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神話로서의 詩
원시인들은 동굴 속에서 겨울을 보낸 穴居人들이었다. 그들은 동굴에다 갈무리 해놓은 식량으로 겨우내 버텨낼 수 있을지의 여부가 가장 근심거리였다. 계절의 순환을 기록해놓은 달력이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근심스러웠던 것은 정녕 봄이 다시 올 수 있을까의 여부였다.
그러니 봄의 부활을 알리는 첫 날이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이제부터 그들은 다시 따스해질 수 있게 되었고, 동굴 밖으로 사냥을 나갈 수 있게 되었고, 그 이후 농경시대에는 들판으로 다시 나가 씨를 뿌리고 결실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굶주림을 염려하지 않게 되었다.
겨울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이 간절한 소망, 그리고 날씨가 다시 따스해졌을 때의 이 기적 같은 안도감이 메아리처럼 번져나간 게 바로 詩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우리의 혈통을 통해 번져온 유전자였으며,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그토록 많은 훌륭한 시가 봄에 관한 시였다는 사실의 이유가 된다.
원시인들은 우선 자연의 순환을 擬人化함으로써 두뇌 속에 각인시켰다. 다시 말해서 사납고 추운 날씨와, 따스하고 온화한 날씨를,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자연 세력의 대결로서 파악했다. 즉 봄의 날씨를 생명의 세력으로서, 그리고 겨울의 날씨를 죽음의 세력으로서 擬人化했다.
그래서 이 擬人化를 통해 원시인들은 神話를 만들어냈다. 이 신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신화가 페르세포네(Persephone), 플루톤(Pluto), 케레스(Ceres) 등의 인물로 의인화한 신화이다. 식물의 성장을 표상하는 처녀 페르세포네는 地下에 있는 冥府의 神 플루톤에게 납치되었다. 이 플루톤은 地上을 다스리는 제우스(Zeus) 신의 동생이기도 했다.
페르세포네의 모친이며, 大地를 표상하는 케레스가 제우스 신을 찾아가 자기 딸을 돌려달라고 읍소했다. 제우스 신이 동생인 플루톤에게, 너 왜 남의 귀한 딸을 납치해갔냐고 꾸짖었다. 플루톤은, 형님은 地上에서 온갖 美姬들의 시중을 받으며 매일같이 豪奢를 누리며 사는 터에, 자신은 地下의 冥府에서 死者들의 해골들 틈에서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고 항변했다.
동생의 항변을 듣고 보니, 그도 일리가 있는지라, 제우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즉 동생이 6개월 동안은 페르세포네를 데리고 살고, 나머지 6개월 동안은 地上으로 올려보낸다는 타협안이었다. 식물의 성장을 표상하는 이 페르세포네라는 처녀의 줄거리는 후세 시인들의 상상력을 무한히 사로잡았다. 그래서 해매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철을 두고 서양의 무수히 많은 시인들이 갓 피어난 꽃 한 송이, 혹은 자신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미인의 到來로 노래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우리 한국 詩의 전통에서 이 계절의 순환에 가장 예민하게 感應했던 시인은 역시 未堂 徐廷柱였다. 우리에게 그는 ‘菊花 옆에서’라는 시를 통해, ‘가을’과 ‘菊花’의 시인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가 청춘 시절에 쓴 ‘입마춤’이라는 시를 통해, 봄철에 그가 겪었던 짐승스럽고 숨 가쁜 욕망의 재촉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작구 다라나고
울타리는 막우 자빠트려 노코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
사랑 사랑의 石榴꽃 낭기 낭기
하누바람 이랑 별이 모다 웃숩네요
풋풋한 山노루떼 언덕마다 한 마릿식
개고리는 개고리와 머구리는 머구리와
구비 江물은 西天으로 흘러 나려. . .
