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도는 남해의 섬들 중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 할 정도로 해안선이 멋진 곳이다. 특히 자연을 다치지 않 게 개발이 되고 있는 곳으로 언제 가더라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숨은 경승지들이 많아 여행지로 아주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남해도는 삼천포와 창선도를 잇는 다리(창선 삼천포대교)가 완공된 후 여행이 훨씬 편리해졌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히기도 한 창선 삼천포대교는 3개의 섬을 연결한 5개의 다리로, 사방 풍경이 어느 이국에 온 듯 환상적이다.
조선 4대 명필 중 한 사람인 자암(自庵) 김구(金絿)는 남해섬을 일러 ‘하늘 끝, 땅 끝, 한 점 신선의 섬(一点仙島)’이라 했다. 가는 길이 좀 멀어 그렇지 일단 발을 딛게 되면 그만한 보상을 내려준다. 남해도의 부속섬인 창선도에서 1024번 지방도로를 탄다. 이 길은 창선도의 서부 바닷가를 우회하는 해안길로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 재미가 그만이다. 그 해안길에서 만난 단항 왕후박나무(천연기념물)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해안마을 둔덕에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왕후박나무는 훤칠한 키에 사방으로 가지를 뻗은 자태가 사뭇 단아해 뵌다. 오랜 세월 바닷바람과 동고동락하며 마을의 수문장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곳에서 길은 줄곧 바다를 바라보며 뻗어 있는데 남해의 비경을 고스란히 보여주니 운전이 즐겁다. 대벽-율도-서대-광천-사포-신흥(해바리마을)을 거쳐 지족에서 창선교와 연결된다. 창선도와 남해군 삼동면을 이어주는 창선교 위에서는 지족해협 일대의 수려한 풍광이 한눈에 잡힌다. 이곳 지족 앞바다는 원시어업의 한 형태인 죽방렴이 남아 있어 눈길을 붙잡는다. 죽방렴은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개펄에 박아 주렴처럼 엮어 만든 어업도구로, 물의 조류가 흘러오는 쪽으로 V자 형으로 벌려 고기를 잡는 방법이다. 물이 빠지면 힘이 빠진 물고기들은 말뚝 사이로 빠져나가지 않고, V자로 좁아지는 사이로 떠밀리듯 들어가 원통형 대나무발에 갇히게 된다. 어부들은 하루 두 번 물이 빠졌을 때, 원형의 발통에서 멸치, 놀래미 같은 생선들을 건져낸다.
창선교를 건너 삼동면 소재지인 지족리에서 남쪽 바닷길(77번 국도)을 탄다. 이 길 역시 남해의 아름다움이 물씬 느껴진다. 전도-화천-동천을 지나 물건리에 닿으면 남해안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풍림으로 꼽힌다는 물건방조어부림(천연기념물 제150호)을 만나게 된다. 바다를 병풍처럼 막아선 방조어부림은 보기 드문 ‘나무숲의 보고’이다. 숲 안에는 말채나무, 푸조나무, 상수리나무, 참느릅나무, 보리수나무, 동백나무, 윤노리나무, 광대싸리나무, 가마귀밥여름나무, 누리장나무, 화살나무, 댕댕이덩굴, 개머루 등등 이름도 생소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그 자체가 자연 학습장이다. 숲과 어우러진 몽돌해안은 산책 코스로 아주 좋다.
파도가 밀려왔다 내려갈 때마다 귓속을 간질이는 해조음은 먼 여행의 피로를 싹 잊게 해준다. 방조림 앞 물건항은 멸치 주산지로 이름이 높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마주 보고 서 있는 항구는 고요하고 한적하다. 마을 어부들은 멸치를 잡아 손질해 생산자 직거래로 판매한다. 이따금 외지 번호판을 단 자동차들이 와서 멸치 박스를 싣는 모습은 물건항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방조림 뒤 길 건너편 산자락에는 이색적인 집들이 그림처럼 앉아 있는데, 이름 하여 ‘독일마을’. 마을 입구에 독일 국기와 한국 국기를 함께 걸어놓은 모습이 눈길을 끈다. 1960년대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 갔던 분들이 돌아와 2001년부터 정착해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에 들어선 주택들은 외관(삼각형 지붕, 하얀 벽과 적색 벽돌 등)이며 건축법이 순 독일식으로 지어졌다. 마을의 몇몇 집은 여행객을 위해 집을 빌려주기도 하는데 비용은 일반 펜션과 비슷하다. 마을길에서 내려다보면 물건마을의 방조어부림과 그 앞으로 자란거리는 바다, 방파제, 등대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건리에서 은점-대지포-항도-초전-미조항까지 이어지는 ‘물미해안도로’의 풍광 역시 지극히 아름답다. 바다를 바라보며 옹기종기 들어선 갯마을과 중간 중간에서 만나는 이색 경치는 여행길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우리나라 3대 미항의 하나로 꼽히는 미조항에 들어선다. 