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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신앙자세. 누가복음 12 : 35 - 59
목사님이 밤늦게 성경을 읽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았습니다. 어떤 여자가 술 취한 목소리로 맥주 두 박스만 배달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자기 교회 성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성도님 저는 성도님 교회의 담임목사입니다. 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가 술 취한 목소리로 아니 목사님 이렇게 밤늦은 시간에 술집에서 뭐하고 계세요~
이럴 때 우리는 말세다 말세라고 합니다..
지난 12일에도 네팔에 강진이 또 발생하여 4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미 사망자가 8000명이 넘었고 지방의 오지는 집계도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 주님 오실 때가 다 되었다는 생각이 더 확실해 집니다. 그래서 이 시대가 왜 말세인지 몇 가지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마 24 : 12 절에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이 인간성의 큰 변질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포학합니다.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각목을 휘두르고, 위층은 목사님 편 아래층은 장로님 편으로 나뉘어 예배를 드립니다.
2) [유]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동성애와 극심한 성적문란)
3)[마]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 전쟁과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지금 세계에 있는 무기는 지구를 망하게 하고도 남을 만큼 무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네팔은 지진으로 8000명이상이 사망했습니다.
4) 기독교 박해와 기독교 변질과 부패가 심각해집니다. 그래서 지금 IS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극심한 보복을 하고 있고, 기독교가 세속화 되고 종교다원주의와 인본주의가 극심하게 됩니다....
4)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고.. 지금 추세로 2030년이면 세계 복음화가 끝난다고 합니다.
5) 경제 사정이 악화되고 이스라엘이 복음화 된다고 합니다. 갈수록 세계경제는 악화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예수를 믿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말세에 어떻게 신앙을 지켜야 할지를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말세에 우리가 가져야 신앙에 대하여 묵상하고 바른 신앙의 자세로 정신 차리고 신앙생활 잘해서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우리성도님들은 다 주님 만나고 주님께 칭찬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깨어 있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말세는)
[눅]12: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눅]12: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미국에 다니엘 피어슨이라는 사람은 의학공부를 하였으나 물려받은 대규모의 농장이 있어 농사를 지었으며 목재상까지 크게 키워 아주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신부에게 내건 조건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되 그들 자신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살림만 하고, 나머지는 공익사업에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신부가 아주 마음에 들어 하며 그 결혼조건을 수락했고, 죽을 때까지 이를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피어슨 내외는 24개 주에 47개 대학을 후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결혼할 때 산 침대를 사용하는 검소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돈과 그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길이길이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방금 말한 다니엘 피어슨은 청지기의 삶을 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청지기란 주인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말세에는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는데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서 열심히 자기에게 맡겨진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과 나누어 쓰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폴 틸리히는 물질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이 죄악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청지기일 뿐인데 스스로가 하나님인 양, 주인인 것처럼 창조자의 의향을 변경해서 자기 마음대로 물질을 쓰는 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뭐 먹고 살고요~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눅12장 본문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까마귀와 백합화와 같은 짐승과 들풀도 먹이고 입히시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것 두려워하지 말고 나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지 물질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하여) 물질을 쌓아두는 것은 탐심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15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했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현세에서도 물질보다 생명이 소중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세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2010년도 통계로 우리나라에 하루에 암으로 죽는 사람이 179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각종사고와 자살을 포함해서 하루에 705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살아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탐심 가지고 자꾸만 모으려고 하지 말고 부지런히 나누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저금은 하늘나라에 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하늘나라에 저금은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들이 나누어 주고 선한데 쓰고 선교하는데 쓰면 그것이 다 하늘나라에 저금하는 것입니다. 그 통장을 가지고 있으면 여러분들이 필요하면 하나님께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세에는 우리가 지혜롭고 선한 청지기가 되어서 주님이 주신 물질 시간 재능을 부지런히 나누어 하늘나라에 저축을 많이 하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불을 받아야 합니다.(말세는)
[눅]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12: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행]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행]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선한목자 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칼럼입니다. 어제부터 목회자 멘토링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목회를 하고자 열망하는 참석자들이 전국에서 모였습니다. 아니 해외에서 오신 선교사님도 계셨습니다. 첫날부터 멘토 목사님들과 참석자들의 간절한 마음으로 분위기가 너무나 뜨거웠습니다. 모든 강의가 마친 후 강의를 하신 멘토들에게 질문하고 응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참석자가 은퇴를 앞둔 한 멘토 목사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목회자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목회자와 교인 모두의 문제입니까?” 질문은 요즘 어디서나 흔히 듣는 질문입니다. 저도 늘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답은 흔한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불 받은 목사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요즘 목사님들 설교를 들어보면, 다 들 설교는 잘하세요. 그러나 이 시대를 감당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 시대가 너무나 악해졌어요. 이전보다 영적으로 너무나 거칠어졌습니다.
