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업적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국토 확장이다. 그러나 과연 사실일까? (고려방 56편 참조)
지도에서 보듯이 고려의 영역은 우리가 배운 이상으로 크다. 그런데 어찌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경(?)으로 삼은 4군6진 개척이 국토 확장이란 말인가?
그 시절로 돌아가보자.
당시 간도(만주. 혹은 동북 3성으로 불리는 고구려의 영역)의 주인은 우리와 한핏줄인 려진. 말갈인이었다. 물론 쇠퇴한 원의 생민들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 모두 우리와 한핏줄이니 굳이 가릴 필요는 없지만 편의상 세분하였음을 밝힌다.)
따라서 위화도 반역으로 이조를 세운 이성계와 이방원은 그들의 반역의 정당성에 발목이 잡혀 한반도를 지키기에도 벅찼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고려 영역을 계승하기는커녕 여진인들로부터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을 것이다. 이게 이조실록에는 여진인의 침입으로 기록되었을 것이고...
국가의 기틀이 어느 정도 잡힌 세종은 최윤덕과 김종서로 하여금 북방을 수습하라는 명을 내린 바...
1416 ~ 43년 4군 설치. (최윤덕)
1435 함길도병마도절제사가 된 김종서는 7~8년에 걸친 각고 끝에 6진을 설치한다. 이게 우리가 아는 세종의 국토 확장이다.
그렇다면 (고려방 56편 참조) ...
엄밀히 따져 세종대왕은 국토를 확장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영토 중간(中間)을 국경으로 삼아 스스로 영토를 축소한 죄를 범한 것이 아닌가?
(이 경우에도 최윤덕과 김종서의 공은 결코 평가절하 될 수 없다. 그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를 충실히 실행하였기에...)
이 또한 오래 전부터 의문이었으나 누구도 거론하지 않으니 오늘에야 토론에 부치는 바입니다.
첫댓글 님도 아시겠지만, 다소 허무맹랑한 대륙조선설에 따르면 4군과 6진을 신강위글 자치구와 고비사막 그리고 만주 동북부 연해주 까지 잡고 있지요. 이렇게 된데는 청나라가 위글신장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면서 거기에 려진한겨레를 이주시켜 살도록 하였는데, 이것을 모르고 거기에 현재도 만주족이 산다는 점에만 집착하여 4군은 려진족을 정벌하면서 개척한곳이니 거기가 4군 아니냐며 거기다 4군을 그려놓는 촌극을 벌이죠. 우리까페도 그 지도가 올라와 있고 인터넷에 무수히 떠 돌아 다니고 있죠. 그런데 현행 날조국사책 처럼 압록강 두만강을 경계로 한 부근이 4군6진이라고 하는데는 의문이 많아요.
그런데 4군6진개척기록이 어디에서 난 것인지 먼저 찾아야 한다고 봐요. 조폭매국 강단패거리들이 유일한 정사로 삼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아니겠고 혹시 리조실록? 만약 이곳에도 없다면 4군6진은 누군가 꾸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될거에요.
저는 '4군 6진'의 위치는 '이조실록'의 기록을 믿습니다. 그 근거는 이조의 수도 였다는 '한양(현 서울)'을 기점으로 하는 거리를 계산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조에게는 '변성 역모(變姓 逆謨)의 대 역적'이었던 '이징옥 장군'의 '대금국'(大金國)개국에 관한 기록들을 보면 그 위치를 간파 할수 있을것 입니다. (이징옥은 두만강 도강 전날 밤에 함경도 내 에서 배신한 종성 절제사 '정 종'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당시 김종서의 귀경(歸京) 속도, 한양에서 한명회가 보낸 첩자들의 종성까지의 도착 속도등이 그 위치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김자님은 '세종의 국가 영토 축소에 대한 죄'를 묻고 있겠지요. ^^
^^ 두렵습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억지인지.......... 하나를 의심하면....해결이 되는 게 아니라... 다섯... 백이 의문이니.....정말 이조가 있기는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