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에서 박웅현은 매 장마다 다양한 책들을 소개한다. 그것도 찔끔 찔끔. 감질 맛이 나게 한 후. 궁금하면 사서 읽어보시던지… 라는 말을 던진다. 처음에는 ‘이 사람 책 장사야 뭐야’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점점 읽어 내려가면서 타인의 책을 통한 자신의 감정과 감동을 솔직하게 표현하려는 진심이 느껴졌다. 국내 작가의 소설, 수필, 시집, 팝송가사에서부터 서양의 고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의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는다. 그리고 그 본질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우리에게 책을 통한 울림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책은 도끼다>에서 고은의 <순간의 꽃>이라는 시집이 소개된다. 고은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가되고마는 신묘한 경지의 시인이라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 책에서 소개되는 제목 없는 짧은 시들은 굳이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섬세한 깨달음을 준다.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사소하지만 그 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몇 가지 시를 찬찬히 읽어보면 금방 고은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집을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가던 순간. 푸르고 넓은 하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하늘은 나에게 평온함과 여유로움을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는데, 나는 너무 발아래 땅만 보고 살았던 것 같다. 지친 삶에서 여유를 갖기 위해 그대로 멈춰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못한
그 꽃
지독하게 앞만 보고 정진할 때는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놓쳐버립니다. 하지만 어깨의 무거움을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할 때 비로소 작은 즐거움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이 깨달아야 할 진리가 저 짧은 시속에 담겨 있습니다.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
닿은 곳에서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
이렇게 시작해보거라
우리는 낯선 곳을 두려워하고 새로운 도전에 멈칫합니다. 계획된 틀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딱딱 들어 맞을 때 안도합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인생이 참 피곤해 집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어차피 한 평생 기를 쓰고 살아봐야 뭐 있겠습니까?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면서 그 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될 것을...
본질 없이 얄팍한 우리네 인생의 가벼움
박웅현이 차근차근 설명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아 내가 책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그래서 책의 내용이 아닌 ‘키치’에 대해서만 말하려고 한다. 키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단어다. 4명의 주요인물(토마스, 테레사,프란츠, 사비나)들에 대한 묘사나 설명도 키치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독일어에서 나온 키치Kitsch는, 영어로 Shallow이다. 얕은, 얄팍한, 피상적인 이라는 뜻이다. 박웅현이 제시한 키치에 대한 명확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똥이 부정되고, 각자가 마치 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신하는 세계를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이 키치라고 불린다.
결국 키치는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되는 세상을 가르킨다. 공산주의도 키치에 속한다. 소련 체제 내에서 핍박받고 있을 때 나온 영화들은 모두 꿈 같은 그림인데, 그것은 ‘똥’을 인정하지 않는 키치와 일맥상통 한다는 것이다.
얄팍하고 피상적인 삶, 현재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본질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삶. 키치는 알면서도 부정하고 사는 우리의 역설적인 인생을 대변해 주는 교훈과도 같은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내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꼭 읽고 싶은 이유다.
이 밖에도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서는 거짓말을 거부하는 사람 뫼르소가 있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는 자연과 탯줄을 끊지 않은 조르바가 나온다. 이들은 카르페디엠과 seize the moment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위대한 사랑에 대한 명작인 톨스토이의 <안나까레니나>등도 소개된다. 책 속의 책. 어찌 보면 참 신기한 구성이기도 하다.
이 책 <책은 도끼다>는 한마디로 정의하기도 어렵고, 리뷰를 쓰는 것도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책을 위한 책이기 때문이 그 책들을 다 읽지도 않고 책을 논하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독자마다 이 책에서 느끼는 감정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매 장마다 울림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고, 책 속에 등장하는 책 속에서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 많은 책들 중 정말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한 사람도 있을 테고, 무심코 흘려 보내는 사람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37년 살면서 서서히 찢기고 무뎌진 내 감성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커다란 과제를 하나 받은 느낌이기도 하다. <책은 도끼다>에 나오는 책들을 봐야만 이 책을 제대로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이랄까…
책은 마음의 양식이자 지적 재산이 되기도 하지만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그저 스쳐가는 1회용 신문 같은 정보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독서를 강요 받고, 다독을 하는 사람이 유식할 거라는 편견 속에서 살고 있다. 물론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다독만이 꼭 능사가 아니란 걸 깨달았으면 하는 것이다. 양보다는 질. 질보다는 마음가짐. 마음가짐보다는 실천이라는 것을 염두하고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은 “나 그 책 읽었어”라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머리 혹은 가슴을 도끼로 열어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나기 위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