그런데 목사들의 영적 깊이는 이 시대를 감당할 만큼 깊어지지 않았습니다. 세련되기만 했지 영적 깊이도 모자라고 성령의 기름부음도 없습니다. 그러니 한국교회 걱정하지 말고 목회자 자기 문제나 제대로 해결하십시오.” 저는 이렇게 강하고 선명하고 간단한 대답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강의 현장의 분위기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기에 이 글만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알 수 없지만,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교회 걱정하지 말고 네 문제나 제대로 해결하라...
저도 이 시대를 감당할 정말 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 받기를 사모하고 기도하고는 있지만 기도가 약해질 때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불을 던지시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불세례를 주실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리고 부활하시고 천성으로 올라가셔서 이 땅에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기도하다가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임했는데 그들이 다 성령에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방언을 말했습니다. 불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으니 우리는 다 불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불 받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불은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이 강력하게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성령의 강력한 임재입니다. 그래서 성령에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냥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충만하게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세에는 세상이 너무 악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파괴되었고, 죄는 극성을 부립니다. 우리가 거룩함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에 너무나 악한 환경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세상을 이길 만큼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에 충만함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도 힘듭니다. 세상을 변화 시킬 힘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 염려와 탐욕에 사로잡히고, 당당히 그리스도를 선포할 만한 용기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예수님께서 불을 붙이러 오셨으니 우리도 불이 붙어야 합니다.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주님 너무 뜨겁습니다. 주체를 못하겠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는 그렇게 훈련이 되지 못하여 성령의 불을 쬐기만 합니다. 우리가 큰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것은 불 쪼이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불붙이러 가는 것입니다. 말세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불이 붙어서 훨훨 타는 성도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련된 목회자 세련된 성도는 많은데 불붙은 성도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사모하며 주님 앞에 부르짖으며 나아가 불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3. 분쟁을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말세는)
[눅]12: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눅]12: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눅]12: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이유는 삶의 기준을 주시기 위해서다. 기준이 없으면 다툼이 있다. 1905년 3월에 우리나라 최초로 ‘대한 체육 구락부’가 탄생했고, 그해 6월 10일 황성 기독청년회 훈련원에서 최초로 공식 축구 경기가 열렸다고 한다. 그때 선수들은 상투에다 수건을 질끈 동여맸고, 한복 차림에 짚신 축구화를 신고 경기를 치렀다. 그 후에 장안에는 물론 전국 각지에 축구 붐이 일어나 이 마을 저 마을에서 경기를 했다. 경기장이라고는 대부분 마을 텃밭이나 뒷산의 공터였고, 선수는 제한이 없었으니 한 팀이 몇 명이든지 문제 될 게 없었다. 경기 시간 또한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선수 중 가장 연장자격인 한 사람이 입에서‘헉, 헉!’ 하는 소리를 내며, “야! 다들 몸살 나겠다. 이제 그만 하자”라고 하면 경기가 자연스럽게 종료되었다. 이쯤 되니 동네 감초격인 박 서방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다. “선수가 이렇게 많은디 문지기가 한 명으로 어림도 없는겨! 두 명으로 해야 하는겨!”라고 말하자, 그래도 동네에서 제법 유식하다고 하는 오 서방이 손을 저으며, “시끄러 이 사람아! 문지기는 오로지 한 명뿐인겨!”라고 우긴다. 그래서 동네 축구는 박 서방이 있으면 골키퍼가 둘, 셋도 되었다가 오 서방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한 명이 되었다. 이처럼 기준이 없으면 우왕좌왕하게 되고 쓸데없는 다툼으로 시간과 힘을 낭비하게 된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분쟁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은 진리와 비진리가 싸우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위해 비진리와 싸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말세에는 이 싸움이 거세지는 것입니다. 언젠가 신문에 절에 간 목사란 제목을 보았습니다. 무슨 말인가 싶어 보았더니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목사가 절에 가서 축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교회 노이환 목사님 친구는 주지승인데 성탄절만 되면 성탄을 축하한다고 문자를 보낸다고 합니다. 이 시대는 종교다원주의라는 비진리가 판을 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면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비진리에 속하는 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비진리에 속한다는 것은 그것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분쟁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말세에는 적그리스도들이 너무 기승을 부립니다. 예수님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난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목숨 걸고 믿음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100여년의 세월을 묵묵히 방주를 지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노아를 미쳤다고 하고 조롱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살이 하다가 과감히 애굽을 떠나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광야로 나아갔던 것처럼 세상의 노예로 살 것이 아니라 광야에 나가 주님을 섬기는 믿음의 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성령의 불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에 대한 오해를 하나 풀고 지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늘 평화하라고 하셨고, 우리도 화평의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에도 화평만을 고수하고 있으라는 것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때론 분쟁합니다. 