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바쁜 일정을 뒷받침하느라 성불 보살과 우리는 첫날 강당에서 간신히 사진 한 장 찍고 마정수기도 못 받았고 마지막 날에야 우리 절에서 받았기 때문에 내가 마정수기를 받는 사진은 없다. 그러나 마정수기를 받고 있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따뜻한 기운이 머리에서 온몸에 퍼지는 환희로운 느낌을 받으며 마음이 평온해졌다.
아울러 남편과 아들도 마정수기를 받게 되어 우리 집은 덕분에 모두 극락가는 수기를 받게 되는 가피를 입었다. 그 때 마정수기를 받은 남편과 아들의 마정수기 사진은 지금도 우리 집 벽에 전시되어 있으며, 성불 보살과 함께 찍은 사진은 더 크게 뽑아 붙여놓고 있다.
어떤 스님이 지필묵을 가지고 오셔서 휘호를 부탁하였다. 스님이 나에게 그동안 너무 고맙다고 하며 글을 써주시겠다고 시작하였는데 모두 한꺼번에 나서서 좀 혼란스러워졌다. 신도회장과 청년회장에게 글을 써 주시던 스님이 모두에게 써주시기 힘들다고 생각하셨는지 글 쓰시는 일을 중단하시고 가지고 온 관세음보살 그림에 이름만 써서 나누어 주셨다. 당시 글을 써 받은 청년회장은 행사를 적극 돕지 않았는데 먼 훗날 스님께 찾아와서 잘못했다고 참회한 뒤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스님은 특별히 몇 사람에게만 글을 써 주시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관정 스님께서 청년회장에게 달마대사를 그려 주셨는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연꽃을 그려주시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나와 성불 보살에게는 연꽃 7송이를 그리고 그 위에 ‘서방 정토에 태어나길 바랍니다’라고 글을 써주셨다. 바로 극락을 가겠다는 발원을 우리에게 꺼 주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꼭 바라는 것을 짚어서 써주셨기 때문에 너무 좋아했고, 지금도 우리 방에 소중하게 걸어놓고 있다.
다시 꿈 이야기로 돌아간다. 꿈에서는 스님들이 봉투를 나에게 주었다. 그런데 꿈은 거꾸로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행사에 참여하신 스님들 마다 모두 내가 드려야 했는데, 봉투에 교통비로 5만원, 멀면 10만원, 큰스님들에게는 20만원을 넣어 50명이 넘는 스님들에게 모두 드렸다. 그리고 우리 스님이 일체 남기지 말고 남은 돈은 다 관정 대법사님께 드리라고 해서 헤아려보니 270만원이 남아 모두 서류봉투에 넣어 270만원을 드렸다. 참석하신 스님들이 너무 많아 스님들 보시로 많이 나갔기 때문에 관정 대법사님에게는 상대적으로 그렇게 많이 드리진 못했다. 그렇지만 관정 법사님은 매우 흡족해 하시면서 고맙다고 하셨다.
3) ‘서방 정토에 태어나길 바랍니다’
나는 당시 총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늘 대법사님을 가까이 모셔야 했다. 우선 절 1층 방에 모든 이부자리를 새것으로 사서 최대한 편하게 지내시도록 준비를 하였다.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데도 관정 대법사님은 내가 내려가면 함께 이야기하시길 좋아하셨다. 짧은 기간 모셨지만 2가지 잊지 못할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⓵ 마정 수기는 하루 종일 이어졌다. 대단하신 것은 한 번도 않지 않으시고 한 사람마다 3분씩 꼼꼼하게 하는데 공양도 안 하시고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하신다. 그것도 3일간 쉬지 않고 계속하셨는데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으셨다. 우리처럼 젊은 사람도 그렇게 못하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하루 종일 한 번도 화장실을 안 가신 것이었다.
