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C 성서연구 - 제21강 열왕기하 남북왕조의 형성과 멸망
(34) 과감한 용기와 확고한 순종 열왕기하 18장 1-12절
오늘부터는 유다왕 히스기야입니다. 유다왕 히스기야는 요시야왕과 더불어 선한 왕으로 평가를 받는 왕입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 아하스가 취했던 친앗수르 정책이나 우상숭배행위를 본받지 않고,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고 종교개혁에 힘을 쏟았습니다. 앗수르 왕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그와 하나님은 함께 해주셨고, 형통함의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주신 본문 가지고 히스기야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의 모습을 함께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모습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일까요?
첫 번째는, 하나님을 향해 품었던 과감한 용기입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며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 히스기야는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기록됩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왕하18:3-4,5)
여러분 그의 전후에 이렇게 용기를 내어 정직하게 행한 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산당은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라지지 않고 곳곳에 존재해온 제사처소로, 백성이 성전 중심의 제사를 경시하게 되고 우상을 섬기게 만드는 원인이 되어왔던 것입니다. 히스기야 전후 선한 왕들이 간혹 세워져 왔었지만, 그들이 끝내 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산당을 없애는 일이었는데, 오늘 히스기야가, 25살에 왕위에 오른 어린 왕이 과감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모든 산당을 제거합니다. 또한 아하스에 의해서 닫혀버렸던 성전의 문을 열고 성전예배를 회복했던 것이지요? 성전을 성결하게 하고, 성전의 파손된 기물들을 복구하고 새롭게 했던 것입니다. 그 중에 주목해볼만한 굵직한 사건이 바로 모세의 놋뱀을 부숴버린 일입니다.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왕하 18:4)
누구든지 쳐다보기만 하면 불뱀의 독이 치료되었던, 그 놋뱀이 광야와 가나안 전쟁을 거쳐 오늘 히스기야 시대까지 사람들이 와서 분향하는 우상이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그 놋뱀에 무슨 능력이 있는 양 놋뱀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히스기야는 그 놋뱀을 부숴버립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느후스단, 쓸모없는 놋조각이라는 이름을 붙여버렸던 것이지요. 하나라도 하나님 외에 마음을 쏟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남겨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히스기야는 한 때 위대한 구원 도구였던 놋 뱀마저도 위험한 우상이 된 것을 놓치지 않고 분별하여 과감히 그것을 제거했습니다. 대단한 믿음의 용기입니다. 바른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야 하고, 자기 안에 있는 욕심의 똬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답습하거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을 붙들고 결단력을 발휘하며 세상을 거슬러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나이를 불문하고 오늘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에게 다시금 불일 듯 일어나길,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의 산당이 제거되고 주상이 깨뜨려지고 목상이 찍히고 놋뱀이 부서지는, 성전이 회복되고 성결케 되고 예배가 갱신되는 복된 역사가 일어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은 분명하고 확고한 하나님을 향한 순종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주신 형통을 누렸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의지한 까닭입니다. 5절을 다시한번 읽어볼까요?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왕하18:5-6)
오늘 본문 5절의 ‘의지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가 바타흐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신뢰하다 확신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6절의 ‘연합하여’라고 번역된 다바크라는 단어는 입속의 혓바닥이 입천정에 붙어있는 형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입속의 혓바닥이 입천정하고 얼마나 가까이 있습니까? 늘 가까이 있고 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찰싹 붙어있는 모습이 오늘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연합한 모습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랬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힘을 의지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의지했고, 앗수르를 섬기는 대신에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와 그의 나라가 누린 형통은 바로 이러한 신뢰와 순종의 결과였습니다.
그래요. 믿음 안에서 한두 번 큰 비전을 꿈꾸었다고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꾸준히 확고하게 연합하여 순종하는 자가 형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을 좇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이끌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바로 이 히스기야가 누린 축복을 누리는 순종의 사람들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까이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찰싹 달라 붙어 계시는 복된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나는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동시대에 일어났던 북 이스라엘의 멸망이 함께 소개가 됩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순종의 길을 간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 이스라엘은 불순종의 길로 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동일한 언약을 받았습니다. 또한 같은 시대를 살며, 같은 나라 앗수르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말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남유다는 블레셋을 치며 영토를 확장하여 갔던 반면,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살만에셀에 의해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멸망당했던 것입니다.
왜요? 지난 수요일에 살펴보신 대로 사마리아는 말그대로 혈통, 사상, 종교가 온통 뒤섞여져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동시대 똑같은 환경 속에서 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히스기야와 호세아는 왜 이런 전혀 상반된 길을 걸었던 것입니까?
그래요.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가 상반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불순종이 형통과 멸망을 구분하는 갈림길이 되었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성도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만을 따르는 길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성도들을 더욱 거세게 위협하고 유혹합니다. 믿음과 절개, 강직함보다 타협과 융통성, 포용을 선호하고 높이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굳건히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확고하게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순종 가운데 하나님의 뜻은 확연히 드러날 것이며, 하나님 나라는 굳건히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내 생애 주인으로 인정하기에 세상의 위협이나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그분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 늘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고 형통한 복된 성도, 이 시대의 히스기야 “나의 힘은 여호와”라는 복된 이름으로, 이름대로 승리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여러 차례 말씀드렸고 재차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 우리의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나은 정도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늘 그 정도도 어마어마한 것이라고 추켜세우는 것입니다. “충분하다 잘하고 있다 쟤를 봐라”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참된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 형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주변 상황이 어떠하든 상관없습니다. 내 형편이 어떠하든 상관없습니다. 모든 이유는 핑계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보이며 초청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영적으로 혼탁하고 온 열강이 온통 이기심과 편협한 국수주의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무력으로 경제력으로 외교력으로 힘을 과시하고 있는 이 때에,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용기 있게 믿음의 결단을 내리고 말씀대로 살아가시는 우리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망하는 북이스라엘이 되느냐 하나님 지키시는 남유다가 되느냐의 기로에 오늘 우리 모두가 서 있는 것입니다. 바른 결단이 바른 믿음과 순종이 오늘 우리에게 더하여 지시길, 우리 안에 있는 여러 가지 타협과 불순종, 우상과 죄악을 깨뜨리시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하나님과 연합하여, 바른 결단, 바른 용기를 내시길 축복합니다. 히스기야는 25살에 했다고 합니다. 긴 세월을 지낸만큼 두려운 것도 무서운 것도 지켜야할 것도 많다보니, 주변의 말과 시선에 자유롭질 못하다보니, 우리 안에 쌓여진 것을 비워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핑계와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이 일은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과감한 용기, 확고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 비워내시고, 임마누엘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연합하여 말씀대로 살아 형통케 하시는 복과 은혜 속에 승리의 행진을 해나가시길 살아계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스기야가 복받은 비결과 그가 받은 복, 함께 읽고 기도하겠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왕하 18:5-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