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4일
화개장터&독일마을&금산보리암
화개장터는 옛 화개장 터에 현대에 들어와 복원한 재래식 시장이다. '화개시장'이라고도 부르지만 옛 명칭을 그대로 써서 '화개장터'로 부르는게 일반적이며, 공식 명칭 역시 '화개장터'이다. 화개장은 본래 화개천이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열리던 장으로, 섬진강의 ‘가항종점(可航終點)’ 즉 행상선(行商船) 돛단배가 들어올 수 있는 가장 상류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으로 인해 이곳에 대규모의 장터가 들어서게 되었다. 화개장은 영남과 호남의 경계에 있으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소속되어 있고, 5일마다 정기적으로 장이 섰다. 조선 시대 때부터 중요한 시장 중의 하나로 주로 지리산 일대의 산간 마을들을 이어주는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옛날에는 섬진강의 물길을 주요 교통수단으로 하여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이 시장에 모여, 내륙에서 생산된 임산물 및 농산물과 남해에서 생산된 해산물들을 서로 교환하였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총무고생!!!
화개개장터에 있은 목포집
차안에서 섬진강
△▽남해대교
1960년대에 산업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되어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독일거주 교포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제공해주고, 독일의 이국문화를 경험하는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2001년부터 조성한 곳이다. 경상남도 남해군은 사업비 약 30억 원을 들여 40여 동의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택지를 독일교포들에게 분양하고, 도로·상하수도 등의 기반시설을 마련해주었다.
(두산백과)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로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 이름을 보광사라고 했다. 훗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 왕조를 열었다는데, 그 감사의 뜻으로 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으로 바꿨다. 금산의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보리암은 금산의 온갖 기이한 암석과 푸른 남해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경내에는 원효대사가 좌선했다는 좌선대 바위가 눈길을 끌며, 부근의 쌍홍문이라는 바위 굴은 금산 38경 중의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낙산사 홍연암, 인천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로 신도들이 연일 줄지어 찾고 있다.
(네이버지식)
보리암 가는 뻐스타기
▲▼보리암에서 보는 금산
* 문화재*
보리암전 삼층석탑(경남 유형문화재 74호) - 신라시대의 석탑과 유사하나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도하는 마음
즐거운 하루
첫댓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말 하동사람 뒷마을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 번 와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건 다 있구요,....
- 조영남의 화개장터에서 -
꽃피는 봄날에 느긋한 남도여행, 퍽 낭만적으로 느껴집니다.
섬진강도 변함없이 흐르겠고, 금산의 보리암도 그립습니다.
어려운 우리 경제에 이바지했던 분들의 귀향 독일마을도 평화스럽게 다가옵니다.
진산명산님의 신발차림이 인상적이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