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강신욱] 1961년 미국 청소년들의 학업성취 격차 요인을 조사한 '콜맨 보고서'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학교 운동선수들이 동년배 집단에서 차지하는 사회적 지위를 분석한 것이었는데, 운동선수들은 교내의 학업 우수자나 학생활동의 리더들보다 상위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이후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수행된 일련의 연구들도 콜맨과 거의 동일한 결과를 발견했다.
필자도 1989년과 99년 같은 주제로 조사한 바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운동선수들이 동년배 집단에서 가장 낮은 지위를 점하고 있었다. 요새 말로 비호감 1위인 셈이었다. 89년은 시기적으로
서울 올림픽 직후였고, 99년은 프로스포츠가 한창 뜨고 있을 때였지만 학교 안에서의 현실은 달랐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친구들은 교내 운동선수들을 자신들과 철저히 분리된 채 운동만 하는 이른바 '운동기계'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운동부는 본래 운동을 통해 학생들의 신체적 건강과 시민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도입됐다. 학교운동부에 대한 이 같은 기대와 믿음은 선수들이 아닌 체육행정가, 학교 경영자, 교사, 코치, 학부모 등 운동부 주변의 성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훼손돼 왔다. 그러나 자정 노력을 통해 각국에서는 이러한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해결의 끝이 보이지 않는 유난히 길고 지루한 위기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운동실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엘리트체육에 종사하는 사람은 오로지 메달에만 관심 쏟고, 비록 일부이기는 하나
전국 체육대회 때 이 고을 저 고을 돈 많이 주는 대로 몰려다니는 승리 지상주의 시스템이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학교운동부 주변의 성인들이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할지 모른다.
부러움과 시기를 모두 받을 정도로 학교 스포츠가 잘 발달한 미국에서 학부모들은 흔히 학교운동부가 자신의 자녀를 마약과 섹스로부터 보호해 주고 학업 수행에 크게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학교 운동선수가 운동 때문에 체벌을 받거나 학업에 지장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학교운동부의 발전 과정이 각국의 환경과 여건에 따라 매우 다르기 때문에 특정 문제를 단편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학교 운동선수들을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운동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운동부 내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교육부가 올해의 학교체육 기본 방향 중 ^초.중등학교 운동선수들이 정상 수업을 받지 못하면 교사와 코치를 징계조치하고 ^운동부 내에서 폭력을 가한 학생의 시합 출전을 제한하고 해당 학교에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은 때늦은 감이 있으나 진일보한 행정 지침이다. 어차피 각급 학교 내부의 자율적 통제가 불가능한 이상 당분간 이와 같은 외부의 타율적인 통제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교육부나 각 시.도 교육청이 얼마나 성실하게 이 정책을 추진하고 관리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행정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용두사미가 돼선 안 된다.
차제에 너무도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 학교운동부 코치의 처우 개선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시골 초등학교 육상부 코치로 상징되는 가난한 운동부 코치들이 교육적인 신념을 잃지 않도록 정부는 행정.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 운동 잘하는 사람과 잘할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도록 만드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보상을 부여하는 것도 사회적 책임이다. 학교운동부가 교육적인 적합성을 잃지 않도록 교육부.학교.지역사회.체육계가 다 함께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우리도 이제는 동년배 집단에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운동선수를 키워 보자.
강신욱
단국대 체육대학 교수 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