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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바드 기타
바가바드 기타는 본래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제6권에 해당하는 일부분이지만, 내용상 워낙 핵심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독립된 경전으로 취급하여 읽혀진다. 바가바드 기타는 현대 인도 흰두교와 요가 계통 수행체제에서는 "요가 수트라" "우파니샤드"와 함께 독립경전으로 대접받고 있고, 명상수행자들에게 꼭 읽어볼 필요가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현대의 인도 힌두교 3대경전 중의 하나이며, 서민 대중들에게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인기있는 흰두교 계시서이다. 인도 고대 경전들이 다 그렇지만 이 경전도 기원전 5-10세기 에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 석가모니 붓다의 불교 창시 이전에 이미 대중들에게 널리 유포된 인도에서 가장 유명하고 잘 알려진 경전이다. 마하트마 간디도 이경전을 아침저녁으로 읽으며 죽을 때까지 품안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여러가지 명상수행 방법과 깨달음에 대한 개념, 수행자의 자세등에 참고할 만한 구절이 많다. 현대화된 명상체계에서도 바가바드 기타는 여전히 좋은 지침서가 된다고 생각하여 바가바드 기타 전 내용을 그대로 여기에 옮겨서 명상인들의 수행길에 도움을 주고자한다.
바가바드 기타는 700구절로 된 노래집이다. 이 글제목의 의미는 "거룩한 분의 노래" 또는 "신의 노래"라는 뜻이다. 이 노래는 아루즈나 라는 몰락한 판두왕국의 다섯왕자 가운데 세째 왕자와 전차 몰이꾼인 크리슈나와의 대화 내용이다. 이 아루주나가 자기의 사촌인 왕과 전쟁을 벌리는 극한 상황에서 아루주나 왕자의 전차 몰이꾼인 크리슈나가 가르침을 펼치는 장면이다. 전차 몰이꾼인 크리슈나는 바로 신의 화신이며, 아루주나의 전차 몰이꾼으로 가장하여 아루주나 왕자에게 깨달음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아루주나가 사촌들과의 전쟁을 앞두고 갑자기 삶과 죽음에 대한 회의에 빠진채, 전쟁을 할것인가 말것인가 갈등에 고민하면서 전차 몰이꾼으로 변장한 신 크리슈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부터 시작한다.
인간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있는가?
죽은 다음에도 영혼은 존재하는가?
이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깊은 근원적인 실체가 존재하는가?
크리슈나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 줄뿐 만 아니라, 자기구원과 해탈에 이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들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바가바드 기타는 어떻게 보면 "우파니샤드"와 "요가 수트라" 등 인도의 명상에 대한 고대경전의 중요한 핵심 에센스만 뽑아논 다이제스트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1장 운명에 대한 아루주나의 고뇌
1구 - 47구는 아루주나 왕자가 자기부친의 왕국을 빼앗아간 사촌의 국왕군대와 대치하고 전쟁을 시작하려는 찰라에 적과 대치한 상태에서 상황분위기를 묘사한 것이라 생략함.
(전쟁이란 극한상황을 설정하여 크리슈나가 궁극의 삶, 진리를 설하기 위한 문학적 설정으로 이해하면 됨.)
제2장 지혜의 길-1
크리슈나가 아루주나에게 절대의 실체를 이야기 해 주며, 육체는 죽드라도 실재(참나)는 죽지 않으니 걱정말고 나가 싸우라고 독려한다.
제2장 지혜의 길-2
19.자기가 죽이는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또는 죽임을 당하는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둘 다 무지한 사람들이다. 죽는 것도 없고 죽임을 당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태어난 적도 없으며, 죽지도 않는다.
20.그대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태어 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으며 태곳적 부터 존재한 영원한 그대는 육체가 죽는다고 해도 죽지 않는다.
21.자기가 태어 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 영원한 존재임을 깨달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22.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 입듯이 육체 속에 살고 있는 참나는 육신이 낡으면 낡은 몸을 벗어 버리고 새 몸으로 갈아 입는다.
23. 참나는 칼로 벨 수도 없고 불에도 타지 않으며 물에도 젖지 않고 바람으로 말릴 수도 없다. 참나는 벨 수도 없고 태울 수도 없으며 젖게 하거나 마르게 할 수도 없다.
24.참나는 영원하고 무한하며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토대이다.
25.참나는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으며 인간의 모든 생각 너머에 있어서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변화 너머에 있기 때문에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 그대는 이런 사실을 깨닫고 슬픔에서 벗어 나도록 하라.
26. 아르주나 여, 비록 그대가 사람이 태어남과 죽음에 종속된 존재라고 믿고 있을 지라도 슬퍼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것은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죽은 자는 반드시 다시 태어 나기 때문이다.
27.나고 죽는 일은 피할 수 없을 진대 어찌 죽음때문에 슬퍼해야 겠는가?
28.만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서 시작하여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에 나타난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다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돌아간다. 여기에 뭐 슬퍼할 것이 있는가?
29.참나의 찬란함을 보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을 설명하는 사람도 드물다. 또 설명을 해도 듣는 사람이 드물며, 들었다고 해도 대부분이 이해하지 못한다.
30.아르주나여, 모든 육체 속에 내재하는 참나는 영원하다. 결코 죽일 수 없다. 그러니 슬퍼하지 마라.
31.전사로서의 그대의 의무를 생각하고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 전사에게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이 없다.
32. 아르주나여. 정의를 위한 이런 전쟁에 참여하게 된 전사는 기뻐해야 한다. 이런 전쟁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 함으로써 하늘나라에 들어갈 기회가 온 것이기 때문이다.
33. 그대가 정의를 위한 이런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고,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며, 그대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다.
34. 그러면 사람들은 그대의 수치스런 행동을 두고두고 얘기 할 것이다.
35. 존경 받아야 할 사람이 명예스럽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은 죽는 것 보다 못한 것이다.
36. 용감한 전사들은 그대가 겁이 나서 도망쳤다고 할 것이며, 그대를 존경하던 자들도 그대를 경멸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의 적들은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그대를 조롱 할 것이다.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37.그대가 전쟁에서 죽는다면 하늘나라에 이를 것이요. 승리한다면 이땅에서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아르주나여. 싸우겠다는 확고한 결단을 하고 일어나라.
38. 고통과 즐거움,얻음과 잃음, 승리와 패배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이 위대한 전투에 뛰어 들어라, 그러면 그대는 악에서 벗어날 것이다.
39. 아루즈나여. 나는 지금 진리에 대하여 이론적인 설명(샹카)을 했다. 이제는 그 이론을 실천(요가)하는 것에 대해 말해 주겠다.
40. 이 실천을 통해 그대는 행위(카르마)의 속박에서 벗어 날 수 있으리라. 이 실천의 길(요가)에서는 어떤 노력도 결코 헛되지 않고 점점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간다. 영적인 깨달음을 위한 아주 작은 노력일지라도 그대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41.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참자아를 깨닫겠다는 오직 한가지 목표를 향해 흔들리지 않고 전진한다. 하지만 결단력이 없는 사람들은 끝없이 이것저것을 쫏아 다닌다.
42. 아루주나여, 무지한 사람들은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말들을 최고로 여기고,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그것을 떠 벌린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이 말하는 천상의 복락이란 자신들의 욕망을 투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43.그들은 쾌락과 초능력을 얻기 위하여 갖가지 특별한 의식을 거행한다. 하지만 그들은 욕망에 따른 행위로 인해 끊임없이 나고 죽는 윤회의 바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44.감각의 쾌락과 초능력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없으며,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인 삼매에 도달하지도 못한다.
45. 베다 경전들은 이세상을 구성하고 움직이고 있는 세가지 구나(기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루주나 여. 그러나 그대는 이세가지 구나의 활동을 초월해야 한다. 마음을 통제하여 모든 이원성을 넘어가야 한다. 얻고자 하는 마음이나 얻은 것을 쌓아 놓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야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그대 자신 안에 머물러야 한다.
46. 온천지가 물로 가득 차 있다면 작은 물병은 별로 쓸데가 없다.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얻어 온 천지가 신성으로 충만함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는 경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47. 그대의 의무는 그대가 하여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행위의 결과는 그대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 행위의 결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그것을 목적으로 행위해서는 안된다.
48. 아루즈나 여. 진정한 그대 자신 안에 머물면서 성공과 실패를 평등하게 여기고, 이기적인 욕망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그대의 의무를 수행하라.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절대 평정을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태가 바로 요가이다.
49.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는 지혜를 피난처로 삼아라. 그러면 충만한 영적인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행위의 결과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바라는 결과에 대한 목마름이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50. 그러나 이원성을 넘어 마음의 평정을 획득한 사람은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좋게 되든 나쁘게 되든 결과를 염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요가 수행에 헌신하라. 요가는 진정한 행위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51. 지혜로운 사람은 끊임없이 윤회의 원인이 되는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을 포기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불행에서 벗어난다.
52. 그대 마음이 이미 이원성의 혼돈을 극복했다면, 지금까지 배운 것들과 지금 듣고 있는 모든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53. 경전의 현란한 말과 가르침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깊은 사마디에 안주할 수 있을 때, 그대는 완전히 요가상태를 성취하게 될 것이다.
54. "오 크리슈나 여, 삼매에 안주하여 참자아에 대한 깨달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의 모습은 어떻합니까? 그들은 어떻게 말하고,어떻게 앉으며,어떻게 걷습니까?"
55. 아루주나여. 그들은 모든 것 속에서 자기를 보고 자기 속에서 모든 것을 보는 지혜에 안주한다. 그들은 이기적인 욕망과 감각의 쾌락에 대한 갈망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56.그들은 괴로움 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그것을 갈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탐욕과 두려움과 분노에서 벗어 났으며, 생각의 흐름이 출렁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57. 어떤 것에도 애착을 갖지 않고, 좋은 일을 만나든지 나쁜 일을 만나든지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확고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58. 확고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거북이 껍질 속으로 손발을 끌어들이듯이 감각의 대상으로 향하던 자신의 감각을 거두어 들인다.
59.감각을 대상으로 거두어 들여도 그에 대한 갈망은 한동안 남아있다. 하지만 지고한 참나를 깨닫는 순간 감각의 쾌락에 대한 모든 갈망이 사라져 버린다.
60. 아루즈나 여, 감각의 힘은 아주 강하다. 깨달음을 위해 구도의 길을 가는 사람조차도
감각의 힘에 휩쓸려 버릴 수 있다.
61.모든 감각기관을 제어하면서, 그 마음을 참나(또는 신)에게 집중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지혜를 얻는다.
62. 감각의 대상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집착이 생긴다.
63.집착은 욕망을 낳고,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분노가 일어나며, 분노는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64.그러면 과거의 실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되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사라진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삶이 황폐해진다.
65.그러나 그대가 감각의 세계에 살면서도 좋고 싫음을 초월한다면 모든 슬픔이 사라진 평화가 찾아 올 것이며 참나 아트만에 대한 깨달음이 흔들림없이 지속되리라.
66. 감각기관을 제어하지 못하면 지혜가 멀어지고 집중하여 명상하지 못한다. 집중하여 명상하지 못하면 평안을 얻을 수 없고, 평안이 없다면 어찌 즐거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67.그대의 마음이 감각의 요구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면, 거센 바람이 작은 배를 집어 삼키듯이 그대의 지성과 판단력이 감각 속에 매몰되어 버리고 만다.
68. 그러므로 아루즈나 여, 강한 힘을 발휘하여 감각기관의 좋아 함과 싫어함에서 벗어 나도록 하라. 진정한 그대 자신에 대한 충만한 깨달음안에 안주 할 수 있도록 하라.
69.진정한 자기자신을 깨달은 사람은 사람들이 앞뒤 구별 못하는 무지의 어둠 속에 있을 때에 빛을 본다. 세상사람들이 밝은 지혜라고 하는 것들이 그에게는 무지의 어둠에 지나지 않는다.
70.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지만 바다는 넘치지 않고 고요한 것처럼, 감각기관의 욕망을 내면의 바다로 끌어 들이는 사람은 지고의 평화를 누린다. 하지만 욕망을 쫏는 사람은 결코 평화의 바다에 이르지 못한다.
71. 모든 욕망을 버리고 결과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행하는 사람, "나"와 "나의 것"이라는 에고 중심주의를 벗어난 사람은 참된 평안에 이른다.
72. 아르주나 여, 이것이 바로 지고한 경지다. 여기에 이른 사람은 더 이상 미혹되지 않는다. 그대는 이자리에 도달하도록 하라. 그리하여 죽음을 넘어 영원으로 들어 가도록 하라."
제3장 카르마 요가(행위의 길)
1. "크리슈나 여, 당신 말씀처럼 더 이상 미혹되지 않는 초월적인 지혜가 행위보다 중요하다면 어째서 저에게 이런 끔찍한 전쟁을 하라고 하시는 겁니까?
2. 당신의 말씀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가장 높은 선(선)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한가지로 결정하여 가르쳐 주십시요"
3. "내가 예전부터 말했듯이 영혼의 순수함에 이르는 길은 둘이 있다. 영적인 지혜를 추구하는 즈나나 요가(지혜의 길)와 이기적인 욕망이 없는 행위를 추구하는 카르마 요가(행위의 길)가 그것이다.
4. 단순히 행위를 포기한다고 해서 영적인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다. 행위를 포기하고서는 그 누구도 완전함에 이르지 못한다.
5. 단 한순간이라도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의 본성인 타고난 기운에 따라 끊임없이 행위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6. 마음은 끊임없이 감각의 대상을 좇으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고 자세를 제어하고 앉아 있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수행자가 아니다.
7.하지만 마음으로 감각기관을 통제하면서 감각기관의 활동을 이기적인 욕망이 없는 행위에 쓰는 사람은 진실로 뛰어 난 사람이다.
8. 아르주나 여. 그러므로 그대의 의무를 수행하도록 하라. 행위를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휠씬 더 낫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대는 그대의 육신조차 지탱할 수 없을 것이다.
9. 신께 바치는 제사 외의 세상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욕망의 굴레에 얽매여 있다.
그대는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 이기적인 욕망이 없는 행위를 하도록 하라. 모든 행위를 신께 제물을 바치듯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말고 행하라.
10. 사람과,이기적인 욕망 없이 행하는 행위인 제사는 함께 창조되었다. 창조주 프라자 파티는 사람과 제사를 함께 만들면서 '너는 너의 모든 행위를 이기적인 욕망없이 행하는 제사가 되게 함으로써 번성하고 모든 소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11. 모든 것을 신으로 보고 어떤 대가를 바라지 말고 그들을 사랑하고 섬겨라. 그러면 신들도 그대를 사랑으로 보살펴 줄 것이며, 이런 봉사와 사랑을 통해 그대는 가장 높은 선(善)에 도달할 것이다.
12. 신들은 그대의 순수한 사랑과 섬김을 기뻐하며 그대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줄 것이다.
신께 제물을 바치지 않고 신이 주는 선물만을 받아 즐기려는 사람은 도둑이다.
13. 자기가 먹는 음식도 신께 제물을 바치는 심정으로 먹는 사람은 죄악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자신의 혀와 배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사람은 음식이 아니라 죄악을 먹는 것이다.
14.모든 사람이 음식을 먹고 생명을 유지한다. 그런데 음식이 되는 곡식은비를 먹고 자라며, 비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내린다. 비가 내리고 곡식이 영그는 것 자체가 대가를 바라지 않는 행위인 제사이다. 따라서 사람이 먹는 음식은 모두 대가를 바라지 않고 바치는 제물인 것이다.
15. 아르주나 여. 욕망없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영원하고 무한한 브라흐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브라흐만은 모든 제사행위 속에 현존하고 있으며, 만물은 브라흐만 안에 있다.
16.이런 생명의 법칙을 어기고, 다른 사람은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좇는 사람의 삶은 늘 공허하다.
17.하지만 참자아를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참자아 속에서 늘 만족을 누린다. 그는 기쁨과 성취의 원천이 곧 자신의 참자아임을 알기 때문에 외적인 대상을 통해 행복을 누리겠다며 헤메지 않는다.
18.그는 어떤 행동을 통해서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바라지도 않는다.
19.그러므로 언제나 결과를 목적으로 삼지 말고 그대가 해야 될 행위를 하라. 그대는 집착없는 행위에 헌신함으로써 깨달음과 평화에 도달하게될 것이다.
20.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라. 어진 임금이었던 자나카 왕은 이런 행위를 통해 완전함에 이르렀으며, 다른 성자들도 이길을 따름으로써 완전함에 이르렀다.
21.훌륭한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따르려고 애쓴다. 그가 보인 모범을 온 세상에 따르는 것이다.
