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이었나, 투병중인 지연씨 이야기를 건네며,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씨은 "지연 씨가 나았으면 좋겠어요. 혹시라도 다 나아서 우리를 떠나고 외면하더라도 지연 씨가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런 바램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연씨는 모든 장기가 마비되고 피고름이 목까지 차오르는 고통스런 시간들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3월의 마지막 날 만 23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삼성에 입사해서 효도할 수 있다고 좋아라했던 가난한 부모님의 가슴에 묻혔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취업한 18살,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의 품질검사 일을 주로 했던 그녀는 엑스레이(방사선)을 이용한 특성검사업무를 주로 했다. 작업 속도 때문에 전원을 끄지 않고 장비 덮개를 열고 작업을 한 탓에 백혈병에 걸린 것이 분명한 그녀의 나이는 21살이었다. 회사 입사하고 32개월 만에 불치병 환자가 되었다.
그녀가 그렇게 반도체 생산성의 희생양이 된 이후에도 회사는 ‘그 기계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라고만 되풀이 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으로 문제가 다시 제기되어 행여라도 현장 조사를 할까봐 우려한 회사 측은 이제야 작업 수칙을 강요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장례식을 찾아온 동료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요즘와서 장비덮개를 꼭 닫고 작업하라고 해요.”그러나 그녀들 역시 X선 장비에서 방사능이 나온다는 걸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다만 회사가 귀찮게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보다 많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그렇게 노동자들의 혈액에는 치명적인 암세포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사람 중 백혈병으로 사망하거나 투병 중인 사람은 그녀 혼자가 아니었다. ‘반올림’이 확인한 조혈계 암 발생자만 22명, 알려진 사람 중 모두 7명, 이제 그녀까지 8명이 사망했다. 여기에 그녀의 사망소식이 전해지면서 추가로 제보된 사망자가 1명. 물론 탈모와 유산, 무월경 따위의 증상은 수없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단 한명의 산업재해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인터넷에는 며칠째 ‘백혈병 반도체소녀 결국 사망’이라는 명칭으로 포털게시판 상단에 기사가 오르고 있으나 방송을 비롯한 언론들은 다루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포털에는 삼성 부동의 자산규모 1위...라는 기사가 오히려, 떴다. 눈치 빠른 국민은 알테지만 삼성이 이런 류의 위험한 상황에 닥치면, 언론은 역시 삼성,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살린다는 식의 기사를 노출한다. 그냥 넘기기엔 속이 뻔히 보이는 개연성. 하기는 삼성 이건희 부자의 삼성그룹 부당 승계 상고심 대법원 무죄 판결은, 노무현 대통령의 7일장이 있던 바로 그날 발표되었다. 모든 국민의 관심이 전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 쏠린 날이었다.
삼성은 반도체에 은혜가 많다. 이건희 가계가 불법과 탈법으로 재산을 모을 수 있는 근간에는 반도체가 이뤄준 공이 크다는 말이다. 그 반도체에서 노동자들이 시나브로 죽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병든 사실을 회사에 알리면 쫓겨날까 두려워, 아픔조차 숨겨가며 일하고 있을 지 모른다. 그래선 안된다. 안전한 작업공정에서 인간답게 일하는 노동이어야 한다. 작업으로 인해 병이 생기면 정당한 보상을 해주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회사가 할 일이지 혹시라도 이런 사실이 밝혀져서 회사 이미지에 손상이 갈까봐, 크레믈린처럼 회사의 담 벽을 높이고 이를 숨기기 위해서 언론과 관련 기관들에 재갈을 물리는 방식은 후안무치한 일이다. 가족들을 찾아가 산재 취하하면 치료비도 대주고 집도 고쳐준다고 회유하는 따위의 태도는 회사 경영의 기본도 아니다.
그러나 삼성만큼 우리 모두도 나쁘다. 삼성의 지배방식을 뻔히 알면서도 삼성이 판매하는 핸드폰 수출이 국민 모두를 이밥에 고깃국 먹게 해주기 때문에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 같은 이들의 고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보다 힘이 센 것은 삼성’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거나 그들이 제공하는 달콤한 기회에 편승하려 한다. 이것이 더욱 무서운 일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데도 어쩔 수 없다니, 그럼 더 중요한 것은 어디 있는가.
박지연씨를 보낸 부모의 마음을 생각한다. 생계를 위해 어린 딸을 위험한 곳에서 일하게 했다는, 그래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살아갈 그 가족의 마음. 그들의 탓이 아니라, 안전하게 일할 환경을 제공하지 않은 기업과 그리고 국가에게 빚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은폐하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노동자는 바로 나 자신이며, 엄마이며 아빠이며, 내 자식이기 때문이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 박지연의 죽음은 삼성이 이사회를 지배하는 방식과 노동자의 건강권의 문제와 그리고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삼성‘은 원래 그랬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드러내고 반성하게 하는 중요한 사건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반도체보다 중요한건 역시나 사람이라는 우리안의 성찰을 되새기는 일이었으면 한다. 그게 23살 짧은 인생을 살고 간 그녀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한겨레 왜냐면에 압축된 내용이 실렸습니다.
[왜냐면] 삼성만큼 우리 모두는 나쁘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4142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