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래 전에 최인훈의 소설 '화두'를 후배의 집에 가서 보았습니다. 후배의 그 넘치는 독서열을 보면서 그 때 '화두'는 내 눈에 들어왔지만, 그로부터 해를 열 번 넘게 보내면서도 그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어쩌다 눈에 띄어 재미있게 읽게 된 '작가연구'라는 책을 통해서 다시 이 책의 제목을 보았고, 그로부터 얼마 지난 뒤 가끔 들르는 헌책방에서 그 책 '제1부'가 눈에 띄어 빼어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도 인연이 쉽게 닿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아무리 헌책방을 휘돌아보아도 둘째 권이 안 보이는 겁니다. 해를 넘기면서 겨우 뒤진 헌책방에서 둘째 권을 구했을 때의 기쁨이 바로 엊그제 같고, 그렇게 구한 작지 않은 책을 거의 단숨에 읽어치웠습니다.
오늘은 그 '화두'를 내가 다시 시집보내는 날입니다. 가까운 곳에 소설을 쓰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나는 정말 그 사람이 소설에 전념해서 우리 시대보다 조금 앞에 살면서 한국 소설의 한 분야를 일궈낸 우리 지역 사람인 이무영 선생의 대통을 잇는 좋은 소설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 책을 건네줄 참입니다. 시집을 보내기에 앞서서 이 책과의 인연에서 내가 얻은 것들을 추려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눈에 띈 몇 가지 이야기들을 건져올려 봅니다.
하나, 최인훈이 본 기독교
나는 전에 국민학교 시절에 읽은 '쿠오바디스' 속의 그 노예 철학자를 가끔 생각한다. 철학자인 노예라는, 좀 기이한 느낌을 주기는 했지만 그저 그렇게 지나쳐 읽은, 그래서 나중에 그가 보여주는 정신적 혁명과 그로 말미암은 행동의 뜻을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음이 지금와서 분명하기는 한 그 노예철학자를 가끔 생각한다. 신분은 노예면서, 어쨌든 '철학자'일 수도 있기는 있다는 이 모순, 인간만이 겪는 이 분열. 소설 속의 인물일 뿐이었던 그 인물이 몸으로 곧바로 와 닿아 내가 되는 느낌이다. 나는 그에게 씌운다. 그는 내가 된다. 그에게 그리스 철학인 것이 나에게는 소설이라는 이름의 '예술'이다. 그의 그리스 철학은 하기는 소설처럼 '허구'가 아니라지만, 이데아는 우주의 '실체'이기는 하지만, 제3자로 보면 그것은 그리스 철학 안에서 정한 '허구'라는 점에서 '소설'이라는 허구에 해당한다. 그 자신도 '이데아'의 세계가 결국 정신이 만들어낸 환상임을 깨닫고 진정한 실체인 '신' 앞으로 나갔다. 그의 학식도 쓸모없고 몸에 밴 노예의 본능도 이기게 한 그 믿음이 내게는 없는 것이다. 그 믿음이 있기 전까지의 그가 지금의 나다. 그가 벗어 던진 껍질 그것이 나다.(제1부 332-333쪽)
* 오늘의 기독교는 쿠오바디스를 변화시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느냐고 묻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구절이었습니다. 여기서 여러 가지 묶음기호들은 일괄적으로 작은따옴표로 처리를 한 것만 빼고는 원문을 손상시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뒤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쓰려고 합니다.
둘, 지식에 대하여
'지식'이라는 이 물질을 주입받은 유기체는 그나마 생물이 누리는 존재감-한 모금의 샘물을 마실 때마다 우주와 교감하는 그 당연함의 감각까지 잃어버리고 만다.(제1부 389쪽)
* 간단한 이 구절에서 나는 문학을 하는 이들이 구도자의 자세를 지니고 있음을 봅니다. 한 모금의 샘물을 마시면서 우주와 교감할 수 있는 것, 이게 바로 구도자의 자세라는 것이 내 생각인 까닭입니다. 어디 샘물 뿐이겠습니까?
