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일그러진 명품 열풍 실태를 보여준 가짜명품시계 사기사건이 있었다. 각종 명품잡지와 신문에까지 소개되었던 이 시계는 100년 동안 영국 등 유럽왕실에만 한정 판매되었다는 빈센트앤코(Vincent&Co). 중국에서 수입한 값싼 부품을 조립해 만들어서 유명 연예인과 강남 부유층을 상대로 최고 억대까지 받고 팔렸던 이 사건은 유명한 명품이라면 가격에 관계없이 사들이는 ‘상류층’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널리 알렸다. 그 후 약 한달 후 비슷한 사기 행각이 다시 적발됐다. 출시된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이탈리아 시계 신생브랜드 지오모나코(GIO MONACO)를 180년 전통의 이탈리아 명품시계로 둔갑시켜 수입가의 10배가 넘는 가격으로 팔아온 일당이 적발된 것이다. 이 역시도 사실관계 확인 이전에 명품이라고 하면 ‘명품인가보다’하고 사재기해대는 ‘상류층’의 소비형태를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그 외에도 연말연시면 늘 적발되는 고급양주 불법제조 사건 등 사람들의 ‘명품 선호’를 유인책으로 사기를 치는 행각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사기행각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사회의 소비문화에 있다. 사실 우리는 늘 명품, 브랜드, 고급, 웰빙… 이라는 이미지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다. 연예인들이 걸치고 나온 의류는 다음날이면 그 모방품이 동대문시장 등에서 날개돋힌 듯 팔리기 시작한다. 고급대형 승용차는 전체 자동차 내수시장에서 5대 중 1대 꼴로 높은 판매율을 보이고 있다. 청담동에는 아동 용품부터 드레스까지 모두 수입 명품 브랜드가 줄지어있다. 아동복 한 벌에 백만 원을 호가하고, 드레스 한 벌에 수억 원 대에 팔려나간다.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옷으로 할리우드 스타가 입었던 옷이라고 하면 홍보는 끝이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끌고 다녀야 대접받는 사회이고, 결국 이것은 그러한 지불능력을 가진 자들, 즉 부르주아적 문화로 조장되어온 것에 그 본질이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양극화에 따른 소비의 괴리=계급의 차이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에도 이제 고급화, 명품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상하이는 중국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높은 도시로, 강남의 ‘로데오거리’처럼 ‘난징로’로 대표되는 천개가 넘는 수입명품시장이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지난 19일까지 상하이에서 열린 ‘톱 마크(Top Marques)'명품 전시회에 약 1만 2000명이 방문하고 약 600억 원의 고가품이 팔렸다. 고급시계, 보석, 의류, 스포츠카, 고급빌라 등 중국의 명품시장은 연간 60%이상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중국 경제는 1978년 개방 이후 해마다 평균 9~10%대의 고성장을 하면서 1억 명이 넘는 부르주아 계급이 생겨났으며 30만 명이 넘는 백만장자가 배출되고 있다. 상하이국제명품박람회 관계자들은 중국의 명품 소비인구는 1억6000만 명(총인구의 13%)에 달하고 6년 후에는 2억5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명품 소비증가는 당연히 소득증가 때문”이라고 말한다. 세상 부자들이 늘어나고 쓸 수 있는 돈이 넘쳐나서 그렇다는 얘기다. 일본이 그간 세계명품 소비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압도적 세를 과시했다면 이제는 중국, 인도, 러시아의 명품족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쓸 돈이 넘쳐난다” 자본주의의 양극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명품 소비문화이다. 사회 한 쪽에서는 비정규직노동자로 평균 월 100만원의 임금으로 겨우 먹고 살고, 끊임없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100만 원짜리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상황이다.
이런 허영의 명품 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렇게 커질 수 있는 것에는 전략적인 홍보, 조장된 이미지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야 소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업사원도 이 만년필을 주머니에 꽂고 있으면 더 잘 팔수 있고, 중요한 사업계약은 이 만년필로 해야한다는 식의 허영에 가득찬 속설을 만들어내는 몽블랑 만년필. 그냥 옷을 입고 반지를 끼는 것이 아니라 샤넬을 입고 티파니를 끼어야 하는 것. 최고급이라고 하면서 ‘이미지’, ‘전통’, ‘품위’를 팔고 있다. 명품시장도 하나의 기업이다. 갈수록 거대화되고 있는 데에는 여느 기업과 똑같이 인수합병이 줄을 잇고 독점화는 필수이다.
