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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야구를 처음 시작할 무렵부터 함께였다. 75년생 토끼띠. 나이가 같았던 까닭에 늘 치고받으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라왔다. 때론 몇몇이 훌쩍 앞서나가기도 했다. 그럴수록 나머지 선수들도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은 ‘75회(會)’란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목표도 하나다.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자리에 함께 서는 것이다.
▲ 75회의 탄생
어릴 적부터 특별히 가까웠던 김재현(LG) 이호준(SK) 박지철 주형광(이상 롯데)의 사적인 만남이 시작이었다. 그러던 중 정기적으로 만나는 동기들의 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98년 시즌이 끝난 어느 날,뜻이 하나로 모아졌다. 정식으로 회비를 걷고 나름대로 모임을 이끌어갈 임원도 선출했다. 김동주(두산) 심정수(현대) 등도 멤버가 됐다. 한국프로야구 1군무대에서 활약하는 75년생들이라면 누구에게라도 문호가 개방됐다. 첫 모임에서 그들은 호기롭게 다짐했다. “우리가 한국야구의 중심이 되자!”
▲ 고통의 눈물,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부상악령이 75회를 덮쳤다. 박지철은 오른어깨에 탈이 나 99년을 통째로 쉬어야 했고 주형광은 왼팔꿈치 부상으로 2001년부터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초창기 멤버였던 장성진(전 두산) 엄병렬(전 해태)은 그 와중에 유니폼을 벗었다. 그리고 김재현은 2002년 고관절 괴사증으로 선수생명에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부상은 그들을 완전히 꺾지 못했다. 주형광과 박지철은 긴 터널을 지나 다시 마운드에 섰다. 완전히 끝났다던 김재현은 수술한 지 8개월여 만에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조인성(LG) 이호준 임경완(롯데)은 차원이 조금 다른 시련을 겪었다. 데뷔 이후 한동안 ‘기대주’의 자리에만 머물러 있었다. 자연히 ‘재주만 있고 노력이 없다’는 비아냥이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들은 주머니 속 송곳이었다. 기어코 주머니를 뚫고 나와 당당히 제자리를 찾고야 말았다.
▲ 이제는 우리가 중심이다
당초 한국프로야구의 2세대 중심은 73년생들이었다. 박찬호(텍사스) 조성민(전 요미우리) 임선동(현대) 정민철(한화) 등 이름만으로도 상대를 떨게 할 빅스타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일일이 이름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73년 소띠파워는 대단했다.
그러나 73년생들이 조로하며 급격하게 내리막을 걷는 사이 75회 멤버들이 슬그머니 최고의 자리로 나서고 있다. 회원 9명 대부분이 팀 간판으로 성장했다. 김동주(두산) 심정수(현대) 이호준은 지난해 무려 113개의 홈런을 합작해냈다. 심정수가 부상으로 빠져있기는 하지만 김동주와 이호준은 올시즌에도 여전한 파워를 뽐내고 있다. 김재현은 시즌 초 주춤했지만 최근 급격한 상승세를 타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김재현은 최근 6경기에서 5할3푼8리의 타율을 기록 중이다.
타선에 비해 다소 약한 감은 있지만 배터리 역시 만만치 않다. 박지철 주형광 콤비는 롯데 선발마운드의 핵심이다. 임경완은 1.93의 기적 같은 방어율을 유지하며 최강 중간계투로 자리잡았다. ‘앉아 쏴’ 조인성은 이제 ‘한국 최고 포수’라는 칭호가 그리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 받은 만큼 돌려드릴게요
75회의 주요 사업(?) 중 하나는 돈을 모으는 것이다. 회비도 칼같이 걷고 올시즌이 끝난 뒤에는 자신들만의 사인회 등 돈벌이가 되는 일도 해볼 계획이다. 실컷 먹고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다. 작은 정성이라도 모아 뜻깊은 일에 써보기 위해서다. 이호준은 “회원들 대부분이 어릴 적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이제 조금씩은 여유가 생긴 만큼 그 사랑을 돌려드릴 때가 됐다는 것이 우리들 생각이다. 크게는 아니더라도 꾸준하게 의미있는 일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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