셋, 유럽의 자본주의
정치가는 그저 전문 직업인일 뿐, 그의 전인격이 종합적으로 완전할 것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그런 모양새는 편의상의 '연기'이며 '예의상의 화장'임을 투표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는 수없는 악당들이 끼어 있음을 속화(俗化)된 문명사회의 투표자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악당들에게는 족쇄가 물려 있으므로 인격 높은 지도자를 만들어내기보다, 이 족쇄를 우수한 품질로 개량해 나가는 것이 이 땅 위에서 제일 생산적인 정치 발전의 길이라고 믿고 있는 사회가 적어도 유럽 자본주의였다. 물론 이 원칙의 내수(內需)용과 수출용 사이에는 차별성이 가해진다.(제2부 281-282쪽)
* 정치의 허상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인데, 거기서 유럽의 자본주의의 허상을 짚어내는 작자의 탁월한 식견이 돋보이는 구절입니다. 자기의 발목을 얽어매고 있는 족쇄를 풀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족쇄를 자랑하고, 그 족쇄를 치장하는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이라고도 생각되는 이야기입니다.
넷, 역사와 인생
그들의 몸은 예나 지금이나 외형에서는 마찬가지지만 한 부분이 특히 생후에 변형된다. 그들의 두뇌 속에 그들의 조상에게는 없었고 알에서 깨어날 때에는 없는 '정보'가 '교육'을 통해서 입력된다. 이 '정보'라는 기호체계는 그가 생애를 그 속에서 살게 될 '공동 철갑'과 '공동 바퀴', 그리고 '공동 인공두뇌 및 신경그물'과 대화할 수 있는 부호체계와 그 부호체계로 정리된 자신 및 기계 그리고 외계에 대한 작동규칙 및 지형 설명, 그리고 수리지침이다. 이것은 유전정보가 아니라 생후에 입력되는 획득형질이다. 이 후천 정보를 통해서 생물 개체는 자기가 소속한 문명 부분과 연결되어 자신이 그 복합체의 일부가 된다. 이 복합체의 자기유지인 물질대사가 개인에게는 '생애'이고 집단에게는 '역사'이다.(제2부 300-301쪽)
*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많은 생각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집단무의식'이라는 개념은 빠져 있습니다. 최인훈이 융의 심리학을 모르지 않는가 싶은 대목이긴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굳이 융의 심리학적 개념까지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역사를 정리한 소설가의 눈은 역시 높이 사 줄만한 구절입니다.
참고로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집단무의식(또는 집단적무의식)을 설명해 봅니다.
"집단적 무의식의 층은 마치 지각(地殼) 속에 있으면서 좀처럼 직접 밖에 노출되지 않는 불덩어리와 같은 것이다. 화산이 폭발할 대 우리가 비로소 그 존재를 인지할 수 있듯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은 어떤 사람이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혔을 때 비로소 의식 표면에 나타나 그 모습의 일부를 보여 준다. 혹은 그것은 지하의 물줄기처럼 의식화의 작용, 즉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그 내용을 의식으로 들어올리는 작업을 함으로써 비로소 솟아나오는 창조의 샘이다.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은 항상 의식에 작용하며 영향을 주고 있으나 대개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 채 지나치게 된다."(이부영 지음, 『분석심리학』일조각, 99쪽)
이렇게 설명되고 있는 집단무의식은 어떤 가치관이나 사상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고, 그것이 오랫동안 이어져 나갈 때 그런 가치관이나 사상이 누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사고의 축을 형성하는 중요한 의식지층을 형성한다는 내용이라고 들었습니다. 똑 떨어지는 답을 찾으려고 몇 몇 융 심리학에 관한 책들을 들쳐 보았는데 만족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하여, 위의 인용만을 실었습니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신 분은 위에 소개한 책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바로 앞에 정리한 것은 내가 심리학 시간에 들은 것으로 기억되는 이야기를 쓴 것인데, 그리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섯. 톨스토이에 관하여
똘스또이네 집 현관을 들어서면서 나는 방금 겪은 환상을 문득 떠올리며, 이어 덧신도 두 짝일 필요도 없겠군, 하고 생각하였다.
