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흐름에 따라 세상은 변하게 되어 있고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누구에게나 피해 갈 수 없는 통과의례요 신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바위도, 산도 변하고 만물 중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길어야 백 년, 너무 빨리 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야 고분군
이렇게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게 제일 먼저 확실하게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머리칼이다. 머리칼이 하얗게 물들고 눈썹도 하얘져서 내가 나를 보아도 어느새 이렇게 변했을까 하고 되물어 보고 싶다. 한때 조순 경제 부총리의 하얀 눈썹을 보고 산신령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던 일이 기억나는 순간이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그런대로 숱이 있고 모발도 봐줄 만하여서 한 때 유행하던 장발을 했던 때가 그리워진다. 그런데 지금은 백발이 성성하고 모발이 가늘어지고 숱이 적어지면서 머리 밑이 훤히 보이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지난날들에 대한 그리움을 지울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다가 요즘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대머리를 떠올리며 이만해도 볼만하구나. 참으로 다행이구나. 감사해야지 하고 자위하곤 한다.
시력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보통 시력이 2,0인데 나는 지금 1,8정도가 되니 우리 나이에 비해서 나쁜 편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두 눈이 똑 같지를 않고 오른쪽 눈의 시력이 조금 떨어져 외짝 눈이 되었다. 그러나 신문은 그냥 보지만 작은 글씨 보기가 힘들어서 돋보기를 쓰는 것이 훨씬 편하고 성경 필사를 하거나 통독을 할 때는 항상 옆이 두고 사용해야 하니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돋보기를 끼고도 못 끼는 바늘귀를 내가 끼어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혈압은 젊은 시절부터 높아서 신경이 쓰였지만 아무 조치나 처방을 하지 않은 탓으로 21년 전에 뇌졸중이 와서 병원 응급실로 가서 입원 치료를 하고부터는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혈압약을 복용하고 유산소 운동을 하며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 의사 선생님의 지시를 잘 이행하여 아무 탈 없이 지내게 된 것은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며 제일 신경 쓰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유치환 생가
무릎 관절도 한때 좋지 않아서 간간이 불편함을 느끼곤 했는데 열심히 등산을 한 덕분인지 지금은 아무 지장이 없이 걷거나 산행을 자유롭게 하고 있으니 운동만한 치료법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피부도 점점 거칠어지고 탄력이 떨어지니 내가 보아도 확연히 달라진 피부, 건 버짐과 사마귀가 제 집인 것처럼 양 손등에 의젓이 자리를 잡고 있다. 샤워를 하고 거울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낯선 노인이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할 때가 있다. 젊은이들의 싱싱하고 탄력 있는 피부를 보면 많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이마에 가로로 굵게 그어진 주름살은 오래되어 언제부터인지도 알 수가 없고 눈언저리와 입가의 주름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살다가 나이가 들면서 스킨이나 로션을 챙겨서 바르며 저녁에 자기 전에는 안식구가 주름을 막아 준다는 화장품을 발라주어 순순히 따르고 있는데 글쎄 효과는 어떨지?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다리에 힘이 빠지니 걸음걸이가 시원찮고 무거운 것을 들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기억력인 것 같다. 내 스스로 머리가 좋지는 않지만 기억력은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한해 두해 세월이 가면서 기억력이 점점 줄어들고 쇠퇴하는 것을 간간이 느끼면서 한 편으로는 아직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자위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젊은 날의 기억력에는 도저히 미칠 수 없고 특히 아이들을 가르칠 때의 기억들이 이제는 거의 지워진 것 같아서 허전해지기도 한다. 금방 듣고 돌아서면 생각이 잘 안 나고 며칠이 지나면 옛 이야기처럼 까마득한 경우가 많으니 한 살을 먹을 때마다 세포가 수 만개씩 사라진다는 것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현실을 그대로 수긍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스스로 깨닫는다. 나는 웬만해서는 잘 잊어 먹지 않고 계획한 것은 착실하게 실천하는 편이었는데 다 옛말이 된 것 같다. 조금 전에는 핸드폰을 가지고 계산을 하다가 그 자리에 놓고 일어나서 잠시 다른 일을 보려고 하다가 생각하니 핸드폰이 호주머니에 보이지 않아서 어디에 두었지 하고 찾다보니 바로 눈앞의 책상에 계산기를 켜놓은 채 나를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3년 전에 북유럽 여행을 하는 중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크루즈 선을 타고 스웨덴의 오슬로항에 내리려고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는데 여권과 달러가 든 가장 소중한 백을 두고 나온 것을 다행히 아내가 보고 가지고 나와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밟고 나왔는데 큰 백을 찾으려고 기다리는 곳에 작은 백을 두고 나온 것이다. 다시 들어가려고 하니 수속을 밟아야 하고 검색대에 여권 가방을 맡겨 놓고 들어가서 가방을 찾아 나와서 집에 무사히 도착을 하여 카메라와 여권, 돈이 든 작은 백을 챙기는데 보이지 않아서 잠시 생각해보니 검색대에 맡겨놓고 그냥 나왔던 것이다. 세 번이나 연속적으로 실수를 하고 나니 내가 왜 이러지 하며 혼자 쓴 웃음을 지었다.
