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약물도 아니고 술을 택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나요?”
“[앞으로 살게 될 생에서] 술이 구하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물질이 몸의 반응을 가장 잘 이끌어내기 때문이기도 해요. 많은 경우는 그저 술이 가장 익숙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알기로 인간은 원래 술을 받아들이게끔 만들어진 체질이 아니라고 하던데요. 이에 대해서는 길잡이 영혼은 뭐라고 할까요?”
“내 길잡이 영혼도 전적으로 동감한대요. 발효된 과일이 땅에 떨어진 경우를 빼고는 말이지요. 동물들이 그런 과일을 먹는 걸 쉽게 볼 수 있을 거예요. 알코올은 뇌세포를 죽이지요.”
알쏭달쏭한 대답이었다. 만일 모든 것을 아는 신이라면 인간이 결국 포도나 다른 열매를 이용해 술을 만들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나는 인간의 몸이 애초에 술을 마시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왜 술이라는 것이 지구 위에 생겼는지 궁금했다.
“길잡이 영혼이 말하는군요. 포도와 포도즙을 건강을 위해 일부러 발효시키게 된 것은 아니라고요. 또 와인도 처음에는 취하게 하는 물질로 쓰인 것이 아니라고 해요. 또 다른 것은 유혹인데요. 그건 지구라는 학교가 우리에게 다루어보라고 주는 기회 가운데 하나지요.”
“스테이시, 길잡이 영혼이 말하길, 어떤 영혼은 이전 생에서 다른 이의 몸을 학대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자기 몸을 학대하려고 알코올 중독을 계획한다고 했는데요. 설명을 좀더 듣고 싶어요. 카르마는 배움의 통로이지 처벌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요.”
스테이시의 길잡이 영혼은 영혼들이 한때 자신이 타인을 대하던 그대로 자신도 대접받아 보는 삶을 계획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길, 모든 영혼은 육체가 죽은 뒤 자기를 용서하는 일로 상담을 받는다고 했다. 어떤 영혼들은 그런 식의 삶을 계획하지 않고도 자기를 용서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렇지 않은 영혼들도 있다. 어떤 영혼들은 삶과 삶 사이에서 배운 것들 다음 생에서 다른 이들을 돕는 데 활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영혼들은 알코올 중독자를 상담하는 상담가의 삶을 계획하기도 한다. 한편 이후의 삶에서 더 좋은 상담가가 되기 위해 일부러 알코올 중독을 계획하는 영혼도 있다.
“다른 사람의 몸을 학대한 자신을 용서하는 영혼과 그렇지 못하는 영혼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나요?” 내가 물었다.
스테이시의 말이 갑자기 느려졌다. 그녀는 이제 길잡이 영혼에 채널링하여 영혼이 직접 말하게 하고 있었다.
“분별력, 양심의 가책, 진화.” 그가 대답했다. 그는 학대했던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혼들은 분별력을 잃어버린다고(따라서 자기 처벌을 결심하게 된다고)설명했다. 그리고 자기를 용서하는 것은 조건 없는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진화의 길에서 커다랗게 한 발짝을 내딛는 것이라고 했다.
“지구는 주로 여러분이 두려움을 버리고 조건 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도록 돕는 곳입니다.”
그가 덧붙였다.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팻이 이전 생에서 해결하지 못한 두려움을 치유하고자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스테이시, 제가 이해하기로, 영혼은 이번 생의 인격체들이 갖고 있던 에너지를 다음 생으로 가져가 그 에너지들이 치유되도록 한다는데요. 그것이 정확한 설명인가요?”
“길잡이 영혼이 그렇다고 말하네요.”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비물질계의 더 높은 진동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텐데, 그 점에 대해 길잡이 영혼은 뭐라고 하나요?”
“그것은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그것이 모든 영혼이 늘 그런 차원에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러면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영혼은 비물질계에서 더 낮은 진동으로 존재하나요?”
“내 길잡이 영혼이 말하길, 그런 말은 아주 조심해서 해야 한다고 하는군요. ‘더 낮은 진동’이란 사실 정확한 말이 아니에요. ‘더 높은 차원의’ 길잡이 영혼으로 활동하는 영혼들 – 더는 육체의 옷을 입을 필요가 없는 영혼들 – 은 분명 높은 진동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는 그보다 덜 가치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아요. 길잡이 영혼들은 이것이 자칫 계급 체계인 듯 잘못 해석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것은 사실이 아니니까요.”
- 중략 –
팻은 술이 그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했다. 재치가 넘치고 춤도 잘 추며 여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남자로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된 사람은 아이, 바로 하느님의 아이였다.술은 말 그대로 그를 굴복시켰다. 그는 생애 가장 어두운 순간, 평탄한 삶을 살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절망감 속에서 영적인 자신을 만났다. 시간이 가며 절망감은 열정으로 바뀌었다. 그 열정이 이제는 그로 하여금 하느님을 껴안게 하고, 또 그 결과 자기 자신을 껴안게 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날 때 – 다시 말해 의식의 일부를 몸에 두고 지각을 물질계에 집중할 때 –우리가 서로와 분리되어 있으며 만유의 주재와 분리되어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낸다. 어떤 생에서는 이러한 착각이 다른 생에서보다 더욱 사실인 것처럼 느껴진다. 팻은 이전 여러 번의 생애에서 그 착각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과의 그리고 자신의 신성한 본성과의 연결을 잃어버렸다.