똘스또이의 막내아들 아무개의 방이라는 방. 공부 책상 위에는 아이의 일기책이 있고 일기책에는 당자의 삽화가 있는 페이지가 보인다. 그리 크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지금 규모로 보아도 작지도 않다. 당시 일반 가정 규모로는 큰 방일 테고 아니라도 우리 나라 대부분의 아동은 아직도 이런 방과는 상관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부부의 침실이었다는 방. 내부는 그때 모양대로 보존이 되어 있다고 한다. 모든 방은 뜰 쪽으로 난 창문이 있고 창문 너머로 뒤뜰이 비로소 보이는데 뜰로서는 앞뜰은 그저 들어오면서 있는 공간이고 뒤뜰이 말 그대로의 뜰임을 알 수 있다. 밖에서 보기에 그런 규모의 뜰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이 저택의 안에 들어와 보니 거기 창 너머로 작은 숲 속만한 뒤뜰이 내다보인다.
2층 응접실이라는 가장 큰 방에서 우리는 똘스또이 노인의 육성을 축음기로 들었다. 구식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그 목소리는 어쩐지 똘스또이 같지 않았다. 전에 인도에 갔을 때 고타마 붓다는 저런 인종에 속한 살아 있는 사람이었구나 생각하고, 우리 절간에 있는 불상은 당치도 않은 모상이라는 발견을 하면서 묘한 생각이 들던 일이 머리를 스친다. 유명한 외국인이라는 것은 그의 생애가 먼저 있고 다음에 그의 육신이 떠오른다. 그야 그들이 유령이 아닌 눌은, 그래서 그들이 육체를 가지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고, 무엇보다 보도 듣도 못 한 어떤 외국인을 그렇게 가깝게 느끼는 것은 그를 정신적 존재로, 더 구체적으로는-작가인 경우에는-그의 '작품'이라는 육체 전체에 스며 있는 서술자로서의 인격(의 내용이라도 결국 한말인)으로서 직감하는 것이며, 그의 정신이라는 정보회로에 담긴 내용은, 지시된 대로 작동(즉 독서)만 하면, 즉시 무시간의 속도로 동일한 회로를 구성하여 그 회로 안에 그들의 영혼의 실리콘 전자의 흐름을 방류(放流)하며, 그들의 인격을 우리들의 대뇌 피질을 기판(基板) 삼아 조립한다. 그들이 인도인이라거나, 그리스인이라거나, 중국인이라거나, 일본인이라거나, 심지어 우리 나라 사람일지라도 그 조건은 다음 얘기다. 그들이 내쏘는 실리콘 전자의 속도는 그런 정도의 만족속도나, 종종속도나, 국가속도쯤이 아니다. 그렇다면야 누가 그 전자파의 흐름에 공명(共鳴)하겠는가. 그렇기는 하지만 똘스또이 노인 시대가 축음기가 이미 있는 시대라는 사실은 발견이었다. 그의 사상말고도 그는 호머나 두보 시대 사람은 아닌 달력상으로 우리 시대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 녹음은 그의 집에 찾아온 사람들을 앞에 놓고 한 인삿말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레닌묘에서처럼 실지의 상황대로 역할극에 등장한 셈이다. 억울하다는 말은 아니다. 똘스또이는 작곡한 것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 가정교사의 방이라는 방, 그 방은 반지하층의 거리에 면한 방이었는데 어쩐지 가정교사의 방 같았다.
똘스또이가 집필하던 방은 그리 크지 않고 역시 똘스또이가 집필하던 방 같았다.
뜰 손질을 할 때 입던 옷이며, 도구가 수납되어 있는 구석이 뒤뜰이 내다보이는 복도 끝, 계단 옆에 있다.
이 집은 반지하층과 지상 2층으로 된 건물이었다. 내부의 벽은 석회벽에 나무가 어우러져 있으며 언뜻 전체가 목조가옥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모든 가구가 목조이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밖으로 나와서 뒤뜰 쪽으로 가본다. 여기도 수풀에는 어김없이 자작나무가 눈에 띈다. 자작나무가 없으면 러시아의 수풀이 아니란 듯이.
