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중 설치된 북한군 내 노동당 정치조직
북한군의 군사지휘기구표. xxx=군단급 xx=사단급(2012년 국방백서 참조)
●북한군을 당과 수령의 군대로 유지시켜 주는 역할
북한군은 왜 쿠데타를 일으키지 못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다수의 북한전문가들은 총정치국의 존재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총정치국은 우리 국군에는 없는 조직이다. 북한군 속에 설치된 노동당의 정치조직으로 인민무력부·총참모부와 함께 3대 핵심조직으로 불린다.
총정치국장은 군내 서열 1위로 그 권한 또한 막강하다. 군단에서 중대에 이르기까지 전 제대에 당의 대표로서 정치위원(대대 이하는 정치지도원)을 보내 군의 사업이 당의 노선과 정책에 맞게 수행되도록 통제하는 조직이다.
이를 통해 북한군을 당과 수령의 군대로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점에서 총정치국은 당과 군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구이자, 북한군이 당의 군대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총정치국 설치는 김일성의 정치적 승부수
1950년 10월은 김일성에게 시련의 시기였다. 38도선을 넘어 북진하는 국군과 유엔군에 쫓겨 북한군은 무질서하게 후퇴해야만 했다. 김일성과 박헌영이 서로 연락조차 하기 힘들 정도였다. 김일성은 당시 상황에 대해 군대 내에 패배주의 경향이 나타났다고 질타했다.
북한의 요청으로 이뤄진 중공군의 개입은 김일성에게 잠깐의 여유를 주었다. 그러나 중국은 조중(朝中)연합사령부 구성을 제의하면서 북한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요구했다. 중공군의 참전은 국내 정치에서 김일성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친중국파(연안파)의 위상도 자연스럽게 올려 놓았다.
김일성은 중공군의 연합사 제의를 두 달여간 거부하며 버텼다. 그러나 스탈린의 ‘중재(사실은 지시였음)’로 1950년 12월 7일, 조중연합사령부가 설치됐다. 그 결과 김일성은 북한군 최고사령관으로서 행사하던 작전지휘권을 중국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최대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때 김일성으로서는 뭔가 타개책이 필요했다.
김일성은 이런 혼란 속에서 1950년 10월 21일 총정치국을 설치하고 나섰다. 군대 내에 당 조직을 설치하는 것은 이전부터 고려됐으나, 김일성은 조중연합사와 작전지휘권 ‘박탈’이라는 위기감 속에서 이를 실행으로 옮겼다. 군에 대한 당의 통제 강화가 명분이었다. 그러나 굳이 이처럼 혼란한 상황에서 총정치국을 설치한 것에는 김일성의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김일성은 북한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중공군사령관인 펑더화이(彭德懷)에게 넘겨주더라도, 당 중앙위원장으로서 당을 통해 북한군에 대한 사상 통제를 하겠다는 속셈이었다. 김일성은 초대 총정치국장에 전쟁의 공동 책임자인 박헌영을 임명했다.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맞아 김일성은 총정치국 설치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지휘권 내주고 총정치국에 의해 군대 통제
조중연합사가 꾸려진 후 작전에서 손을 뗀 김일성은 용병(用兵)이 아닌 양병(養兵)의 역할만 맡았다. 그러나 김일성은 총정치국을 통해 북한군을 당의 이름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총정치국을 통해 북한군이 중국식이 아니라 북한식 전법으로 싸울 것을 강조했고, 사상교육도 강화했다. 방호산과 같은 연안파 출신 북한군 지휘관의 전공도 깎아내렸다. 때론 총정치국의 활동이 미흡하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북한군이 중국군대에 넘어가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총정치국은 김일성 입장에서 ‘자존심’을 위한 최소한의 담보장치이자 북한정치에서 자신의 위상을 지킬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총정치국은 설치 이후 계속해서 조직을 강화해 나갔다. 전쟁 기간이었던 1951년 1월 9일에는 민간사업부를 신설하고, 전선의 남진에 따라 다시 차지하게 된 지역에서 군중의 사상동향을 감시했다.
전쟁 이후인 1958년에는 군대 내에 당위원회 제도를 도입했고, 1969년에는 정치위원제를 도입하면서 군에 대한 당의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발전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정은의 군 장악에도 핵심적 역할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는 총정치국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당시 총정치국장이자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던 조명록은 2000년 10월 김정일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군대를 장악하는 데도 총정치국이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김정은 등장 이후 총정치국장으로 임명된 최용해는 김정은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고, 김정은의 현지시찰에 늘 동행하는 모습이 보도됐다.
장성택의 숙청에도 최용해의 총정치국이 개입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랬던 최용해가 최근 해임되고, 그 자리에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었던 황병서가 임명됐다.
총정치국의 변화는 김정은의 군에 대한 장악 수준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적어도, 총정치국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북한과 북한군을 정확히 이해했다고 하기 힘들 것이다. 앞으로 총정치국의 변화를 보며 김정은의 행보를 주목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