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의 예주 협산 선회선사의 법손
16권 - 9. 예주 악보산 원안선사
鳳翔麟遊人也 姓淡氏 丱年出家 依本郡懷恩寺祐律師披削具戒通經論 首問道于翠微臨濟 臨濟常對衆美之曰 臨濟門下一隻箭誰敢當鋒
봉상부 인유 사람으로서 성은 담씨이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고향의 회은사 우율사에 의해 머리를 깎고 계를 받은 뒤에 경과 논을 통달하였다. 그러다가 취미와 임제에게 처음으로 도를 물었는데, 임제는 언제나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다. “임제 문하의 화살 하나를 그 누가 감히 맞서겠는가?”
師蒙許可 自謂已足 尋之夾山卓庵 後得夾山書發而覽之 不覺竦然乃棄庵 至夾山禮拜端身而立 夾山曰 雞棲鳳巢非其同類出去 師問曰 自遠趨風請師一接
대사는 인가를 받고 나자 스스로 족하다고 여겨서 바로 협산에 가서 암자를 세웠다. 나중에 협산에게 편지가 왔는데 열어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암자를 버리고 협산에게 가서 절을 하고 단정히 섰는데, 협산이 말했다. “닭이 봉의 둥지에 서식하니, 똑같은 종류가 아니다. 나가라.”
대사가 말했다. “먼 곳에서 덕화를 흠모하고 찾아왔으니 스님께서 한번 지도해 주십시오.”
夾山曰 目前無闍梨夾山無老僧 師曰 錯也
“눈앞에 그대가 없고, 여기에는 노승이 없다.”
“틀렸습니다.”
夾山曰 住住闍梨且莫草草匆匆 雲月是同雞山各異 闍梨坐卻天下人舌頭卽不無 爭敎無舌人解語 師茫然無對 夾山遂打 師因茲服膺數載(興化代云 但知作佛莫愁衆生)
“가만히 있어라. 그대는 너무 경솔히 굴지 말라. 계곡과 산은 저마다 다르지만 구름과 달은 같다. 그대가 천하 사람의 혀 끝에 앉아서 판단하는 일은 없지 않겠으나, 어찌 혀가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알아듣게 하겠는가?”
대사가 멍하니 대답하지 못하자, 협산이 때렸다. 대사는 이로부터 몇 해 동안을 섬겼다.
[흥화가 대신 말하기를 “부처가 되면 중생 걱정은 말라”고 하였다.]
師一日問夾山 佛魔不到處如何體會 夾山曰 燭明千里像 闇室老僧迷
어느 날 대사가 협산에게 물었다. “부처도 마귀도 이르지 못하는 곳을 어떻게 체득하겠습니까?”
“촛불은 천 리 밖의 상을 밝히는데 어두운 방 안의 노승이 제 홀로 미혹한다.”
又問 朝陽已昇夜月不現時如何 夾山曰 龍銜海珠游魚不顧
또 물었다. “아침 해가 이미 솟았고 저녁 달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협산이 대답했다. “용이 바다의 구슬을 물고 있으나, 노니는 물고기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夾山將示滅 垂語於衆曰 石頭一枝看看卽滅矣 師對曰 不然
협산이 입멸하려 할 적에 대중에게 말했다. “석두의 한 가지를 살피고 살펴라. 곧 사라지리라.”
대사가 이에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夾山曰 何也 曰 自有靑山在 夾山曰 苟如是卽吾道不墜矣
“왜 그런가?”
“스스로 청산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나의 도는 멸망치 않으리라.”
曁夾山順世 師抵于涔陽遇故人 因話武陵事 故人問曰 倏忽數年何處逃難 師曰 只在闤闠中
협산이 세상을 떠난 뒤에 대사는 잠양에 갔다가 고향 사람을 만났다. 그에게 무릉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까 고향 사람이 물었다. “홀홀히 지난 몇 해 동안을 어디서 피난을 하셨소?”
“다만 시끄러운 곳에만 있었소.”
曰何不無人處去 師曰 無人處有何難
“왜 사람 없는 곳으로 가지 않았소?”
“사람 없는 곳에는 무슨 어려움이 있는가?”
曰闤闠中如何逃避 師曰 雖在闤闠中人且不識
“시끄러운 곳에서 어떻게 피난을 합니까?”