미조항은 특히 해질 무렵의 낙조가 일품이거니와 물살에 흔들리는 어선들과 끼룩거리는 갈매기의 날갯짓, 선창에서 멸치를 손질하는 어부들의 모습에서 포구 특유의 질퍽함을 느낄 수 있다. 미조항에서 9번 지방도를 따라 10분쯤 가면 송정해수욕장이 나온다. 철 지난 바닷가는 조용하다. 맑디맑은 바닷물과 부드러운 백사장, 그리고 솔숲이 어우러져 그윽한 정취를 풍긴다. 또한 송정해수욕장에서 5분 거리에는 운치 가득한 상주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금산이 호위하듯 감싸고 있는 상주해수욕장은 아름드리 해송이 긴 해안선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오랜 세월 조개껍질이 잘게 부서져 만들어진 곱디고운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상주해수욕장 뒤 금산(錦山, 해발 681m)은 남해섬이 자랑하는 명산이다. 섬과 바다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으며, 산꼭대기에는 우리나라 3대 기도 도량인 보리암이 있다. 또한 이 산이 간직한 38경은 등산객들의 넋을 빼앗는다. 망대, 상사암, 화엄봉, 장군암, 사자암, 향로봉, 일월봉, 버선바위, 문장암(명필암), 사선대, 좌선대, 제석봉, 흔들바위, 쌍홍문, 음성굴 따위의 기기묘묘한 돌덩어리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정상(망대)에서 바라보는 다도해는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 하고 산허리를 휘감는 아침 운무는 신비스럽기조차 하다. 망대에서 맞는 일출은 또 어떤가. 금산 38경 중 백미로 꼽힌다. 산 중턱의 보리암까지는 차량이 올라갈 수 있어 정상까지 20분만 걸으면 된다. 산행에 자신이 있다면 상주해수욕장 뒤쪽 매표소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를 타면 된다. 산을 오르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저 아래로 상주해수욕장과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이 또렷하게 바라뵌다.
정상까지 1시간20분, 왕복 5km에 3시간 정도 걸린다. 또 다른 길은 이동면 복곡 탐방안내소에서 보리암 셔틀버스(왕복 2,000원)를 타고 제2주차장에서 내려 걸어올라가는 방법이다. 여기서 보리암까지는 약간 오르막길로 15분 정도(800m) 걸린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금산탐방지원센터(055-863-3524), 복곡 탐방지원센터(055-863-3525).
보리암에서 내려와 두 갈래 길에서 7번 지방도를 따라 벽련-두모-소량-대량마을을 차례로 돌아본다. 이 중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櫓島, 일명 삿갓섬)를 앞에 둔 두모(드므개)마을은 보기 드물게 4성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마을 물길을 사이에 두고 박씨-김씨, 김씨-정씨 81가구가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다. 두모리의 본래 지명은 드므개. 포구의 모습이 마치 궁궐 처마 밑에 물을 담아 뒀던 큰 항아리인 ‘드므’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만중은 이곳, 앵강만의 노도에서 주옥 같은 한글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등을 남겼다. 노도에는 김만중의 유허비와 최근 복원된 초가, 잠시 시신을 묻었던 허묘 등이 남아 있다. 16가구, 43명의 주민이 사는 노도로 가려면 벽련마을 포구에서 마을주민의 배를 빌려 타야 한다. 10분 소요. 배편 문의: 017-557-3175
다시 77번 국도를 타고 쪽빛 앵강만을 바라보며 이동면(남해읍 방면) 쪽으로 올라간다. 마치 나비가 두 날개를 펼친 모양의 앵강만은 남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로 꼽힌다. 늦가을날의 앵강만은 너무도 고요하다. 활처럼 휘어진 해안길을 천천히 달리면서 바라보는 쪽빛 바다의 황홀함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거리다. 어디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창밖 경치를 감상해도 좋으리라. 그렇게 여행길의 여유를 한껏 느낀 다음, 조금 더 올라가 신호등이 있는 삼거리에서 1024번 지방도(다랭이마을 방면)를 타고 조금 가다보면 용문사를 알리는 입간판을 보게 된다. 호구산(해발 550m)이 에두른 용문사는 그 절경이 보리암 못지않다. 남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절집으로, 경내에 서면 푸른 바다가 손에 잡힐 듯하고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산숲과 계곡의 맑은 물이 청정하기 그지없다. 절 뒤편에는 푸른 차밭이 펼쳐져 있는데 도량의 깊은 멋을 한층 살려준다.
