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89:26]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주는...나의 구원의 바위시라-다윗이 언약적 관계에 있는 하나님께 대하여 신앙 고백적으로 선언한 내용이다. 또 이는 언약의 하나님께서 다윗을 친밀한 관계로 대해 주심을 고백한 것으로서 같은 형식이 다윗의 시에 자주 나타난다. 특히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구원하시사 새롭게 하신분,그를 능력으로 보호하시고 또 그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는 최고의 능력자 및 그를 구원하시는 견고한 터전이 되시는 분으로 고백한 것이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 '정사'로 번역된 '미스라'는 '지도자가 되다'는 뜻의 '사라'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통치'를 의미한다. '정사를 어깨에 멘다'는 말은 권위의 상징으로 주어진 금고리나 열쇠를 어깨에 걸친 데서 연유한 듯하다. 기묘자라, 모사라 - '기묘와 '모사'를 구분하여 해석할 수도 있으나, '기묘한 모사' 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는 어느 누구도 감히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계획을 세우실 것이며 그일을 이루실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 신적인 계획의 수립과 성취라는 측면에서 첫째 이름과 둘째 이름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전혀 손색이 없다. '엘 깁보르'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돌아와 부를 하나님의 이름이며,
구약에서 자주 사용되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따라서 이 아이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신성을 소유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 '영존함'은 신성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점은 '아버지'에 놓인다. 히브리식 사고에서 아버지는 아들과 상관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부양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후원자, 보호자 등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아비 아드'는 그의 백성들, 더 넓게는 피조물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평강의 왕이라 - 마지막으로 그는 백성들을 돌보고 책임지는 자로서 '왕'이라 불리운다. 높은 곳에 앉아서 밑에 있는 백성들을 착취하는 왕의 개념은 히브리적이라기보다는 이교적이다. 더 나아가 그는 '평화의 왕'(사르-솰롬)으로 불린다.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평화의 나라이며, 그의 다스림 역시 평화로울 것이다.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온전하라 - 일부 학자들은 이 절을 마지막 대립 명제의 결론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 경우에는 여기에서 말하는 '온전'이란 '사랑의 온전'이다. 그러나 '온전함'에는 훨씬 더 넓은 의미가 들어 있으며, 48절은 본장 전체 대립 명제에 대한 결론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한편 '온전텔레이오스이라는 구약성경의 '탐밈'이라는 말을 반영하고 있다.
이 '탐밈'이라는 말은 희생 동물이 흠(欠)이 없는 것, 즉 하나님께 합당한 것을 말하기도 하고 여호와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 곧 의로움을 의미하기도한다. 이와 연결되는 헬라어 단어는 '성숙한' 또는 '다 성장한'이라고 번역될 수도 있다. 율법이 지향하는 것도 앞의 대립 명제와 관계된 권위있는 율법 해석에서 보여졌듯이 하나님의 온전하심 그 자체인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진정으로 율법과 선지자들을 완전케 하신 분(17절)을 따르는 제자라면 본받아야할 것이 바로 이런 온전함이다. 사실 복음서 기자들은 메시야와 신자들에 관계되는 맥락안에서만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언급한다. 진정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아니라 예수의 아버지이시고 예수의 제자들의 아버지이신 것이다.
따라서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선민으로서 모든 불의한 것으로부터 구별되는 것이 그들의 독특한 표시였던 것처럼(레 11:44, 45;19:2;20:7, 26) 메시야 공동체도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진정한 곳으로서 이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자신있게 예수가, 무제약적인 온전함이 제자들에게 가능 하다고 가르친 거스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예수는 그들이 영적으로 파산하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십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율법이 바라던 종말론적인 목표인 아버지의 온전함을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추구하여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