“비록 시끄러운 곳에 있으나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오.”
故人罔測 又問曰 承西天有二十八祖 至於此土人傳一人 且如彼此不垂曲者如何 師曰 野老門前不話朝堂之事
고향 사람이 어리둥절하였다. 이어서 그가 또 물었다. “듣건데 서천에 28조가 있지만 중국에 와서는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만 전했다 하는데, 그들 서로가 간곡한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요?”
“촌 늙은이의 문 앞에서는 조정의 일을 이야기할 것이 못되오.”
曰合譚何事 師曰 未逢別者終不開拳
“그러면 무엇을 이야기하리까?”
“아직 헤어진 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끝내 주먹을 펴지 않소.”
曰 有不從朝堂來相逢還話否 師曰 量外之機徒勞目擊 僧無對
“조정에서 오지 않은 이를 만나도 이야기를 나누겠습니까?”
“국량을 벗어난 기틀을 쓸데없이 목격하는구나.”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師尋之澧陽樂普山卜于宴處 後遷止朗州蘇谿 四方玄侶憧憧奔湊 師示衆曰 末後一句始到牢關 鎖斷要津不通凡聖 欲知上流之士 不將祖佛見解貼在額頭如靈龜負圖 自取喪身之本 又曰 指南一路智者知疏
대사는 이어 예양의 악보산으로 가서 조용히 살다가 나중에 낭주의 소계로 옮기니 사방에서 참선하는 무리가 모였다. 이에 대중에게 보였다. “맨 마지막의 한마디에 비로소 마지막 관문에 이르나니, 요긴한 길목을 지키고 앉았노라면 범부도 성인도 통하지 못한다. 상류의 선비를 알고자 하는가? 조사나 부처의 견해를 이마에다 붙여서 마치 신령스러운 거북이 등에다 그림을 진 것 같게 하지는 말라. 이는 스스로 목숨을 잃는 근본이 된다.”
또 말했다. “남쪽을 가리키는 외길은 지혜로운 이라야 소통할 줄 안다.”
問瞥然便見時如何 師曰 曉星分曙色爭似太陽輝
“별안간 볼 때는 어떠합니까?”
“새벽 별이 서광의 빛깔을 보이지만 어찌 태양 빛만 하리오?”
問恁麽來不立恁麽去不泯時如何 師曰 鬻薪樵子貴衣錦道人輕
“이렇게 와도 세우지 못하고 이렇게 가도 없애지 못할 때는 어떠합니까?”
“땔나무를 파는 나무꾼은 비단옷을 귀하게 여기지만 도인은 가볍게 여긴다.”
問經云 飯百千諸佛不如飯一無修無證者 未審百千諸佛有何過 無修無證者有何德 師曰 一片白雲橫谷口 幾多歸鳥夜迷巢
“경에 말하기를 ‘백천의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하나의 수행도 없고 깨달음도 없는 자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백천 부처님에게는 무슨 허물이 있고, 수행도 깨달음도 없는 자에게는 무슨 공덕이 있습니까?”
“한 조각 흰 구름이 골짜기 입구에 걸리니, 밤에 돌아갈 둥지를 헷갈린 새들이 얼마나 많던가?”
問日未出時如何 師曰 水竭滄溟龍自隱 雲騰碧漢鳳猶飛
“해가 돋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바다에 물이 마르자 용은 그대로 숨고, 은하수에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니 봉황도 따라서 난다.”
問如何是本來事 師曰 一粒在荒田不耘苗自秀
“어떤 것이 본래의 일입니까?”
“한 알의 씨앗이 거친 밭에 떨어지니 김을 매지 않아도 싹이 잘 자란다.”
曰若一向不耘莫草裏埋沒卻也無 師曰 肌骨異芻蕘 稊稗終難映
“한결같이 김을 매지 않으면 풀 속에 매몰되지 않겠습니까?”
“살과 뼈는 꼴과는 다르고, 피는 끝내 벼가 될 수 없다.”
問不傷物命者如何 師曰 眼華山影轉迷者謾彷徨
“사물의 생명을 상하지 않는 것은 어떠합니까?”
“눈병으로 산 그림자가 굴러가니, 미혹한 이가 공연히 방황한다.”
問不譚今古時如何 師曰 靈龜無掛兆空殼不勞鑽
“고금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신령스런 거북도 괘의 징조가 없거늘 빈껍데기를 부질없이 뚫지 말라.”