현재 세계 럭셔리 시장의 초강자는 베르노 아르노 회장이 이끄는 LVMH(Louis Vuitton & Mo♥t Hennessy) 그룹이다. 이곳은 ‘루이비통’ 외에 ‘모에 헤네시’를 비롯해 ‘크리스챤 디올’, ‘셀린느’, ‘겐조’ 등 50개가 넘는 럭셔리 브랜드를 거느린 ‘럭셔리 제국’이다. 지난해 이 그룹이 올린 매출액은 16조 7000억 원에 이른다. 2004년에 비해 11% 상승했다. 순이익도 2004년에 비해 21%나 상승했다. LVMH 그룹에 도전장을 내민 곳이 있으니 필기구 브랜드인 ‘몽블랑’을 비롯한 보석 브랜드 ‘카르티에’와 ‘피아제’등 수많은 시계 브랜드를 거느린 리치몬드 그룹이다. 이 그룹의 지난해 총 매출액은 약 5조 1700억 원이었다. ‘구찌’를 비롯한 ‘입생 로랑’,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세르지오 로시’ 같은 럭셔리 브랜드도 한 우산 아래 모여 있다. 프랑스의 프랭탕 백화점 등을 소유한 PPR 그룹은 1999년 구찌를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워왔다. 럭셔리 브랜드뿐 아니라 일반 소매업 분야까지 포함된 지난해 이 그룹의 매출액은 약 21조 3192억 원이었다. 이탈리아 브랜드인 프라다가 독일계 브랜드인 질 샌더, 헬무트 랑과 뭉친 ‘프라다 그룹’도 럭셔리 시장에서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이렇게 럭셔리 브랜드끼리 짝을 짓고, 그렇게 생겨난 럭셔리 그룹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부르주아적 문화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 프랑스의 시민혁명으로 본격적인 부르주아 시대가 시작된 이후 부르주아 국가가 선언한 공식적인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이상은 부르주아의 이해, 자본주의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표방되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신분에 의해 복장과 음식이 나뉘고 생활이 분리되지는 않게 되었다. 입고 싶은 옷을 누구나 입게 되었고 이것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를 선전했다. 대량생산체제인 자본주의적 생산에 의해서 기성복이 대량생산되기만 했다면 ‘명품, 브랜드’ 등 우리가 설명하고자 하는 이미지는 생겨날 수 없다. 그것은 왜 생겨난 것일까.
신분이 없어지고 외관의 차이가 없어지자, 이론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었고 부르주아 계급은 비천한 노동자계급과 자신들이 확실하게 구별되기를 원하게 되었다. 외관상의 평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멋있고 고상하고 품위있어 보이기를 원하며 다르게 대접받기를 원한 것이다.
예전에는 노예의 수와 장원의 규모를 가지고 부와 권력을 과시했다면, 부르주아적 평등과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품이 잣대가 되고 신분이 된다.
‘명품’의 존재이유는 사회적으로 높은 계급을 사회적으로 낮은 계급, 즉 부르주아계급이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려는 노력에서 생겨난 것이다. ‘신분’이 폐지된 대신 ‘계급’을 구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100만 원짜리 귀걸이를 하고 1000만 원짜리 핸드백을 들고 수억 원대의 자동차를 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가 부르주아계급에 의해 끊이지 않고 행해진다.
또한 이것은 부르주아 계급의 자식들에게도 대물림된다. 갈수록 커지는 아동명품시장이 그것을 증명한다. 올해 퀼른에서 열린 ‘차일드 앤드 유스(Child & Youth)' 어린이용품 박람회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것은 바로 유모차였다. 외국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하고 여러 할리우드 스타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모차 가격이 약 200만원에 이르렀다. 5살짜리 아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하는 데는 약 500만원이 들었다. 잘 차려입은 아이가 부모의 생활방식, 즉 계급을 반영하기 때문에 어린이가 부모의 부의 상징처럼 되어버리면서 점점 비싸게 아이를 치장하게 된 것이다. 아이 뿐만이 아니다. 해외 유명 스타는 자신들이 소유한 개까지 명품으로 치장한다. 개목걸이 하나에 수십만 원이고, 개 옷 하나에 백여만 원, 개 집 하나에 수백만 원 등 가진 자의 애완용 개의 삶이 여느 노동자 인생보다 호화스럽다.
‘사치’와 마찬가지로 ‘유행’이 생겨난 것도 같은 이유다. 해마다, 계절마다 유행은 끊임없이 변하고 돌고 돈다. 유행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유명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색상, 스타일이 몇 달 앞서 발표되고 연예인들과 부유층들이 그걸 사입기 시작하면서 유행은 시작된다. 봄의 유행은 겨울에 발표되는 유명 패션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유행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계급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
이러한 부르주아계급의 계급구별 요구는 유행을 끊임없이 바꾸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유행의 변화 원인이지만, 그 외에도 자본주의적 대량생산이라는 생산양식도 그 요구의 원인이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대량생산인데 이러한 대량생산은 당연히 대량소비에 의해서만 지속될 수밖에 없다. 기계제 생산의 경우에는 대중이 선호하는 상품만이 공장주에게 이익이 된다. 따라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하도록 모든 유행, 재료, 색채, 배합을 계속해서 대중화시켜야 한다. 어떤 것이 오늘 특별이 선택된 사람들의 유행이라면, 그것은 내일이 되면 대중의 유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량생산을 토대로 한 제조방법의 요구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상품은 공장을 확장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공장을 종종 휴업시키거나 생산을 제한시킬 것이 틀림없다. 시장은 항상 곧 그 상품으로 가득 차 버린다. 그렇다면 빨리 다른 형태의 것을 만들어야 한다. 재빨리 유행을 만드는 것은 부르주아계급의 임무이고 그것을 모방한 것을 새로 사고 지금까지의 것을 빨리 버리는 것이 그 외 모든 대중의 임무이다. 유명 스타들과 TV, 광고로 대중에게 유행을 선전한다. 어차피 돈이 없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바뀌는 최신유행을 제대로 따라잡기 힘들다. 기껏해야 중저가 브랜드나 동대문 시장에서 모방품을 사 입고 멋을 낼 뿐이다. 모든 사람이 따라한다면 그것은 명품이 아니다. 그리하여 고급으로 부르주아계급의 욕구도 충족하고 그것을 따라하는 대중의 선호로 자본주의의 대량생산체제도 유지된다.
