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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장막에
이르게하소서 | 1-4 1 ①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②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3 ③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4 ④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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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도우심 | 5 5 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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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편, 빛과 진리를 보내어 인도하소사
요절 : 3절,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본래 43편과 42편이 한 편의 시(詩)였으리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 근거로 43편에는 표제가 없는 것과, 후렴과 같은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불안하여 하는고”(5) 하는 구절이 있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43편이 보다 진전(進展)된 계시를 말씀함으로 42편에 대한 명백한 해답(解答)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해답이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달라는데 있습니다.
42편과, 43편에는 공통된 문제제기가 있는데 그것은,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42:2),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43:3) 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해달라는 문제(問題)입니다.
그런데 “43편에서는 “빛과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3) 하고, 이에 대한 명백한 해답(解答)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빛과, 진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단원(1-4) 주의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둘째 단원(5) 내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
첫째 단원(1-4) 주의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①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1상) 합니다.
㉠ 42편에서는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42:2) 할 뿐, 어찌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는가 하는 그 이유에 대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43편에서는,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붙들려서, 송사(訟事)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을 이렇게 송사하는 “경건치 아니한 나라”는 무엇이며, 송사하는 자는 누군가?
㉡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 나를 건지소서”(1하) 하고, “간사하고 불의 한 자”에게 송사를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형제는 “경건치 아니한 나라, 간사하고 불의 한 자”라는 말씀을 통해서 즉각적으로 무엇을 연상(聯想)하시게 됩니까? 이방 나라들입니까? 아니면 사울과 그의 나라입니까?
㉢ 1차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은 악신(惡神)이 그를 번뇌케 했기 때문이요,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경건치 아니한 나라”는, 이 세상 임금이 왕 노릇하는 나라요, 성도들을 참소하는 “간사하고 불의 한 자”란 사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43편이 다윗의 경험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②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상) 합니다.
㉠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2하) 합니다. 이는 42편에서,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42:9) 한 것과 같은 부르짖음입니다.
시편은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흑암과 그늘에 앚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107:10-11) 하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가(42:2) 있단 말인가?
③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3상) 하고, “빛과 진리”를 보내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 그리하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3하) 합니다. 하나님 존전(尊前)에서 추방을 당한 원죄 하에 있는 자들의 절박한 소원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면 보내어 달라고 간구하는 “빛과 진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57편에서 그 빛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57편에는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라는 표제가 있는데,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 지라 하나님이 그 인자(仁慈)와 진리(眞理)를 보내시리로다”(57:3) 합니다.
㉡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보내실, “인자와 진리”란, “은혜(恩惠)와 진리(眞理)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본문이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3),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한다면 “빛과 진리”도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존전에서 추방을 당한 죄인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신 그리스도 외에는 달리는 없는 것입니다.
④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極樂)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4상) 합니다.
㉠ “극락의 하나님”이란, 그 이상의 기쁨이란 없는 “영광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드디어 하나님께 이르게 된 자는,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4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하는 간구입니다.
둘째 단원(5) 내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
둘째 단원은 한 절에 불과하지만 단원을 달리한 것은 여기에 복음적인 “해답과, 치료”가 있기 때문입니다.
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5상) 합니다.
인간의 낙망(落望)과 불안(不安)은 근원적으로 하나님과의 분리에서 온 것입니다.
㉠ 왜냐하면 인간이란 짐승과 달라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 3:11)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갈망이 채워지기 전에는 만족함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은 권세는 왕이요, 부귀와 영화는 극에 달했고, 수많은 처첩을 두어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다”(전 2:10) 하고 말하면서도,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 하고 말합니다.
㉡ 그래서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5중)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라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사 40:31) 한, 앙망(仰望)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사 45:22)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란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신 시대였습니다. 그것은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사 59:2)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리셨던 휘장은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하고 선언하셨을 때에 제거가 되었고,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라”(고후 4:6) 하고 말씀합니다.
㉢ 그리하여 “경건치 아니한 나라, 불의 한 자”(1)에게 송사를 당하는 것으로 시작이 된 43편은,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5하) 하고 마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부르짖고 탄원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탄원이 결론에 이르러서는 찬양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여지는가? 대답은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 24:44) 하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이요, 해답은 “빛과 진리를 보내어 인도하소사”에 있는 것입니다.
적용 : 형제도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게 되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면, 낙망과 불안이 변하여 오히려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묵상
㉠ 42편과 43편이 공통적으로 제기한 문제가 무엇인가?
㉡ 43편이 말씀하는 진전된 계시에 대해서,
㉢ 아담 안에 있는 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와 그 해답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