22.아루주나 여. 나는 이세상에서 꼭 해야 할일도 꼭 얻어야 할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23.만약 내가 행동을 멈춘다면 사람들은 나를 본 받아서 행동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24.그러므로 내가 일하기를 멈추면 온세상이 혼란해 질 것이고, 결국에는 세상과 사람이 모두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이다.
25. 아르주나 여, 무지한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며 행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세상의 행복을 위해 행위한다.
26. 무지한 사람에게 이기적인 욕심에 따라 살지 말라고 꾸짖으면 그들의 마음은 혼란해 진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 깨달은 사람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든 일을 행함으로써
무지한 사람들이 스스로 따라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27. 모든 행위는 타고난 본성적인 기운(구나)의 흐름에 의해 저절로 일어난다. 그러나 에고에 사로잡힌 사람은 '내가 행위자'라고 생각한다.
28.하지만 본성적인 기운과 그기운의 흐름에 따라 행위가 일어 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위에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세가지 서로 다른 기운의 상호작용에 의해
저절로 행위가 일어 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를 행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9. 모든 행위가 세가지 기운의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 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행위의 결과에 집착한다. 깨달은 사람은 그런 무지한 사람을 혼란하게 만들면 안된다.
30. 그대는 참자아에 몰입하여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말고 행위하라. 모든 행위가 나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는 생각으로 행위하라. 자- 나가서 싸워라- 그대의 욕망을 버리고 싸워라.
31. 내가 가르치는 이 신성한 법칙을 진리라고 확신하고 불평없이 따르는 사람은 카르마(業)의 굴레로 부터 벗어난다.
32. 그러나 의심하고 불평하면서 이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무지한 사람이며, 그들은 스스로 고통을 불러 들이는 가련한 자들이다.
제4장 행위로 부터의 자유
1. "나는 이 불멸의 가르침을 태양신 비바스바트에게 전해 주었다. 비바스바트는 자신의 첫번째 인간 아들인 마누에게, 그리고 마누는 자기의 아들 이쿠샤바쿠에게 이 가르침을 전했다.
2. 아루즈나여, 뛰어난 현자들은 이처럼 대를 이어가면서 먼 옛날부터 전승되어 내려오는 요가의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이 불멸의 가르침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3. 이 가르침은 매우 깊은 비밀이다. 그러나 그대는 나의 친구이자 제자이기 때문에 오늘 그것을 그대에게 설명해 주었다."
4. " 당신은 비바스바트보다 훨씬 뒤에 태어났는데 어떻게 그에게 요가의 가르침을 전해 주었다고 하십니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읍니다"
5. "아루즈나여, 그대와 나는 수많은 생을 거쳐왔다. 그대는 그대의 전생을 잊어 버렸지만
나는 다 기억하고 있다.
6. 나의 진정한 존재는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다. 나는 만물 속에 거하는 그들의 진정한 주인이다. 나는 초월적인 창조력으로 나자신을 유한한 형태로 드러낸다.
7. 나는 진리가 쇠퇴하고 거짓이 세상을 덮으면 어느때이고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낸다.
8. 나는 선을 보호하고 악을 멸하기 위해, 그리하여 진리를 다시 확립하기 위해,
매시간마다 다시 온다.
9. 내가 곧 자기자신의 참자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육체를 자기로 여기는 그릇된 믿음을 부순다. 그리하여 육체를 자기로 여기는 에고의식에 사로잡힌 존재로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나와 하나가 된다.
10. 아르주나여, 많은 사람이 나에게 자신을 바침으로서 집착과 두려움과 분노에서 벗어 났으며, 참자아에 대한 깨달음의 불길 속에서 정화되어 나의 상태에 이르렀다.
그들은 나와 하나가 되었다.
11. 사람들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나에게 접근한다. 나는 그들이 어떤 길을 통해서 오든 다 받아들인다.
12. 아루즈나여, 사실 모든 길은 다 나에게 이르는 길이다. 세상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성공하길 바라면서 저마다 자신이 선택한 신을 섬긴다. 그렇게 하면 이세상에서 소원을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신을 섬기는 것도 결국은 나에게 오는 길이다.
13. 신분의 구별, 세가지 다른 본성적 에너지, 그리고 사람마다 다른 업보가 다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그것들의 원인이다. 그러나 나자신은 변하지 않고 어떤 행위에도 존속되지 않는다.
14. 나는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행위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것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행위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다.
15. 이진리를 깨달은 고대의 구도자들도 깨달음을 얻은 후에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대도 그대의 일을 계속해 나가라. 고대의 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행위에 종속됨이 없이 그대의 의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라
16. 무엇이 '행위'이고 무엇이 '행위하지 않음'인가? 이문제에 대해서는 현자들까지 혼돈을 겪었다. 이제 내가 행위에 대한 비밀을 가르쳐 주겠다.
17. 이것을 알면 그대는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리라. 행위의 본질을 아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그대는 행위와, 행위하지 않음과, 어떤 행위를 피해야 하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18.깨달은 사람은 행위 가운데서 행위하지 않음을 보고 행위하지 않음 가운데서 행위를 본다. 그들의 의식은 하나로 통일 되어 있으며, 그들은 무슨 일이든 완전한 각성상태에서 한다.
19. 깨달음을 얻은 현자들은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 이기적인 욕망을 참자아를 아는 지혜의 불에 완전히 태워 버린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부른다.
20. 지혜로운 사람은 외적인 상황이 어떠하든지 항상 만족한다. 그들은 행위의 결과에 영향받지 않으며, 행위하는 중에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21.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소유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고, 몸과 마음이 참자아에 대한 깨달음으로 제어된 상태에서, 이런저런 육체적 행동을 하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22. 그런 사람은 이원적인 분별을 넘어선 상태의 자유를 누린다. 아무하고도 다투지 않으며
성공과 실패를 평등하게 보고 무엇이 주어지든지 항상 만족한다.
23. 그들의 마음은 이기적인 집착에서 벗어나 참자아를 아는 지혜속에 안주한다. 그들은 모든 행위를 신께 바치는 제사처럼 행하기 때문에 어떤 행위를 해도 업보가 쌓이지 않는다.
24. 행위를 제물로 바치는 행위 자체가 부라흐만이다. 바쳐지는 행위도 부라흐만이다. 제물인 부라흐만이 부라흐만의 불길에 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부라흐만으로 여기는 사람은 부라흐만을 깨닫게 될 것이다.
25. 신들에게 곡식을 제물로 바치는 수행자가 있는가 하면 이타적인 봉사를 브라흐만의 불에 제물로 바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수행자들은 감각의 즐거움을 포기함으로써 감각기관을 제물로 바친다.
26.감각기관을 억제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느낌을 신의 행위로 여기는 수행을 제물로 드리는 사람도 있다.
27.어떤 이들은 감각과 생명 에너지의 활동을 조절하는 수행을 제물로 바친다.
28. 재물을 바치는 사람도 있고, 고행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 굳은 서원을 세우고 배움과 경전연구를 제물로 바치는 사람도 있고, 명상을 제물로 바치는 사람도 있다.
29.어떤 사람은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면서 생명의 기운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생명의 기운을 통제하는 능력을 얻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음식이나 감각을 억제하면서 생명의 기운을 바친다.
30.이들은 모두 제사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신이 바치는 제사를 통해 과거의 더러움을 씻고 맑게 정화된다.
31.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그 결과 영혼의 양식을 얻고 영원한 부라흐만의 경지에 도달한다. 아르주나여, 제사를 드리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그들은 늘 불평하며 짜증을 낸다. 하물며 어떻게 다음 세상의 즐거움을 바라겠는가?
32. 제사를 드리는 것은 행위이다. 이렇게 각자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제사를 드리는 행위 를 통해 부라흐만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을 이해하면 그대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33.아르주나여, 지혜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 어떤 물질을 제물로 바치는 것보다 낫다. 영적인 지혜와 깨달음이 모든 행위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34. 깨달음을 얻은 스승에게 다가가 그의 발아래 그대를 맡기고 겸손한 마음으로 삶의 진리를 물어라. 그러면 그가 진리의 길을 가르쳐 줄 것이다.
35.일단 진리를 깨달으면 그대는 더 이상 미혹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이 참자아 안에 있으며, 모든 것이 "내"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36. 아르주나여,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영적인 지혜의 배를 타고 죄악을 바다를 건널수 있다.
37.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장작을 재로 만들 듯이 지혜의 불은 행위로 인해 쌓인 모든 카르마를 재로 만든다. 영적인 지혜의 불만큼 깨끝하게 정화하는 것이 이세상에는 없다.
38.요가의 길을 가면서, 영적인 지혜의 불을 계속 타오르게 하는 사람은 참자아에 이르는 길이 자기 내면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완전함에 이르게 될 것이다.
39. 지혜를 얻은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강한 믿음으로 감각기관의 제어를 훈련하는 사람은 머지않아 지혜를 얻고 완전한 평화에 들어간다.
40.그러나 무지한 사람, 믿음이 없는 우유부단한 사람은 인생을 낭비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도 행복할 수 없고 저 세상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
41. 영적인 지혜로 모든 의심을 잘라내고, 참자아 안에 흔들리지 않고 안주하는 사람은 어떤 행위를 해도 이기적인 집착이 끼어들지 않는다. 그는 무엇을 하든 완전히 자유롭다.
42. 그러니 아르주나여, 그대 마음속에 있는 의심을 지혜의 칼로 잘라내라. 용감하게 일어나서 요가의 길을 가라"
제6장 명상의 길
1. "제사도 드리지 않고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포기자가 아니다. 행위의 결과에 관심을 두지 않고 해야 할 행동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포기자요, 요가의 목표를 이룬 사람이다.
2. 아루주나여, 그러므로 그대는 포기와 이기적인 욕망없이 행하는 행위가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요가의 길을 가지 못한다.
3. 결과의 집착없이 행하는 행위의 요가는, 영적인 깨달음이라고 하는 산의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구도자가 가야 할 길이다. 요가의 길에 들어서서 수행에 몰두하는 사람은 참자아의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 마음의 고요함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행위의 결과에 대해 집착하는 동안에는 마음이 고요할 수 없다. 그래서 행위의 결과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4.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과 감각대상과의 접촉을 통한 즐거움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면
우주적인 의식과 통합되는 진정한 요가의 경지에 오른다.
5. 마음이 그대의 유일한 친구이자 적이다. 마음 먹기에 따라 그대가 곧 참자아라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고 그대를 죄와 허물이 많은 존재로 깎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6. 마음으로 에고의식을 극복한 사람에게는 마음이 자기의 친구이나, 자기내면에서 참자아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마음이 그를 괴롭히는 적이다.
7. 에고의식을 극복한 사람은 지극한 평화 속에서 산다. 춥거나 덥거나,즐겁거나 고통스럽거나, 남이 칭찬하거나 욕하거나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늘 참자아의 의식 속에서 산다.
8. 에고의식을 극복하고 참자아의 의식 속에서 사는 사람, 늘 영적인 지혜와 참자아인 주인공에 대한 깨달음으로 충만한 사람, 그들은 마음과 감각기관을 정복하여 인간의식의 정점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추위와 더위, 진흙과 돌과 황금을 모두 평등하게 본다.
9. 가족이나 친구나 적이나, 친절한 사람이나 해치려는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를 똑같이 대한다. 그들이 모든 것을 평등하게 대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이원성을 넘어서서 모든 것이 아트만의 의식 속에 통합되는 경지에 올라갔기 때문이다.
10. 요가의 통일된 의식상태를 동경하는 사람은 내면의 고요함 속에서 참자아를 찾아야 한다. 몸과 마음을 제어하고, 물질적인 소유에 대한 기대나 집착을 버리고 의식을 한곳에 모으는 수행을 해야한다.
11. 아루즈나여, 깨끗한 장소를 골라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게 자리를 마련하고 깨끗한 풀이나 헝겊이나 사슴가죽을 깔고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앉도록 하라.
12. 자리에 앉으면 먼저 마음을 고요히 하여야 한다. 생각과 감각기관의 활동을 제어하면서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는 명상을 하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이 정화 될 것이다.
13. 머리와 목과 몸통이 일직선이 되도록 꼿꼿히 세우고, 흔들림이 없는 자세로 앉아서 시선을 코끝에 고정시켜라.
14. 참자아의 평화 속에서 모든 두려움을 벗어 던지고, 모든 욕망을 브라흐만에게 제물로 바치라. 마음을 제어하여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도록 하라. 그렇게 나에게 집중한 상태로 앉아 있으라.
15. 이렇게 명상을 통해 감각기관과 마음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제어하는 구도자는 내면의 참자아인 나와 합일되어 완전한 평화 속에 거하게 된다.
16. 아르주나여, 명상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지나치게 적게 먹어도 안 되고 또 너무 많이 자거나 너무 자지 않아도 안 된다.
17. 슬픔과 고통의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먹는 것과 자는 것을 알맞게 하고 적당히 일하며 적당히 쉬면서 수행을 계속해야 된다.
18. 그러다 보면 마음을 이기적인 욕망에서 떼어내어 참자아에 흡수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어, 결국에는 참자아와 하나되는 요가의 궁극적인 경지에 도달한다.
19. 요가 수행이 깊은 사람은 바람 없는 곳에 놓인 등불이 흔들리지 않듯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20. 명상이 깊어지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참자아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 수행자는 참자아의 눈으로 참자아를 보면서 지극한 평화와 기쁨을 누린다.
21. 그는 고요한 마음으로 감각을 초월한 기쁨 속에 거하면서, 그 영원한 진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22. 이런 상태에 도달한 사람은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어떤 슬픔도 그를 흔들지 못한다.
23. 명상 수행은 수행자를 모든 고통에서 풀려나게 한다. 이것이 명상의 길이다. 그대는 굳은 결단과 열정을 가지고 이길을 따르라.
24. 이기적인 욕망과 행위의 결과에 대한 기대를 남김없이 내버리고, 그대의 의지력을 총동원하여 감각기관을 제어하라.
25. 인내심을 가지고 이 수행을 계속해 나가면 마음이 서서히 참자아 속으로 가라앉아
흔들리지 않게 된다.
26. 마음이 외적인 대상을 향해 이리저리 방황하면 다시 내면으로 끌어 들이라. 이런 훈련을 통해 참자아 안에서 휴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27. 마음을 참자아 안에 고요히 가라앉힌 사람에게는 내면의 기쁨이 있다. 그는 이기적인 욕망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죄나 허물이 없으며, 의식이 참자아와 통합되어 신의식과 하나 된 상태에서 충만한 내면의 기쁨을 누린다.
28. 마음을 참자아와 통합시키는 훈련을 꾸준히 하는 수행자는 신의식과의 합일에서 비롯되는 무한한 기쁨을 쉽게 얻는다.
29. 그들은 모든 것 속에서 참자아를 보며, 참자아 속에서 모든 것을 본다. 명상을 통해 참자아와 하나 된 사람은 만물을 평등하게 본다.
30. 만물 속에서 나를 보며 내 속에서 모든 존재를 보는 사람은 결코 나에게서 분리되지 않는다.
31. 그들은 마음을 다해 나를 섬긴다. 그들의 모든 행위는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늘 내 안에 머문다.
32. 아르주나여, 다른 사람의 기쁨이나 슬픔을 자신의 기쁨이나 슬픔처럼 여기는 사람은
가장 높은 단계의 요가를 성취한 사람이다."
33. "오- 크리슈나여, 제 머리로는 당신이 말씀하시는 신적인 합일의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마음이 어떻게 영원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34. 크리슈나여, 마음은 쉬지 않고 이리저리 날뛰며, 거세고 완고합니다. 이런 마음을 제어하려는 것은 마치 바람을 재우는 일처럼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닙니까?
35." 그렇다. 마음을 제어하기란 바람을 재우는 것처럼 어렵다. 하지만 아르주나여,
그것은 가능하다.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수행과 집착을 버림으로써 마음을 제어 할 수 있다.
36. 에고의 의지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요가의 길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에고의 의지를 제어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꾸준히 수행하는 사람은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37. "크리슈나여, 믿음은 있으나 의지가 부족하여 수행의 길에서 이탈하여 요가의 완성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38. 구도의 길에서 방황하면 이생에서의 즐거움도 잃고 내생에서의 복락도 얻지 못한 채
조각난 구름처럼 그냥 흩어져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39. 크리슈나여, 이 의심을 속 시원하게 풀어 주십시오. 저의 이 의심을 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읍니다."
40. "아르주나여, 그런 사람은 멸망하지 않는다. 좋은 일을 한 사람은 이 생에서나 내생에서나 아무도 악한 결말이 나지 않는다.
