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수능 출제 기조가 말해주는 것들 ― 사교육 배제, 난이도 안정, 그리고 선택과목 유불리 최소화의 의미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출제 방향이 발표되었다. 이번 발표는 단순히 ‘올해 수능이 어떻게 나온다’는 차원의 정보 전달이 아니다. 교육부와 수능 출제위원회가 한국 수능의 향후 몇 년간의 기조를 어떻게 잡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신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출제위원장은 “사교육에 유리한 문항 배제”, “교육과정 중심”,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 최소화”라는 세 가지 원칙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이는 최근 수능을 둘러싼 여러 논란—사탐런, 킬러문항, 공교육 정상화 문제—을 정면으로 겨냥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사교육을 위한 문항을 원천 배제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동안 수능은 난이도 조절을 위해 고난도 문항을 포함해 왔다. 하지만 이 고난도 문항 중 일부는 사실상 사교육 훈련을 거친 학생만 접근 가능한 ‘기술형 문항’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모르는 지식을 추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특정한 요령이나 반복된 패턴을 익힌 학생이 유리해지는 구조였다. 출제위원장은 이러한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교육과정 내 핵심 개념을 변형된 발상·접근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형태로 변별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아는 학생이 푸는 시험’이지, ‘훈련된 학생이 푸는 시험’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최근 교육정책의 흐름과도 일치한다. 지난해부터 교육부는 킬러문항을 강하게 비판하며 공교육 정상화라는 큰 그림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킬러문항 배제가 곧 ‘쉽게 낸다’는 뜻은 아니다. 출제위원장이 명확하게 밝힌 것처럼, 핵심 개념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게 하는 문항은 여전히 출제될 것이다. 핵심 개념을 충분히 이해한 학생에게는 어렵지 않지만, 개념을 암기 위주로 학습한 학생에게는 오히려 더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다. 이것이 ‘교육과정 기반 사고력 평가’의 본질이다.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선택과목 유불리 최소화에 대한 언급이다. 특히 사회탐구에서 나타난 ‘사탐런’ 현상은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학생들이 특정 과목으로 몰리는 이유는 단순히 해당 과목이 쉽기 때문만이 아니다. 일부 과목은 응시자들의 평균 학력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 동일한 점수를 얻어도 표준점수나 백분위에서 불리해지는 일이 발생한다. 출제위원장은 이를 “학생들이 유리한 과목을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자연적 현상”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출제위원회는 애초에 설정한 난이도 목표와 6월·9월 모의평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출제하기 때문에 선택과목 간 유불리가 크게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작년과 올해 모평에서 나타난 난이도·표준점수 구도와 크게 다르지 않게 출제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특히 사회탐구는 표준점수 격차가 커질 때마다 특정 과목 쏠림이 심해졌기 때문에,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조정한다면 사탐런의 파장은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선택과목 구조 자체가 유불리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지만, 난이도 균형을 통해 그 폭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의미가 있다.
세 번째로 중요한 지점은 연계율 50% 유지와 체감 연계도 강화다. 이는 단순히 ‘교과서에서 몇 문제 나왔다’는 식의 형식적 연계가 아니라, EBS에서 다룬 개념이나 사고의 틀을 변형·응용하는 방식으로 체감 연계율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학생과 교사 입장에서는 EBS 공부가 무의미하지 않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오랜 기간 유지되어 온 수능-EBS 연계 정책이 급격하게 변화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과목별 특징을 살펴보면 보다 명확하다. 국어와 영어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되 출제 범위의 원칙을 유지하는 방향을 선언했다. 이는 지문 난이도를 조절하면서도 사고 과정의 깊이를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수학과 탐구 영역에서는 여전히 사고 중심 평가를 유지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즉, 단순 계산형 보다는 개념을 활용해 추론하고 구조화하는 능력을 묻는 문항이 핵심이 될 것이다. 한국사는 “기본 소양 평가”라는 문구가 다시 언급되었는데, 이는 적정 난이도 유지와 지나친 변별력 축소 모두를 피하고자 하는 절충적 표현이다.
이번 발표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작년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표준점수 차이가 크게 벌어지지 않도록 조정하겠다는 언급은, 지난해의 난이도·점수 분포가 앞으로의 기준점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영어의 경우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교육과정 기반 + 응답 특성 고려’라는 기존의 안정적 출제 방식이 유지된다. 이는 모든 과목에서 ‘급격한 변화 없음’, ‘안정적 유지’, 그리고 ‘교육과정 기반 사고력’이라는 방향성을 확인시켜 준다.
그렇다면 이번 발표가 수험생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해석은 **“새로운 변수가 없다”**는 점이다. 사교육이 유리한 고난도 기술형 문항이 배제되면서 변별력은 더 이상 “특정 문제풀이 기술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영역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결국 개념 이해, 기출 변형 적응력, 교육과정 기반 사고력이 유일한 변별 요소가 된다. 특히 고난도 유형을 위한 별도의 사설 패턴 암기가 줄어들기 때문에, 기출·교육과정·EBS의 삼박자를 중심으로 한 학습이 더욱 중요해진다.
또한 선택과목 유불리 최소화 방침은 과목 이동을 고려하는 학생들에게 냉정한 메시지를 준다. 작년 기준 난이도 프레임이 유지된다면, 선택과목 변경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학생 스스로가 가장 안정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2026학년도 수능 출제 방향은 겉으로 보기에는 교육과정 중심·난이도 안정이라는 평범한 메시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한국 수능이 앞으로 어떤 시험을 지향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 담겨 있다. 그것은 “공교육 기반의 사고력 평가”라는 대원칙이다. 출제위원장의 말처럼, 수능은 교육과정이라는 틀 안에서 이미 충분한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시험이다. 사교육의 기술을 배제하고, 선택과목 유불리 문제를 줄이고, 난이도의 급변을 막는 것. 이것이 2026 수능이 추구하는 방향이며, 앞으로의 수능이 가져갈 기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