이런 패턴은 의복만이 아니라 그 밖의 무수한 생활필수품에도 적용된다. 홈쇼핑, CF광고, 우리의 소비를 자극하는 많은 언론 광고 매체들은 샴푸, 청소기, 냉장고 등 가정용품부터 웰빙 음식, 화장품, 가구, 그리고 핸드폰, 노트북 등 전자제품과 자동차 등 모든 것에서 고급과 명품의 이미지를 선전한다. 자본주의에서 생산되는 모든 상품에는 다 같은 이유로 명품, 고급이 있고 한 발 늦게 따라가도록 조장되는 대중의 소비가 있다.
부르주아적 문화에 소외감을 느끼는 노동자 대중
부르주아계급이 자신만을 구분하기 위해 생겨난 각종 명품 브랜드가 서민들에게는 자신도 속하고 싶은 계급에 대한 욕구를 분출하기 위한 외관으로 이용된다. 전세, 월세를 전전하고 마이너스 통장인 것을 감추면서 36개월 할부로 고급승용차 하나 장만해서 타인에게 대접받으면 행복해진다. 몇 년 만에 한 번 결심해서 비싼 옷 한 벌 장만하면 입을 때마다 행복하다. 얼마 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된장녀’도 마찬가지다. 점심은 2000원짜리 라면으로 떼워도 후식으로는 반드시 5000원짜리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거리를 활보해야 하는 것. 이런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요즘 소비시장에는 ‘매스티지’(대중Mass+명품Prestige)라는 이미지가 지배하고 있다. 스타벅스 커피처럼 일반 커피숍보다는 비싸고 더 맛있는 커피로 소비하는 대중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게 된다. 시푸드 레스토랑, 초밥뷔페 등 웰빙열풍도 이것의 일종이다. 저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고가이면서 소비자들에게 마치 명품처럼 품위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아니, 명품을 느끼고 싶은 대중의 욕구가 ‘매스티지’라는 새로운 대중소비문화를 창조했다. 자신도 남부끄럽지 않게 잘 사는 것, 즉 부르주아 계급에 편입되고 싶은 욕망의 외관은 부르주아적 문화가 계속적으로 조장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어질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따라하기 시작하면 더 비싸고 더 고급화를 선전하는 명품은 다시 나온다. 고급승용차가 많아지니 이제는 외제차란 식이다. 결국 부르주아계급과 서민들의 차이는 따라 해봤자 벌어질 뿐이다.
사고 싶어도 살 수 있어야 산다. 한 달 받는 임금으로 자식교육과 각종 공과금에 식비에 자동차 기름값 대기도 벅찬데 한 개쯤은 갖고 싶은 브랜드 상품이라도 살 수 없으면 그림의 떡이다. 소득의 차이도 크지만 갈수록 강화되는 노동강도와 늘어나는 노동시간에 여유를 갖고 싶어도 여가를 즐길 시간이 나지 않는다. 하루 일이 끝나면 술집을 전전하며 술 한잔으로 지친 몸을 달래고 불투명한 미래로 복권과 도박에 빠져들기 일쑤다.
반대로 부르주아지는 노동자계급의 피땀을 짜낸 돈으로 분에 넘치는 사치를 부린다. 노동자의 노동의 대가인 잉여가치를 자기 주머니 속에 챙겨 넣어 보석을 사고 쇼핑을 하고 화려한 위선을 떨고 있다. 생산은 노동자계급이 하고, 소비는 부르주아계급이 하는 기막힌 자본주의의 현주소이다. 부르주아계급은 노동자계급에게 끊임없이 선정적인 문화를 유포하고 화려한 외관을 강조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 관념을 쫓게 만든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부르주아적 문화에 노동자들은 뚜렷한 대안도 없이 빠져들게 되고 노동자계급만의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생산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부르주아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차이는 단순히 돈뿐만이 아니라 누리는 생활에서부터 계속적으로 커질 것이다. 문화는 독자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지배하는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반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끝장나지 않는 한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마음의 여유, 행복한 문화는 없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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