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2023년부터 변호사·검사 등 법조 경력이 10년 이상 된 사람 중에서 판사를 임용하기로 했다. 2023년까지는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뒤 2년이 지난 사람 가운데서 판사를 뽑는다. 또 2023년부터는 1심 법원 판사와 2심 법원 판사를 지역별로 따로 뽑고 1·2심 법원 간 인사이동도 없애기로 했다. 사법시험 합격자를 뽑아 판사로 임용하고, 그 판사들이 1년에 한 번씩 대규모 인사이동을 통해 전국 각지 법원으로 옮겨다니고, 경력에 따라 지법 부장판사와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하던 지금까지의 판사 임용·승진 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현재 전국 판사 2400명 중 60%가 40세 미만에 경력도 10년 미만이다. 그래서 사회 경험과 판사 경력이 없는 젊은 판사에 대한 소송 당사자의 불신이 컸다. 법조 경력 10년 이상 된 사람 가운데서 판사를 뽑는다면 이런 문제는 많이 해소될 것이다.
1심과 2심 법원 판사를 따로 뽑고 인사 교류를 없애면 판사들이 승진이나 좋은 보직(補職)에 연연하지 않고 재판에 전념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사법시험 동기생(同期生)들 가운데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표를 내는 관행도 사라질 수 있다. 그동안은 고법 부장판사 승진에서 탈락한 경력 20년 안팎의 판사들이 줄줄이 법원을 떠나 인력 낭비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승진이나 인사 교류가 없어지면 판사들이 나태와 무사안일에 빠질 수 있다. 이미 경력 법관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 지적돼 온 문제다. 판사가 한 지역에서 평생 근무하면 지역 유착 비리에 연루될 위험도 크다. 10년 이상의 변호사 등을 지낸 경력 법조인 가운데서 판사를 뽑을 경우 사회생활에서 맺은 인간관계나 기업과의 유착이 재판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다.
대법원은 앞으로 남은 10여년 동안 이런 문제들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유명무실한 판사 근무 평정(評定)을 엄격히 실시해 업무 능력이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판사들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10년 이상 된 법조 경력자 가운데 엄격한 도덕성과 업무 능력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선발해낼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대책도 세워야 한다. 대법원의 이번 판사 임용 제도 개혁안은 잘 준비하면 판사의 수준과 재판의 질(質)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잘못하면 업무 능력 향상엔 별 관심이 없고 지방의 권력자 행세를 하는 데나 눈독을 들이는 판사들을 양산(量産)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