問不掛明暗時如何 師曰 玄中易擧意外難提
“밝음과 어둠을 내걸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현묘함 속에서는 말하기 쉬우나 뜻을 벗어난 것은 제기하기 어렵다.”
問不生如來家不坐華王座時如何 師曰 汝道火鑪重多少
“여래의 집에 태어나지 않고 화황의 자리에 앉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대는 화로의 무게가 얼마나 된다고 말하는가?”
問祖意與敎意是一是二 師曰 師子窟中無異獸 象王行處絶狐蹤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사자의 굴속에는 다른 짐승이 없고, 코끼리가 지난 곳에는 여우의 발자취가 끊어진다.”
問行到不思議處如何 師曰 靑山常擧足白日不移輪
“행이 부사의한 곳에 이르면 어떠합니까?”
“청산은 항상 발을 드는데, 밝은 해는 조금도 옮기지 않는다.”
問枯盡荒田獨立事如何 師曰 鷺倚雪巢猶可辨 烏投漆立事難分
“몽땅 시든 거친 밭에 홀로 서 있는 일은 어떠합니까?”
“백로가 눈 쌓인 둥우리에 깃든 것은 그나마 가리기 쉬우나, 까마귀가 칠에 뛰어들어서 서 있는 것은 분간하기 어렵다.”
問如何是賓主雙擧 師曰 枯樹無橫枝鳥來難措足
“어떤 것이 손님과 주인을 한꺼번에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마른나무에 곁가지가 없어서 새가 와도 발붙이기 어렵다.”
問終日朦朧時如何 師曰 擲寶混沙中識者天然異
“종일 몽롱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보배를 모래밭 속에 던지니, 알아챈 이는 천연스럽게 이상히 여긴다.”
曰恁麽卽展手不逢師也 師曰 莫將鶴唳誤作鶯啼
“그러면 손을 벌리고도 스님을 만나지 못하겠습니다.“
“학의 울음을 꾀꼬리 소리로 잘못 듣지 말라.”
問圓伊三點人皆重 樂普家風事若何 師曰 雷霆一震布鼓聲銷
“원이삼점은 사람들이 모두 소중히 여기는데 악보산의 가풍은 어떠합니까?“
“우레 소리가 한 번 진동하니 북소리는 저절로 사라진다.”
問停午時如何 師曰 停午猶虧半烏沈始得圓
“한낮을 때는 어떠합니까?”
“한낮이라도 오히려 반은 이지러졌다. 해가 넘어가야 비로소 둥글어진다.”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颯颯當軒竹經霜不自寒 僧擬再問 師曰 只聞風擊響不知幾千竿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삽삽한 마루 끝의 대나무는 서리를 거쳐도 스스로 추위를 모른다.”
스님이 다시 물으려 하니, 대사가 말했다. “다만 바람 소리만 들릴 뿐, 몇 천 줄기인지는 전혀 모른다.”
師上堂謂衆曰 孫賓收鋪去也有卜者出來 時有僧出曰 請和尙一掛 師曰 汝家爺死 僧無語(法眼代拊掌三下)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손빈이 점포를 거두고 떠났으니, 점칠 자는 나오너라.”
이때 어떤 스님이 나서서 말했다. “화상께서 한 괘 풀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집에서 그대의 아버지가 죽었다.”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법안이 대신 손바닥으로 세 차례 내리쳤다.]
問如何是西來意 師敲禪床曰 會麽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선상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알겠는가?”
曰不會 師曰 天上忽雷驚宇宙 井底蝦蟆不擧頭
“잘 모르겠습니다.”
“하늘에서 홀연히 우레가 진동하여 우주가 놀라는데, 우물 안의 두꺼비는 고개도 들지 않는다.”
問佛魔不到處如何辨得 師曰 演若頭非失鏡中認取乖
“악마도 부처도 이르지 못하는 곳을 어떻게 가려냅니까?”
“연야달다는 머리를 잃은 것이 아닌데, 거울 속의 것을 잘못 알았다.”
問如何是救離生死 師曰 執水苟延生不聞天樂妙
“어떤 것이 생사를 여의도록 구원하는 것입니까?”
