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대강좌 2강 3 - 4
10. 爾時世尊 欲 重宣此義 而說偈言
이시세존 욕 중선차의 이설게언
그 때 세존이 欲 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사대,
11. 世雄不可量 諸天及世人 一切衆生類 無能知佛者
세웅불가량 제천급세인 일체중생류 무능지불자
佛力無所畏 解脫諸三昧 及佛諸餘法 無能測量者
불력무소외 해탈제삼매 급불제여법 무능측량자
世雄不可量이라. 세상의 영웅은 가히 헤아리기 어렵다.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과 一切衆生의 類는 無能知佛者니라.
능히 부처님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부처님의 힘과 無所畏의 解脫과
여러 가지 삼매와 그리고 모든 부처님의 나머지 법들을 無能測量者니라.
능히 측량할 사람이 없느니라.
12. 本從無數佛 具足行諸道 甚深微妙法 難見難可了
본종무수불 구족행제도 심심미묘법 난견난가료
於無量億劫 行此諸道已 道場得成果 我已悉知見
어무량억겁 행차제도이 도량득성과 아이실지견
本從無數佛로, 본래 無數佛로부터 구족하게 모든 도를 具足히 行한
甚深微妙法은 難見難可了니 보기도 어렵고 가히 알기도 어려우니라.
한량없는 억겁에 行此諸道已하시고, 이 모든 도를 다 행해 마치시고
道場에서 果를 이루신 것을 我已悉知見이라. 내가 지금 다 知見한다.
도량에서 불과를 이룬 것. 道場은 뭐지요? “부다가야”
부처님이 성도하신 곳을 언제나 道場이라고 합니다.
“도량”하면 언제든지 부처님이 성도하신 장소. 그리고 부처님의 성도 그 자체.
그것을 도량이라고 그래요. 우리가 “절 도량” 우리가 여기 공부하는 곳도
“도량” 전부 도량이잖아요. 전부 성불장입니다.
전부 부처되기 위한 것이지, 그 외에 아무 다른 의미가 없는 겁니다.
불교는 오직 그 목적이 하나. 나도 너도 다 같이 自他一時成佛道. ←이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데나 “도량” “도량” 도량이라고 붙이지 않습니까?
절이나 아무 것도 없으면 선이라도 그은다든지, 줄이라도 친다든지,
인도나 중국 같은 광야에서는 처음에 그랬어요. 그것을 “결계”라고 그럽니다.
결계라는 말을 잘 쓰지요. 경계를 만드는 겁니다. 사방 100m씩 한다든지,
사방 1Km씩 한다든지 해서 줄을 친다든지, 말뚝을 박는다든지, 선을 긋는다든지 해서
“우리가 이 안에서 수행한다.”하고 바깥과 안의 분별을 분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 것도 없어도 절이 없어도 도량이 됩니다. 결계하면요.
13. 如是大果報 種種性相義 我及十方佛 乃能知是事
여시대과보 종종성상의 아급시방불 내능지시사
是法不可示 言辭相寂滅 諸餘衆生類 無有能得解
시법불가시 언사상적멸 제여중생류 무유능득해
이와 같은 大果報와 가지가지 性相의 뜻을, 性相은 十如是입니다.
십여시의 뜻을 我及十方佛이 나와 시방세계 부처님만이 乃能知是事니라.
이에 능히 이 일을 아느니라. 여기에 벌써 十方佛 이라고 은근히 썩 말씀을 하고 있네요.
是法不可示라. 이법은 가히 보이기 어려움이라.
言辭相寂滅이라. 言語道斷(언어도단)하고 心行處滅(심행처멸)이라.
우리 그런 말 잘 쓰지요?
諸餘衆生類는 無有能得解요. 모든 다른 중생들은 아무 아는 사람이 없고,
際諸菩薩衆 信力堅固者 諸佛弟子衆 曾供養諸佛
제제보살중 신력견고자 제불제자중 증공양제불
一切漏已盡 住是最後身 如是諸人等 其力所不堪
일체루이진 주시최후신 여시제인등 기력소불감
際諸菩薩衆의 信力堅固者하고, 모든 보살대중의 믿음의 힘이 견고한 사람만 제한다.
그 사람들은 가능하다.
모든 부처님의 제자 대중이 曾供養諸佛. 일찍이 부처님께 공양한 사람도 여기에 포함된다.
열어 두었지요. 성문 벽지불 따위는 어림도 없다 해놓고 그리고는 이렇게 열어 두었습니다.
一切漏已盡하여 일체의 번뇌가 이미 다 해서 最後身에 머문 사람.
이와 같은 사람들도 그 힘이 능히 감당하지 못 할 바니라.
最後身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수행의 단계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
더 이상 중생 몸을 받지 않고 이제 마지막 받은 중생 몸이라는 표현인데,
수행이 최고조에 달한 사람이라고 이해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