41. 수행하다가 도중에 이탈한 사람은 죽은 다음에 공덕을 쌓은 사람들의 세계로 가서
오랜세월을 거기서 지낸다. 그런 다음 때가 되면 깨끗하고 부유한 가정에 다시 태어난다.
또는 매우 드문 일이지만 수행자 가문에 태어날 수도 있다.
42. 태어난 다음에는 전생에 도달했던 의식 수준이 일깨워지고, 거기서 부터 수행을 다시 시작해 나가게 된다.
43. 그는 전생에 닦았던 수행의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요가의 길을 가게 된다.
44. 단순히 명상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만 했던 사람일지라도 의미없이 제사만 드리는 사람보다 훨씬 앞으로 나간다.
45. 명상 수행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도중에 이탈하더라도, 여러 생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마침내 이기적인 욕망을 모두 제거하고 궁극적인 자리에 도달하게 된다.
46. 참자아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명상수행자는 금욕주의자나 경전에 통달한 학자나
제사를 드리는 사람보다 위대하다. 그러므로 아르주나여, 명상 수행자가 되어 궁극적인 합일에 도달하도록 하라.
47. 아르주나여, 나는 명상 수행자 중에서도 완전한 신뢰심을 가지고 나에게 헌신하는 사람, 나에게 완전히 몰입하는 사람을 가장 수행이 잘된 사람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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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진인 주) * 명상요가의 핵심을 가리치고 있습니다. 명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행위와 생각에 대한 절제와 에고집착에서 벗어나서 오로지 내면 속으로 의식을 집중해야된다고 말합니다. 내면이란 바로 일체의 현상적인 의식이 없는 의식넘어를 말합니다. 의식 넘어 내면은 의식 쪽에서 볼때는 깜깜하고 아무것도 없지만, 실제로 내면 속으로 들어가면 무한한 순수의식일 뿐입니다. 크리슈나는 바로 이 순수존재의식 입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맨 마지막에 "나에게 완전히 몰입하는 사람은 가장 수련이 잘된 사람으로 본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움직이는 의식이 전혀 없는 깜깜한 내면 속으로 몰입해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수행입니다.
이깜깜한 내면 속에 어느정도 깊게 잠겨 있으면 깜깜했던 시야가 훤하게 트이면서 끝도 없이 무한한 암청색 의식공간이 되며, 좀 더 길게 안정적으로 거기에 잠겨 있으면 의식공간 전체에서 마치 강한 전자기장에 낙뇌빛이 튀는 것처럼,무한한 의식 공간 여기저기서 청백색또는 청록색 빛의 장들이 오로라처럼 나타나는데, 이의식빛이 바로 순수의식으로 부터 나오는 빛의 장(場)으로 이빛에 의하여 남은 개인성 습과 육체감각, 개념기억등을 녹여 버리는 과정이 나타납니다.
이과정에서 육체에서 마치 이른봄 계곡물의 얼음 녹아내리는 느낌과 오한(惡寒) 현상 비슷하게 육체내면느낌에 미세한 떨림현상이나 세포적 진동의 느낌도 있는데, 중국의 어느선사는 이를 일러 "고목나무에서 용우는 소리"라고 표현한 분도 있읍니다. 속이 비어서 구멍이 크게 뚫린 고목나무에 바람이 거세게 불면 그 고목나무가 웅-웅-거리며 마치 속에서 백년 묵은 큰 구렁이가 우는 소리 비슷하게 진동음이 나는데, 이 고목나무가 바람에 진동하면서 우는 소리를 "고목나무가 용우는 소리를 낸다"고 하며, 이러한 웅-웅-하는 진동느낌이 그 의식의 빛줄기에 녹아 내리는 것처럼 자기가슴과 머리부근에서 실제로 웅-웅 울리는 진동음소리와 세포거품이 뽀록 뽀록 꺼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집니다.
옛 선사들은 이러한 경험을 "고목나무가 용우는 소리를 낸다"든가, 맑게 갠 하늘에서 우뢰소리가 우르릉 우르릉 울린다고 표현들 했습니다. 어느 정도 의식공간자체에서 오로라 같은 여기(勵起)된 빛에 의하여 거친 습(濕)들이 녹게 되면, 그다음에는 의식공간 어디에선가 빛줄기 기운(氣運)의투사가 나오는데, 대개의 육체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미저골, 내지는 아랫배 단전 부위에서 나팔꽃 형태로 머리쪽으로 향해서 빛에너지가 올라오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이런 빛줄기가 올라 올때는 마치 섹스의 크라이마스 순간같은 정신이 아득하여 순간적으로 숨이 끊어지고 절정의 극치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몇번 숨이끊어지는 듯한 절정의 극치를 몇번 겪고 나면 자신이 육체가 아니고 무한한 의식공간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아마도 꾼다리니의 활성화 같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빛의 투사로 두뇌의 거친 습들이 녹아 내리면서, 그 빛줄기와 습찌거기들은 다시 오른쪽가슴 쪽으로 내려와서 어떤 곳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하나의 예를 들어 본 것 뿐입니다. 이러한 이미지 경험들은 자기 잠재의식이 그래낸 일종의 정신적 이미지 쇼이며, 자신은 모르지만 의식 스스로가 만들어낸 불꽃놀이 같은 환상의 그림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의식 스스로가 속이는 환타지 잔치죠. 실질적으로는 모두가 개인에 따라서 때에 따라서 다른 다양한 이미지 경험들을 겪고, 또 그러한 경험이나 이미지라는 것은 진정한 깨달음으로 가는데는 방해요인도 되죠. 따라서 이런 이미적 경험이야기는 재미로 들어 두고 너무 의미심장하게 기억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수행 중에는 이런 히안한 심상(心像)경험이 나오드라도 무시해 버리고,항상 그 심상을 보는자를 주시하는 것이 옳은 방법입니다. 이러한 심상에 흥미를 주는 순간, 그리고 주의를 주는 만큼 수행에는 에고의식 안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라며, 부디 이러한 심상에 스스로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이 자기 수행이 진도가 어느정도 진전되고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나마 표시해주고 있는 징후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내용상에 중요성은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에 주의를 주는 순간에 금방 저- 밑의 낭떠러지로 그대로 추락해 버리니까요.
딱딱한 개념적인 수행 이야기만 하다보니 너무 무미건조한 것 같아서 잠간 삽화용 만화 그리듯이 약간 수행상에 나타날수있는 환상적이며 주관적인 체험이야기를 한마디 꺼내 본 것입니다.
이러한 이미지 경험들은 자기 잠재의식이 그래낸 일종의 정신적 이미지 쇼이며, 자신은 모르지만 의식 스스로가 만들어낸 불꽃놀이 같은 환상의 그림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의식 스스로가 속이는 환타지 잔치죠.
실질적으로는 모두가 개인에 따라서 때에 따라서 다른 다양한 이미지 경험들을 겪고,
또 그러한 경험이나 이미지라는 것은 진정한 깨달음으로 가는데는 방해요인도 되죠.
따라서 이런 이미적 경험이야기는 재미로 들어 두고 너무 의미심장하게 기억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수행 중에는 이런 히안한 심상(心像)경험이 나오드라도 무시해 버리고,항상 그 심상을 보는자를 주시하는 것이 옳은 방법입니다.
이러한 심상에 흥미를 주는 순간, 그리고 주의를 주는 만큼 수행에는 에고의식 안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라며, 부디 이러한 심상에 스스로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이 자기 수행이 진도가 어느정도 진전되고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나마 표시해주고 있는 징후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내용상에 중요성은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에 주의를 주는 순간에 금방 저- 밑의 낭떠러지로 그대로 추락해 버리니까요.
딱딱한 개념적인 수행 이야기만 하다보니 너무 무미건조한 것 같아서 잠간 삽화용 만화 그리듯이
약간 수행상에 나타날수있는 환상적이며 주관적인 체험이야기를 한마디 꺼내 본 것입니다.
제 7장 지혜와 깨달음
1. "아르주나여, 마음을 온전히 나에게 바치고 나만 의지하면서 명상을 수행하라. 그러면 그대는 나를 완전히 알고 나와 하나가 될 것이다. 털끝만한 의심도 남지 않으리라.
2. 내 이제 참자아를 아는 지혜(즈냐나)와 통찰(비즈냐나)을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이것을 알면 이세상에서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
3. 수천명 중에서 한명 정도가 영혼의 완성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아주 몇몇 사람만이 목표에 도달하여 나를 깨닫는다.
4. 흙, 물, 바람,공간,마음,지성,에고 의식 이 여덟 가지는 모두 나의 본성적인 (파동) 에너지가 밖으로 나타난 것이다.
5.하지만 이들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높은 차원의 내적인 본성이 있으며, 그것이 이 우주와 만물을 지탱하는 생명의 힘이다.
6. 만물은 나의 이 여덟가지 낮은 차원의 (파동)에너지 현상과 그 뒤에 있는 더 높은 차원의 내적인 본성에서 태어난다. 내안에서 우주가 소멸하고 탄생한다.
7. 아르주나여, 나에게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슬이 실에 꿰어 있듯이
온 우주만물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
8. 아르주나여, 나는 물의 맛이며, 태양의 빛이며,달의 빛이다. 나는 베다에 나오는 성스러운 소리 "옴"이며, 공간 속에서 울리는 소리이며, 사람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9. 나는 달콤한 대지의 향기이며 불의 불꽃이다. 나는 모든 생물의 생명이며 영적인 구도자의 수행이다.
10. 아르주나여, 만물 속에는 나의 영원한 생명의 씨앗이 심어져 있다. 나는 분별력있는 사람의 분별력이고, 뛰어난 사람의 뛰어남이며, 힘있는 사람의 힘이다.
11. 모든 존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갖고 있는 본능적인 욕망도 나의 힘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나이지만 나 자신에게는 욕망과 이기적인 집착이 없다.
12. 물질 차원의 세 기운(구나)인 밝은 기운(조화성 에너지),활동적인 기운(상승적 에너지), 어두운 기운(하강성 에너지)도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세가지 기운의 상호 연관으로 이세상의 온갖현상이 벌어진다.
13. 사람들은 현상에 미혹되어 그 배후에 있는 영원 불멸자를 보지 못한다. 14. 세가지 기운이 만들어 내는 현상이라는 환영(마야)을 꿰뚫기는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나에게 귀의하는 사람은 환영의 바다를 무사히 건널 수 있다.
15.나에게 귀의하지 않으면 환영에 미혹되어 악한 일만 행한다. 나를 믿는 마음은 조금도 없이, 분별력을 잃고, 낮은 차원의 본능적인 충동만을 따르며 멸망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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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붙임글
ㅇ 여기서 나라고 하는 것은 물론 주인공인 크리슈나 신이지만, 의식적인 측면에서 순수존재의식 또는 참나를 의미합니다. 즉 크리슈나는 "있음"의 순수존재의식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읽는 분들은 자기자신 내면속에 있는 순수의식의 입장에서 읽어서
스스로 크리슈나신의 입장이 되어 보아야 합니다.
ㅇ 이세상 삼라만상의 경계는 바로 순수의식이 변형되어 보이는 변조된 파형의식의 나타남입니다. 따라서 바다든 산이든 바위든 사람이든 모두가 의식이 만들어낸 상이며, 결국 순수의식의 변형된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세상 우주만물은 의식을 떠나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의식 그자체이며, 현상이란 의식의 흐름일 뿐입니다. 시간도 의식의 흐름이며, 공간도 의식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의식에서 분리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ㅇ 그러나 그삼라만상의 경계,모양자체는 순수의식이 아니라, 순수의식은 그 뒷면의 주시자입니다. 감각기관과 마음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들은 그 배면의 순수의식이 아는 작용을 비추어 줍니다. 따라서 모든 현상의 각개는 그속에 항상 순수의식의 씨앗이 숨어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씨앗은 바로 아는 특성,앎의 느낌으로 우리들 의식 표면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있다"라는 존재앎의 느낌이 바로 순수의식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만일 이 " 있다"는 순수존재앎 상태가 되면 본능적인 욕망과 이기적인 집착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가 있읍니다.
ㅇ 물질현상세계는 존재의식이 변형된 파동의식의 나타남입니다. 파동의식은 세가지 에너지 변형상태가 있는데, 조화적 에너지, 상승적 에너지, 하강적 에너지가 있고, 양과 음의 상태, 고체성,액체성,기체성, 분자,원자,미립자,광자파동특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파동특성들이 서로 상호간 간섭이 생겨 수억천만의 순열조합작용으로 다양한 물질과 모양과 성격과 생명체를 생주이멸(生住離滅)시키는 것이 이 우주삼라만상의 현상세계입니다. 이 모든 다양한 현상이 바로 하나의 존재의식으로 부터 나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현상이라는 것은 단순히 육체의 이비인후촉,두뇌 등의 감각의식작용으로 잠시 나타나는 것일 뿐, 원래는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 하나만 있을 뿐입니다. 물론 이 존재의식 자체도 진아라는 의식의 근원에서 나온 것이죠. 따라서 나라는 생각을 비롯해서 모든 이 현상세계를 실체가 없이 육체기관과 두뇌에 의해서 나타난 그림자라고 해서 환영, 즉 마야라고 깨달은 분들은 지적합니다. 실체가 없는 의식의 그림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실체는 무엇인가? 스크린에 나타나는 빛의 영상이 실체가 아니고, 빛으로 만들어진 빛의 그림자이듯이, 이 나타난 삼라만상과 나라는 것도 의식의 빛 그림자 일뿐이며, 실제 빛은 물들지 않은 순수존재의식일 뿐입니다.
그러나 순수존재의식이 되었을 때는 또 그 의식이 나온 근원인 절대진아가 실체가 되지요.
순수존재의식은 개인의식에 젖은 사람들을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이야기 하는 우주적 나라는 것이고, 그 우주적 자아의식도 원천적인 무지이며, 그상태를 넘어가서 아무것도 아니면서 전체인 진아 상태를 진짜 실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현상세계 상태에서는 우선 순수존재의식이 되어야 그넘어 진아를 알 수가 있으니깐, 우선 크리슈나를 내세워 순수존재의식을 최고신으로 받들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절대진아는 말과 생각이 끊어진 자리이기 때문에 아예 언급을 할수가 없는 것이죠. 단, 자신이 순수존재의식이 되면 자연적으로 그 넘어에 절대진아가 근원으로서 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보통은 말과 생각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순수존재의식까지만을 목표로 이야기하죠.
따라서 이현상세계와 본능적인 욕망,이기적인 집착은 자기가 현상적인 육체라고 "나"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며, 그런 것들은 잠시 스쳐가는 영화장면 같은 허상이므로 그런 환영에 현혹당하지 말고, 우주적인 나를 발견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현상은 부질없이 흐르며 진동하는 파동의식의 움직임일 뿐입니다.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의 의식 뿐이며, 그 의식조차도 넘어가야 실체인 참나가 되는 것이죠.
16. 나르주나여, 사람들이 나를 찾는 이유는 네 가지다. 삶이 고통스러워서 나를 찾는 사람도 있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찾는 사람도 있고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찾는 사람도 있다.
17. 이중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나에게 헌신하는, 참다운 지혜가 있는 사람이 가장 뛰어나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 또한 나를 지극한 마음으로 사랑한다.
18.나를 찾아 영적인 길을 가는 모든 사람은 복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참된 지혜가 있는 사람이 가장 복되다. 그들은 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나와 하나되는 것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19. 이런 사람은 여러 생을 거치면서 나를 찾다가 마침내 모든 것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이런 위대한 영혼은 아주 드물다.
20. 나를 찾긴 하지만 참다운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욕망으로 인해 분별력이 흐려져 있다.
21.그들은 자기의 성향에 따라 이런저런 신들을 섬기며 각기 다른 믿음의 길을 간다.
나는 어떤 사람이 어떤 신을 신뢰하고 그 신을 섬기기로 작정하면 그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 준다.
22. 나는 그가 완전한 믿음으로 자기가 선택한 신을 섬기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도록 해 준다.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소원성취를 바라는 사람은 소원을 이루게 해 준다. 나는 이렇게 모든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
23. 하지만 이들이 얻는 것은 유한하고 일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길을 간다. 하지만 진실로 지혜가 있는 사람은 나에게 온다.
24.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나라고 여기며 섬기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의 진정한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으며, 태어남과 죽음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모른다.
25. 환영에 지나지 않는 외적인 현상에 미혹되어 있는 동안에는 내가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영원히 변하지도 않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26. 아루즈나여, 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참으로 나를 온전히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27. 아르주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별하는 마음에 미혹되어 환영의 세계에 거듭 태어난다.
28. 그러나 모든 악업을 벗어 던지고 나에게 귀의하여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정화되어 더 이상 카르마가 쌓이지 않고, 이원적인 대립에서 비롯되는, 환영을 실재로 착각하는 미망에서 풀려 난다.
