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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마음을 주제로 한 릴레이 강의를 보고 있다. 지난 몇 주 동안 최면을 다루었다. 최면은 어떤 것인가 최면은 어떻게 걸리고 또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많이 해소되었을 것이다. 물론 TV라는 매체를 통해서 강의를 들으면 현장에서 직접 지도 받는 것보다 효과가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장에 직접 참여해서 지도 받기 어려운 여러 가지 현실적 여건을 감안하면 그렇게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궁금증도 해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앞에서 여러 차례 말한 대로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경험이 되고 신기하다 최면에 걸려봤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난 잘 안되더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험은 앞으로 강좌가 지속되는 동안 비슷하게 있을 것이다. 경험이 적게 되거나 잘 모르겠다 하는 분은 반복 연습하고 제대로 몰입하면 효과를 보거나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다시 보기가 되어 있으니 인터넷을 통해서 반복 연습하길 바란다.
오늘은 13강의 주제로 지난번 최면에 관한 내용에 이어 더 세분화해서 깊이 들어가 보고 그 최면 연습과 실습한 것을 실제로 자기에게 적용해서 실질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도록 진행하겠다. 오늘 주제는 ‘자기 최면과 이미지 트레이닝의 원리'이다. 최면을 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하는 것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TV 강의 특성상 여러분이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최면을 할 정도로 배우고 익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힘들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이 강의가 마음특강이지 최면 특강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깊이 들어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이 실제로 여러분에게 직접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차원에서 원리나 방법을 소개하고 여러분이 강좌를 들으면서 다른 사람보다 여러분 자신에게 적용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쪽에 초점을 맞춰 말하겠다.
이번 주만으로는 시간이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이번 주와 다음 주에 걸쳐서 연속된 내용이 될 것이다. 어쨌든 ‘자기 최면과 이미지 트레이닝의 원리’라는 주제를 다뤄보겠다. 이런 말이 있다. ‘모든 최면은 자기최면이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최면이라고 하면 타인에게 해주는 쪽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런 최면을 타인 최면이라고 한다. 최면에는 타인 최면도 있지만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자기 최면도 있다는 것을 이번 시간에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타인 최면도 남에게 해주는 최면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조차도 자기 최면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무리 상대방에게 최면을 건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자기 최면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말을 물가로 데리고 갈 순 있어도 말이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결국은 말이 물 마시고 싶은 욕구나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 스스로가 물을 마시고 싶다는 것이 자기 마음을 움직이는 자기 최면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최면은 최면을 건다고 무조건 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상대방 스스로가 내가 최면에 걸리고 싶다는 의지와 함께 최면에 걸리는 조건을 갖출 때, 즉 자기 최면적인 조건이 될 때 타인 최면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최면에 걸리는 조건을 갖춘다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자기 최면이라는 말이 부담스럽다면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 말은 어떤가?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고 많이 쓰는 보편적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스포츠 선수들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한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많이 알려진 상식이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라 하면 비교적 낯익은 단어와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자기 최면이라고 하면 조금 부담스럽거나 낯설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기 최면이라는 말 대신에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 말을 쓰면 조금 더 쉽게 접근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상 내용상으로 볼 때 자기 최면이라는 것이나 이미지 트레이닝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잘 하려면 결국은 자기 최면의 원리가 잘 반영되어야 하고, 또 동시에 자기 최면을 한다는 자체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결과이기 때문에 이 둘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인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 세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태도를 바꾼다는 것, 그것은 결국 마음을 바꾼다는 것이다. 결국은 마음을 바꿈으로써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일체유심조’이다. 