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지고 자연현상에 감탄이 늘어난다.
봄이 되어 꽃이 피고 가을에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온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취향도 바뀐다.
어차피 내려올 산 왜 올라가 하던 내가 등산에 심취하는 것도 그렇다.
입맛도 바뀐다.
입에도 대지 않았던 청국장을 찾고 그렇게 좋아하던 밀가루 음식이 싫어진다.
뭔가에 저항하기보다는 받아들이게 된다.
아내의 잔소리에 짜증을 내기보다는 순순히 말을 듣는 게
신상에 유리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따지던 사람도
분노 대신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뿌린 대로 거두지만 때로는 세상사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자식문제가 그렇고 건강문제가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부부간에는 대화가 중요하다.
그래서 명 칼럼리스트 조용헌 선생은 궁합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궁합은 나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초년 궁합은 속궁합입니다. 섹스가 중요하지요.
중년궁합은 돈입니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절이기 때문에 돈이 있어야 사이가 좋지요.
말년궁합은 대화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얘기가 잘 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에 100퍼센트 공감한다.
부부간 대화는 젊어서부터 훈련을 해야 한다.
얘기는 자꾸 해야 할 얘기가 생긴다.
얘기를 자꾸 해야 대화의 기술도 늘고 듣는 것도 훈련이 된다.
그러면서 대화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
매일 보는 부부간에 무슨 얘기를 하느냐,
바깥에서 벌어지는 골치 아픈 일을 집에서 얘기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 란 생각을 갖고 있는 남자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부부란 기쁨도 고통도 같이 나누는 존재이다.
또 자꾸 얘기를 해야 상대를 알게 되고 이해의 폭이 커진다.
이해를 해야 애정도 생긴다.
부부간의 맛있는 대화는 중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나이 든 여성에게 반드시 필요한 네 가지와 불필요한 한 가지는 뭘까?
돈, 건강, 친구, 딸이 필요한 네 가지이다.
필요 없는 한 가지는? 대부분 사람들이 답을 알아맞힌다. 바로 남편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젊은 시절에는 돈이라도 벌어왔다.
하지만 돈도 벌지 못하는 중년이 되면 안방에 있는 거대한 쓰레기로 변한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은퇴 후 소프트랜딩하는 데 가장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갑(甲)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다.
대형 전자 혹은 자동차 회사, 대형 유통회사, 텔레콤 회사 등이 대표적인 갑들이다.
중년이란 나이는 웬만한 숙제는 어느 정도 다 한 나이다. 공부도 웬만큼 했다.
직업을 갖고 열심히 생활해 돈을 벌었다.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집도 마련하고 먹고 사는 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자녀들도 성장해 우리 손길이 별로 필요 없다.
자기들이 알아서 앞가림을 할 나이다. 부모님에 대한 의무도 끝내는 시기이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벌고 경험을 쌓아야 하는 청춘의 무게를 던지고
젊어서는 깨닫지 못한 기쁨들을 반추하고 음미할 시간이 생겨서 좋다.
우리 자신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중년들에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인생을 즐기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 동안 참 고생 많았다. 정말 열심히 살고 처자식 건사하면서 잘 살았다.
지금부터는 너 자신을 위해 살아라. 쉬엄쉬엄 그 동안 못 가본 봄꽃놀이,
단풍놀이도 다녀라. 유람선을 타고 세계 여행도 할 수 있으면 해라."
중년은 짐이 무겁다. 나와 내 친구들을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친구들 얼굴에서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래서 중년이란 단어는 늘 우울모드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하고 싶다.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만일 인생에 아무런 짐이 없다면 어떨까? 그렇게, 끝내주게 행복할까?
부모도 다 돌아가시고, 처자식도 없다면 홀가분할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무거운 짐 덩어리가 있다는 사실이 사실은 큰 기쁨이다.
등록금을 내야 할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내가 번 돈으로 집사람과 애들 옷가지를 살 때 얼마나 큰 기쁨을 느끼는가?
아직도 어머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어머님이 안 계시면 그나마 무슨 명목으로 형제들이 모일 것인가?
일이 있는 것도 그렇다.
스트레스 받는 직장이 있다는 것은 아직 효용성이 있다는 것이니 축복할 일이다.
인생 별 거 있나 라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그렇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밥 세끼 먹고,
나이 들면 늙고, 늙으면 죽어야 한다. 그런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너그러워질 수 있다. 세월은 우리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 준다.
내가 아무리 공부를 잘했어도 내 자식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잘해 줘도 사람들은 나를 배신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내 맘과 다르다는 것, 이것을 알면 한결 세상살이가 가벼워진다.
생각을 한번쯤은 바꾸고 살아 간다면 좀더 멋진 삶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아직은 중년이라는 무게감이 안 느껴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