29.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에게 귀의하는 사람은 부라흐만과 아트만(참나)과 카르마(행위)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30. 브라흐만이 모든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물질현상이 부라흐만이며 물질현상의 원인이 되는 정신적인 원리도 부라흐만이고 만물 속에 브라흐만이 깃들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죽는 순간에도 나를 기억하고 나의 상태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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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붙임 글
ㅇ 이글에서 "나"라는 것은 물론 크리슈나신이지만 읽는 분들은 자신내면의 참나이며 순수존재의식으로서 대치하여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즉 자기 의식의 내면에 있는 순수의식이 바로 우리가 믿는 "신" 그자체를 말합니다. 내면의 순수존재의식, 내면의 참나, 나의 내면에 거주하는 신이 바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크리슈나 화신입니다.
ㅇ 사람들은 신을 찾는 이유가 네가지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고통의 현실을 잊기 위하여, 물질적 정신적 소원을 빌기 위하여, 인생이란 무엇인가하고 철학적 탐구를 위하여, 그리고 삶과 죽음을 넘어선 참나를 찾기 위하여, 신을 찾습니다. 아무런 욕망없이, 순수참나를 찾기 위하여, 신에게 헌신하여 자기 에고성을 버리는 사람이야 말로 참다운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자기 내면 속에 거하는 참나에 대한 지혜를 바르게 이해하여 믿는 사람은 바로 참나가 됩니다. 이 일원적인 나를 탐구하는 사람이야말로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있죠. 결국 에 가서 이세상 삼라만상이 모두가 의식이며, 순수의식에 의해 변형되어 보인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면 그 자신은 바로 우주삼라만상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 속에서 순수의식을 보게되고, 모든 것 속에서 참나를 알게되며, 모든 것이 나의 존재의 현시라는 것을 알게 되죠. 이것이 바로 위대한 영혼이며, 인류 역사상 아주 희귀한 존재들입니다.
ㅇ 내면의 신인 순수존재의식은 에고가 정성으로 섬기면 그 원을 들어 줍니다. 정신적 신념의 마력은 무엇이든지 당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내면 속의 참나를 찾아서 영생불멸하는 나를 만나는 것에 비하면 짫은 에고인생에서의 소원성취란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꿈과 같을 뿐입니다. 진실한 참나에 대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참나 자체를 섬깁니다.
ㅇ 참나의 진실한 모습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형상도 없고,특성도 없지만 태어남과 죽음을 넘어서 항상 있는 것입니다. 감각의 밖에서 있는 물질과 에고정신 등은 항상 움직이는(진동하는) 환영에 지나지 않아서 잡으려야 잡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감각의 유혹에 붙잡혀서 환영의 그림자에 미혹되어 진실하게 보는 능력을 잃어 버리고, 그 뒤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참나는 깨닫지 못하죠. 참나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으로 분해되어 버린 에고의식의 근원으로서 시간이 없는 천지창조 태고부터 수억천년 미래시간이 한점에 녹아 있는 무시간 무공간입니다.
ㅇ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별의식은 바로 에고의 파동적 이원화 의식이며,항상진동하므로 두점의 주객 이원화를 만들어 냅니다. 그 진동상태는 실제는 안보이고 움직임의 그림자만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로 환영의 세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분별의식이 있는 한에는 마음은 항상 움직이고 진동하는 파동의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배면의 주시자로서 안정되어야 파동의식의 영향을 받지 않아 행위에 대한 인과 속에 얽매이지 않읍니다.
만일 항상 움직이며 진동하는 파동의식에서 못 벗어날 경우, 육체가 죽더라도,그 의식이 진동하는 파동 에너지의 관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육체를 잃은 파동의식의 정신에너지 덩어리는 그 기억된 관성에너지에 의하여 다시 이 고통의 육체에고세계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는데, 소위 말하는 영혼의 윤회라는 것이 바로 이런 파동의식의 기억된 관성에너지 때문입니다. 만일 파동 에너지를 벗어나서 순수의식이 되었다면 그 안정된 에너지상태에서 안정과 조화의 관성에너지를 받아 다른 파동 의식으로 나타나지는 안겠지요. 윤회라는 것은 바로 그 생의 기간에 의식이 불순한 파동의식의 잠재 에너지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서 다음생에 그 관성력에 의하여 재활성화가 되느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생에 의식을 얼마나 순수하게 정화시키느냐에 따라서 다음 생에서도 윤회하느냐, 윤회하면 이번 생에서 형성된 파동의식의 잠재관성에 따라 어떤 상태로 인가 또 다시 태어나겠지요.
ㅇ. 이런 윤회의 수레바퀴 원리(파동의식의 원리)를 알게 되면 그 윤회의 수뢰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순수의식으로 되기 위하여 참나를 탐구할 것이고, 참나에 귀의하겠죠.
모든 삼라만상이 파동의식일 뿐이라는 사실, 모든 삼라만상이 순수 존재의식으로 부터 나타났다는 사실, 모든 우주삼라만상의 물질 세계는 파동의식으로 그려진 순수존재의식의 그림자라는 사실 그래서 결국은 모든 우주삼라만상과 정신적인 것은 바로 순수의식인 참나 그자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서 참나의 상태에 머무는 것이 이생의 궁극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 8장 영원한 신성
1. "오 크리슈나여, 무엇이 부라만이며, 무엇이 아트만(자아)이며, 무엇이 카르마(행위)입니까? 무엇이 물질현상의 본질이고, 물질현상의 원인이 되는 정신적인 원리는 또 무엇입니까?
2. 영원한 신성인 부라흐만이 만물 속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부라흐만이 어떻게 육체 속에 머물 수 있는지요?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과 하나되어 당신의 상태에 머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3."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나의 지고한 본성을 브라흐만이라고 한다. 만물 속에 깃들여 있는 나의 본질을 최고의 자아(아트만)이라고 한다. 내가 존재들을 생성해 내는 활동을 행위(카르마)라고 한다.
4. 물질현상이란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육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나의 영원한 영혼 (푸르샤)이 물질현상의 원인이 되는 정신적인 원리이다. 그대의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원소가 나이다. 내가 그대의 육체 속에 머물면서 제사를 드리는 자이며 제사를 받는 주(主)이다.
5. 죽는 순간까지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나에게 올 것이다. 이 점을 의심하지 말고 믿기 바란다. 죽음의 순간에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이 그의 다음 생을 결정한다.
6.죽는 사람은 마지막에 품고 있는 생각에 상응하는 존재의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7.그러므로 언제나 나를 생각하며 그대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라. 힘을 다해 마음과 생각을 나에게 기울이면 반드시 나의 상태에 이를 것이다.
8. 규칙적인 명상을 통해 얻은 마음을 한곳에 집중할 수 있는 힘으로 나만을 생각하라.
그러면 지고한 신적인 차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9. 브라만은 모든 것을 "아는 자"이다. 가장 오래된 자 곧 "최초의 원인"이다. 온 우주를 지배하는 "통치자"이다. 가장 작은 먼지보다 더 "작은 자"이다. 이 세상을 유지하는 "유지자"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자"이다. 태양처럼 빛나는 "밝은 자"이다. 무지의 어둠을 넘어선 "초월자"이다.
10. 부라만을 이렇게 명상하는 사람은 죽음의 순간이 오면, 평소 닦은 수행과 헌신의 힘에 의해 호흡을 두 눈썹 사이에 있는 영적인 의식쎈타에 집중하면서 지고한 신적인 정신에 이른다.
11. 경전에 통달한 현자들이 불멸의 경지라고 말하는 상태, 이기적인 욕망을 벗어 던진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경지, 신에게 자신의 온 삶을 바친 수행자들이 찾고 있는 그 경지를
이제 그대에게 간략하게 말해 주리라.
12. 죽음의 순간에 다다르면 이렇게 하라. 감각의 문을 모두 닫고 마음을 가슴 안으로 모아라. 의식의 두 눈썹사이 영적인 의식쎈타에 집중하고, 생명 에너지(프라나, 호흡)를 그곳으로 끌어 올려라.
13.그리고 영원한 부라흐만의 상징인 성스러운 음절"옴"을 반복해서 읊어라. 그러면 육체에서 벗어난 다음 지고한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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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글
*이장에서는 아르주나가 크리슈나에게 신의 개념을 질문합니다. 여기서 부라흐만이란 우주적 본성을 말합니다. 우주적 존재의식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라흐만이 절대진아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보통 베단타에서 절대진아는 파라부라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파라부라만은 인간의 의사소통과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는 상태이므로 대개 부라만이 우주적 최고신이라고 언급됩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진아를 부라만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지만, 니사르가다타 경우는 부라만을 우주적 존재의식이라고 말합니다.즉 부라만은 인간들이 신이라는 개념을 부여하였지만 그 부라만 넘어에 파라부라만이 절대적 최고상태라는 것입니다.
* 아트만이란 인간 속에 내재한 순수존재의식 또는 우주적 자아의식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아트만과 부라만은 같은 신적인 개념으로, 우주적인 측면으로 말할 때는 부라만, 의식 측면으로 말할 때는 아트만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 카르마란 단순한 행위라기 보다 행위의 인과관계,즉 어떤 작용에 대한 원인과 결과의 연속적인 고리형태의 생성과 소멸현상을 의미하는 개념어입니다. 조용한 연못에 개구리 한마리 뒤어 들었을 때에 하나의 물결진동파도가 발생하면 그 하나의 물결 움직임이 연속해서 연쇄반응으로 파도가 퍼져나가서 연못 표면이 복잡한 물결 파형 형태로 복잡하고 시크러워지는 것처럼, 그러한 연쇄적 반응의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형성되는 연쇄고리작용을 말합니다.
* 이 우주가 물질로써 보여지는 것은 자기육체가 물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기 육체가 의식의 파동작용으로 그려진 것으로 이해하면 이 우주자체도 의식의 파동형태로써 전체가 의식의 홀로그램형태로 이해할 것입니다. 이우주자체가 의식이라고 알면 전체가 하나가 될 수밖에 없고, 나라는 것이 바로 의식, 우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그 하나의 의식이 나온 자리가 바로 의식의 씨앗인 순수존재의식이 될 것이며, 그 그 의식의 씨앗이 생긴 근원이 자연적으로 알게 되겠지요. 그근원이 바로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절대참나자리입니다. 의식자체가 된다면 의식자체의 주시자(아는자)는 절대참나가 저절로 되겠지요. 따라서 참나는 항상 있는 것입니다. 의식 자체는 생겼다(탄생)가 소멸(죽음)했다가 하지만 의식의 근원인 참나는 의식이 나왔다 들어갔다하는 것에 상관없이 항상 있겠지요. 그 "아무것도 없음"이 바로 "있음"입니다. 말없는 "있음". 모르는 "있음"이라고 말할 수 있죠. 없음과 있음이라는 의식측면에서의 개념을 넘어선 상태이기도 하죠. 있음이든 없음이든 의식상의 개념일 뿐이고, 말없는 참나는 그 의식 넘어에 있읍니다.
* 죽는 순간이란 "내가 있다"는 존재앎이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즉 "나"라는 의식파동의 정지상태이지만, 이의식파동은 에너지(생기)로서 그 작동 잠재력은 그대로 뭉쳐져서 풀리지 않은 상태로 떠 돌아 다닐 수가 있읍니다. 왜냐하면 존재의식이 완전히 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존재의식 안에서 개체성의 카르마의식이 작동중에 엉킨채로 어떤 에너지 뭉치로 잠재해 있다가 다른 육체적 환경으로 다시 실려서 같은 3차원 이세상에 나타나게 되죠. 그래서 죽는 순간, 즉 육체적 개체의식의 파동의식이 정지하는 순간에 순수존재의식상태가 되면 곧바로 존재의식을 통해 영원한 절대진아로 가든가, 아니면 적어도 순수의식상태가 되어, 다음생에 3차원이세상에서 육체를 받드라도 아주 고양된 순수의식에 가까운 인간으로 환생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죽는 순간에 의식을 집중하고 순수 존재가 되기 위한 기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대로 부터 내려오는 인도의 정통적 흰두교 수행법의 하나입니다. 이 생명의 원천은 가슴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가슴에 의식을 뫃으면 모든 생명기가 가슴에 집중하게 되고 이가슴으로부터 101개의 생명기회로가 전육체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데, 이 기통로 중에 가장 큰 메인고속도로가 가슴과 목과 머리정상을 거쳐 지고한 경지에 도달하는 영혼에너지의 통로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통로 중간인 양미간에 집중을 하면 머리 두뇌에 있는 영혼의 기가 양미간을 거쳐서 목을 통해 가슴의 생명의 근원으로 완전히 모이면 절대진아 속에 합일된다고 합니다.
또한 보통 알려진 쿤다리니요가의 차크라를 거친 기통로로 이야기되는 개념들도 있읍니다.
이러한 죽음 수련법은 인도와 티벳트에서는 흔한 수련법이며, 유명한 기록으로는 티벳 사자의서 나 우파니샤드 등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죽음 수련은 가장 먼저 의식이 감각기관을 떠나고, 그다음 두뇌를 떠나고, 양미간 차크라를 거쳐서, 목차크라를 지나 가슴 중앙 또는 가슴 오른 쪽의 진아가 거하는 영혼의 심장 속으로 합일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각각의 생명기운 쎈타인 차크라 중심에 집중하므로서 그 통로가 활성화되어 통로의 게이트가 열리면 그 영혼의 생명기운이 자기가 생겨난 심장인 진아자리로 되돌린다고 합니다.
* 옴이라는 신성한 소리는 존재의식이 최초로 탄생하는 진동음을 상징합니다. 실지로 수행해서 순수존재의식이 되면 머리 속에서 "옴"하는 진동음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이 옴 소리를 입으로 내는 것도 영혼을 순수하게 한군데로 뫃은다고 합니다. 이 옴소리는 모든 만트라,불교 염불에서 기본 음으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불교의 염불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아멘"도 바로 이 "옴"소리의 변형입니다. 이세계 모든 종교의 염불이나 기도문에 이 "옴"자와 비슷한 음절의 신의 이름이 많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이를 "엄마"나 "맘마" 정도로 사용하지만 아, 우나오, 음,등의 소리음으로 구성된 신의 이름은 모두가 이 신성한 존재의 탄생진동음인 "옴"소리가 그 원형이라고 볼 수가 있죠.
바로 파동의식이 시작하는 소리죠. 그파동의식의 원조가 바로 존재의식입니다. 아멘, 오딘, 옴,-옴 마니 반메 훔, 옴 산티 산티
14. 아르주나여, 언제 어디서나 나만 생각하며 다른 것을 바라지 않는 수행자는 어렵지 않게 나의 상태에 도달한다.
15. 나의 상태에 도달한 위대한 영혼은 이원화 분리의식에서 비롯되는 고통으로 가득 찬
덧없는 이세상에서 해방된다. 그는 다시 이런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
16. 아르주나여, 신들의 세계, 부라흐마의 세계에 사는 존재들을 포함하여 이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삶과 죽음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나와 하나가 되면 고통의 연속인 삶과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누린다.
17. 지구의 시간으로는 수천만년이 창조자 부라흐마의 세계에서는 하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수천만년이 브라흐마의 세계에서는 하루 밤낯에 지나지 않는다.
18.브라흐마의 아침이 밝으면 뭇 존재들이 무형(無形)의 세계에서 현상세계로 나와
활동을 시작한다.
19.그러다가 부라흐마의 밤이 오면 모든 존재들이 무형의 세계로 다시 돌아간다.
이렇게 브라흐마의 낯과 밤에 따라 존재들의 생성과 소멸은 무한하게 반복한다.
20.그러나 생성과 소멸을 초월한 또 다른 무형의 차원이 있다. 이 무형의 세계는 우주가 소멸되어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실재의 차원이다.
21. 이 차원이 곧 나의 세계이다. 삶의 지고한 목표인 이 차원을 깨달은 사람은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불변의 실재라는 것을 알고 자신들의 고향인 나의 세계로 온다. 나의 세계로 온 사람은 다시는 생사윤회의 세계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22. 모든 존재의 참자아가 바로 나의 세계 궁극적인 거주처이다. 진정한 헌신이 있으면
만물 속에 두루 깃든 이세계를 깨달을 수 있다.
23. 아르주나여, 죽음의 과정을 거치면서 수행자가 갈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환생에 이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한 자유에 이른다. 이제 두길에 대해 말해 주겠다.
24. 태양이 북쪽 진로를 따라가는 여섯달 동안, 또는 낯에, 또는 불 속에서, 또는 달이 밝아지는 초하루에서 보름사이에 죽은 영혼은 브라흐마를 아는 자들은 지고한 세계에 도달한다.