물론, 우리가 이 마음 특강 시리즈 첫 날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만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마음에 따라서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결정된다는 얘기는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윌리엄 제임스라는 분이 굳이 이런 말씀을 한 것은 제가 볼 때 아마도 과학 기술이 지배하는 서양의 문명 속에서 마음의 중요성이나 무게를 학문적으로 심리학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인정한 얘기가 아니겠느냐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시다시피 서양 문명이라는 것이 엄격한 과학적 실험과 조사를 통해 객관적으로 검증되는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과학주의라고 볼 때 마음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그런 추상적일 것일 텐데, 그런 상황에서 윌리엄 제임스는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 생각을 바꾼다는 것도 되고 마음을 바꾼 다는 것도 되는 것인데 그것이 자기 최면의 원리도 되고 이미지 트레이닝의 원리도 될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너나 할 것 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다. 오늘 어떤 일이 있을 때 그 일이 잘 될까 잘 됐으면 좋겠다 잘 되지 않으면 어떡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는데 그 생각이 때론 희망이 되기도 하고 바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생각이 걱정이 되기도 하고 불안이 되기도 한다. 제가 처음에 불교TV로부터 특강의 제의를 받고 두 가지 생각을 했다. 그 중 하나는 ‘잘 됐다. 내가 가진 생각과 내가 그 동안 연구하고 가르치고 상담하고 해왔던 것을 더 많은 분에게 소개할 좋은 기회가 왔구나’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잘 되야 할 텐데 잘 못하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중요한 프로그램을 잘 못하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이랄까요 두려움이라는 게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전자와 후자 중에서 후자를 따라갔다면 아마 오늘 이 자리는 성사되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분은 이 시간에 이 매체를 통해 제 강의를 듣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전자의 마음이 압도적으로 컸기 때문에 지금 당당하게 여러분 앞에서 강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불안은 ‘내가 불안해야지 두려워해야지’라고 해서 올라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불안하고 싶지 않고 두려워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 감정이 불쑥 올라오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불안하지 않으려고 막 의지를 발휘하고 태연해지려 노력한다. 그런데 그 의지가 과연 힘이 있고 나를 컨트롤하는데 도움이 될까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에밀 꾸에는 원래 약사이다. 에밀이 손님에게 약을 팔면서 많은 것을 느꼈는지 다음과 말을 남겼다. “의지는 생각을 이겨낼 수 없을 뿐 아니라 설사 의지가 발휘된다고 하더라도 생각은 그 의지를 삼켜버린다.” 그러니까 의지와 생각이 싸우면 의지가 이길 것 같지만 사실은 생각이 이긴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각은 단순히 우리의 사고를 말하는 것도 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의지가 아닌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다. 감정이나 마음에 관한 것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의지는 문자 그대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의지와 생각이 싸우면 생각이 이긴다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는 불안에 끌려가고 우울한 감정에 끌려가고 걱정에 끌려가고 두려움에 끌려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이 우리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그 세 살 버릇은 여기서 말하는 생각에 관련된 것이다. 마음이고 버릇이고 무의식에서 형성된 것을 말한다. 이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는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나의 감정, 생각, 마음 이런 것들은 내 평생을 지배한다 이런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작심삼일’에서의 작심은 의지를 의미한다. 그 결심은 생각보다 힘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결심을 하고 작심을 하곤 하지만 그것들을 실행에 옮겨서 끝까지 가는 예는 생각보다 적다. 우리는 여기서 의지와 생각이 싸울 때 의지가 생각보다 힘이 없고 생각이 의지를 삼킨다는 것을 기억해둬야 한다.
에밀은 손님에게 약을 주면서 하는 말이 약만 먹지 말고 다음과 같은 말을 생각하고 되풀이하란 말을 했다. ‘나는 모든 면에서 날마다 좋아지고 있다.’라는 자기 암시를 되뇌이라고 가이드를 했다는 겁니다. 약 사와서 약 먹으면 되지 뭐 쓸 데 없는 것을 시키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에밀 꾸에를 자기 최면의 선구자로 볼 수 있다. 에밀 꾸에는 1800년대 약을 팔면서도 손님에게 자기 최면의 원리를 가르쳤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약도 좋지만 내 마음이 중요하다,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회복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손님에게 가르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나한테 최면을 건다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최면을 걸어서 내 무의식에 나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심어준다고 볼 수 있다.
‘나비 효과’는 1961년에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라는 기상학자가 발견한 또는 주장한 일종의 원리이다. 컴퓨터에서 어떤 작업을 하다가 기상에 관련된 자료를 입력하다가 소수점 6자리까지 나오는 복잡한 수치를 계속 입력해가다 보니 귀찮은 생각이 들었는지 아주 작은 영향밖에 미치지 못하는 소수점 끝을 반올림을 시켜버렸다. 그리고 잠깐 자리를 비우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머리도 식히고 들어왔는데, 그 결과가 너무나 다르게 나온 것이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결과가 생겼나 하며 찾아보니 소수점을 반올림한 것들 때문이었다. 각각의 자료에 하나하나는 큰 변화가 없지만 무시할 만한 많은 것이 모여 큰 결과를 만들더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한 번 하는 것이 뉴욕에 폭풍을 불러낸다는 것이다. 우리 말에도 유사한 말이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처마 밑에 떨어지는 낙숫물에 바위 구멍이 뚫린다.” 등은 다 비슷한 말이다. 그러니까 작은 것이 큰 변화를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누구나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서 변화가 필요할 수 있고 누구나 좀 더 나은 자기를 만들어 가고 좀 더 건강한 자기를 만들어 가고 좀 더 성공하는 삶을 사는 자기를 만들어 나가기를 꿈꾼다. 누구나 그렇게 꿈꾸고 하지만 큰 것을 한꺼번에 하겠다고 생각하면 참 어렵다. 그리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리고 너무 큰 것을 앞에 두면 기가 질려서 시도도 못하고 주저앉아 버릴 수 있다.
