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정유정
정유정 작가는 '7년의 밤'이란 소설을 통해 만났다.
2권을 읽으면서 느낀 건데, 암흑과 같은 인간의 본성을 잘 표현하는 작가 같다.
'28'을 읽으면서도 어둡고 답답하고 인간의 악한 본성을 마주할 때마다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너무도 태연하게 표현을 해서 담담히 받아들이게 한다.
화양시에서 인수공통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인간들 관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28은 28일동안 벌어지는 일이라 그렇게 제목이 되었다.
읽으면서 '눈 먼 자들의 도시'가 생각났다.
비슷한 류의 악몽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개가 되는...
내용 중 작품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 있어 아래에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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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로서 동물을 만날 때, 재형은 자신이 누군지 잊으려 애썼다.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못하면 그의 손에 놓인 생명은 대상으로 전락하기 마련이었다. 생명을 목적이 아닌 대상으로 인식하는 인간이 얼마나 비열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는 이미 오래전에 학습한 바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자신이 저지른 짓을 통해서. 꿈을 꾸고 일어난 새벽녘, 이 자리에 서면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곤 했다. 꿈으로 일깨워진 욕망이 그의 뒤편으로 물러나는 시간이었다. 꿈으로 달아오른 몸을 식히는 시간이기도 했다.(pp115~116)
화양에서 일상을 앗아간 세상은 화양을 잊은 것 같았다. 죽은 자를 땅에 묻듯, 시간과 망각 속에 화양을 매장해버린 후 자신들의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화양에 대한 뉴스는 점점 줄어들었다. 곧 시작될 브라질월드컵 얘기에 밀려 어느 날엔 아예 언급도 없이 넘어가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날 새벽'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날 새벽, '700미터 구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진상이 밝혀지려면 기난긴 세월이 지나야 할 터였다. 바깥세상 사람들은 그 일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테니까.(p4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