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꽃이 피는 것에 샘을 내는 추위라는 뜻의 꽃샘추위는 좀 귀찮은 면도 있지만 이제는 추위가 끝이라는 이야기도 담겨 있다. 지난 주 토요일 일요일 날은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봄날이 온 것같아 산청의 3매를 찾아 다녔는데, 아직 한 곳도 꽃망울을 터뜨리지는 않았었다.
지난 한 주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다. 나는 벌써 육년 째 혼자서 집 살림을 꾸리고 있지만 삶은 혼자서 살 수가 없으므로 날마다 무슨 일이든 생기게 마련이다. 더우기나 나처럼 하루하루를 벌어야 먹고 살 수가 있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나이도 이젠 번듯한 직장에서는 정년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란 더없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4월 부터 불러서 일을 시작한 개천예술제60년사 편찬 사업은 이제 마무리가 되어간다. 중간에 예산의 책정과 배정에 약간의 의견차가 있어서 두 달 간 사무실에 나가지 않았을 뿐, 줄곧 일을 성실하게 진행해 왔다. 사무실에 출근을 안할 때에도 관계자들과 합의된 사항을 벗어나지 않았으니 하등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생각보다는 일이 많고 자료들 또한 방대했다.
지난 주 금요일날은 편찬위원장님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큰 사고는 아니어서 불행 중 다행이고, 편찬의 일도 편집과 교열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 별 무리가 오지 않는 과정이라 한숨을 돌렸지만,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교에서의 문학동아리 선배님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지가 20년이 넘었으니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셈이다. 모두 다섯 분의 선배님들과 일박 이일씩, 이박 사일을 같이 했다. 가장 오래된 선배님은 나의 고등학교 때 영어선생님이기도 하셨다. 그 분은 1964년 1965년 연거푸 개천예술제 문학백일장 대학일반부에 시조로 장원을 했었다. 모인 분 중에 한 분은 칠 팔년 차이가 생기는 후배이지만 나에게는 그만큼의 선배이기도 한데 왜 혼자서 두 번이나 장원을 했느냐? 그것이 결코 잘한 일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다그치기도 했지만, 대단한 문학청년시절을 보내고, 첫 시조시집 출판기념회를 내가 대학교 문학동아리 초년병 시절에 했었는데 그 당시 나는 문학이 뭔지도 모르면서 학교 선배님들을 따라 참석을 한 이후 이번에 개인시집으로는 두 번째 출판을 하게 되었다. 개천예술제 문학부문 수상자 선배님들과의 만남이었다. 아무래도 그 당시 우리가 다닌 대학 문학동아리가 개천예술제 문학부문 대학일반부는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때의 선배님들이다. 이 분들과의 일박 이일을 두 차례 하고, 서울에서 30여 년간 직장생활을 마친 한 분이 귀향을 하는 관계로 이런 저런 일을 도우며 3월의 반을 보냈다. 여기 저기를 다니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잠을 같이 자며 밥을 같이 먹으며 같은 차를 타고 같은 술을 마시며 함께 보낸 일 주일의 시간들은 아마도 다시는 서로가 만들기 힘든 기회일 것이다.
지역에서는 시비건립추진위원회 일이 있었다. 애초부터 허술하게 시작되는 일에는 가담을 하지 않아야 했었다는게 지금의 심정이다. 누구 하나를 살리는 일에는 빠져서는 안 될 지언정 누구 하나를 살리기 위해 누구 하나를 배제하는 일에는 절대로 가담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 나의 삶에 있어서의 철학이라면 철학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양성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가 있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정착시키는 일은 일을 추진하는 두뇌들의 생각이 솔선수범해서 민주적이어야 제대로 된 성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그래서 목적인 결과도 중요하지만 절차나 과정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누구를 탓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그렇게 할 만한 위치에 서 있는 나도 아니다. 다만, 상식이 통하는 선에서 매듭이 잘 지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왜 이런 이야기들을 사후에 하느냐?고 다그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내가 이야기할 때는 그 자리에 없었든지 아니면 그런 이야기를 들을려는 생각도 없었던 사람들이 일이 생긴 나중에 나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하는 이야기들이 거의 전부다. 나는 가능하다면 지역의 일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소리들은 안할려고 한다. 내가 하는 일도 아니면서 동료나 선후배들이 하는 일을, 해놓은 일을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는 것은 도리나 분수에 지나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가보니 일이 끝난 후에 모든 것을 알게 되고 그런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러다보니 나는 이미 끝난 일들을 이야기하기에는 뒤소리 밖엔 안되는 것이다.
발전을 위한 고통은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더 낫다. 좀 더 나은 방법들을 고민하며 일을 처리하는 것이 진지해 보이고 때론 아름답기까지 하다. 글도 마찬가지다. 입에 발린 소리들 보다는 깊이와 넓이가 있는 글들이 좋다. 그것이 영혼을 울려주는 글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한 바탕의 꽃샘추위가 지나고 나서 일본이란 나라는 지진과 해일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번 일을 보고 내가 일본 땅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삶에 대한 집착이 있어서이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모든 희망과 꿈을 동시에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모습들을 나는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 한 바탕의 꽃샘추위가 오리라고 한다. 이 비가 그치면 내일 부터 꽃샘추위라고 한다. 먼젓 번 꽃샘추위에서는 한 편의 시를 건졌다. 그 습작시를 보고 같이 일을 하는 시인 한 분은 아! 괜찮은데, 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나의 기분을 북돋아주기 위한 말씀이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꽃샘추위 덕택에 한 편의 시를 건졌다는 것이 지난 몇 일 내내 기분을 좋게 했다. 이 번 꽃샘추위에도 좋은 글이나 한 편 건졌으면 싶다.
첫댓글 바쁜 시간들을 보내셨군요? 몸이 바쁘다고 마음까지 바빠서는 안 됩니다. 여유를 가지시면서 좋은 글 많이 쓰시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