이럴 때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하면 그것이 나중에 나비 효과처럼 돼서 인생 전체를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 하나 하는 것이 나비 날갯짓일지도 모릅니다. 생각 하나 하는 것 그것이 소수점 6째 자리 반올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 하나 하는 것이 가랑비 한줄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생각 하나가 우리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에 영향을 미쳐서 그것을 변화시키는 데에 기여를 한다면 생각 하나 바꾸는 것을 주저하겠는가? 이게 이제 자기 최면이나 이미지 트레이닝에 대한 필요성과 당위성을 말해주는 논리이다.
헬렌 켈러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과 청각, 언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이 분이 하버드 대학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설리반이라는 훌륭한 선생님이 있었다는 말이다. 설리반 선생님이 헬렌 켈러를 지도한 원리가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또 말도 못하는 헬렌에게 물을 만지게 하고 꽃을 만지게 하고 향기를 맡게 하고 물의 맛을 보게 하고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물의 이미지를 그리게 하고 꽃의 이미지를 그리게 하고 맛의 이미지 소리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도록 계속 자극을 준 것이다. 헬렌에게 자기 최면이 되도록 이끈 것이다.
요즘 스포츠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유명한 스포츠 선수 중에서 자기 최면이라든지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든지 이런 것을 활용한 그런 선수가 많다. 그 중에 대표적으로 전 국민이 다 아시는 장미란 선수를 꼽을 수 있다. 세계적인 여러 대회에서 늘 신기록을 제조하는 대단한 선수인데 장미란 선수는 자기 최면 또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잘 활용한다고 한다. 이 장미란 선수는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자신이 역기를 들어 올릴 때의 그 모습을 상상하고 목표량을 들어올려서 성공하는 그 모습을 아주 잘 상상하고 그 장면을 마음의 눈으로 보고 그때 근육의 힘을 마음의 힘으로 느낀다. 또 그때 관중이 박수치는 장면을 상상으로 마음의 귀로 듣는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실제로 마음속에서 역기를 번쩍 들어올리는 상상 연습을 반복했다. 그것이 실제로 경기력 향상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그게 실제로 그렇게 되겠냐고 하며 잘 믿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농구팀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것이 있다. 선수들을 3개 팀으로 나뉘어, A팀을 슈팅 연습을 했고, B팀은 연습을 하지 않았으며, C팀은 매일 30분간 마음속으로 공을 던져 득점하는 장면을 상상하고 마음으로 그리도록 그렇게 시도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후에 3개 팀의 실제 득점 향상 정도를 알아봤다. 결과는 당연히 아무 연습을 하지 않은 B팀은 성적에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A팀과 C팀은 25% 정도의 실력 향상을 보인 것이다. A팀이 향상 효과를 보인 것은 이해가 가지만 C팀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상만 하였다는데 어떻게 향상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이 실험을 자기 최면과 이미지 트레이닝의 효과를 확인 받을 수 있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실제로 상상하고 상상 속에서 연습하는 것이 단순한 상상으로 끝나지 않고 몸과 경기력이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입증이 된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생각은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하나의 실험으로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이제 자기 최면을 한다는 것은, 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는 것은 자기 몸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고 자기 마음에게 자기가 원하는 바를 말해주고 그렇게 되도록 시키는, 그러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최면을 유도하듯이 ‘나’라는 다른 대상에게 필요한 것을 이룰 수 있도록 최면을 걸고 유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헬렌 켈러가 물을 만지면서 물의 이미지를 그리도록 선생님이 시도하고 유도했듯이 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그 향기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도록 유도하고 지도했듯이 우리가 지난 시간에 최면 연습을 할 때에 두 손이 붙는다.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상상하면서 그렇게 내 마음에 지시하고 지도했듯이 그렇게 했을 때 실제로 효과를 볼 수 있었듯이 내가 나에게 그렇게 지시하고 명령을 내리도록 할 수 있다면 정말로 그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번 두 번이 아니고 반복해서 한다면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나비효과처럼 실질적으로 누적된 효과가 내 마음의 변화, 몸의 변화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생각할 수 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는 자기 최면의 원리를 활용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의 원리를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된다, 안 된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비 효과가 소수점 하나 고쳤다고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가랑비 하나 맞았다고 옷이 젖지는 않지 않는가? 그러니까 반복해서 상상과 이미지를 그리고 또 스스로 자기 마음속에서 지시를 내리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우리는 자기 최면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오늘은 비교적 원론적인 차원에서 자기 최면이나 이미지 트레이닝의 원리를 말했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려서 자기에게 필요한 어떤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고 그 이미지를 만들고 상상하고 연습하는 그런 것이 자기 최면과 이미지 트레이닝의 원리라고 볼 수 있는데 오늘은 이 정도로만 말하고 그렇게 하는 구체적인 것은 다음 시간에 자세히 알아보도록 할 것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여러분이 제 강의를 통해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조금이라도 변화가 일어나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안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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