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 월드컵 (우루과이 대회 3조) 페루와 루마니아의 경기에서 당시 3백명만이 입장, 월드컵 역대 최소 관중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유는 동시에 개최된 브라질 대 유고 경기에 관중이 몰렸기 때문.
◑ 키 190㎝에 몸무게 141㎏인 영국 출신 컬리 패터플그 선수는 세계 축구 사상 가장 육중한 골키퍼.
그의 마지막 경기 때의 몸무게 무려 165㎏이었는데 한번은 그가 크로스바를 무너뜨리는 바람에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고.
◑ 1930년 월드컵 (우르과이 대회) 때 생긴 일.
브라질 심판 알메이다 레고씨가 아르헨티나 대 프라스 경기 (당시 스코어 1:0) 에서 후반 6분을 남겨 놓고 종료휘슬을 불어 아르헨티나가 승리하는 간접적인 도움을 주다.
휘슬을 부는 순간 프랑스 랑귀에르 선수가 득점 가능한 공격을 하고 있었다고. 경기는 혼란 뒤에 재개됐지만 물론 프랑스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 1930년 대회 당시는 공식사용구 제도가 없던 시절.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경기의 벨기에 출신 주심 란제누스는 양 팀이 서로 자국산 공을 쓸 것을 주장하자 동전던지기로 결정.
결국 전반에는 아르헨티나 공을 후반에는 우루과이 공을 사용, 우루과이가 4대2로 우승.
◑ 1938년 프랑스대회 준준결승 브라질과 체코의 경기 도중 양 팀이 매우 거칠게 경기를 풀어가다 결국 브라질 선수 2명, 체코 선수 1명이 퇴장 당하고 체코선수 3명이 크게 다치는 사건 발생.
이 경기를 가르켜 일명 '보르도의 전투'라고 부른다.
스코어는 1대1, 무승부로 끝나고 이틀 후 가진 재경기에서 어쩐 일인지 양 팀 선수는 너무나 모범적인 경기를 치렀다고.
이 날은 브라질이 2대1로 승리.
◑ 1950년 브라질대회에 출전하려던 인도는 맨발로는 경기를 할 수 없다는 FIFA 규정에 따라 불참했다.
그 후 인도는 계속 본선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 1969년 11월 3일 통행 팀과 훌리팀의 지역클럽 경기에서 상대편 선수들과의 난투극 끝에 한 선수가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부상을 입었다. 더불어 22명 선수 전원이 경고를 받아 인류 축구 역사상 가장 무질서한 경기로 기록되었다.
◑ 월드컵 축구의 상징인 쥴 리메컵에 관한 기록.
1970년 당시 멕시코대회에서 3번째 우승한 브라질에 이 컵의 영구 소유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브라질이 가져간 쥴 리메컵은 도난을 당해 종적을 알 수 없고 그 뒤 복제품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 1970년 멕시코 대회1조 멕시코와 엘살바도르 경기에서 엘살바도르의 프리킥을 멕시코 선수가 몰래 차 득점을 하다.
주심 영국의 테일러 씨는 이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말았다고.
◑ 때는 1971년 선수 이름은 팻 크루스. 브리지 연합팀과의 경기에서 단 6초 만에 당당히 자기편 골포스트에 자살골을 넣다.
◑ 1976년 12월 6일 아이티의 포트 아우 프린스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에서 아이티는 쿠바를 맞아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잠시 후 쿠바의 득점에 이어 터진 폭죽에 놀란 관중들이 총소리로 오인, 경비병의 총을 빼앗는 과정에서 오발 사고 발생.
이 사고로 소년과 소녀 각 한 명이 숨졌다. 한편 놀란 관중 한 명도 담을 넘다 목숨을 잃었으며 총을 빼앗긴 병사는 사살되는 등 총 6명의 인명피해를 내었다.
◑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 아프리카 지역예선.
카메룬의 야운데에서 진행된 카메룬과 콩고의 경기 도중 주심이 카메룬에 페널티킥을 주자 콩고의 골키퍼가 덤벼들었다.
이를 시작으로 난투가 벌어져 수습이 어려워지자 당시 카메룬 대통령은 헬리콥터로 낙하산부대를 급파해 소란을 진압하게 했다.
◑ 1978년 튀니지의 라비디 선수는 아르헨티나대회 2조 멕시코와의 경기에 후반 마지막 2분간 뛴 것이 유일한 출전이 되었다.
◑ 1978년 아르헨티나대회 첫 경기때 있었던 일. 네덜란드의 케르코프 선수가 팔을 다쳐 플라스틱 깁스를 한 채 다섯 개의 경기를 치렸다.
◑ 1978년에서 1979년 겨울 시즌 스코틀랜드컵 대회.
인버네스 시스톨과 폴커크 팀의 대전이 날씨 때문에 무려 29번이나 연기되어 이 부문 최고 영예를 안았다.
◑ 1986년 멕시코대회 준준결승에서 영국과 맞붙은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가 전반 5분에 골을 넣었다.
그러나 이 골은 헤딩이 아니라 머리 위로 올라간 손에 맞은 것. 그러나 당시 튀니지 주심은 이 골의 득점을 인정했다.
경기 후 손이 닿은 것을 시인한 마라도나의 한 마디 "그 손은 내 손이 아니라 신(神)의 손이었다니까."
◑ 1990년 카메룬이 이탈리아대회 개막전에서 2명이 퇴장당한 상태에서 아르헨티나를 1대0으로 꺾어 최대의 이변으로 기록되고 있다.
◑ 1990년 이탈리아대회에서 교체선수로만 기용되었던 이탈리아의 살바토레 스킬라치 선수가 최다득점(6골)자가 되었다.
◑ 1996년 10월 16일 과테말라에서 있었던 '98월드컵 예선전 당시의 사건.
과테말라는 코스타리카를 맞아 마테오 플로레스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갖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경기 2시간 전, 정원 4만5천명의 경기장에 6만 여명의 관객이 입장하면서 입장객 일부가 위에서 아래로 밀리는 사태가 발생.
이 날 사고로 81명이 압사하고 147명이 중상을 당했다.
◑ 1997년 7월 스코트랜드 아마추어 토너먼트에서 골키퍼 다렌 캐슬 선수가 골킥한 공이 상대편 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당시 축구장 길이 110m. 이 골은 보름전인 97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FIFA 축구규정 개정에 따라 골로 인정받다.
◑ 1998년 12월 26일 우루과이의 도시대항 축구경기. 소리아노팀의 리카르도 올리베 선수가 프레이 벤토스전에서 경기 개시 2.5초만에 골을 터뜨려 FIFA의 공식인정을 받았다.
◑ 남미의 어느 나라 프로축구 경기 도중 한 선수의 금목걸이를 분실사건 발생.
경기 후 TV중계 녹화 테잎분석 결과 상대팀 선수가 금목걸이를 훔치는 장면이 포착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