25. 태양이 남쪽 진로를 따라가는 여섯달 동안, 또는 연기 속에서 또는 밤에, 또는 달이 어두어지는 보름에서 그믐사이에 죽은 영혼은 달빛이 비치는 길을 따라 이 세상에 태어난다.
26. 빛과 어둠의 이 두길을 따라 어떤 영혼은 영원한 자유에 이르고 어떤 영혼은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이 두길을 아는 요가(명상) 수행자는 미혹되지 않는다.
27. 그러므로 아르주나여, 굳건한 요가(명상)수행을 통해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 경전을 연구하고 제사를 드리고 고행을 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가운데 헛된 것은 없다.
28. 하지만 나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요가(명상) 수행은 그보다 훨씬 뛰어나다. 요가(명상)수행을 통해 지고한 주(主)님의 영원한 세계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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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붙임글*
* 항상 오직 참나에 대해서만 추구하는 수행자는 언젠가는 참나를 얻게 되겠죠. 자신의 진실한 존재의 실체인 참나를 안다는 것은 그 참나가 된다는 것이죠. 자신이 실질적인 참나가 된다는 것은 바로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나라는 실체가 사라지면 세상도 사라집니다. 결국 나와 세상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같은 의식입니다. 그래서 나와 세상이 포함된 의식이 경계가 없어져 순수해지면 오직 백지같은 모양도 없고, 속성도 없고,크기도 없는, 순수의식만 남게되죠. 이 나와 세상의 경계가 없어진 순수의식이 바로 존재의식입니다. 우주적인 나죠. 존재자체입니다. 이존재의식이 육체의 여러기관을 통해서 개인 육체와 세상을 나타나게 해 줍니다. 이 순수존재의식인 바탕의식이 완전히 사라지면 의식은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죠. 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상태를 참나라고 한답니다.
따라서 참나란 의식의 씨앗인 순수존재의식 조차 넘어간 상태입니다. 그래서 참나상태는 의식의 움직임인 파동의식의 어떻한 변화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개인의식의 움직임과 삼라만상의 경계가 모두 이 참나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하얀 백지 위에는 수많은 점을 찍을 수가 있읍니다. 그 수많은 점 하나하나가 바로 존재의식의 발생점이죠. 그 존재의식의 발생점 하나에서 선을 하나 그으면 시간이 발생합니다.
즉 파동의식이 발생하고, 이 시간에 의해 형성된 파동의식이 바로 육체를 통해 세상을 하나 만들어 줍니다. 결국 백지 위에는 수많은 세상이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백지자체는 아무런 영향도 없이 그대로 백지일 뿐입니다. 그러나 백지가 있으니까, 점과 선으로된 수많은 존재와 세상과 사건들의 그림이 나타날 수가 있죠. 점자체가 파동의식이기 때문에 점에서 이끌려져 나오는 모든 것도 파동에 의해 그려져 있는 것이죠. 결국 백지 위에 그려진 점이나 선이나 그림은 언제라도 지워지고, 또 다른 점이 나타나 다시 그림을 그릴지라도, 그 점자체부터가 원래 있었던 것은 아니고 생겨난 것이며, 생겨난 것은 결국 백지 위에서 사라지죠.
항상 있는 것은 바로 백지자체, 그러나 개인이라는 것은 항상 점에서 시작한 검은 선위에 걸쳐있기 때문에 순수한 흰 백지바탕(절대참나)은 보질 못합니다. 백지바탕을 보려면 그동안 그려진 그림의 궤적을 따라서 그림이 시작된 점(존재탄생점, 존재의식)까지 거꾸로 가야 합니다. 그동안 그려논 그림을 전부 지워가며 말입니다. 그래서 존재가 탄생하는 순간의 그 점속으로 들어가야, 그점을 빠져나가서 백지바탕인 절대참나에 이르러야 합니다.
여기서 의식이란 바로 존재의식인 점부터 점에서 선(시간,공간)으로 만들어지는 그림들, 이그림들이 바로 개인의식의 개념들이며, 이런 개념의 그림들을 다 지우고, 움직이는 파동의식을 잠재워, 존재의식인 점 속으로 들어가야죠. 좀 이상하게 들리는 비유겠지만, 아주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구조죠.
* 따라서 백지 위의 그림들(개인의식)은 일단은 파동이라는 시간요소에 지배되어 양분화(이원화)되어 현상세계가 된 것이죠. 즉, 존재 한점이 두점으로 나누어져서 두점사이를 왔다리,갔다리 파동을 하면 두 점 중의 한점은 보는자가 되고, 또다른 점은 보이는 대상이 되어, 주체와 대상이 실지로는 있지도 않은데 둘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현상세계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나와 세상이죠. 그러나 나와 세상은 존재점 하나가 두개로 움직여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래서 나와 세상이 전부 합쳐져야 나의 존재가 됩니다. 이 점 하나상태만일 때가 바로 우주적 자아의식입니다. 그것이 바로 점 상태입니다. 이 점이란 존재의식이 백지인 참나입장에서는 쓸대없는 먼지 한점일 뿐이죠. 어쩌다 먼지 한점이 내려 앉은 겁니다. 따라서 이먼지 한점이 존재의식속에 있는 미묘한 파동으로 인해, 육체기관을 통해서 환상의 세상을 펼쳐냈다 이말입니다. 그런데 그 환상의 세상무대에서 환상의 나가 희로애락과 고통과 행복이 교차하는 삶을 살고 있읍니다. 그것이 바로 백지 위의 먼지 한점으로 부터 일어난 일입니다. 그먼지 한점마저 어쩌다 우연히 백지 위에 내려앉은 것이죠. 이런 내용이 바로 이장에서 부라흐만의 세계와 인간세계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읍니다.
브라흐마의 낯과 밤의 길이는 같다고 합니다. 이것을 칼파 또는 겁이라고 하는데, 이 겁은 대략 43억 2천만년이라고 합니다. 부라흐마의 낯시간 동안은 크리타 유가는 172만 8천년-무지와 죄악이 없는 시대. 그리고 트레타 유가가 129만 6천년- 죄악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기. 그다음드바파라 유가는 86만 4천년-도덕과 종교가 타락하는 시대. 그다음 칼리유가 라는 43만 6천년-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 이렇게 4시대를 1천번 반복해야 부라흐만의 하루중 주간(낮시간)이 된답니다. 말하자면 432만년을 주기로, 이주기가 1천번 반복해야 부라흐마의 하루 낮시간이며, 부라흐마의 밤시간은 이 낮시간과 같다 이거죠.
물론 이런 시간 개념은 영원한 시간을 실감있게 표현하기 위하여 상징적으로 만든 것이죠.
그러나 요즘 천문과학과 콤퓨터가 발달되어 수천만 광년의 우주, 은하계 크기를 잰다든가,
은하계의 탄생 소멸에 대한 과학이론들을 들여다 보면, 수천만 광년의 은하계보다도 더 넓은 대우주세계를 수천년전의 베다를 지어낸 선지자들이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가 있읍니다.
* 24-25 문단은 이 대우주의 주기가 있으며, 그 주기는 일정한 회전 반복 운동(파동운동)을 하는데, 파동의 상승주기(양, +주기))에 죽은 영혼은 태양(절대진아)을 향해가는 괘도로 진입 할 수가 있고, 파동의 하강주기(음,-주기)에 죽은 영혼은 달(존재의식)으로 내려간다는 자연의 운행법칙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자연의 운행법칙을 파동성의 상승하강특성으로 예를 들어 보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러한 빛과 어둠의 두길이 있으며, 각 영혼에 따라 영원한 자유의 길일 수도 있고, 다시 이 고통스러운 인간세상에 환생할 수도 있영혼 이러한 내용을 잘)을 하여 명상과 요가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이러한 빛과 어둠의 길에 미혹되지 않고 수행에 열중하여 이모든 자연 법칙을 넘어서, 모든 것을 초월하여 지고한 주(주) 참나의 영원한 세계에 도달해야한다는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제9장 위대한 지혜의 비밀
1. "그대는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이제 가장 깊은 비밀을 알려 주고자 한다. 내가 알려주는 지헤와 통찰을 얻으면 그대는 모든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리라.
2. 이 비밀스런 지혜는 모든 지혜의 왕이다. 이 지혜는 최고의 정화 도구이다. 영원한 이 지혜에는 모순이 없다. 누구나 쉽게 알아 들을 수 있고 즐겁게 실천할 수 있으며 직접 체험할 수 있다.
3. 하지만 아루즈나여, 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삶의 지고한 법칙인 이 지혜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태어남과 죽음이 반복되는 윤회의 길로 되돌아 온다.
4. 온 우주 만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비현시) 형태로 존재하는 나에게서 나왔다. 모든 존재들이 내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 의해 제한되거나 구속받지 않는다. 나의 이 신적인 신비를 깨닫도록 하라.
5. 내가 만물을 생성하고 유지하지만 나의 본성이 그들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다.
6. 바람이 허공 안에서 이리저리 불 듯 모든 존재가 내안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7. 우주적인 한주기가 끝나면 모든 존재는 내 안으로 흡수되어 사라진다. 그후 또 다른 한시대가 시작되면 나는 그들을 다시 현상세계로 내보낸다.
8. 나의 외적인 본성의 법칙에 따라 만물의 생성과 소멸이 계속되고 나의 외적인 본성의 법칙이 그것들을 지배한다.
9. 하지만 아르주나여, 나는 그런 생성과 소멸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 그것들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나는 생성과 소멸을 초월하여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상태에 항상 머물러 있다.
10. 아르주나여, 내가 모든 자연법칙을 주관한다. 자연법칙은 나의 감독 아래서 생물과 무생물을 만들어 낸다. 세상은 이렇게 나의 법칙 안에서 웁직인다.
11. 어리석은 사람들은 내가 이세상에 왔을 때 나의 외적인 모습 배후에 있는 진정한 모습,
곧 만물의 주(主)인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12. 보이는 현상에 미혹된 사람들의 지식은 공허하다. 그들의 삶은 온통 악과 재앙뿐이다.
그들은 헛된 것을 추구하며 그들이 하는 일은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될 분이다.
13. 그러나 진실로 위대한 영혼은 나의 신적인 본성을 찾는다. 그들은 내가 만물의 영원한 근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한마음으로 나를 섬긴다.
14. 자기들의 결단을 굳건히 하려고 늘 애쓰면서 흔들림 없이 나를 섬긴다. 그들은 나의 신적인 영광을 찬양하면서 자신을 완전히 나에게 바친다.
15. 영적인 지혜의 길을 통해 나에게 오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유일자"가 있으며 그 유일자가 곧"나"라는 것을 안다. 그들은 "다양한 현상"이 있으며, 그 다양한 현상이 곧 "나"라는 것을 안다. 그들은 모든 것 속에서 나의 얼굴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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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글>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그동안 여러가지 정신적인 수행과 지혜,헌신,신등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설명해 주었고, 아르주나는 크리슈나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아 크리슈나를 진정한 스승으로 모시고 완전히 그의 가르침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크리슈나는 아루즈나에게 진리의 핵심을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여기서 가장 깊은 비밀이란 바로"절대 진아" 참나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만일 절대 진아에 대하여 완전히 통각하고, 그 절대참나에 대한 지혜(반야)를 얻으면 모든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난다고 말합니다.
참나를 깨달아서 진지(眞智)를 얻으면 탄생과 삶과 죽음을 넘어서서 영생한다고 말합니다.
참나의 지혜는 모든 것을 청정(淸淨)하게 해주며, 완벽하고 영원하며 절대적인 진리라고 말합니다. 참나는 사람마다 누구나 가지고 있고, 또한 어느 누구든지 수행하여 직접 체험될수 있는 지혜죠. 그러나 이 고귀한 지혜를 누구나 얻으려고 관심을 갖지는 않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거의 90%이상이 이러한 정신적인 고귀함을 추구하는 구도자들을 대하면 약간 맛이 간(?)사람으로 취급해 버리죠. 자기자신에 대한 고귀한 가치를 잊고 오직 눈앞의 보이는 물질적인 욕망만을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서 그것만을 쫏는 사람들은 어차피 삶의 윤회 굴렁쇠 안에서 물질적인 욕망만 채우려고 계속 윤회의 굴렁쇠를 타고 탄생과 죽음의 회전을 반복하겠죠.
여기서 크리슈나가 "나"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진아" 참나를 말하는 겁니다. 참나는 의식이 나온 원천이죠. 의식은 안정된 존재의식을 거쳐, 육체기관에 반사되어 항상 반복진동하는 파동의식으로 변조됩니다. 모든 보이는 현시현상과 육체마음은 바로 파동의식의 움직임입니다. 개인의 마음이 바로 파동의식이고, 개인의식으로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는 이세상삼라만상도 역시 파동의식의 움직임이 나타난 현상이죠. 오직 외면적인 물질적 가치에 대한 욕망에만 쫏아 다니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물질적으로 보기 때문에 자기자신도 물질적인 면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무상하게 회전 반복하는 파동의식의 그림자같은 허망함을 모르는(무지한) 사람들은 항상 반사되어 나타나 보이는 파동의식상태에서 그 의식수준이 맴돌수 밖에 없습니다. 만일 그 모든 외적인 현시들과 육체마음등이 모두가 허황한 자기 존재의식의 반사된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서, 의식의 주의를 내면으로 향한다면 그는 점차로 거칠게 진동하던 파동의식이 마음이 고요해 지면서 점점 미세한 파동의식으로 변하면서,존재의식에 도달하면 아주 미묘한 순수의식에 접할 수가 있죠. 이상태에서 바로 자신이 참나라는 것을 깨달아서, 남은 습을 서서히 녹이면 절대상태에 안주할 수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자신 속에 숨겨진 비의의 지혜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구도자들을 오히려 현실환경에 불만족하여 내면으로 도피하는 것으로 잘못 알거나, 심하면 반 정신병자처럼 취급하거나, 속말로 또라이 취급을 하기 일수이죠. 그야말로 삶의 가치추구면에서 완전히 거꾸로 전도된 세상입니다.
물질적인 가치만이 최상인 이시대의 정신구조가 바로 어떤 경전에 나오는 말세시대가 바로
이런 비슷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4번부터 바야흐로 절대진아에 대한 진리의 가르침입니다. 절재진아는 보이지도 않고 모양도 없고, 알수도 없습니다. 의식자체로는 의식의 근원을 알수가 없습니다. 의식이란 파동형태로 2점사이를 왔다리 갔다리하며 움직이므로 너와나, 나와 저것,등 보이는자와 보이는 대상, 아는자와 아는대상이 의식의 움직임 속에서 이원화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의식이라는 파동이 처음 생겨난 절대 1점에서는 파동의 잠재에너지는 무한하지만,실질적으로는 오직 "나" 하나만 있으며, 이세상 현시세계와 육체마음을 만들어 내는 기본 존재의식이 나오는 자리이기때문에 바로 의식이전의 "절대"인 것이죠.
따라서 절대상태는 비현시(의식으로 보이지 않는)이면서도, 모든 삼라만상과 우주를 현시하는 의식이 나온 자리이죠. 모든 우주의 삼라만상은 존재의식의 핵점 속에 씨앗형태로 잠재되어있고, 이 존재의식이 육체기관의 감관작용을 통해 거친 파동의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삼라만상과 육체 마음입니다. 이존재의식의 핵점은 바로 절대진아의 잠재적 에너지가 자연적으로 한점에서 잠간 튀어나왔다가 절대공진 속에 흡수되지 못하고 밖에서 미세하고 진동을 읽으킨 형태라고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이모든 이야기는 개념이고 비유지만 그런대로 의식의 생성구조를 아주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절대진아는 이세상 삼라만상의 흐름에는 전혀 상관없이 그것들을 지켜보고 있죠. 이세상삼라만상이란 단순히 인간 육체의식이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이지, 절대참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죠. 마치 우주공간내에 있는 지구안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해서 지구지각이 변하여 지구인들이 거의 몰살을 한다하드라도 공간자체는 전혀 상관없이 영향을 안받죠. 바로 공간과 같은 것이 절대진아로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우주적인 한주기가 끝나면----, 이것이 바로 주기가 있는 파동의 흐름을 말합니다. 파동의 한주기는 +와-,즉 양과 음으로 구성되어있읍니다.
a,b 두점사이에 진동이 일어나면 처음 시작점인 a점에서 b점으로 움직이는데, 이때를 +반주기, 다시 b점에서 a점으로 돌아오는 때를 -반주기로 하여,+와 -가 한번씩 거쳐 파동의 한주기가 됩니다. 이 +나 -이 반주기에서는 또 에너지의 상승,하강.조화의 세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죠. 말하자면 낯과 밤이 하루라는 이야기죠. 우주의 한주기는요즘과학용어로 몇억광년이라고 하죠, 그리고 은하계의 한주기도 있읍니다, 또 은하계가 모인 은하계군의 한주기가 있죠. 우리들이 사는 지구의 태양계는 수천억개의 태양계가 모여 한 은하계를 형성한다고 하니, 지구에 사는 우리들은 수많은 별들의 파동속에 수천만억겹으로 둘러쌓여 있는 셈이죠. 마찬가지로 물질도 분자 파동과 원자파동 중성자,양자,전자,미립자 파동으로 겹겹히 둘려쳐저서 각파동들끼리 서로서로 상관관계를 갖고 파동운동을 하는 것이죠. 전체가 바로 총총한 우주적 파동그물속에서 서로서로 인연관계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흐르고 있는 파동의 세계라고 볼 수 있죠, 나는 그들을 현상세계로 내보낸다---, 모든 의식은 그 원고향은 절대진아죠. 의식에 나타나는 현상세계란 바로 이원화되어 진동하는 파동의식의 일부가 나타내져 보이는 것입니다. 절대의 일부분인 한점이 스스로 움직여서 가상의 두점을 만들어 그 두점사이를 빠르게 진동하므로서 스스로를 나툼하여 보는 것이죠. 아마도 절대가 심심해서 슬쩍 장난을 한번 쳐 본 것 같읍니다(?) 우리는 그런 절대의 심심풀이 장난에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 희비애락에 휩쓸립니다. 그러나 모든 현시는 바로 절대가 심심풀이 장난으로 환상의 연극을 벌린 것이 아닐까요?