똘스또이는 1910년에 별세했으니 우리 나라가 일본에게 완전히 합병된 해가 된다. 똘스또이와 한일'합방'. 좀 이상한 착각이 든다. 그가 우리 나라가 일본에 아주 먹힌 데 대해서 특벽한 관심이 있었다는 일화 같은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의 지리 지식에서 한국이라는 이름은 거의 아무 무게도 없었으리라. 그것이 당시의 우리 나라의 국제적 위치였다. 세계는 그렇게 구석구석이 어두웠다. '지구'라는 물리학의 개념은 '세계'라는 국제정치적 개념에 너어오면 그것은 '열강(列强)'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정리되는 어떤 혼돈이었던 시대. 세계 전체에 걸쳐 식민지 분할이 이미 끝난 20세기도 1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원동(遠東)의 한모퉁이에서 한 황색 인종의 나라가 다른 황색 인종의 나라를 식민지로 삼는다는 괴이한 일이 태연히 저질러져도 백인들의 이른바 '문명세계'에는 이렇다 할 인상을 전혀 줄 수 없었던 시대.
똘스또이는 우리 선배 문학세대에 대해서는 특별한 영향을 미친 외국 작가였다. 인간에 대한 가르침의 성격이 구체적이 아닌 대신, 상징적이었고, 형제간의 사랑을 모형으로 한 것이기에 본능에 호소하는 보편성이 있었다. 러시아에서 러일전쟁중인 1905년의 쏘비에뜨 혁명 사이의 중간시점인 1910년에 똘스또이는 죽었다.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불평등을 형제간 같은 사랑으로 개선하자는 그의 주장은 여러 정파의 사람들에게 여러 수준에서 영향을 주었고 우리 선배세대 작가들도 그런 영향을 받았었다. 그에게서 한국인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똘스또이도 한국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관계는 당연히 성립하는 것은 아닌데도 지금 그의 집 뜰에 서서 똘스또이와 한국이라는 두 사물에 대해 현실에서 불가능했던 가역(可逆)반응 관계를 떠올려본다. 장차 누군가의 연구로 똘스또이를 만나보았던 한국인의 족적이 발견되기나 한다면 몰라도, 현재로서는 그는 다른 많은 유명작가의 경우처럼 '책'이라는 매개물을 통해서만 우리 이웃이며 선배가 되어 있다. 그것이 작은 일이어서가 아니라, 똘스또이라는 사람이 특별히 한국 문학의 의식에 깊이 들어왔던 외국인이라서 별난 생각까지 든다는 말이다. 그의 명예에 속하는 이야기다.
똘스또이는 누구보다 러시아적인 것을 사랑한 작가였지만, 우리들 식민지 생활을 겪은 나라의 예술가들에게는 다른 대국이나 식민지 소유 경력이 있는 나라의 작가들과는 다른 성격이 있다.
행복한 정치적 경력을 가진 국가의 작가들은 자신들이 속한 국가가 기득권 세력으로 참여하고 있는 세계질서가 보편적인 것처럼 느끼는 대전제, 그러니 남는 문제는 그 보편적 질서 아래에서 개인에 초점이 맞춰진 영원한 문제를 섬세하게 추적하는 것이 섬세하고 점잖은 예술이라는 세계 풍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읽는 대부분의 서양 작가들이 모두 그렇다. 개인과, 개인을 넘어선 질서와의 사이에는 국가라는 중간항이 있고 이 지구상의 국가 사이에는 평등 대신에 패권과 예속이 있는 것이 현재까지의 세계 모습이기 때문에 이 구체적 중간항을 외면하고 그 성격이 다른 두 종류의 국가에 소속된 인간을 '개인'이라는 수준에서만 파악하고 아무리 인간의 윤리를 말해봐야 그런 문학의식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이 분명해진다. 서양 작가들에게서는 이 의식을 발견할 수 없다. 인간 탐구의 심오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깊어야 할 부분부분이 고뇌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똘스또이는 이 점이 다른 서양 작가들과 다르다. 오늘날 그의 조국의 운명이 결국 그것을 증명하듯이 그가 살았던 동안의 그의 조국도 덩치만 대국이었지 내수용(內需用) 인권의 분배도 넉넉지 못한 허약한 대국이었기 때문에 개인을 넘어선 전체의 문제를 해결된 것으로 보는 것을 그의 마음은 허락할 수 없었다. 서양 작가들에게는 자신들의 진화된 인간성 속에-그 깊이와 섬세함과 과학성과 상상력 속에-노예들의 눈물이 있는 것을 의식하는 흔적이 없는데, 똘스또이에게는 그것이 있다. 그가 그의 '예술론'에서 나타내는 서방 예술에 대한 혐오는 형식논리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지나친 것이지만, 역사와 사회라는 구체적인 문맥 속에 놓고 보면, 그것은 서방 예술의 염치 없음과 경박성, 인류라는 전체에 대한 시야가 없는 이기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라는 의미에서 정당하다. 형이상학적으로는 잘못이지만, 변증법적으로는 정당하다, 고나 할까 그런 입장이다. 그런 사람의 집 뜰에 서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으니, 이 순간은 이 고통스런 세기에 태어난 몸으로서는 과분한 느낌이 든다.(제2부 397-401쪽)