팻이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하느님을 향해 부르짖던 날 밤의 그 처절한 외로움과 손에 만져질 듯 확연하던 고립감은 정확히 그가 추구했던 경험이었다. 팻은 그 고통의 심연에서 영혼에 다시 불을 붙여줄 불꽃을 찾고 싶었다. 스테이시와 길잡이 영혼이 지적했듯이, “영적인 연결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은 그런 연결이 완전히 끊어졌을 때” 생긴다.
팻에게서 볼 수 있듯이 물질계에서의 경험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사람들이 나약함이나 퇴행이라고 낙인찍은 것이 실제로는 미리 계획한 큰 시련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는 영혼의 모습일 수 있다. 사회의 비난은 그 계획을 실천하는 이들의 위대함을 가려서 보지 못하게 하지만,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휠씬 큰 영혼들이다. 그들이 맡기로 한 역할에 알코올 중독이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그 역할을 맡는 배우들은 용기의 화신이다.
이 세상에서는 착각이 켜켜이 쌓여 진실과는 정반대되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겉으로 보면, 세상이 팻에게서 두려움을 본 것과 똑같이 팻 역시 자기 안에서 두려움을 보았다. 사회적 상황에 대한 두려움, 여자에 대한 두려움, 직장에서 능력 이상으로 승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혼자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스스로 삶을 헤쳐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은 지난 삶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이생으로 넘어온 두려움이 밖으로 나타난 모습이다. 이처럼 두텁게 쌓인 착각의 벽이 그의 진정한 모습을 가려버린다.
그는 몸을 입고 사는 동안 두려워하지 않은 법을 배우기를 원한 용감한 영혼이고, 잠재 의식에 쌓인 더 깊은 두려움을 기억해 내고자 두려움을 가진 아버지를 택한 씩씩한 영혼이며, 그런 아버지를 어린 시절에 잃음으로써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되고 그 경험을 통해 결국에는 두려움을 극복하기로 계획한 대담한 영혼이다. 오직 용기 있는 영혼만이 두려움을 계획한다.
두려움은 진정한 자기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려움을 피할 것이 아니라 추구해야 한다. 두려움을 살아내야만 우리가 누구인지를 기억해 내기 때문이다. 팻은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매여 있었다. 그러나 철저히 혼자라고 절감하고 나서야 자기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버려진 것 같았던 그 순간 하느님과의 연결을 발견했고, 굴복하는 순간 그 안에서 주권을 발견했다.
팻은 사랑이다. 팻은 전생 계획 세션에서 다른 영혼들에게 그토록 자유롭게 또 기꺼이 표현하던 바로 그 사랑이다. 사랑인 팻은 알코올 중독이라는 시련을 비단 자신의 성장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도 계획했다. 이렇게 볼 때 팻의 알코올 중독은 그의 삶에 함께 하기로 동의한 사람들을 섬기는 그만의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캐시는 그를 통해 자기 정체성과 타인과의 경계, 균형에 대해 배웠다. 균형을 이해하는 데 부모의 알코올 중독으로 생긴 불균형을 경험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도나는 팻과의 관계 덕분에 내면에서 자기 사랑을 찾는다는, 반대를 통해 배우는 삶을 계획할 수 있었다. 칼 융이 말했듯 “밖을 보는 자는 꿈꾸고, 안을 보는 자는 깨어난다.” 도나는 형편없는 아버지가 되어 달라고 스스로 요구했고, 그러한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사랑이 넘치는 영혼인 자신의 진정한 본성에 눈떴다. 앤드류는 현실을 떠나지 않으며 삶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캐롤은 흑과 백 사이, 회색의 음영을 이해하게 되었고, 셜리는 사랑과 연민인 자신을 알 기회를 얻었다. 팻의 도움으로 이 영혼들은 모두 성장했고, 마찬가지로 그들 각자가 팻의 영혼을 성장시켜 주었다.
전생 계획에서 장차 팻과 식구가 될 영혼들은 팻의 알코올 중독을 통해 각자 얻기로 정한 가르침은 전적으로 각자의 책임에 달린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물질계에서 살면서 우리는 태어나기 전의 선택을 잊고 종종 다른 사람들 때문에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고는 한다. 우리는 그런 고통스런 경험 앞에서 두려움과 화, 증오, 자기 혐오, 원망, 희생양이 되었다는 느낌, 그 밖에 영혼인 우리의 진정한 본성을 반영하지 않는 다른 감정들로 반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의식의 눈을 뜨면 우리가 그런 경험을 요구했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다. 그것을 기억해 낸다면 그들에게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한때 원망했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고맙다고 할할 수도 있다. 오랜 세월 내게서 분노의 맹공격을 받아내는 역할을 기꺼이 맡을 만큼 나를 생각해 주어서, 태어나기 전 한 약속을 지키고 존중해 주어서, 캐시가 팻에게 한 말처럼,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꼭 거쳐야 했던 터널을 마련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