“물그릇을 잡고 구차히 목숨을 늘리는 자는 하늘 음악의 묘함을 듣지 못한다.”
問四大如何而有 師曰 湛水無波漚因風擊
“4대는 어떻게 해서 있습니까?”
“조용한 물에는 본래 물결이 일지 않거늘 물거품이 바람결에 일어난다.”
曰漚滅歸水時如何 師曰 不渾不濁魚龍任躍
“물거품이 꺼져서 물로 돌아갈 때에는 어떠합니까?”
“섞이거나 혼탁하지 않아서 물고기와 용이 마음대로 뛰논다.”
問生死事如何 師曰 一念忘機太虛無點
“생사의 일은 어떠합니까?”
“일념에 기틀을 잊으니, 태허에 티가 없다.”
問如何是道 師曰 存機猶滯跡去兀卻通途
“어떤 것이 도입니까?”
“기틀을 간직하면 오히려 자취에 막히고, 말뚝을 버리면 통하는 길이 있다.”
問如何是一藏收不得者 師曰 雨滋三草秀片玉本來輝
“어떤 것이 한 창고에다 다 갈무리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비가 북돋우니 세 가지 풀이 빼어나고 옥은 본래부터 빛나고 있다.”
問一毫呑盡巨海於中更復何言 師曰 家有白[狂-王+睪]之圖必無如是妖怪(保福別云 家無白[狂-王+睪]之圖亦無如是之怪)
“한 가닥의 털이 큰 바다를 다 삼킨다는데, 거기에 다시 무슨 말이 있겠습니까?”
“집안에 백택의 그림이 있으니, 반드시 그러한 요괴는 없을 것이다.”
[보복이 따로 말하기를 “집안에 백택의 그림이 없어도 그러한 요물은 반드시 없으리라”고 하였다.]
問凝然時如何 師曰 時雷應節震嶽驚蟄
“응연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때때로 우레가 시절에 응하니, 산봉우리를 흔들고 개구리를 놀라게 한다.”
曰千般運動不異箇凝然時如何 師曰 靈鶴翥空外鈍鳥不離巢
“천만 가지 운동이 이 응연과 다르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신령스런 학은 허공 밖을 날지만, 둔한 새는 둥우리를 여의지 못한다.”
曰如何 師曰 白首拜少年擧世人難信
“그 일은 어떠합니까?”
“백발노인이 소년에게 절하는 일은 온 세상 사람이 믿기 어렵다.”
問諸聖恁麽來將何供養 師曰 土宿雖持錫不是婆羅門
“여러 성인들이 이렇게 오시면 무엇으로 공양하십니까?”
“토숙이 비록 석장을 짚었으나 바라문은 아니다.”
問祖意與敎意是同是別 師曰 日月並輪空誰家別有路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해와 달이 함께 하늘을 구르는데, 뉘 집에만 따로 길이 있겠는가?”
曰恁麽卽顯晦殊途事非一槪也 師曰 但自不亡羊 何須泣岐路
“그렇다면 드러나고 숨음의 길이 달라서 일이 한 가닥이 아니겠습니다.”
“스스로 염소를 잃지만 않았다면 어찌 기로에서 울 필요가 있으랴!”
問學人擬歸鄕時如何 師曰 家破人亡子歸何處
“학인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집도 부서지고 사람도 죽었는데 그대는 어디로 돌아가려 하는가?”
曰恁麽卽不歸去也 師曰 庭前殘雪日輪消 室中遊塵遣誰掃
“그러면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뜰 앞에 남은 눈은 해가 녹이겠지만, 방안에 돌아다니는 먼지 뉘라서 없애랴.”
問動是法王苗 寂是法王根 根苗卽不問 如何是法王 師擧拂子 僧曰 此猶是法王苗
“움직임은 법왕의 싹이요, 고요함은 법왕의 뿌리라 하는데, 뿌리와 싹은 묻지 않겠지만 무엇이 법왕입니까?”
대사가 불자를 드니, 스님이 말했다. “그것도 역시 법왕의 싹입니다.”
師曰 龍不出洞誰人奈何 師二山開法語播諸方
“용이 동굴에서 나오지 않으면 누가 어찌하겠는가?”
대사가 두 산에서 개당한 법어가 제방에 널리 퍼졌다.
