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패션화 검정고무신(My Fashion 靴 Back Rubber Shoes)
나는 가끔씩 나의 추억과 기억을 더듬더듬 더듬어 보며 혼자서 걸어가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올 때도 있으며 두 눈시울 붉어질 때도 있다.
세월 속에 묶인 추억과 잃어버린 시간들이 만감을 교차하면서 가슴에다 구멍을 시원하게 뚫고
한겨울 신작로를 걸으면 찬바람이 들고,
봄날의 하늬바람 불면 데워지고 여름날 태풍과 천둥 번개에 놀란 가슴을 헐떡거리다.
가을날 홍시를 쳐다보며,
그 옛날 소싯적 팔딱 팔딱 뛰면서,
엄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신고 다니던 내 맨 발 보다 내 생각에는 아마 두 세배쯤은 더 커 보이던,
My Fashion 靴 Back Rubber Shoes ‘검정고무신’
국제화학의 타이야표 통고무신
아마도 이 상표는 그때 당시에는 우리들 아니 남녀노소 누구에게도 너무나 유명한 국민의 신발 검정 검정고무신이었을 것이다!?
하(신)의도의 낙도
무적의 해병대같이 무서운 파도와 바다에 포위되고 갈매기 초병이 지키는
나의 고향 치섬(雉섬=기도 : 箕島).
그곳에서 태어난 나는 배로 하루거리(그 때 돛단배는 바람과 물때가 안 맞으면 3~4일도 걸림)인 중학교가 있는 목포로 입학시험 보러 돛단배를 타고나오기 전까지는,
신작로와 자동차는 국민(초등)학교 사회책에서 그림으로 보았지만,
실제로는 빨간 벽돌로 지은 2층 집과 자동차 그리고 자동차의 Klaxon 소리는 들어 본적도 없고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만 들어보았다.
그런 나는 입학시험을 보러 목포에 처음 와서 돛단배에서 선착장에 내려 아버님을 따라서 앞만 보며 아버님을 놓칠세라 열심히 도로 한복판을 걷고 있는데,
무엇이 못 마땅하였는지 바퀴가 세 개씩이나 있는 자동차 운전수 양반.
빵앙~빵빵 Klaxon인지 무엇인지 경적을 울려대더니 - - -.
또, 다시 빵~앙~빵~앙~빵~앙~ ~ ~
그 소리에 놀란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제자리말뚝이 되어 버렸다.
그러자, 그 삼륜자동차 운전수.
그 임꺽정 같은 양반 고개까지 밖으로 쑥 내밀고, 내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삿대질에 찢어진 목청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야단법석이다.
나는 무슨 대단한 일이 난 나 하고 나는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그 때서야 나의 아버님은 뒤돌아서서 너를 보시며 “아! 야 싸게 이리 온 나 요런(아! 야 빨리 이쪽으로 와라 이런)도시에서는 길 갓으로 댕겨야 쓴다(갓 길로 다녀야 한다)” 고 하신다.
나는 그 순간 아버님을 쳐다보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소눈깔을 해가지고 미리미리 좀 가리켜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원망스레 주저주저하고 있으니,
조금 전 그분이 또, 두 눈을 부라리며 “야! 임마 싸게 비켜(야! 이놈아 빨리 비켜)” 하신다.
그 제서야 제정신이 돌아온 나는 젭 싸게(아주 빠르게)두 손을 두 발아래로 내려 양손에 검정고무신을 벗어서 움켜쥐고 길 갓으로 피했다.
그런 나를 보고 계시던 아버님께서.
나를 보시고는“야! 야 이놈아 신발은 왜 벌고 지랄이냐”하신다.
그러자 나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아! 아부지 여기는 쎄멘 덮허 논 깨깟한 신작로 구만요 (시멘트 포장한 깨끗한 도로인데요)”
이때에 또 아버님께서는 “나 봐라 신 신고 걸어 가냐” 하시 길래,
나는 “안 돼요, 엄니가 지난번 때에 목포에 중학교 시험 보러간다고 미리 사 주신다고 하시면서 도시에는 쎄멘 천지여서 요런 쎄멘 바닥에서는(시멘트가 많은 바닥에서는)빨리 떨어진다고 조심해서 아껴 신으라고 하셨어요.”
아버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더니 “그래 알았다” 하시며,
“오늘은 그냥 신고 댕겨라(다녀라)이번에 닳고 떨어지면 새 걸로 한 켤레 사 주마” 하시며, -중학교 시험에 만 붙으면 아주 발에 딱 맞고 튼실한 운동화로 사주신다고- 말씀을 하신다.