나의 외적인 본성에따라 만물의 생성과 소멸이 계속되고---, 절대의 외적인 본성은 바로 파동성을 말합니다. 절대자체는 1점에서의 절대공진상태로서 진동없는 잠재진동형태입니다.
진동이란 2점사이의 반복운동을 말하는데, 절대자체는 1점 안에서 실질적인 진동이 없고,
잠재 진동에너지는 무한대가 축적되어있죠. 그상태가 바로 1점 절대공진상태입니다. 마치 우주의 불랙홀의 에너지 밀도가 최대로 압축되어 은하계 수천개의 크기가 야구공만하게 축소되지만, 그 수천개의 은하계가 가지고 있는 전체에너지를 야구공만한 불랙홀 속에 밀집되게해논 것과 비슷한 비유이야기이죠. 그런데 이 절대1점 공진상태에서는 어떤 파동도 나타날 수있는 무한대의 파동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파동에너지가 현시되어 나타날수는 있는 가능성도 무한대이죠. 어떤 원인도 없이 자연스럽게 약간의 변화로 바로 어떤 파동도 나타날수 있는 잠재상태지만, 그 절대 공진 내부에서는 공간도 없고 시간도 없지만, 그래서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이 있다는 것이죠. 절대자체에서 어떤 파동이 하나가 나와서 삼라만상이 흘러가도 절대자체는 항상 그대일 뿐이죠. 마치 태양자체와 민들레꽃이 피고지는 일같이 비유해 볼 수도 있죠. 태양은 민들레꽃이 피든,지든,사랑의 물로 씨를 뿌리든,씨가 님 계신 곳을 찾아 날라 가든 상관이 없죠. 그러나 노란 민들레꽃은 태양빛으로 인해 나타난 것이죠. 또한 태양빛으로 인해 노랗고 예쁘게 피어났읍니다. 태양의 움직이는 주기에 따라서 민들레곷은 피었다가 지고 씨를 날려 또 다른 곳에 가서 태양빛에 의해 꽃을 피웁니다.
절대진아자체는 삼라만상의 변화에는 영향을 받지 않지만, 삼라만상의 生住離滅 자체는 절대진아의 작용그 자체죠. 따라서 보이고 들리고 아는 이 현시세상에만 매달려서 그것이 모든 것이라는 것만 아는 사람들은 자신을 그 보이고 들리는 감각적 육체라고만 여겨 항상 무상하게 변하는 파동의식의 흐름만 쫏다가 파동의식의 노예가 되어 허무한 삶을 보내는 것이죠. 진실된 삶의 목적은 바로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내가 나온 근원이 무엇인가, 아니면 나는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갈것인가, 이 마음,의식이란 어디서부터 나왔는가, 등등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서 자기의 근원을 찾는 것이죠. 항상 있으며,무한하고 영원한 그것, 참나! 이것이 뭐꼬?
16. 나는 제사의식이다. 나는 제물이다. 나는 제사에 사용되는 약초이다. 나는 제사드릴 때 음송하는 주문이다. 나는 제단에바치는 희생제물이며, 그것을 태우는 불이다.
17. 나는 이세상 전체를 유지하는 부양자이다. 나는 이세상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할아버지이다. 나는 모든 앎의 궁극적인 목표다. 나는 정화하는 자이며 성스러운 음절 "옴"이다.
나는 성스러운 경전, <리그베다> <사마베다> <야주루 베다>이다.
18. 나는 삶의 목표이다. 나는 만물의 부양자이며 주(主)이다. 나는 내면에서 지켜보는 자이다. 나는 만물의 거주처이며 피난처이다. 나는 만물의 참된 친구이다. 나는 만물의 시작과 중간과 끝이다. 나는 만물이 태어나는 자궁이며, 만물의 영원한 씨앗이다.
19. 내가 태양의 열을 주는 자이며, 가뭄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하는 자이다. 아르주나여,
나는 불멸이고 죽음이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이 모두 나이다.
20-21. 베다의 명령에 따라 제사를 드리고, 젯술을 마시며, 나를 섬기는 사람들은
죄악을 씻고 신들의 세계에 태어난다. 그들은 거기에서 천상의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그들이 쌓인 공덕이 다하여 천상의 기쁨이 끝나면 다시 이세상에 태어난다. 이처럼 베다의 가르침만을 준수하는 것으로는 생사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22. 나는 오로지 한 생각으로 나만 섬기고, 언제 어디서나 나에게 몰두하는 사람에게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줄 것이다.
23-25. 아르주나여, 믿음을 가지고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도 간접적이긴 하지만 결국은 나를 섬기는 것이다. 내가 모든 제사를 받는 주(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다시 태어 날수밖에 없다. 신들을 섬기는 사람은 신들의 세계로 갈 것이다. 조상을 섬기는 사람은 조상들이 있는 세계로 갈 것이고, 귀신들을 섬기는 사람은 귀신들의 세계로 갈 것이다. 하지만 나를 섬기는 사람은 나에게 올 것이다.
26-28. 나뭇닢 한 장, 꽃 한 송이, 과일 한 조각, 물 한그릇을 바치더라도 마음을 다하여 바치면 나는 그것을 아주 기쁘게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루주나여, 그대의 모든 행위가 나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도록 하라.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바치든지 무엇을 베풀든지 또는 무슨 수행을 하든지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바치는 제물이라고 생각하고 하라.
그러면 그대는 행위의 결과(카르마)에서 벗어나니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선악의 업보에서 벗어나니라.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완전한 포기를 통해 완전한 자유를 얻고 나에게 오게 되리라.
29. 나는 만물을 평등하게 본다. 누구를 더 미워하지도 않고 누구를 더 사랑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헌신하는 사람은 내안에 거할 것이다. 나도 그들 안에 거할 것이다.
30-31. 큰 죄인이라도 마음을 돌이켜 나에게 오면 그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나에게 오면 진리에 따르는 삶을 살며 한없는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아르주나여, 이점을 잊지 마라. 나에게 헌신하는 사람은 결코 불행한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32-35. 아르주나여,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 어떤 신분으로 태어 났드라도 나에게 귀의하는 사람은 이생에서 가장 높은 목표를 이룰 것이다.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가장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하물며 덕 있는 왕족과 경건한 헌신가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왕 덧없고 불행으로 가득찬 이세상에 태어난 마당에 나만 생각하고 나에게 헌신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겠는가? 아르주나야, 그대 마음을 나로 채우라. 항상 나를 사랑하고 섬겨라. 가슴으로 나를 찾으라 그러면 그대는 나에게 오게 되리라.
제 10장 신의 광채
1. "아르주나여, 그대에게 기쁨을 주는 나의 지고한 가르침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도록 하라. 강한 팔을 지닌 전사여. 사랑하는 그대의 행복을 위하여 내 더 많은 것을 말해 주리라.
2-3. 신들과 현자들도 나의 기원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나를, 태어나지도 않고 시작도 없는 자, 세계의 대주재자로 아는 사람은 미혹에서 벗어나 모든 악에서 해방된다.
4-5. 분별과 지혜와 이해, 용서와 진실과 절제, 평온함과 즐거움과 괴로움, 태어남과 죽음, 두려움과 용기, 명예와 불명예, 비폭력과 자비와 공평함, 자족함과 영적인 수행 등 존재들의 각기 다른 특성들은 모두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6-7. 일곱명의 현자들과 인류의 조상들도 내 마음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이 세상의 모든 생물체들이 삶을 받아 태어났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나의 능력과 신비를 아는 사람은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나에게 온전히 헌신하여 나와 하나가 될 것이다.
8-9. 나는 만물의 근원이다. 모든 것이 나에게서 나온다. 현명한 사람은 이것을 깨닫고
사랑과 헌신으로 나를 섬길 것이다. 그들은 생각을 나에게만 몰두하고, 온 힘을 나에게 쏟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만물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 이야기하며, 늘 만족하고 충만한 상태로 살아갈 것이다.
10-11. 늘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헌신하면 내가 영적인 지혜를 줄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그 영적인 지혜를 통해 나에게 올 수 있으리라.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긴다. 그래서 나는 그대의 가슴 속에 머물면서 그대에게 지혜의 빛을 줄 것이다. 내가 주는 지혜의 빛으로 그대의 무지의 어둠은 무너질 것이다."
12. "당신은 지고한 부라만이요, 가장 높은 곳입니다. 당신은 극도로 청정한 이요, 영원한 신의 영혼입니다.
13.당신은 신들의 우두머리이며 태어내지도 않은 무한자입니다. 모든 현자들이 당신을 그렇게 부릅니다. 나라다, 아시타, 데발라, 뱌사하 같은 성인들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14. 오 크리슈나 여, 당신이 저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신들이나 악마들조차도 당신의 무한한 본질을 다 알수는 없읍니다.
15. 오 지고한 영(영)이시여. 당신 자신만이 당신이 누구인지 알수가 있습니다. 당신은 모든 만물의 근원이시며 만물을 주관하는 주재자이십니다. 당신은 신들의 신이시며, 온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16. 당신만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신적인 본질을, 우주에 두루 퍼져있는 당신의 능력과 영광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말씀해 주십시요.
17. 크리슈나여, 당신은 요가의 창조자 이십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하여야 언제 어디서나 당신만 생각할 수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당신에 대하여 어떻게 명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까?
18. 오 크리슈나 여, 당신의 신비한 능력과 본질에 대하여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의 가르침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듣고 들어도 더 듣고 싶습니다.
19. " 좋다, 나의 능력과 영광을 말해 주겠다. 그러나 다 말하자면 끝이 없기 때문에
몇가지만 간추려서 말해 주겠다.
20. 나는 모든 존재들의 중심에 있는 참나 주인공이다. 나는 모든 존재의 시작이요 중간이요 끝이다.
21. 나는 천상의 열두신 가운데 우두머리인 비슈누 신이다. 나는 빛나는 모든 것들 가운데 태양이다. 나는 바람의 신들 가운데 폭풍의 신인 마리치이다. 나는 밤하늘에 빛나는 뭇 별들 가운데 가장 큰 달이다.
22. 나는 모든 경전 가운데 베다의 찬가이다. 나는 신들 가운데 우두머리인 인드라이다. 나는 감각의 주인인 마음이다. 나는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의식이다.
23. 나는 무서운 신들 가운데 가장 무서운 파괴의 신 시바다. 나는 자연을 지배하는 신과 영들 가운데 풍요의 신 쿠베라이다. 나는 정화하는 불 가운데 있는 불의 신 아그니이다.
나는 산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이 솟은 메루 산이다.
24. 나는 사제들의 우두머리인 브라하스파티이다. 나는 군대를 거느린 장군 가운데 최고 사령관인 스칸다이다. 나는 호수가운데 으뜸인 바다이다.
25. 나는 일곱현자들 가운데 최초의 현자인 브리구이다. 나는 모든 소리 가운데 가장 성스러운 음절"옴"이다. 나는 우뚝 서 있는 것들 가운데 으뜸인 히말라야 산맥이다.
26. 나는 나무가운데 깨달음의 나무 보리수다. 나는 성인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성인 나라다이다. 나는 음악의 신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성인 치타라타이다. 나는 깨달은 사람 가운데서 카필라이다.
27. 나는 말가운데 감로수에서 태어난 준마 우차이스라바이다. 나는 코기리 가운데 인드라가 타고 다니는 아이라바타이다. 나는 인간들 가운데 제왕이다.
28. 나는 무기 가운데 인드라의 무기 바즈라이다. 나는 소가운데에 소원을 이루어 주는 카마두크이다. 나는 성적인 사랑 가운데 사랑의 신 칸다르바이다. 나는 뱀들 가운데 바수키이다.
29. 나는 용 가운데 우두머리인 아난타이다. 나는 물에 사는 것들 가운데 물의 신 바루나이다. 나는 옛 조상들 가운데 최초의 조상ㅇ니 아리야만이다. 나는 통치자들 가운데 죽음의 신 야마이다.
30. 나는 짐승무리 가운데 백수의 제왕인 사자이다. 나는 새들 가운데 으뜸인 독수리 가루다이다. 나는 악마들 가운데 그들의 왕인 프라훌라다. 나는 모든 헤아림 가운데 헤아림의 토대인 시간이다.
31. 나는 정화하는 힌 가운데 바람이다. 나는 전사들 가운데 라마이다. 나는 물고기 가운데 가장 큰 물고기 악어이다. 나는 모든 강 가운데 가장 성스러운 갠지스강이다.
32. 나는 모든 존재의 처음과 중간과 끝이다. 나는 모든 지식 가운데 참자아에 관한 영적인 앎이다. 나는 모든 논쟁 가운데 논재의 핵심인 논리이다.
33. 나는 문자 가운데 첫글자인 아(A)이다. 나는 낱말이 합쳐진 말 가운데 병렬 복합어이다. 나는 무한한 시간이다. 나는 수많은 얼굴로 모든 곳을 지켜보는 만물의 유지자이다.
34. 나는 모든 것을 끝내는 죽음이다. 나는 앞으로 태어날 모든 것의 근원이다. 나는 명성,행운,말,기억,지성,고귀함, 그리고 용서와 같은 여성적인 성질이다.
35. 나는 벳다의 찬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부리하트이다. 나는 싯구 가운데 가장 성스러운 가야트리다. 나는 열두달 가운데 첫달인 마르가쉬르샤이다. 나는 네 계절 가운데 꽃이 피는 봄이다.
36. 나는 사기꾼들이 벌리는 도박판이다. 나는 빛나는 사람들의 찬란함이다. 나는 이긴 자의 분투와 승리이다. 나는 용감한 자들의 용기이다.
37. 나는 브르쉬니 종족의 젊은 이들 가운데 크리슈나다. 나는 판두의 아들 가운데 아르쥬나다. 나는 성자들 가운데 으뜸인 바사하이다. 나는 시인들 가운데 위대한 시인 우샤나스다.
38. 나는 벌 주는 자의 몽둥이다. 나는 정치가의 통치술과 책략이다. 나는 알려지지 않은 것들의 침묵이며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이다.
39. 아르주나여, 나는 모든 존재의 씨앗이다. 움직이는 존재나 움직이지 않는 모든 존재는
내가 없이는 이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40. 아르주나여, 나의 신적인 능력과 영광은 끝이 없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41.힘이나 아름다음이나 영적인 능력 등 그대가 발견하는 모든 것은 나의 영광으리 파편들이다.
42. 하지만 아르주나여,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자세히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있으며, 나의 한 부분으로도 온 우주가 가득 찰 수 있다는 것을 알면 그것만으로도 그대의 앎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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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글
바가바드기타의 내용 중에서 힌두교 신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신의 광채, 내용입니다. 이 신의 광채, 장의 내용을 얼핏 훌터보면 온갖 하찮은 자연현상과 관념에다가 신의 이름을 붙혀서 그것의 대표성이 "나"라고 크리슈나가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확실한 믿음을 마음 깊은 곳이 심어주기 위한 의도죠.
