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중)- 북치고 장구치고 춤추고
타이완은 장례를 7~15일 동안 치른다. 어쩌다 동시에 초상이 나면 하루에 미사를 3~4대 집전하기도 한다.
처음 사목했던 본당은 주일미사 참례자가 5명, 교우들 평균 연령은 70세였다. 어쩌다 할아버지가 아프셔서 입원하시면 할머니도 미사에 나오지 못하신다. 신자들이 보통화(普通話, 북경어)를 하지 못해 독서와 화답송까지 사제가 다 한다. 주례 사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며 봉헌하는 미사다.
주교님 인사 발령으로 조금 떨어진 본당을 새로 맡게 됐다. 연로하신 신부님들은 하나 둘씩 돌아가시고 성소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선교사로 온 젊은 신부들이 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다. 본당 세 곳과 교구 성모성지 한 곳을 책임지게 됐다. 처음 직무를 시작할 때는 걱정 반 두려움 반이었다.
'과연 나 혼자 네 곳을 감당할 수가 있을까? 많이 피곤할 거야…. 에잇~ 나도 모르겠다.'
#"또 돌아가셨네" 나도 모르게 한탄이 흘러나와
네 곳을 담당하다 보니 정말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간다. 매일 수녀님들과 평일 새벽미사를 봉헌하고 토요일과 주일에는 미사 7대를 봉헌한다. 혼배와 장례가 있는 날에는 미사 9대를 집전하기도 한다.
혼배미사는 어쩌다 한두 번이지만 장례미사가 잦다. 연로한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초상이 자주 난다. 게다가 한국처럼 3일장이 아니다. 보통 7일장이나 보름장을 치른다. 참 길기도 하다. 장례기간 동안 매일 미사도구를 챙겨 빈소를 방문해 미사를 봉헌해야 한다.
어쩌다 겹초상이 나면 평일미사만 3대를 집전해야 한다. 그리고 장례식 절차는 왜 이렇게 복잡한지…. 장례가 생길 때마다 입에서 "죽지 말라(돌아가시지 말라)고 했더니 또 죽으셨네(돌아가셨네)!"라는 한탄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다.
한여름에 뙤약볕이 내리쬐는 밖에 나가면 오븐에서 빵이 구워지듯이 얼굴이 구워진다. 공기는 아주 습해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른다. 이런 날씨 때문에 잡초들 세상이다.
잡초는 무성하게 빨리도 자란다. 성당 세 곳 제초 작업을 끝내고 성지 제초 작업을 마치고 첫 번째 성당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잡초들이 벌써 무성하게 자라 있다. 계속 깎아주지 않으면 어떤 풀은 사람 키보다 높게 자라니 연일 제초기를 들고 잡초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
땀에 흠뻑 젖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샤워를 하려고 물을 틀면 뜨거운 물이 나온다. 낮 동안 옥상 물탱크가 열을 받아도 단단히 받은 모양이다. 수압은 또 왜 이렇게 약한지…. 모터를 달려고 기술자를 불렀는데 불가능하단다. 워낙 오래된 건물인지라 벽 속 배관이 낡아서 곳곳에 터질 위험이 있단다. 답답한 마음에 볼멘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너도 열 받았니? 오늘 나도 열 많이 받았는데, 지금 너 때문에 또 열 받고 있다."
저녁미사가 있어 일을 마치고 라면을 급히 끓였다. 시간이 없을 때는 라면이 최고다! 젓가락질을 하려고 하니 손목이 춤을 춘다. 제초기를 하루 종일 붙잡고 있었더니 손에 힘이 풀렸다. 미사를 집전할 때도 손이 이따금씩 저절로 춤을 췄다. 말을 안 듣는 손목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얼씨구) 이젠 춤까지 추네'
#빨리도 돌아오는 주말
내일은 환자 영성체를 하는 날이다. 차량도 점검해야 하고 지구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저녁에는 교우 집을 방문해 묵주기도를 하고, 돌아오면 이튿날 새벽미사 준비를 해야 한다. 모레는 제일 바쁜 주말이 또 다시 시작된다. 무슨 놈의 시간이 그리도 빨리 가는지…. 주말은 정말 빨리도 돌아온다. '어린이 미사에 오는 아이들은 몇 시에 태우러 가고, 간식은 무엇을 준비할까? 참! 세례자 면담도 있는 날이네' 내일 할 일을 생각 하다가 잠이 들었다.
쿵! 쿵! 쿵!
잠깐 눈을 붙였는데 사제관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잔뜩 찡그린 얼굴로 시계를 보니 새벽 1시다. 옷가지를 주섬주섬 차려입고 나가보니 주교님이 급히 찾는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성당 바로 옆 장애인 복지센터에서 일하시는 헝가리 출신 예수회 신부님께서 99세를 일기로 선종하셨다고 했다. 오늘 잠은 다 잤다.
태어나서 처음 바쁘게 살다 보니 몸에 나타난 현상이 하나 있다. 오늘이 며칠인지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고 요일만 머리에 새겨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회의 날짜와 약속을 잊어버리곤 한다.
언제나 급한 일을 먼저하고, 그렇게 급하지 않는 일은 자주 뒤로 미뤄진다. 스스로 미안한 마음에 한탄을 허공에 날려 보낸다. "아이고, 내 신세야. 내 팔자는 왜 이렇게 일이 많이 따라오는지…."
다행이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춤까지 춘다는 내 신세 타령을 하느님께서 들으셨나 보다. 한 가지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주교님이 언어 연수가 막 끝난 보좌신부(필리핀)를 보내주신다고 한다. "어서 빨리 오시라.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니 제발 어서 빨리 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