② 당시 대법사님 일행은 공양주 보살을 데리고 왔기 때문에 우리가 공양 준비를 하지 않고 필요한 재료만 사다 드렸다. 우리는 특별하게 참기름을 짜서 한 병을 드렸다. 그런데 오후에 기름이 다 떨어졌다고 해서 또 드렸다.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3일 동안 참기름을 4병이나 마련해 드렸다. 음식에 조금씩 넣어 맛을 내는 참기름인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참기름이 들어가는지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지막 날 공양시간에 1층에 내려갔더니 마침 공양 중이셨는데, 모두 잡채를 잡수시고 계시다가 나에게도 한 그릇 권했다. 나는 무심코 받아서 한 입 넣었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혼이 났다. 잡채를 기름에서 건져 먹는 것처럼 완전히 기름범벅이었다. 그때야 왜 참기름이 그렇게 많이 들어갔는지 이해가 갔다. 그러나 다행히 대법사님은 ‘이게 무슨 기름인데 이렇게 맛이 있는가! 너무 맛있다!’고 하신다고 해서 마음이 기뻤다.
관정 대법사님과 인연을 가진 뒤 어느덧 1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평생 염불을 하신 종국 스님을 가까이 모시게 되었다. 행사가 끝나고 우리 절 스님이 종국 스님께 사진과 꽃을 올리고 오라고 해서 갔다가 만나지 못했지만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도 모시고 있다. 종국 스님은 지금 우리 집 자리에 보승사를 차리도록 준비해 주셨고, 내가 보승사를 영도 스님에게 넘기고 따로 조용한 곳에서 수행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멀리 산속까지 가셔도 물길을 찾아 주시고 터를 잡아 주셨다. 그리고 그 터에서 나는 샘물은 그야말로 단 이슬처럼 맑고 단 물이었다. 어느 날 종국 스님이 말씀하셨다.
“이제는 공부할 때가 되었으니 공부하는 이름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니 명심화에서 대원화로 바꾸도록 하여라.”
그리고 설명하셨다.
“말세 중생에게 선수행은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이룰 수 있는 염불수행을 해야한다. 바로 염불을 해서 극락에 가야 한다. 극락을 가기 위해 정토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밑천은 바로 믿음 . 바람 . 염불이다. 염불을 시작하면 극락에 꽃이 맺기 시작하는데 그 것이 바로 극락을 가겠다는 큰 바램의 꽃, 바로 대원화이다.”
그러니까 명심이 선수행을 하는 용어라면 대원이라는 바로 극락을 가는 큰 원을 세우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니 나의 큰 바람을 관정 대법사님이 미리 알고 손수 붓을 들어 써주셨다.
‘서방 정토에 태어나길 바랍니다.’
당시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저 대법사가 써주셨으니 귀중하다고 생각하여 표구를 한 뒤 우리 집 벽에 걸어놓았다. 10년이 넘게 걸려있는 이 휘호의 참뜻을 모르고 지냈는데, 이제 염불수행을 시작해야 하는 출발점에 서서보니, 이 글귀야말로 바로 내가 가야 할 길을 아주 뚜렷하게 제시해 준 부처님 말씀이었던 것이다.
내가 대원화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하면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일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옛날부터 알고 지내는 신도들이 “명심화‘라고 부르면 ”어제 일은 그만하고 공부해야하니 대원화라고 불러!“라고 하면 좀 어려워하고 잘부르려 하지 않지만 스님들이 당당하게 ”대원화“라고 불러주면 한편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한편으로는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결심도 더욱 굳어진다.
나는 이미 도시를 떠나 수행하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집을 짓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행을 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관정 대법사께서 가르쳐 주신 정토선이 나에게 가장 가까운 수행법이 될 것이다. 마침 이 글을 부탁하러 내려오신 서교수님께서 관정 대법사님이 직접 녹음한 염불테이프를 복사해 주었다. 이제 관정 대선사께서 남겨주신 「정토선 정의」에 나온 수행법에 따라 열심히 하면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난다는 확신을 가지고 새로운 시작으로 들어갈 것이다.
새 집이 완공되어 산속으로 이사를 했다. 앞으로 오늘이 있기까지 나를 이끌어주신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단 일주일이라도 스님들을 시봉한 뒤 삶의 마지막 장은 모든 힘을 다해 생사를 벗어나 극락으로 가는 염불수행에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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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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