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바-후시미 전투 다음날인 1월 4일, 토바 방면의 막부군은 퇴각 후 급히 야전축성을 감행해 사쓰마군과 대치했지만, 어느 정도 안정된 후시미 방면에서 온 사쓰마군에게 측면을 찔려 재차 퇴각을 감행하게 된다. 한편 후시미 방면에서는 전날 어디로 사라졌다가 이제서야 나타난 지원병력이 합류, 호리 강 동안에 진지를 축성하여 사쓰마-쵸슈군과 대치중이었다. 이때 후시미 방면의 막부군은 이때를 반격의 호기로 판단, 우익의 우지 강을 건너 후방으로 돌아 공격하는 작전계획을 입안했는데, 하필이면 지원병력 사령관인 타케나카 시게카타가 작전상담을 위해 후방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각 부대간 연락이 불통되어 이에 따른 혼란으로 후시미 방면의 막부군도 후퇴하게 된다.
1월 5일 막부군은 요도 방면에서 집결, 삿쵸 군대와 교전을 계속하면서 요도 성으로 입성하여 농성할 계획이었지만, 요도 번에서 이를 거부해버리는 바람에 결국 요도 다리를 끊어버리고 남산(男山)과 기슭의 마을인 하시모토(橋本)에서 진을 친다. 그러나 이미 4일에 교토에 공격을 가했다는 이유로 막부측이 조적(朝敵)으로 규정, 조정의 깃발인 니시키노미하타(錦旗)가 나서, 유신군은 신정부군, 또는 관군(官軍)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5일에는 니시키노미하타가 요도의 제1선까지 진출하자 이걸 본 막부군은 사기가 크게 추락하였다고 한다. 6일에는 하시모토 마을로 진입한 신정부군을 신센구미가 매복하여 격퇴하기도 했지만, 쓰번병이 배신하여 막부군에게 포격을 가하자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막부군은 오사카성으로 퇴각한다. 하지만 그때 이미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전함을 타고 에도성으로 떠나고 있었다.
결국 퇴각하던 아이즈번병, 쿠와나번병, 막부육군의 잔당들은 육로를 돌파해서 에도로 퇴각했다. 또 이 교토 근방에서 이어진 전투의 패배와 삿쵸군이 관군이 된 것 때문에 원래 눈치만 보고 관망하던 서국의 여러 번들이 일제히 관군측에 붙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관군은 각 번의 벙력들을 거느리고 기세를 몰아 막부의 중심지, 에도로 진격을 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