어떤 읽는 이들은 온갖 하찮은 사물들을 일일히 줏어대어서 그것이 나라고 하는 내용때문에
아주 지루해하고 불필요한 강조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런 하찮은 구절들을 꼼꼼히 읽어내려 가는 사이에 절대진아의 특성을 저절로 알게 되게끔 구성한 것이죠. 말하자면 믿음을 가지고 읽는 과정에서 저절로 내면 깊숙한 곳으로 믿음의 뿌리가 자신도 모르게 파고 드는 것이죠. 비유대상만 조금씩 달라질뿐이고, 사실은 모든 삼라만상이 진아에서 나오고, 그것이 진아의 표현내용이라는 말입니다. 바가바드기타는 일종의 신을 위한 제사시에 사용하는 "신의 찬가"인데, 인도 힌두교 사람들은 이것을 항상 읽고 다니죠. 그 바가바트기타를 노래하는 과정에서 신을 찬양하며,스스로 거기에 몰입을 하므로써 저절로 삼매상태로 이루도록 하는 비밀이 이 노래의 반복적인 비유에 있읍니다.
불경을 많이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초기 불경일 수록, 그원전은 아주 지루하여 계속 반복하는 말이 여러문장으로 중복되어 나오죠. 약간씩 비유대상만 바뀌어 질뿐이고, 읽는 사람들은 그 중복된 문장때문에 참지 못해서 불경을 읽다가 집어치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초기 불경들은 처음에는 몇몇제자들이 입으로 외우는 것으로 전승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반복해서 외우기 쉽게 하기 위해서 중복되는 문장이 많고, 똑같은 문장 속에 핵심 대상만 조금씩 바구어 나가게끔 구성되었는데, 이러한 불경의 문장구조가 바로 외우기도 쉽게 구성한 것이지만, 위의 기타내용처럼 반복적인 강조법을 계속 해 나가면서, 그불경을 읽고 외우는 사람은 저절로 그 내용에 대한 믿음이 내면 깊은 곳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은연중에 최면요법적인 암시적 기법을 쓴 것이 바로 불경의 반복문장의 비밀이죠. 이 바가바드기타도 바로 그러한 비밀적인 암시로써 믿음을 확고하게 자리 잡도록 구성했다고 보아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인도 힌두교는 신이름이 엄청나게 많은데, 거의 모든 자연현상에 신이름을 붙혀놓았죠. 그런 현상은 물론 고대 종교는 자연신으로부터 점차 진화되어와서 그렇게 개별적인 신이 많이 존재하는 이유도 있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연신만은 아니고, 아주 고도의 정신체계를 신의 이름으로 대체한 것으로 바라 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흰두교 신중에서 이세상을 주재하는 최고신을 이슈바라,라는 신인데, 이것이 바로 절대와 현상세계의 완충지역의 핵점인 존재 현시핵점상태를 말하죠. 이 이슈바라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유지하고 해체하는 세가지 작용을 다시 신적인 이름으로 표현한 것이 창조신인 부라흐마, 유지하고 운용하는 비슈느신, 그리고 파괴하는 신인 쉬바,이렇게 세가지 창한 신이 있습니다. 이신들의 작용을 파동의식적으로 해석해 보면, 이슈바라는 존재의식의 기본존재 순수의식파동이라고 한다면, 창조신인 부라흐마는 파동의 상승력(운동을 야기함))적인 작용측면을 말하며, 비슈느는 조화 유지, 파동의 기준인 제로점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력이고, 의식자체를 의미하며, 파괴적인 쉬바신은 파동의 에너지 하강력을 상징하는 것이죠.즉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죠. 말하자면 존재의식(이슈바라)의 세가지 파동의 에너지 변화에 대한 상승(부라흐마),조화(비슈누), 하강(쉬바)이러한 세가지 작용을 신의 이름으로 의인화해서 상징한 것이죠.
이 세가지 존재의식 파동 에너지상태와 또다시 자연의 대표적인 원소인 地(땅, 고체물성적 파동성,촉감)火(불, 에너지적 파동성,) 水(물, 액체물성적 파동성, ) 風(공기,기체물성적 파동성,) 그리고 空(공간,물체 형태적 파동성,광자파동성,)의 다섯가지 기본 원소와 조합 분열을 일으켜서 자연의 온갖 물체와 움직임의 변화가 일어나죠.
물론 여기에다 존재의식인 이슈바라의 기본적인 양(푸르샤)와 음(프라크티)도 있는데, 이것은 파동의 양극과 음극의 성질이며, 이들 요소도 같이 순열조합에 합류를 하죠. 여기에 존재의식의 기본 진동에서 나온 시간과 공간이라는 기본 요소도 순열조합에 합류하여위의 여러가지 파동형태와 수많은 원소들이 전체적으로 뒤섞이고 부딪치면서 또다른 파동의식의 물성과 개념들이 연쇄적으로 엮어지면서 우주탄생 태초부터 삼라만상이 무한정한 종류의 물질과 생명존재들이 생하다가 유지하다가 소멸하는 것이 계속 반복진행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 무한한 우주의 전체운용과 작용 그자체가 바로 파동성, 회전성의 에너지 운동이라고 말할 수가 있죠.
그런데 인도 힌두교의 신들은 이러한 대표적인 파동의식의 특성에다가 신의 이름을 붙히고, 또한 대표적인 물질원소인 지수화풍공, 시간에다가도 모두 신들의 이름을 붙혀 놓았읍니다.
그이외에도 자연의 모든 현상에다가 각각 대표적인 신이름을 붙혀 놓았기 때문에 인도에는 신의 이름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징적 원리를 이해하고 나서, 너무나 많은 신의 이름에 대하여 기가 질려서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읍니다. 자연현상 하나하나가 모두 신의 행위가 나타난다는 것은 바로 그 모든 것이 신이라는 의미로서, 자기 자신도 신그자체라는 것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죠. 모든 것이 신의 행위다, 라는 것을 완전히 알게 되면, 에고는 존재할 가치가 없었지는 것이죠.
위의 본문 내용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세상 삼라만상은 모두가 절대진아(크리슈나)로 부터 나온 것이며, 절대진아의 나툼 그 자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요지의 가르침입니다.
제11장 우주의 형상
1. "참자아의 비밀에 대한 당신의 가르침으로 제눈을 덮고 있던 환영의 안개가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은혜입니다.
2. 당신은 모든 존재의 시작과 끝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 연꽃같은 눈을 가진 이여.
당신은 영원히 현존하는 당신자신의 지고한 신비도 말씀해 주셨읍니다.
3. 오 크리슈나여, 당신이 말씀하신 무한한 영광을 이제 제눈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지고한 창조주인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4. 오 주님이시여, 요가의 주(主)이시여, 저에게 그럴만한 열정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당신의 불멸의 자아를 보여 주소서."
5. "아르주나여, 보라, 수천 수만가지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 무수한 나의 신적인 형상을 보라.
6. 아르주나여, 자연의 힘들을 다스리는 신들을 보라. 저 열두 태양신을 보라. 저 빛과 불의 신을 보라. 저 바람과 폭풍의 신을 보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이들의 놀라운 모습을 보라.
7. 아르주나여, 온 세상이 내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보라.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 그리고 그대가 보고 싶어하는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음을 보라.
8. 하지만 그대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기에, 내가 그대에게 영적인 눈을 열어 주리니
그눈으로 나의 장엄한 능력을 보라"
9.신비한 요가의 주(主) 크리슈나는 이렇게 말한 다음 자신의 장엄한 형상을 펼쳐 보였습니다.
10. 그는 갖가지 천상의 보석으로 장식한 수많은 얼굴을 가진 모습을 보여 주었읍니다.
그는 갖가지 무기를 들고 있는 온갖 기이한 모습으로 아르주나에게 나타났읍니다.
그는 꽃다발을 목에 두르고 빛나는 옷을 걸치고 있었으며 몸에서는 천상의 향기가 퍼져 나왔읍니다.
11. 크리슈나는 이렇게 자신의 무한한 신성을, 모든 기이한 것들의 근원이며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아르주나에게 보여 주었읍니다.
12. 크리슈나의 위대한 존재의 광채는 마치 천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올라 빛을 발하고 떠있는 것처럼 찬란한 광채를 내뿜었읍니다.
13. 그때 아르주나는 보았습니다. 신들의 신인 크리슈나 안에서, 온 우주가 하나의 상태에 머물면서 동시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비한 광경을 보았읍니다.
14. 아르주나는 놀라움에 몸을 떨었습니다. 머리털이 곤두섰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말했읍니다.
15. "오 주여, 저는 모든 신들과 뭇 존재들이 당신 안에 있는 것을 봅니다. 창조주 부라흐마가 당신 안에서 연꽃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봅니다. 옛현자들과 천상의 뱀들이 당신안에 있는 것을 봅니다.
16. 저는 지금 수많은 팔과 가슴을 가지고 있는, 무수한 입과 눈을 가지고 있는 당신의 무한한 형상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어디에나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있읍니다.
저는 당신의 시작과 중간과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오 만유의 주이시여, 온 세상이 당신 안에 있습니다.
17. 당신은 왕관을 쓰고, 무지를 부수는 방망이와 깨달음의 빛을 비추는 원반을 손에 들고 계십니다. 당신에게서 눈부신 광채가 발산합니다. 도저히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읍니다.
당신의 몸은 마치 수천개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동시에 빛을 내뿜는 것처럼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 볼수가 없습니다.
18.당신은 변하지 않는 궁극적인 실재요, 최고의 깨달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지고한 목표입니다. 당신은 모든 피조물의 피난처이며, 진리의 영원한 수호자이십니다.
19. 당신은 시작도 없고 중간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당신의 무한한 능력은 미치지 않는데가 없습니다. 태양과 달이 당신의 눈이며, 당신의 입에서는 불길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 불에서 퍼져 나오는 광채가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읍니다.
20. 오 주님이시여, 하늘과 땅이 당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나 계십니다.
무섭고 놀라운 당신의 이런 모습을 보고 지금 삼계(三界)가 전율하고 있읍니다.
21. 모든 신들이 두려운 마음으로 찬양하면서 당신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읍니다.
위대한 성인들과 깨달은 자들이 당신을 찬양하며 경배하고 있읍니다.
22. 루드라와 이디티야와 바수들, 사디야와 비슈베데바와 아슈빈들, 마루트와 우슈마파와 간다르바들, 아크샤와 아수라와 싯다들, 이모든 신들과 깨달은 자들이 놀라움의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읍니다.
23.오 전능한 분이시여, 당신의 수많은 눈과 입과 무시무시한 송곳니를 보며, 당신의 수많은 팔과 다리와 가슴을 보며, 온 세상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저 또한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읍니다.
24. 오 비슈누시여, 당신의 빛을 내뿜는 눈과 크게 벌린 입, 그리고 온갖 색깔의 광채를 발하며 하늘끝까지 닿아 있는 당신의 거대한 몸을 보면서 저의 심장이 두려움에 요동칩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마음은 도저히 안정을 얻을 수 없읍니다.
25. 당신의 크게 벌어진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불길을 보면서, 또 무시무시하게 생긴 송곳니를 보면서 저는 혼이 빠져 버렸읍니다.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 온우주를 유지하는 주님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26. 트리타라슈트라 왕의 아들들과, 비스마와 드로나와 카르나와, 우리 편 군대의 전사들과 모든 장수들이 당신의 입 속으로 빨려들어 가면서 무시무시한 송곳니에 으깨어지고 있읍니다.
27.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 가듯이 이 땅의 모든 전사들이 불길이 솟는 당신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 가고 있읍니다.
28. 불나방들이 죽음을 향하여 불길 속으로 날라 들 듯이,
29. 모든 존재가 자신의 파멸을 향하여 당신의 입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고 있읍니다.
30. 당신은 불타는 거대한 입으로 온 세상을 삼켜 버립니다. 오 비슈누시여, 당신이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불길이 온 세상을 잿더미로 만들고 있습니다.
31. 오 주님이시여, 말씀해 주십시오. 이 무서운 형상으로 나타난 당신이 누구인지. 엎드려 비노니, 자비를 베푸소서. 세상이 있기 전부터 존재한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읍니다.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그 본질을 알고 싶읍니다."
32. " 나는 만물을 파괴하는 시간이다. 나는 세상을 집어 삼키는 자이다. 그대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의 모든 전사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멸절할 것이다.
33. 그러니 아르주나여, 일어나 싸우라. 적군을 물리치고 옛 왕국의 영광을 되찾으라.
적군의 전사들은 이미 내가 죽였다. 이 싸움에서 그대는 단지 나의 손에 들린 무기에 지나지 않는다.
34. 비스마,드로나,자야드라타,카르나, 그리고 다른 모든 적군의 전사들은 이미 나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대는 나가서 이미 내가 죽인 그들을 죽이도록 하라. 주저하지 말고 나가 싸워라. 승리는 이미 그대의 것이다."
35. 아르주나는 크리슈나의 이말을 듣고 두려워 떨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이렇게 말했읍니다.
36. "오 크리슈나여,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에 온 세상이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악마의 무리는 겁에 질려 사방으로 달아나고 성자와 현인들은 당신께 경배합니다.
37. 오 위대한 영혼이시여. 어찌 당신을 경배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창조자 부라흐마 보다 먼저 존재하는, 항상 현존하는 영혼한 분입니다. 당신은 신들의 신이시며, 모든 존재의 집입니다. 당신은 존재이며 비존재입니다. 아니, 당신은 존재와 비존재의 이원성을 초월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불멸자입니다.
38. 당신은 시간을 초월한 원초적인 신이며, 온 우주의 근원입니다. 알수 있는 대상이 모두 당신이며, 그것을 아는 자도 당신입니다. 당신 안에 온 세상이 있으며, 온 세상의 모든 형상이 다 당신입니다.
39. 당신은 바람의 신 바유입니다. 당신은 죽음의 신 야마입니다. 당신은 불의 신 아그니입니다. 당신은 물의 신 바루나입니다. 당신은 달이며, 창조자 푸라자파티(브라흐마)입니다.
당신은 모든 존재의 최초의 조상입니다. 그러므로 당신 앞에 머리를 숙이고 경배하고 또 경배합니다.
40. 당신은 앞에도 있고 뒤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방을 향해 당신께 절합니다. 당신의 능력은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당신은 모든 존재 속에 충만하게 현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어디에나 있읍니다.
41. 저는 당신을 그냥 친구정도로만 알고 '어이 친구여,' '어이 크리슈나여' 라고 불럿습니다. 때로는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 같이 앉아 음식을 먹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읍니다.
42. 오 크리슈나여, 불멸자인 당신의 위대함을 알아보지 못하고, 당신게 보인 이 무례함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43. 당신은 온 세상의 아버지입니다.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의 아버지입니다. 당신은 모든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가장 위대한 스승입니다. 온 세상에 당신과 견줄자가 없습니다. 이 삼계에 당신보다 더 큰자가 없읍니다.
44. 오 은혜로운 주님이시여, 엎드려 청하오니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아버지가 아들을 용서하듯이, 친구가 친구를 용서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연인을 용서하듯이 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45. 이전에 보지 못했던 당신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고 저의 마음이 심하게 흔들립니다.
두려워 떨립니다.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집이시여, 은총을 베푸사 부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십시오. 광채를 발하는 신들의 신의 모습으로 돌라 오십시오. 비록 온 세상이 다 당신의 형상이라 할지라도, 천 개의 팔을 지닌 무서운 형상의 당신보다는 네 개의 팔을 지닌 자애로운 모습의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진리의 방망이와 원반과 소라고동과 연꽃을 네 손에 들고 있는 자비로운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47, " 아르주나여, 그대는 나의 은총으로 나와 합일되는 경험을 했다. 나와 합일된 상태에서 그대는 나의 형상을 보았다. 지금까지 아무도 본적이 없는, 나의 빛나는 우주적인 모습을 보았다.
48.경전을 아무리 열심히 연구해도 재물을 아무리 바쳐도 자비를 많이 베풀고 고행과 금욕을 해도 그대가 본 나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오직 그대만이 나의 영적인 비젼을 보았다.
49. 오 용감한 전사 아르주나여, 나의 모습이 무섭다고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 나의 무서운 모습을 거둘 것이니, 마음을 편안히 갖도록 하라."
50. 크리슈나는 이렇게 말한다음 네개의 팔을 지닌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읍니다.
그리고 다시 아르주나에게 익숙한 옛 모습으로 돌아와서 두려워하고 있는 아르주나를 위로했읍니다.
51. "오 크리슈나여, 부드럽고 인간적인 당신의 모습을 보니 이제야 저의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52. " 그대가 본 것과 같은 형상을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신들 조차도
그대가 본 것과 같은 나의 모습을 보기를 갈망하고 있다.