땅에 긴 긴 입마춤은 오오 몸서리친
쑥니풀 지근지근 니빨이 허허여케
즘생스런 우슴은 달드라 달드라 우름가치
달드라
첫 행부터 ‘가시내두’라는 呼格을 네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은, 수컷으로서의 話者의 욕망이 얼마나 불같이 달아오른 상태인가를 소리와 律格으로써 그대로 암시해준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역할은? 고년은 피신하는 척하면서 더 은밀한 ‘콩밭 속으로만’ 자꾸 달아나면서도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재촉을 해댄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무너뜨리는 ‘울타리’는 봇물 같은 욕망에 의해 순식간에 허물어질 수 있는 道德律의 상징이다. 이것이야말로 논리 이전의 토종 아담과 이브의 널뛰기의 리듬이다.
두 남녀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세계도 토종 創世記의 세계이다. 즉 거기에는 ‘石榴꽃’이 여성 性器처럼 벙그러져 있는가 하면, ‘바람 났다’는 土俗語에서 암시되는 바람 같은 욕망의 흔들림, 또한 ‘풋풋한 山노루떼’와, ‘개구리는 개구리와’ ‘머구리는 머구리와’ 등속이 어우러져 있는 生殖의 세계이다.
드디어 결미부에서 길고도 긴 입맞춤의 종말이 벌어지면서, 그 입맞춤의 대상인 계집은 ‘땅’으로 둔갑되는가 하면, 몸서리치는 戰慄과, 하도 달콤하고 짜릿해서 울고 싶을 정도의 짐승 같은 쾌감으로 끝을 맺는다.
附記: 근일이형의 1차적이고 감각적인 詩的 상상력은 늘 나의 2차적이면서 이론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또 습관대로 이론화의 토를 이렇게 달아놓았지만, 역시 이번에도 전문성의 과시라는 눈 흘김을 받지 않을까 두렵기만 하다.
첫댓글 전문성의 과시라는 눈 흘김이라니, 당치도 않소이다.
이교수의 이런 격조 높은 평론으로 인해서 우리 이목의 품위가 한결 높아질 뿐만 아니라.
회원들의 문학적 소양도 고양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마추어로서 이교수와 같은 전문평론가의 논평을 받는 것이 크나큰 영광이라오.
이교수의 2차적이면서 이론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평가는
나에게는 과분하면서도 그 어떤 칭찬보다 듣기 좋소이다.
남녀 관계에 있어서~~~
올가즘에 이르렀을때- 짓는 표정은
웃는것인가? 우는것인가? --이에 대하여 역사적, 신화적, 시적, 음성학적, 미학적, ---등으로 경수형의 생각을 듣고싶소.
왜? 크라이막스에 사람은 우는것인가? 항상 궁굼했던 사항이오. 논문은 10일 이내에 제출하시오.
예, 잘 알았습니다. 며칠 내로 제출하도록 해보겠습니다. 누구의 명령이라구.
남재형, 부라보!!!, 이교수가 그렇챦아두 학기초, 덜바쁜때라 우리들 입맛도꾸는 山草루 미식한번 허게 생겻꾸랴.
숙제가 5번에 걸쳐, 이번주엔 역사학적인 분석으루 시작 허신다니 얼마나 벌써 맘이 들뜨는지요,,,,,
우리 동토에서 동면겸 집쌔기꼬며 홧툿장이나 뒤집는 무지랭이들 헌텐, 이거이 보통 껀이 아니우다. 기대, 흥분, 기대, 흥분,,,,
남재형, 우리 실컺 눈 흘키구 쫍시다. 잔치가 커졌다 필(feel)이 드는군요.
멍구형 5번이 아니외다
분석글을 분석한후 여기에 생물학적(생태학적),인류학적, 문화적, ---등등 으로 더 요구할것임니다.
바람에 들뜬 가시내보다 더 강열한 봄 기다림은 아마도 우리 ROTC 수십명이 3월이믄 제대될꺼라구 목을 빼구 기다리던 1968년 봄 일꺼웨다.
결국 김신조 & 프에블로루 봄제대는 파투가 나버렸꾸 두번째 양구-인제의 진달래, 철쭉으로 타결을본 봄, 그 봄이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