남해섬 북쪽을 연결하는 해안길은 두곡을 지나 석교삼거리에서 남면 가천 다랭이마을로 이어진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다랭이마을(행정구역상 이름은 가천마을)은 설흘산(해발 481m)이 뻗어 내려와 바닷가에 멈춘 곳으로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척박한 산비탈에 돌을 쌓아 만든 다락논이 굽이굽이 층계를 이루고 있는데 속도경쟁의 시대에 느림의 미학이 어떤 것인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다. ‘다랭이’는 비탈진 곳에 층층이 만든 계단식 논을 뜻하는 다랑이의 사투리. 급경사로 이뤄진 다락논(천수답)은 층수로 따지자면 100여 층에 달할 정도로 가파르고 높다. 3㎡ 남짓한 아주 작은 삿갓배미부터 990㎡에 이르는 큰 배미까지 모양도 가지가지다.
다랭이마을은 농촌진흥청이 지정한 농촌 전통 테마마을이기도 하다. 마을 앞바다는 천혜의 어장으로 미역과 톳, 참전복, 참소라 등등 해산물이 지천이다. 바닷가 마을이지만 주민들은 마늘과 쌀농사가 주업이다. 몇 년 전부터는 연중 찾아오는 여행객들을 상대로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대부분의 집들이 민박을 해서 살림에 보탠다. 마을 한쪽에는 남근과 임산부를 빼닮았다는 암수바위 한 쌍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다. 해서 남성의 성기를 닮은 수바위를 수미륵, 그 옆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암바위를 암미륵이라 부르며 신성시하고 있다.
마을에는 이밖에 음력 시월 보름날 한지에 밥을 싸서 제를 지낸다는 밥무덤과 거북이 모양의 지석묘도 남아 있다. 한편, 다랭이마을에서는 연중 다양한 어촌 및 농촌체험을 즐길 수 있다. 계절별로 소로 논 갈기, 옥수수 따기, 바다래프팅, 손그물낚시, 뗏목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체험 문의: 011-862-6333. 다랭이마을 홈페이지(http://darangyi.go2vil.org) 참조. 마을을 에워싼 설흘산에 올라 짙푸른 남해의 비경을 즐기는 것도 좋다. 마을에서 산길을 1시간쯤 오르면 정상. 맑은 날에는 대마도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시야가 넓다. 또한 설흘산 정상의 봉수대에서 만나는 해돋이는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다랭이마을에서 사촌해수욕장을 거쳐 힐튼 남해리조트와 임진성, 남해스포츠파크를 지나면 남해에서 가장 높은 망운산(해발 786m)이 발길을 붙잡는다. 정상에 오르면 동서남북으로 절경이 펼쳐지는데 지리산 천왕봉이며 광양의 백운산이 다가서고 바다 쪽으로는 광양이며 여수항을 비롯해 사천이며 고성의 섬들까지 두 눈에 들어온다. 산행 기점은 여러 군데지만 남해읍 공설운동장 인근에서 시작하는 코스와 서상면 예계마을 코스, 고현면 대곡마을 화방사(花芳寺) 코스 등이 대표적이다. 화방사는 남해 3대 사찰에 드는 절집으로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왕복 3시간 남짓 걸린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대전-통영 고속도로 진주 나들목-남해고속도로(사천 방면)-사천나들목-3번 국도(삼천포 방면)-삼천포-창선대교-1024번 지방도-단항 왕후박나무-광천-창선교(지족 죽방렴)-77번 해안도로-독일마을-물건리(방조어부림)-미조항-송정해수욕장-상주해수욕장-금평 지나 1024번 지방도-가천다랭이마을-사촌해수욕장-임진성-남해스포츠파크-망운산 순으로 돌아본다.대전 통영 고속국도를 타고 진주 나들목으로 나와 남해고속국도 진교 나들목에서 1002번 지방도를 타고 남해대교를 건넌다. 19번 국도를 타고 남해읍을 통과, 1024번 지방도를 타고 남면 쪽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남해대교에서 남해읍을 지나 국도 19번을 따라 미조 방향으로 약 40분 정도 가면 보리암 입구다. 창선ㆍ삼천포대교를 이용할 경우 국도 3번을 따라 미조에서 다시 19번 국도로 바꿔 타고 상주해수욕장을 지나면 보리암 입구에 도착한다. 서울, 부산, 마산, 창원, 진주, 사천, 순천, 광양 등지에서 남해행 고속버스와 직행버스가 다닌다. 남해읍에서 상주해수욕장을 경유, 미조로 가는 완행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있다.
부산항, 통영항, 사천항, 여수항에서 남해 미조항으로 가는 여객선과 쾌속선이 운항한다. 남해읍 공용터미널(864-7101)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금산 입구 혹은 복곡 입구에서 내리면 보리암으로 갈 수 있고, 대곡행 버스를 타면 망운산(화방사)으로 갈 수 있다. 1시간 간격 운행. 남해읍 남해우체국 앞에서 보리암까지 가는 신도용 버스 운행(무료, 35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