* 이 부분을 읽으면서 톨스토이 인격의 깊이를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에 간디를 공부할 때, 간디의 사상에 영향을 준 스승으로서의 톨스토이를 만난 적이 있는데, 소설가가 본 톨스토이 인격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감명으로 다가왔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공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고대 로마가 동서로 나뉘고, 동쪽 계열의 로마에서 풍미하던 기독교를 동방교회, 서쪽 계열의 로마에서 풍미하던 기독교를 서방교회로 불렀는데, 마침내 서방교회가 동방교회를 제압하여 역사의 전면(前面)에 떠올라, 그것이 오늘의 개신교 정서로 이어졌다는 점과 현재의 경박스러운 개신교 정서에서 동방교회 계통의 깊이 있는 관조를 통해 인격의 깊이를 찾았던 톨스토이는 여러 면에서 되살필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글을 마치며
최인훈의 소설 '화두'는 그리 재미있는 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작가가 태어난 북녘 땅의 어느 곳에서 제법 잘 사는 어린 시절, 그리고 겪은 사회주의 상황에서의 상처들로부터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그의 아버지가 남한으로 내려오는 수많은 월남(越南)가족들처럼 남쪽으로 오게 됩니다. 거기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치고 마침내 소설가로 자리를 잡는 동안 그의 부모는 미국으로 이민을 하고, 그래서 뒤에 소설가의 신분으로 미국을 다녀오고, 나중에 소련을 여행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자기 경험을 통해서 소설의 의미와 역사, 문화 같은 것들을 꼼꼼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언뜻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왜 이 소설의 제목이 화두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화두'라는 낱말이 제1부 333쪽에서 처음 나오는 것으로 기억되는 이 소설에서 작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역사를 놓고 볼 때 앞으로 풀어나갈 숙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볼 때 '화두'라는 제목이 적절하다 할 수도 있으나, 종교적인 낱말을 사회.역사적인 의미로 전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는 아직도 뚜렷하게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라 하더라도 곱씹으면서 맛을 더욱 느낄 수 있는, 그리고 우리나라와 국제정세의 관계들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듯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뒤쪽에 있는 깔끔한 이야기 하나 덧붙이고 끝내려고 합니다.
"문화라는 것에는 육체가 있다."(제2부 484쪽)
첫댓글 읽느라고 힘들었습니다.
^^* 어쩌지요? 그 이상 달리 줄일 길이 없었으니 말이지요. 계속해서 책 이야기를 써 볼까 합니다. 그래도 읽어주실 거지요? 날마다 좋은 날!!! - 들풀 -
저는 그 책이 출간되자마자 사서 읽었는데 지금 보니....아무런 기억이 없네요 우리집 책장 어딘가에 아직 꼿혀 있을텐데도...^^
우리에게 소설 창작을 강의해 주셨던 스승이십니다. 수업 시간에 에피소드가 많지요. 글 못지 않게 생활과 모습이 깐깐하셨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어쩜 그 분의 모습이 이리 생생하게 기억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