30대의 젊은 시절
어느 날 샤워를 하고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을 보면서 배만 뽈록 나오고 가슴팍의 근육은 탄력을 잃었고 피부 전체가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이 전형적인 노인의 몸매를 보면서 역시 나도 남들과 별 다를 바가 없고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하며 혼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잔병치레를 자주 하게 되는 것이 역시 나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화력은 현저히 떨어져서 조금만 과식을 하여도 금방 탈이 나고, 작년 말에 건강 검진을 하면서 알게 된 담석도 새롭게 생겨난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지금은 우루사로 다스리고 있는데 상황이 어떤지는 알 수가 없다.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전립선 비대증이다. 십여 년간 약을 먹었는데도 속절없이 자라서 지금은 평균치의 세 배 정도가 되고 수시로 소변을 보아야 하는 것은 물론 자다가도 두세 번씩은 일어나야 하는 불편함을 달고 살아야 하니 보통일이 아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래서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하니 이것저것 검사하는 종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멀리 분당까지 몇 번을 다녀야 하는 일도 힘들고 귀찮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평생 불편함을 달고 사는 것보다 잠시 힘들어도 원인 제거를 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11월12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4일간 입원치료를 받고 15일에 퇴원을 하여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다. 며칠간은 심한 운동은 하지 말라고 하여 집 안에서 지내며 수술로 인한 몸속의 피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2L의 물을 먹어야 한다고 하여 하루에 1,5L 정도의 물을 마시고 수없이 소변을 보면서 빨리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바라기는 앞으로는 정상적인 배뇨작용으로 활기찬 생활과 밤잠도 편하게 잘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내 원래 키는 172cm로 같은 또래에서는 빠지지는 않는 그런대로 보기 좋은 키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 키를 실제보다 크게 봐 180cm가 되느냐고 묻는 분들이 꽤 있었다, 그렇게 잘 봐 주니 나쁠 것도 없고 또 거짓말 할 까닭도 없어서 사실대로 말하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는 중에 키를 쟀더니 171cm가 나오는 것이다. 잘 못 재어서 그런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분명히 제대로 쟀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니 내 키가 1cm나 줄었다고? 멀쩡한 사람의 키 1cm가 어디로 갔단 말인가? 흔히들 나이를 먹으면 몸무게는 물론 키가 줄고 모든 게 줄어든다던데 나도 나이가 들어서 이제부터 키가 줄기 시작한 것인가. 몇 년 전에 손주를 돌보면서 매일 걸레질을 하고 빠느라고 손의 지문이 사라진 적이 있었는데 이제 키도 조금씩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여주 영릉(세종대왕 릉)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태백)에서 4행시 낭독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흔히들 말하기를 현대 사회를 나노시대라고 한다. 머리카락 팔만 분의 1의 크기를 1나노라고 한다는데 그 정도가 얼마인지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미칠 수 없는 경지지만 그런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나의 키 1cm는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그런데 그 대단한 것이 언제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과연 칠십여 년을 지켜온 내 키 1cm는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