53. 경전탐구를 통해서도 고행과 금욕과 자선 행위를 통해서도 그리고 제사나 종교의식을 통해서도 그대가 본 것과 같은 나의 모습은 보지 못한다.
54. 아르주나여, 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통해서만 나와 하나가 될 수 있고, 나를 알고 나를 볼수 있다.
55.나를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하는 사람,
그리고 이원적인 대립을 벗어나 누구에게도 적대감을 갖지 않는 사람은 나의 존재 속으로 들어와 나와 하나가 된다."
제12장 헌신의 길
1.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께 완전히 헌신하는 바크티 요가 수행자와 당신을 무형(無形)의 영원한 실재로 여기고 정신적으로 당신을 찾는 즈냐나 요가 수행자 중에 누가 더 흔들리지 않는 합일의 길을 가는 것인가요?"
2." 순수한 믿음으로 마음을 나에게 집중하고, 흔들리지 않는 헌신의 길을 가는 것이 가장 완벽한 요가(합일)의 길이다.
3-4. 그러나 감각기관과 마음을 제어하면서,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생각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초월적인 실재를 찾으며, 모든 존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즈냐나 요가(지혜) 수행자들 역시 나에게 이른다.
5. 하지만 물질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를 찾는 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6. 그러나 나만을 목표로 삼고 모든 행위를 나에게 바치는 제물로 여기는 사람,
7. 나에게 헌신하는 사람은 태어남과 죽음이 반복되는 윤회의 바다를 쉽게 건널수 있다.
8. 그러므로 아르주나여, 그대의 마음과 생각을 다하여 나에게 몰두하라. 그러면 그대는 영원토록 나와 하나인 상태에 머물것이다.
9. 나에 대한 집중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수행을 규칙적으로 하라.
10. 규칙적인 수행에 대한 의미마저도 부족하다면 그대자신을 나의 도구라고 생각하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위하도록 하라.
11. 이런 행위를 통해서도 그대는 완성에 이를 수 있다.
12. 기계적인 훈련보다는 지혜의 탐구가 낫고, 지혜의 탐구보다는 명상에 몰입하는 것이 나으며, 명상에 몰입하는 것보다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포기가 훨씬 낫다.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위하는 자는 즉시 평화를 얻는다.
13.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자비로운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나' 또는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없으며 고통과 기쁨에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한다.
14. 나는 어떤 상황에나 만족하며 자신을 제어하고 굳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마음과 생각전체를 기울여 나에게 몰두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런 사람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
15. 이런 사람은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으며, 세상 또한 이런 사람을 흔들지 못한다.
기쁨, 경쟁심, 두려움과 열망에서 멀리 벗어난 사람, 이런 사람은 나에게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16.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하는 순수한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무슨일을 하든지 일에 얽매이지 않고 욕망에서 벗어나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런 사람은 나에게 헌신하는 자이며 나는 이런 사람을 사랑한다.
17. 나는 즐겁다고 좇아가지 않고 괴롭다고 피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무슨일이 일어나거나 무엇이 오고 가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마음이 오직 나에게만 향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18. 나는 원수와 친구를 평등히 여기고, 존경과 멸시를 하나로 보며, 추위와 더위, 즐거움과 괴로움을 동일하게 여기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비난해도 화내지 않고 칭찬해도 우쭐거리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
19. 나는 침묵할 줄 알고, 어떤 상황에도 만족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거주처에 대한 집착이 없이 어느 곳에서나 조화를 잘 이루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나만을 바라보는 이런 사람을 사랑한다.
20. 그러나 누구보다도 지금까지 말한 이 영원한 진리에 마음을 모으고, 나를 삶의 목표로 삼고, 온전한 믿음으로 따르는 사람은 나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제13장 현상과 절대
1. "아르주나여, 이 육체를 '밭'이라고 하고 밭을 알고 경작하는 존재를 '밭을 아는 자'라고 한다.
2. 아르주나여, 내가 곧 밭을 아는 자이다. 나는 밭과 밭을 아는 자를 동시에 아는 것을
참다운 지혜로 여긴다.
3. 밭이란 무엇인가? 밭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성질은 어떻게 변하는가? 밭을 경작하는, 밭을 아는 자는 누구이며, 그에게는 어떤 능력이 있는가? 이제 이런 의문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하겠다.
4. 현자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밭과 밭을 아는 자를 노래하고 있다. 브라흐마에 관한 뛰어난 논증으로 유명한 <브라흐마 수트라>에도 밭과 밭을 아는 자에 관한 설명이 있다.
5. 아르주나여, 밭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섯가지 물질인 원소(흙, 물,불,바람,공간). 다섯가지 감각기관(눈,귀,코,혀,몸) 다섯가지 감각대상(색깔,소리,냄새,맛,촉감). 다섯가지 작용기관(입,손,발,항문,생식기). 마음('나'라는 생각,기억능력,분별능력). 그리고 아직 물질로 나타나지 않은 에너지(생기) 이것이 바로 밭이다.
6. 이 밭에서 욕망과 증오, 쾌락과 고통,육체와 지성, 그리고 의지 같은 것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밭의 변화이다.
7. 밭의 구성요소와 그 변화를 아는 사람은 오만과 거짓에서 벗어난다. 비폭력,용서,정직,순수,스승에 대한 헌신등이 그들의 특징이다.
8. 그들은 내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잘 제어하고 감각대상과 에고의 욕망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생노병사와 고통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9. 밭의 구성요소와 그 변화를 아는 사람은 소유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다. 아내나 자식들에 대해서도 애착을 갖지 않는다.
10. 이런 사람은 행운이나 불행을 평등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에게 헌신하며, 세상사람들과 무리지어 어울리기 보다는 한적한 곳에서 홀로 있으면서 오직 나를 찾는 일에 몰두하는 것을 좋아한다.
11.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앎의 궁극목표인 "참나"를 찾는 것이 참다운 지헤이다. "참나"아닌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은 무지이다.
12. 이제 그대에게 불멸에 이르는 지혜,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닌 "그것" 곧 시작이 없는 브라흐만에 대해 말해 주겠다.
13. 그는 모든 것 안에 있다. 모든 손과 발과 머리에 그가 있다. 모든 입과 눈과 귀에 그가 있다. 온 세상 속에 그가 있다. 그에게는 감각기관이 없지만 모든 감각대상을 인지한다.
14.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홀로 있지만 모든 존재가 그를 토대로 서 있다. 그에게는 물질적인 성질이 없지만 모든 물질적인 성질의 변화를 주재한다.
15. 그는 가까이 있으면서 동시에 멀리 있고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밖에 있으며 움직이면서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다.
16. 그는 이해를 넘어서 있는 신비한 존재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존재로 그 모습을 나타낸다. 그는 존재들을 생성시키는 창조자이고, 존재들을 소멸시키는 파괴자이다.
17. 그는 모든 존재의 가슴 속에 머물고 있다. 그는 모든 빛의 원천이다. 그는 어둠을 초월해 있다. 그는 모든 앎의 대상이자 목표이며, 앎 그자체이다.
18. 지금까지 설명한 밭과 앎과 앎의 대상을 확실히 이해하라. 나를 섬기는 자는 이것을 이해함으로써 나의 상태에 이르리라.
19. 프라크리티(현상)와 푸르샤(절대)는 둘 다 시작이 없다. 물질의 세가지 성질(구나)과 변화는 모두 프라크리티에서 비롯된다.
20. 프라크리티가 모든 행위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행위자이다. 하지만 모든 쾌락과 고통의 향수자는 푸루샤이다.
21. 푸루샤는 프라크리티 안에 머물면서, 프라크리티에서 비롯된 구나들의 활동을
지켜보며 경험한다. 만약 정신이 어떤 구나의 활동에 집착하면 그것은 그가 좋은 곳이나 나쁜 것에 태어나는 탄생의 원인이 된다.
22. 육체 안에 머물고 있는 지고한 푸루샤는 지켜보는 자이며 인도하는 자이다. 그는 향수하는 자이며 지탱하는 자이다. 그가 곧 참자아이며 대 주재자이다.
23. 푸루샤와 프라크리티와 구나의 본성과 변화를 이해한 사람은, 그가 선택한 길이 어떤 길이냐에 관계없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24. 어떤 이들은 명상수행(라자 요가)을 통해서 자기 내면의 참자아를 깨닫는다. 어떤 이들은 지혜의 길(즈냐냐 요가)을 감으로써 자기내면의 참자아를 깨닫는다. 어떤 이들은 순수한 행위의 길(카르마 요가)을 감으로써 자기 내면의 참자아를 깨닫는다.
25. 또 어떤 이들은 이런 길을 전혀 모른 채 깨달은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기만 하지만, 이들도 역시 죽음의 바다를 건넌다.
26. 아르주나여, 움직이는 것이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질(프라크리티)과 정신(푸르샤), '밭'과 '밭을 아는 자'의 결합에서 비롯된 것이다.
27. 모든 존재들 속에 평등하게 머물고 있는 지고한 주님을 보는 사람이 진정으로 보는 자이다. 그는 소멸되어 가는 것들의 가슴 속에서 소멸되지 않는 주님이 계신 것을 본다.
28. 모든 존재들 속에 동일한 주님이 계신 것을 보는 사람은 자신을 죄인으로 정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는 지고한 목표에 도달한다.
29. 모든 행위는 물질적인 성질의 변화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며 참자아 주인공은 행위자가 아님을 아는 사람, 어떤 행위가 일어나도 참자아는 늘 자신의 상태에 머물고 있음을 보는 사람이 참으로 보는 사람이다.
30.모든 존재들의 근원이 하나이며 그 하나의 근원에서 만물이 전개되어 나옴을 보는 사람은 지고한 부라만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31. 참자아 주인공은 시작도 없고 성질의 변화도 없고 끝도 없다. 아르주나여, 참자아 주인공이 몸 속에 머물고 있지만 그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으며, 어떤 행위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32. 허공은 온 우주에 두루 퍼져 있으며, 허공 안에는 무수한 존재들이 있다. 하지만 허공은 자기 안에 있는 존재들로 인하여 자신의 성질이 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참자아 주인공은 변화하는 모든 존재들 속에 머물면서도 자신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33. 하나의 태양이 온 세상을 비추듯이 참자아 주인공이 물질 세계 전체를 비춘다. 지혜의 눈이 열린 사람은 '밭'과 '밭을 아는 자'를 혼동하지 않는다. 지혜의 눈이 열린 사람은 프라크리티(물질)의 구속에서 벗어나 지고한 경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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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붙임 말
위의 본문이 너무 길어서 붙임말을 생략하려다가 좀 아쉬운 것 같아서 잠깐 헛기침이라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위의 현상과 절대라는 장은 진아에 대한 설명으로써 아주 중요한 내용이군요. 위에서 '밭'을 육체라고 했지만, 사실은 육체와 의식, 그리고 현상세계전체를 통틀어
'밭'이라고 정의한 것 같습니다. 또한 '밭을 아는 자'는 '진아' 자체를 의미하죠. 위 내용에서 푸루샤와 프라크리티, 그리고 구나 라는 용어가 나와서 이에 대하여 좀 알기 쉬운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위에서 푸루샤(정신) 그리고 프라크리티(물질) 이라고 ( )안에 설명을 그대로 기록했지만, 사실은 이러한 설명은 전혀 맞지가 않습니다. 이책의 번역자가 이렇게 괄호안에 써 놓은 것을 그대로 기록했읍니다만, 푸루샤와 푸라크리티,구나라는 것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들이 거의 없읍니다.
제가 부로그나 카페에 전에 시리즈로 쓴 글에서 이에 대해서 좀 자세하게 현대 물리파동공학적인 비유를 들어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즉, 푸르샤는 파동이 시작하기 이전의 파동 시작점을 말합니다. 파동이 시작하기 전(절대의 일부가 움직이기 전)에는 푸르샤라는 것이 없죠. 오직 절대 뿐입니다. 절대는 한점에서의 절대공진 현상으로써 시작점도 없고 끝나는 점도 없는 무한하고 영원한 한점이죠. 이러한 아무 변화가 없지만 그 절대 안에서는 수많은 파동성이 잠재해 있습니다. 이제 어떤 원인도 없이 절대 한점이 움찍 하고 움직임이 일어나자 그 움직임의 시작에 의하여 진동이 발생했습니다. 무한한 절대에서 단 한점에서 진동이 시작되는데, 이최초진동이 시작하는 점 자체는 절대죠. 이 점을 푸르샤라고 합니다.
그다음 그 푸루샤 점에서 움직임이 점 밖으로 갔다가 되돌아 오는 점이 있는데, 이 되돌아 오는 점이 절대 푸루샤 점의 그림자죠. 이 푸루샤의 그림자 점이 바로 푸라크리티 라고 하죠.
진동이란 가만히 있던 한점에서 다른 점 한점과의 사이의 반복 운동이죠. 처음에 가만히 있던 점은 절대의 바탕에 있는 실재(實在)의 점이고, 첫 움직임에 의해 그림자 점이 하나 생겨서, 그그림자 점과 반복 운동을 주고 받는 진동현상이 바로 모든 삼라만상과 육체 그리고 의식을 만들어 내는 의식자체죠. 최초로 나타난 진동이 바로 존재의식이죠. 가장 순수한 진동형태입니다. 물론 빛보다도 수억천배 아주 미세한 파동이 바로 의식이라는 것이죠. 이 파동성의 의식이 모든 삼라만상을 그려내지만, 육체 이전의 의식은 순수해서 아무것도 그려내지를 않죠. 이세상만사가 다채롭고 다양한 것은 순전히 육체의 두뇌와 감각작용이 그렇게 보여주는 것이죠.
자세한 것은 나중에 기회있는 대로 이야기가 나오겠고, 또한 참나 찾아가는 길목이라는 연재물에 파동의식의 비유를 기술해 놓았습니다. 푸르샤라는 것은 이원화적일 때에만 푸르샤이고, 일원적인 상태에서는 바로 진아 그자체죠. 푸라크리티는 푸르샤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점이죠. 그 움직이는 작용이 바로 사트바,라자스,타마스,라는 세가지 움직임 형태인데, 이것이 바로 파동의 상승, 하강, 조화 작용입니다. 파동의 상승작용은 파동이 강화되어 파동에너지를 일으키는 힘이고, 하강이란 그림자점(프라크리티)에서 다시 원래 시작점(푸루샤)로 되돌아 오는 피드백(궤환작용)에너지를 말하는 것이죠. 말하자면 라자스(상승)작용은 에너지의 활성화 상태이고, 타마스(하강)은 에너지의 불활성 변화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사람도 라자스(상승)에너지가 강한 사람은 활동적이고 시크럽죠. 타마스적인 사람은 항상 비관적이던가, 무언가 파과나 비방적인 면이 많습니다. 그런데 내가 행위자라고 의시대는 성격은 오하려 타마스적이죠. 사트바는 파동의 중심을 말하는데, 양과 음의 조화상태를 말합니다.
이 사트바는 항상 "지금현재"점에 있는데, 이것이 바로 푸루샤와 같은 것이죠. 이 지금 현재의 푸루샤 점에서 파동이 실이 작은 구멍에서 풀려 나와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작은 구멍이 푸루샤 기준점이라면 실은 파동이라고 할 수가 있죠. 아주 미세한 구멍에서 빛이 나와서 퍼진다고 생각해 보면, 작은 구멍자체가 바로 푸루샤인데, 거기서 나오는 빛의 움직임을 푸루샤는 아주 참견없이 그냥 지켜 볼 뿐이죠. 아주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여기서 푸루샤는 절대자체로서, 실재(實在)이며, 푸라크리티는 이 실재의 한점의 움직임 그림자이고,
푸르샤와 푸라크리티 사이에 진동이 발생하여 의식이 되었다는 것이며, 이 최초의 기본의식이 순수 존재의식인데, 이 순수존재의식이 육체감각기관과 두뇌에 의하여 분산되고 산란되어 수억천만가지 조합과 수열에 의하여 이 현상세계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진리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비유적인 개념이므로 실재로 여기질 말고, 진리를 이해하는 데 일종의 간접적인 도구라고 생각해야 되죠.
이런 개념적 설명은 모두가 다 허황된 개념적 이론들입니다. 실재는 이런 개념들을 다 잊어버리고 자신이 직접 명상수행으로 그것자체를 직접 맛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왜 이런 식으로 구차스럽게 비유를 들어서 설명했나를 이해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현상세계는 절대(푸르샤)의 그림자인 푸라크리티가 춤추는 환상이라는 사실, 또한 이러한 모든 "밭"(현상세계)를 말없이 아는 자는 바로 참나 라는 사실입니다. 너무 긴 길을 끝까지 읽어 주시느라 수고하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