唐光化元年戊午秋八月誡主事曰 出家之法長物不留 播種之時切宜減省 締構之務悉從廢停 流光迅速大道深玄 苟或因循曷由體悟 雖激勵懇切 衆以爲常略不相儆 至冬師示有微疾 亦不倦參請 十二月一日告衆曰 吾非明卽後也 今有一事問 汝等若道遮箇是 卽頭上安頭 若道遮箇不是 卽斬頭求活 時第一坐對曰 靑山不擧足 曰下不挑燈
당나라 광화 원년 무오 가을 8월에 소임을 보는 스님을 불러서 경계하였다. “출가의 법에는 물건을 오래 남겨두지 않는다. 씨를 뿌릴 때에는 마땅히 일을 줄이고 살펴서 이리저리 얽어매는 잡무는 모두 멈춰라. 세월은 너무나 빠르고 대도는 깊고 현묘하니, 만일 그럭저럭 보낸다면 어떻게 깨달아 체득할 수 있으랴!” 이와 같이 간절히 격려하였으나 대중은 늘 있는 일이라고 하면서 전혀 주의하지 않았다. 그 해 겨울이 되어서 약간의 병이 났으나 물으러 온 이들을 지도하기에 게을리 하지 않다가 12월 1일에 대중에게 고했다. “나는 내일이 아니면 모레에 떠난다. 이제 한 가지 일을 그대들에게 묻겠으니, 만일 그것을 옳다고 하면 머리 위에 다시 머리를 포개는 것이요, 그것을 옳지 않다고 하면 머리를 끊고서 살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때 제1상좌가 대답했다. “청산은 발을 들지 않고, 밝은 낮에는 등불을 들지 않습니다.”
師曰 遮裏是什麽時節 作遮箇語話 時有彦從上坐 別對曰 離此二途請和尙不問
“이것이 어떤 시절인데 그런 말을 하는가?”
이때에 언종상좌가 따로 대답했다. “이 두 갈래를 떠났으니 화상께서는 더 묻지 마십시오.”
師曰 未在更道 曰彦從道不盡
“맞지 않았다. 다시 말해라.”
“언종도 다하지 않음을 말했습니다.”
師曰 我不管汝盡不盡 曰彦從無侍者祇對和尙 師乃下堂
“나는 그대가 다하든 다하지 않든 상관하지 않는다.”
“언종에게는 화상의 말씀에 대답할 시자가 있지 않습니다.”
대사가 하당하였다.
至夜令侍者喚彦從入方丈 曰闍梨今日祇對老僧甚有道理 據汝合體先師意旨 先師道 目前無法意在目前 不是目前法非耳目之所到 且道那句是主句 若擇得出分付缽袋子 曰彦從不會
그날 밤 시자를 시켜서 언종을 불러다 놓고 말했다. “그대가 오늘 나에게 대답한 것이 매우 도리가 있다. 그대의 말에 의하건대 분명히 선사의 뜻을 체험했다.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눈앞에는 법이 없고 뜻이 눈앞에 있을 뿐이니, 눈앞의 법은 귀나 눈이 미치는 곳이 아니다’라고 하셨는데, 어느 구절이 주인인 구절이라 여기는가? 만일 가려낸다면 의발 주머니를 전해 주리라.”
“언종은 모릅니다.”
師曰 汝合會但道 曰彦從實不知
“그대는 알 것이니, 말이나 해보라.”
“언종은 진실로 모릅니다.”
師喝出乃曰 苦苦(玄覺云 且道從上坐實不會 是怕見缽袋子粘著伊)
대사가 할을 하여 내쫓고 말했다. “괴롭구나, 괴로워.”
[현각이 말하기를 “언종 상좌가 참으로 모르는가, 아니면 의발 주머니에 집착될 것이 두려워서인가?”라고 하였다.]
二日午時別僧擧前語問師 師自代曰 慈舟不棹淸波上 劍峽徒勞放木鵝 便告寂壽六十有五 臘四十六 塔于寺西北隅
그 달 2일 오시에 다른 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들어서 대사에게 물으니, 대사가 스스로 대신 대답하였다. “자비의 배는 맑은 물결 위에서 노를 젖지 않고, 검의 골짜기에서는 헛되이 나무오리만을 놓았다.” 그리고는 이내 입적하니 수명은 65세이고 법랍은 46세였다. 탑은 절의 서북쪽 모퉁이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