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산천 배터리고장(2/6), KTX-산천 광명역인근 탈선(2/11), KTX 오작동(2/25), KTX 제동장치 이상신호(5/10)··· 올해 들어서만 36차례의 고장을 일으킨 철도공사의 주요 사고일지다. 철도공사는 이처럼 철도사고가 잇따르자 지난 4월 KTX 안전성을 높이겠다며 대책을 발표하고, 그 일환으로 적격심사기준을 개정하면서 기술자 보유기준을 대폭 상향 조정했다. 기술력과 경험을 갖춘 유지보수 업체를 선정해 고장사고를 막아보겠다는 취지였다. 이 기준은 오는 11월 1일부터 본격 적용된다. 그러나 전기공사 시장상황이나 기술자 수급현황, 양성체계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보유기준만을 높이면서 철도공사의 조치는 전기공사업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
▲영세한 전기공사업체 경영난 가중 한국철도공사의 전기공사(신호공사 포함·지난해 기준) 규모는 총 294억원(106건), 이 중 3억원 미만 소규모 공사는 전체의 약 80%인 84건, 금액으로는 51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전기공사협회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전기공사업체는 1만3134개에 달한다. 국내 전기공사 시장은 노무비의 비중이 절대적이고, 전기공사 규모도 1억원 미만의 소규모 공사가 대부분이라 업체 당 평균 실적 역시 약 15억원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3억원 미만의 철도공사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들여 고급·특급 철도신호기술자를 추가 보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실제 업계에 따르면 기술사 자격을 보유하고 업체에 상주한 특급 철도신호기술자의 연봉은 8000만원 수준이며, 학·경력자 출신의 특급기술자 연봉도 5000만원 대다. 따라서 바뀐 기술자 보유기준에 따라 앞으로 낙찰 이전부터 초급과 중급, 고급, 특급기술자를 각각 1명씩 보유해야 하는 3억원 미만 자동신호장치, 연동장치, 종합신호제어공사 입찰 참가업체의 경우 2억원 정도의 인건비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신호장치나 연동장치, 종합신호제어 모두 고급 1명과 특급 1명을 낙찰 이전부터 보유토록 했는데, 이럴 경우 중소 전기공사업체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면서 “낙찰 여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런 부담을 안고 고급, 특급기술자를 고용해 철도공사 입찰에 참가할 업체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기술자 보유기준 상향, 또 다른 진입장벽 철도공사의 이번 조치가 철도 전기공사시장의 진입장벽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즉 철도공사가 일정 규모 공사에 대해 시공실적으로 입찰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자 보유기준까지 확대할 경우 철도 전기공사 시장의 문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기공사협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등록된 전기공사업체 1만3134개 중 철도공사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는 전체의 약 1.5% 수준인 평균 200여개다. 추정 공사금액과 상관없이 올해 5월 1일부터 7월 18일까지 발주된 21개 신호공사 입찰현황을 봐도 투찰업체가 100개를 넘은 공사는 경원선 소요건널목 외 신호설비보강공사 등 5건에 불과했다. 철도신호기술자의 수급이 불균형한 상황에서 별도의 기술자 양성이나 공급계획도 없이 무리하게 보유기준만 높인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국철도공사에 따르면 국내의 철도신호기술자는 총 2734명(2011년 7월 기준)이다. 특급이 588명, 고급이 364명, 중급이 492명이며, 나머지는 초급기술자다. 따라서 강화된 기술자 보유기준에 따라 낙찰 전 초급 1명, 중급 1명, 고급 1명, 특급 1명을 모두 보유해야 할 경우 현재의 기술자 현황을 감안하면 앞으로 입찰에 참가할 수 있는 전기공사 업체는 국내에 있는 모든 고급 철도기술자(364명)가 전기공사업체에 고용된다고 가정해도 최대 364개를 넘지못한다다.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철도신호기술자의 연봉 수준이 높은데, 보유해야 할 기술자까지 많아지면 기술자 몸값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이래저래 중소 전기공사업체만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낙찰 이전 기술인력 보유 규정 폐지해야 전기공사업계는 낙찰 이전에 많은 인건비를 무릅쓰고, 초급·중급·고급·특급기술자를 모두 보유하는 것은 부담이 큰 만큼 모든 공사의 선보유 기술인력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단, 필요한 기술자는 낙찰 받은 이후 계약체결 전까지 보유토록 하고, 교육이수자 가점제를 도입해 기술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자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전기공사협회는 또 이런 업계 의견을 수용할 수 없다면 ▲3억원 미만 공사라도 기술 인력을 낙찰 이후 계약체결 전까지 보유하고, 3억원 이상 공사는 ‘선 보유 기술자’ 요건을 완화해달라는 의견과 ▲현행 기준은 유지하면서 ‘후보유 기술자’를 상향 조정하거나 최근 3년 이내에 철도신호공사 시공현장 중 사고가 발생했다면 감점제를 도입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철도공사는 최근의 탈선사고는 기술자 실수와 감독시스템 오작동 등 복합적인 요인에 따라 나타나 1단계로 기술인력 보유조건을 상향 조정했으며, 제도 시행 이후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보완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