나는 한 층 기분이 업 되어,
어머님께서 사준 검정고무신을 발에 척하니 걸치고 의기양양하게 입학시험장으로 향하여 가서 시험을 치르고 섬으로 돌아 왔다.
몇 칠 후 시험발표 날 우리 학교분교장 선생님께서,
특별히 학교에 만 유일하게 있는 금성 라지오를(그 당시 에는 LG=금성, 라디오는 라듸오로 표기)들고 우리 집으로 오셔서 아버님과 두 분께서 탁주를 드시면서 청취하셨는데,
나는 보기 좋게 미역국을 먹고야 말았다.
그 뒤 한참 후 몇 달이 지나서 아무 말도 못하고 발등을 쳐다보니,
나의 검정고무신.
뒷굼치는 갈라지고 옆구리는 터지고 찢어지고,
볼품도 없고 하여서 ‘~영~엉~’ 신고 다니기에 불편하기에 - - -.
아버님께서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는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용기를 내어서 “아부지 요~” 하고 조심스럽게 부르며 “아부지 전번에 목포 중학교 시험 보러갔을 때 신발 사준다고 하셨죠?” 하니까?
“뭐야!~ ~ 공부도 지질이 못한 노무새끼가 신발은 무슨 신발 니 껍딱(엄마)한테 꿰메 서 주라고 해서 신고 다녀” 하시며 화를 벌컥 내신다.
옆에 계시던 어머님.
내 역성을 들어“아따 거! 이참에 새로 하나 사주소 잉 ~ ~ ~”하신다.
아버님께서는 “아! 그 씨잘 대기 없는 소리하지 마,
돈이 어디 있어” 하시며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신다.
어머님께서는 “이리 줘 바라” 하시더니,
바느질실에 침을 발라 바늘귀에 끼우시고,
내 검정고무신을 들고 툇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하얀 바느질실로 뒤꿈치와 옆구리가 터지고 찢어진 부분을 듬성듬성 두 줄씩 감아 튼튼하게 꿰메어 ‘여기 있다’ 하며,
한손으로 ‘쑥’ 내밀어주시니,
나는 얼른 받아서 신고.
운동화는 고사하고 고무신도 틀렸구나 생각하고 동네 친구들 만나려 번개처럼 뛰어나왔다.
지금에 와서 눈시울 붉히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의 검정고무신.
나의 어머님 손때가 ‘팍팍’ 묻은 [울 엄니 표 수제패션화] 이였다.
어머님께서 꿰메 주신 그 검정고무신을 신고 뒷동산,
황토길,
온 동네 비포장 골목길을 누비는 골목대장별이 네 개짜리 ****신발 이였고,
그 섬 분교운동장에서 축구 할 때는 축구화.
농구 할 때는 농구화.
신발 뒤꿈치 옆구리에 하얀 바느질실밥이 매우 또렷한 검정고무신이 이때는 진짜 창피했지만,
지금 되새겨 생각해 보면,
나의 어머님께서는,
요즘에 유명한 신발메이커 패션디자이너들 보다도 훨씬 더 솜씨가 좋은 분이셨다.
그 때 그 시절.
생각나는 나만의 그 검정고무신 나의 패션화는 지금은 살수도 만들 수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밑창이 낡아빠진 검정구두를 챙겨 신을 수 있는 새벽의 출근길을 누구보다 더 즐거워하고 상쾌한 아침공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끝-
서옥(書屋) : 김 평 배
시인. 수필가. 법무부 법무보호위원.
1955년 전남 무(신)안군 하(신)의면 상태서리 치섬(기도)생
(사)한국문인협회 및 신안군지부 회원.
한국다선문인협회. 한국현대문학작가연대 회원
제주시장. 대한민국 국회2회. 서울시의회의장. 경기도의회의장. 은평구의회. 고양문화원. 송강 문화축제위원회 표창 등 다수
2022년 한국을 빛낸 사회발전 대상‘올해의 건설 산업관리부문’수상
2022년 한국다선문학 대상‘時 부문’수상. 2022년 K-STAR 위대한 한국인 100인 대상‘隨筆 부문’수상
2023년 대한민국파워리더대상‘隨筆“나의 패션화 검정고무신”으로 수상
저서(시 및 수필집)
「어느 날 쏟아진 글씨들」「천사들의(1004섬) 갯벌이아기」출판
현 전남 담양군 대전면 서옥오산길117-5 (서당몰) 거주
E-mail : kpb55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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