 재계하고 이를 내어 보라" 하므로 우가 그 말에 의하여 금간옥첩의 신서를 얻어 오행통수의 이치를 알아 홍수를 다스리어 성공하고 이에 주신(조선 : 단군조선)의 덕을 잊지 못하여 정전을 그어 율도형량의 제도를 세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5. 십팔사략
요임금이 천자위에 오르고서 70년동안에 9년을 계속하여 큰 홍수가 있었다. 그래서 곤이라는 사람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곤은 9년이 되어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요임금이 이미 늙어서 정치에 실증이 났다. 이때 사악이 순을 천거헸다. 그래서 요임금은 순에게 천하의 정치를 맡겼다. 순은 이렇게 하여 마침내 요임금의 재상이 되고 섭정이 되었다. 그리하여 공공을 귀양보내고 곤을 가두고 삼묘의 제후들을 멀리 추방했다. 하우씨 우는 곤의 아들로 곤은 요임금 때 홍수를 막으려 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래서 순임금은 곤의 아들 우로 하여금 그를 대신하게 하였다. 우는 노심초사 그 일에 열중하여 13년동안이나 집을 떠나 있었고 그리하여 구주의 9개의 물길을 열고 9개의 늪에는 제방을 쌓아 수해를 막고 9산을 측량했다. 우는 그 사업을 순임금에게 보고했다. 순임금은 매우 기뻐하여 우에게 백관을 통솔케하는 정무를 맡아보게 해서 최고의 여예를 주어 그 노고를 위로했다. 순임금이 죽고 우가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6. 송미자세가
하늘이 우에게 주셨다. 이상이 9년 홍수에 대한 중국측의 기록이다. 여기서 십팔사략은 단군조선의 도움을 배제하여 기록하고 있다.
위 기록을 종합하여 보면, 중국측의 기록에서도 노골적으로 우의 치수를 주신(州愼:단군조선)의 천제(天帝:단군왕검) 도움으로 성공하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역대신선통감과 오월춘추는 구체적이다. 위 기록에서 제, 상제, 천제(하늘님)는 신화식으로 단지 기록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당시 요순임금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에 불과 하였는데, 단군왕검을 천제라고 기록한 것이며, 북방 수정자, 현이의 창수사자는 단군왕검의 태자이신 부루(진한(이시다. 즉 단군왕검이 순임금의 간청으로 태자부루를 보내시어 치수의 법을 순의 사공인 우에게 전수하여 주었던 것이다. 세가지 보물인 옥인, 신침, 옥부는 치수에 꼭 필요한 물건으로서, 방향을 측정하는 나침반, 길이를 재는 자, 오행치수법을 기록한 책(홍범구주, 신서, 금간옥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9년홍수당시 단군조선은 요순우에 대하여는 천국(하늘나라:중앙, 중심)이었으며 단군은 바로 천제(하늘님)이었다!!!
[부루의 치수]
1. [오월춘추에 ....唐堯 때에 9년 홍수가 져서 당요가 夏禹를 명하여 이를 다스리라 하니 우가 8년 동안이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매우 걱정하여 南嶽 衡山에 이르러 白馬를 잡아 하늘에 제사하여 성공을 빌더니 꿈에 어떤 남자가 스스로 玄夷의 蒼水使者라 칭하면서 우에게 가로되, 九山 東南의 塗山에 神書가 있으니 三月 齊戒하고 이를 내어 보라 하므로 우가 그 말에 의하여 金簡玉牒의 神書를 얻어, 五行 通水의 理를 알아 洪水를 다스리어 성공하고....].하니, 현이는 朝鮮 당시에 동서남북중의 五部를 남 적 백 현 황으로 별칭한 바, 북부가 곧 현부인데 현부를 가리켜 현이라 한 것이며....[이상 신채호 저, 조선상고사 상, 삼성미술문화재단, 1977, P76]
2. [십팔사략] : 堯임금이 천자위에 오르고서 70년 동안에 9년을 계속하여 큰 홍수가 있었다. 그래서 곤이라는 사람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르게 했는데 곤은 9년이나 되어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요임금이 이미 늙어서 정치에 실증이 났다. 이때 사악이 舜을 추천했다. 그래서 요임금은 순에게 천하의 정사를 맡겼다........순은 이렇게 해서 마침내 요임금의 재상이 되고 성정이 되었다. 그리하여 ...공공을 귀양 보내고 곤을 가두고 삼묘의 제후들을 멀리 추방했다....하우씨 우는.... 곤의 아들이요, ...곤은 요임금 때에 홍수를 막으려 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그래서 순임금은 곤의 아들 禹로 하여금 그를 대신하게 하였다. 우는 노심초사 그 일에 열중해서 13년동안이나 집을 떠나 있었고, ........그리하여 구주에 9개의 물길을 열고 9개의 늪에는 제방을 쌓아 수해를 막고 9山을 측량했다. 우는 그 사업을 순임금에게 보고했다. 순임금은 매우 기뻐하여 우에게 백관을 통솔케 하고 정무를 맡아 보게 해서, 최고의 영예를 주어 그 노고를 위로했다. 순임금이 죽고 우가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십팔사략 상, 증선지 저/ 윤재영 역, 박영사, 1987. PP26-30]
3. 요임금이 천자가 된 때는 서기전 2357년이다. 요임금이 출현한 때는 2383년이며, 제지를 멸한 때가 서기전 2357년이 된다(삼국유사에서 ...요가 즉위한 지 50년 만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고 일컬었다...에서 경인년은 서기전 2311년이나, 요임금 즉위 50년이면 즉위원년을 서기전 2383년으로 잡으면 영락없이 서기전 2333년 무진년이 된다. 갑자 계산을 잘못 한 것 같음). 요임금은 서기전 2357년부터 서기전 2284년까지 73년간 천자위에 있었다.
