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주일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스무 살 갓 넘은 자매가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제게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분위긱가 심상치 않아 급하게 아내와 목양실에 앉아 사연을 들었습니다.
한참을 울던 자매는 감정을 추스리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불룩 나온 배를 보여주며 배 속의 아기가 이제 3주 후면 세상으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나이는 이제 스물한 살, 키가 크고 머리카락이 길어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자매는 배를 쓰다듬으면서 다시 한참을 울다가 이야기 했습니다.
자매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 지는 서너 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사귀던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해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재력이 있는 남자친구는 아이는 미국에서 키우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고, 자매를 미국으로 데려와서 월세 아파트를 마련하고, 출산 용품을 함께 구입하고, 타고 다닐 차도 마련했습니다. 그 후 재산을 정리하러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3주 후면 태어날 아기와 함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하게 살 것을 꿈꾸던 자매에게 주일 아침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웬 한국 여자가 자기 이름을 확인하더랍니다. 본인 확인이 끝나자 대뜸 하는 말이, 남자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아느냐고 했습니다. 잘 아는 사이라고 대답하면서 이유를 묻자, 자신은 남자친구의 아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믿었던 남자친구는 유부남이었고, 미국에서 살자는 말은 거짓이었던 것입니다. 미국으로 데려와서 버리고 간 것입니다. 한순간에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앞날이 막막해진 자매의 머릿속에는 ‘자살’이라는 단어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3주 후면 태어날 아기와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 미국에서 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당장 다음달에 지불할 월세도 없는데 무슨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그날 아침 전화를 끊고 자살을 하기 위해 차를 몰고 그렙바인 호숫가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자매의 눈에 세미한교회 간판이 보였답니다. 그 순간, 문득 ‘죽더라도 예배를 드리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예배당 구석에 앉아 눈물만 흘리고 있는데, 그날 설교 제목이 “죽고 싶을 때”였습니다. 제가 설교 내내 ‘죽지 마라’는 말을 스무 번도 더 했는데, 자매는 그 음성을 하나님의 ‘죽지 마라’는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마친 자매는 눈물을 훔치며 “목사님, 저는 죽지 않을 거예요. 하나님이 살려 주실 거예요. 목사님이 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살게 되었습니다.”하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자매는 죽지 않았고 3주 후 아이가 태어났고, 둘 다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자매가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매는 주님께 피해 온 자였습니다. 쌓아 둔 공로도 없고 청구할 권리도 없지만, 너무 급해서 달려나온 자매를 하나님은 하나님의 날개 밑에 포근히 안아 주셨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쌓아 두신 은혜를 베풀어 살려 주셨습니ㅏㄷ.
지금 당신의 삶이 더도 덜도 아닌 이처럼 급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주저앉아 울지 말고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나오십시오. 하나님은 급하게 달려나온 인생을 향해 절대로 헌금 기록부부터 검사하시거나, 사역 경력부터 훑어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은혜의 날개 아래로 담대히 나오십시오.
최병락 목사, 쏟아지는 은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