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관계의 숙명
『고리오 영감』,오노레 드 발자크, 민음사,1999.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는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작가이다. 프랑스 투르시에서 태어나 소르본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정작 관심은 문학에 있었다. 결국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문학의 길을 걷게 된다. 발자크는 소설로 명성을 얻은 후 자신의 이름에 귀족을 의미하는 ‘드’를 붙여 신분상승의 강한 욕구를 보였다. 사업에도 관심이 많아 출판업, 인쇄업 등에 손대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빚을 갚기 위해 하루 수십 잔의 커피를 마시고 밤을 새며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 『인간희극』은 1789-1848년 2월 혁명까지 프랑스 사회를 담고 있으며 90여 편의 소설을 하나로 연결한 작품이다. 등장인물은 2500여 명이나 되며 근대화 파리의 풍속을 연구하는 주요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희극>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고리오 영감』이다.
『고리오 영감』의 배경은 프랑스 대혁명(1789-1795)이후 왕정복고 체제이다. 소설은 35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당시 파리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의 다양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고리오 영감>은 새롭게 탄생한 부르주아 계층이 귀족사회에 안으로 편승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는지 그 과정들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돈과 사랑과 인간 욕망이 격변하는 사회현상과 얽혀 이야기는 펼쳐진다. 이 작품을 통해 초기자본주의 계층 간 모습도 상상하게 된다.
이 소설은 <보케르의 집>이 주요무대이며, 이곳에 하숙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다락방이 딸린 4층 건물로 1층은 식당과 주방, 2층은 하숙집 주인인 보케르 부인(48세)과 빅토린 타유페르, 쿠튀르 부인이 지내고 있다. 3층은 푸아레 노인과 보트랭(40세)이 지내며 4층엔 미쇼노 양, 고리오 영감(69세), 으젠 라스티냐크(21세)가 사용한다. 하숙집에서 방의 위치는 각자의 경제사정을 드러낸다. 가난한 하숙인들은 서로에겐 무관심하지만 자신의 야욕을 위해 때론 이용하기도 한다. 사년 째 하숙하는 고리오 영감은 한 때 성공한 제면업자였지만 두 딸을 위해 전 재산과 연금까지 모두 팔아 파산 위기에 놓여 있다. 그의 낯빛은 창백하고 모습은 누추해서 마치 감방의 죄수 같다.
이들의 관계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증언하고 설명하는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으젠 라스티냐크이다. 그는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올라온다. 아직 시골티를 벗지 못한 라스티냐크에게 <불사신>으로 알려진 보트랭이 접근하여 입신출세에 대한 지도를 한다. 으젠은 상류귀족 계급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더 빠른 출세임을 직감해 법관이 될 생각을 포기하고 고리오 영감의 두 딸을 이용한다. 보트랭은 거액의 지참금을 가진 빅토린과 결혼하도록 권유하지만 결국 고리오 영감의 둘째딸 델핀을 선택한다. 확실한 선택보다 불확실을 선택한 것이다.
젊은 청년 라스티냐크의 선택에 독자는 주목해야 한다. 그를 통해 인간의 부조리함을 동시에 발견하기 때문이다. 으젠은 “출세만이 이 세상에서 최후의 수단”(p.113) 을 깨닫고 물질만능주의를 향해 움직이지만 고리오 영감과 지내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 아버지의 광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에 반해 딸들은 레몬을 꽉 짠 다음에 레몬 껍질을 길모퉁이에 던져버(p.108)리듯 아버지를 향한 눈꼽 만큼의 애정도 반성도 없다. 이런 모습에 으젠은 양가적 감정을 갖는다. 고리오 영감의 처참한 죽음과 몰락에 측은함을 갖지만 또한 경탄의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고리오 영감의 인생에서 부조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고리오 영감>에서 두드러진 소설적 기법은 대비를 통한 극적인 묘사에 있다. 상류계층의 화려한 대저택과 가난한 하숙집을 대비시키는 요소가 흥미롭게 읽힌다. 또한, 편집광적인 고리오 영감의 부성애와 냉정하게 딸을 내쫓은 빅토린의 아버지의 모습에 각각 다른 부성애를 보게 된다. 또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힘의 세계 보트랭과 야망과 양심에서 갈등하는 청년 의젠, 하루아침에 흉내내기 어려운 귀족계층과 부르조아의 미묘한 차이 등이 드러난다. 이는 당시 파리의 모습을 포괄적으로 짐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발자크는 이 작품을 두고 “괴물처럼 슬픈 작품”이라는 평을 내렸다. 소설을 완성하고 이런 말을 하는 작가의 심정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세계의 비열성과 속물적 이기주의에서 작가는 괴물 같은 인간의 모습을 봤는지도 모르겠다. <고리오 영감>은 결코 쉬운 작품이 아니다. 그럼에도 필독을 권하는 이유는 이렇다. 산업발전과 함께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시각, 성공과 출세욕을 추구하는 인물들, 파리 여성들의 사치와 허영, 지나친 부성애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 인간적 모순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만의 대결이야!”(p.396) 며 마지막 대사를 남기는 라스티냐크냐는 우리들에게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긴다. 그의 선언이 이해관계가 얽힌 욕망의 세계로 뛰어들 것인지 길고 멀지만 양심을 향해 걸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의젠을 통해 우리들의 모습이 비쳐질 뿐이다.
<서평-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