4. 홍수치수에 대한 기록은 십팔사략이 오월춘추보다 시간문제에 있어서는 더 자세한데, 정리하면 요임금이 약 70년간(서기전 2357년부터 서기전 2284년까지 73년간) 천자위에 있는 동안 9년 대홍수(서기전 2396년경부터 서기전 2288년경까지)가 있었고, 우의 아버지 곤이 치수를 담당했으나 9년간(대략 서기전 2280년경까지)을 성공하지 못했으며, 순이 섭정을 하면서 곤을 죽였고 순임금(서기전 2284년부터 서기전 2224년까지 제위)이 곤의 아들 우로 하여금 치수를 맡겼는데, 우는 13년간이 지난 후(서기전 2267경?)에 겨우 치수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햇수를 계산하면 치수하는데 걸린 기간이 최소한 22년(서기전 2288년경부터 서기전 2267년경까지)이나 된다.
5. [한단고기 단군세기] 조선 제1대 단군왕검 갑술 67년(서기전 2267년) 태자 부루(扶婁)를 우사공과 도산에서 만나게 하여 태자로 하여금 오행치수법을 전수케 했다. 나라의 경계를 정하여 유주와 영주를 우리에게 속하게 하고 회대지역의 제후를 정하여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舜으로 하여금 감독하도록 했다.[같은책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편에는 더 자세한 기록이 있음]
6. [진주소씨 족보] 요임금은 風夷의 후손인데...족손인 己昆吾를 蘇城에 봉하였는데....서기전 2266년에 소성이 檀君朝鮮에 영속되었으며 己姓을 蘇姓으로 고쳤다....기곤오의 후손이 나중에 경주에 진한을 세웠다......
(위 5. 한단고기의 기록과 무관하지 않다. 서기전 2266년은 순임금 시대이다)
7. 정리 : 서기전 2300년경에 대홍수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며(노아홍수는 서기전 2348년경임), 우사공이 도산회의에서 단군조선의 태자 부루(현이의 창수사자, 북극 수정자)로부터 오행치수법이 적힌 신서인 금간옥첩을 받은 때가 서기전 2267년 갑술이 된다.
중국기록은 우리의 역사적 사실을 신화식으로 꾸미고 있다.....그러자 뜻밖의 기적이 나타났다. 그 흙탕물 속에서 난데없이 백안어신(白顔魚身)의 神仙이 나타났다. 그는 바로 河伯이었다. 불쑥 흙탕물에서 솟아오르자 더벅더벅 물위를 거듯 다가온 하백은 곤청색의 넓다란 돌을 禹에게 넘겨주자 아무 말도 없이 다시 물속으로 사라졌다. 돌을 자세히 보니 꾸불꾸불 잘 해독할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河圖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애당초부터 천제의 후원(단군조선의 후원?)을 받고 내려온 우였다.....人面蛇身의 신전으로 들어가 신주로 모셔진 복희로부터 옥간을 받았다. 이 옥간은 천지를 측량하는 귀중한 寶器였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로 분석하여 보면 위 백안어신의 신선은 바로 태자부루이다. 인면사신의 신전은 태호복희의 신전을 말하는 데, 도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백안어신은 다른 말로 하면 인어이다! 하얀 얼굴의 물고기 몸, 즉 인어이다! 북극수정자 즉 북극의 천하(天河)의 아들, 창수사자라는 말이다. 삼일신고에서 "임금께서 가라사대, (창창비천 현현비천) 저 푸르고 푸른것이 하늘이 아니며 저 가마득하고 가마득한 것이 하늘이 아니다...." 라고 적고 있는데 현이의 창수사자와 북극수정자는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현이의 현은 북쪽을, 북극수는 창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