그런데 그 분쟁이 진리를 향한 분쟁이 아니라서 문제일 뿐입니다. 진리의 문제라면 과감히 분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후 나눔에서 가끔 열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무엇이 진리인가를 밝히기 위해서는 약간의 소란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냥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살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거짓 선지자는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면서 사람들을 속인다고 합니다. 교회는 진리가 과감히 선포되고 비진리와의 싸움도 치열해야 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지켜 나갈 때 진정한 자유가 있고 진정한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무조건의 평화가 아니라 진리를 위해서라면 분쟁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진리와 분쟁하며 진리를 지켜 나가는 믿음의 종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심판에 대비하여 하나님과 관계 회복하라
[눅]12:56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눅]12:57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눅]12:58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추운 겨울이 다가오자 따뜻한 곳을 향해 날아가던 거위 때가 한 농부의 옥수수 밭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다른 거위들은 서둘러 배를 채우고 가던 곳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한 숫거위가 아니 아직 날도 따뜻하고 먹을 것도 많은데 왜 그리 서두는가하면서 거기서 머물면서
계속 옥수수를 먹고 있었다. 몇 날이 지났는데도 조금만 더 먹고 조금만 더 먹고 하면서...
그러다가 어느 날 아이고 날씨가 너무 추워졌군! 이젠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떠나야겠어. 하고 힘차게 날개 짓을 하고 날아올랐는데 뒤뚱거리기만 하고 날아오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만 살이 너무 쪄서 다시 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잠시 후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그 거위는 그만 추위에 얼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동화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도 시기를 분별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세상 속에 빠져 살다가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심판에 이르기 전에 빨리 하나님과 화해를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빨리 하나님과 화해를 해서 심판을 면해야 합니다.
그런데 화해는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화해를 받아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 [롬]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와 화해를 결정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화해를 받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화해를 신청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즉 십자가의 죄 용서함을 받아 드리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죄 용서함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만 믿기로 작정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화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화해의 손길을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화해하자 화목하자고 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돈을 따라가고 명예를 따라가고 쾌락을 따라가던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며 하나님만 경외하는 삶으로 만족하는 참된 하나님의 종이요 자녀들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교회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초청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이제 심판의 임박성과 심각성을 깊이 깨닫고 자신의 자리를 청산하고 일어서서 주님께로 돌아가 하나님과 화목한 삶으로 영원한 생명의 삶으로 돌아오는 축복의 성도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심각한 말세의 증상들이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있습니다. 너무나 심각한 자연훼손과 인간성의 파괴로 인한 성적타락과 포악함, 그리고 이단들의 극성을 볼 때 그럼 마음이 들고 또 너무나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계문명이 세상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아의 시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때도 사람들은 열심히 장가가고 시집가며 하나님 없이 잘 들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을 계획하셨고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인간은 속수무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세에 바른 신앙의 자세를 회복해야 합니다.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어떻게 모으고 잘 살 것인가 하는 염려와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롭고 성실한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물질 시간 재능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또 불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불을 던지러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에 충만한 삶을 살아야 말세의 악한 환경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사명 감당하는 영향력 있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진리와 분쟁하며 살아야 합니다.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 말씀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목숨 걸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도 때로는 비진리와 싸움에 분위기가 안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당연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임박했음을 알기에 빨리 하나님과 화해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의 삶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우상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만나는 날 잘 했다 칭찬 받으며 기쁨으로 주님의 잔치에 동참하는 축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