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제2년 10월 28일 호세아서 1:1-2:1 찬송가 334장(새찬송가 276장)
[호세아 1장]
0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02.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03. 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0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0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06. 고멜이 또 잉태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0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0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 뗀 후에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0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11.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호세아 2장]
01.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호세아의 예언적 결혼”
1-3장은 서론적인 말씀으로서 호세아서 전체 메시지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 장에서는 호세아의 불행한 결혼과 가정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의 영적 간음이 예시되고 있으며, 호세아와 그 아내 고멜 사이에 낳은 자녀들의 이름을 통하여 장차 범죄한 이스라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선언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의 공격을 받아 흩어지게 될 것이며,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들을 통한 예언은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여로보암 2세가 속한 예후 왕조의 몰락과 앗수르의 침공으로 말미암은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실현이 됩니다.
그러나 본 장의 후반부에서는 그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유다와 연합하여 한 두목의 인도 아래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올라오게 될 것이 예언되고 있는데, 이것은 신약시대에 메시아의 강림으로 이루어질 신약교회의 출현에 대한 예언입니다.
호세아의 결혼(1:1-2)
【1절】호세아가 사역을 한 시기가 먼저 기록되고 있는데, 그가 북이스라엘에서 사역을 했으면서도 그 연대는 유다 왕국의 것을 사용한 것은 아마도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다윗 왕조에게서 찾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록 남북이 분열되어 있는 가운데서도 다윗 언약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계획은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2절】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음란한 아내’인 고멜을 아내로 맞으라고 명하십니다. 이 명령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습니다. 즉 이 명령 자체가 실제로 호세아의 결혼에 대하여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가설적인 표현으로 보는 견해와, 또 이 ‘음란한 여자’라는 말에 대해서도 실제적인 매춘부(창녀)를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에 대한 명령은 실제적인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그의 결혼을 통하여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겪으실 하나님의 고통과 슬픔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며, 또 고멜이 음란한 여인이라는 말에서 ‘음란’(adulterous)이란 말은 ‘불성실한’(unfaithful)이라는 뜻으로 번역이 될 수도 있으므로, ‘잠재적으로 남편을 배신할 가능성과 본성이 있는 여자’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호세아는 언젠가는 남편인 자기를 배신하고 결혼 계약을 깨뜨릴 가능성이 있는 여자를 아내로 취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언약을 맺으신 이스라엘의 본성적 특성, 즉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세아의 자녀들을 통한 심판의 선언(1:3-9)
【3-5절】호세아가 고멜을 통하여 낳은 자녀들은 각각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데, 이 이름들은 장차 이스라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사 7:14; 8:3 참고). ‘이스르엘’이란 ‘뿌린다’, ‘흩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로서, 역사적으로는 아합이 죽인 나봇의 포도원이 있던 곳의 지명이 이스르엘입니다. 예후는 아합이 흘린 의인 나봇의 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서 아합의 가문을 멸하고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이후 예후와 그의 왕조 역시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를 하며 범죄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마치 이스르엘에서 아합이 피를 흘린 것처럼 예후의 집도 피를 흘리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실제로 예후 왕조의 넷째 왕이었던 스가랴가 살룸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성취됩니다.
【6-9절】‘로루하마’와 ‘로암미’에서 ‘로’란 ‘아니(not)’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루하마’란 ‘자비’, ‘긍휼’의 뜻이고, ‘암미’란 ‘내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할 것을 나타내는 이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의 세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7절은 북이스라엘이 그처럼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할 것이지만 유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으로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사 36-37장 참고).
이스라엘의 회복과 번성(1:10-2:1)
【1:10-2:1】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말씀 이후에 곧바로 이스라엘 자손의 회복과 구원에 대한 약속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11절의 ‘한 두목(頭目)’이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로서,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이 이처럼 한 두목을 세우고 함께 올라오리라는 말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로 연합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엡 2:11-22).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은 ‘로암미’가 아닌 ‘암미’(내 백성)로, ‘로루하마’가 아닌 ‘루하마’로 불림으로써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스르엘의 날이 크리라’는 말은, 원래 이스르엘이란 말에는 ‘흩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뿌린다’ 즉 씨를 심는다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 모으실 때에는 새롭게 회복된 천국의 씨앗들인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번성과 결실이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아내를 맞이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로 연합되는 것은 언제, 누구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됩니까?
◈오늘의 기도◈
“본성적으로 음란한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아주신 은혜에 늘 감격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믿음의 글◈ “소선지서라는 명칭에 대해서”
소선지서는 구약 성경의 마지막 12권의 성경에 붙여진 명칭으로서,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의 대선지서와 함께 후기(後期) 선지서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얌니야 종교회의(A.D. 100년경)에서 구약 39권이 정경(正經)으로 확정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 12권의 성경은 ‘12서’(Twelve)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문집(文集)으로 구약성경에 들어 있었으며, 이 12권의 성경이 ‘소선지서’(Minor Prophets)라고 불리게 된 것은 어거스틴(Augustine, A.D. 354-430) 시대 때로부터의 일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이 12권의 성경이 소선지서라고 불리는 것은 그 분량이 이사야나 예레미야, 에스겔에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지, 결코 그 내용이나 신학적 깊이가 대선지서들보다 떨어지거나 다르기 때문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