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해맞이, 이대로는 안 된다
지난 21일 양산시는 천성산 정상에서 거창한 해맞이 행사를 치르겠다고 각 언론을 통해 발표하였다. 정상에 200대의 자동차를 주차하고, 일출 2시간 전부터 컵라면 나눔, 발원제, 밴드공연, 소망지 태우기, 북치기, 풍물 한마당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시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을 보고 나는 정말 경악할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양산시에서는 다년간 천성산 해맞이에 공을 들이고 스토리텔링을 위해 천성산 곳곳에 안내판을 세웠다. 양산시에서 지역의 명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천성산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하는 행사가 오히려 천성산을 망가뜨리는 일임을 모르고 있다. 산과 시청의 거리가 먼 탓일까? 현장의 사정을 너무 모르는 상태에서 큰 규모의 천성산 해맞이 행사를 벌이려 하고 있다.
우선 당장 장소가 문제다. 해맞이 행사를 하려는 장소가 바로 양산시가 스스로 지정한 원효봉‘습지복원지역’이다.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충격 그 자체다. 고산습지는 저습지에 비해 생태민감도가 더 높다. 표토유실, 산림화 등 여러 요인 때문에 복원과 보존에 더 세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0대의 차량이 들어오고, 라면을 끓이고 소망지를 태우기 위해 불을 피운다, 더구나 밴드와 풍물 한마당까지 할 바에야 도대체 ‘습지복원지역’을 왜 만들고 도립공원을 왜 지정했는지 모르겠다. 고사습지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시에서는 일 년에 한번 행사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모르는 소리다. 우선 2백대의 차량과 수천 명의 사람에 의한 답압과 훼손은 아무리 364일을 잘 보존했더라도 한 순간에 다 망치는 일이다. 그나마 표토가 부족해 식물정착이 어려운 과거 연병장과 도로는 오히려 복원을 위해 더 민감한 지역이기에 더욱 출입을 삼가야 한다. 그런데 시에서 자청해 시민을 초대하고 차량을 허용한다는 것은 복원의지 자체가 없다는 말 외에 무엇이겠는가? 더구나 주변의 억새밭 등의 초원지역이 펼쳐진 곳에서 불을 피운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주변에는 스스로 내건 산불조심 깃발이 나부낀다. 산불조심을 강조하는 시에서 앞장서서 바짝 마르고 바람 심한 초원에서 대규모 사람을 모아놓고 불을 피운다니 말이 되는가? 그럴 바에야 산불조심을 왜 하는가? 또한 천성산은 고산습지를 둔 덕분에 다양한 동식물들의 생계군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정상 부근엔 수십 마리 꿩은 물론 말똥가리, 잿빛개구리매, 수리부엉이, 참매, 담비, 삵 등 각종 보호종과 천연기념물이 살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 엠프를 동원해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고 밴드와 풍물 공연까지 한다고 한다. 이 모든 동물군을 내몰겠다는 작정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도무지 천성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고 이런 일을 벌인다는 말인가? 물론 모르니까 그럴 것이다. 모르니까 민감한 장소에서 엄청난 일을 벌이면서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천성산 원효봉 정상은 사실 말이 ‘습지복원지역’이지 많은 등산객은 여전히 중앙 복원지역을 관통해 걷고 있다. 운행금지한 산악자전거들은 말할 것도 없다. 평소에도 자동차가 원효암 주차장까지 올 수 있는 까닭에 시민들이 개도 자유롭게 뛰어다니게 하며 산책하고, 복원지역에 들어가 수시로 채취한다. 야영금지 팻말이 붙어 있지만 여전히 복원지역 곳곳에서는 야영을 한다. 소나무 그늘 같은 곳에서는 아직도 라면 등을 끓여먹는 등산객들도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시에서 이렇게 큰 판을 정상에서 벌여야만 하는가?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그렇다.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시의 입장을 백번 이해한다고 하자. 나도 해맞이에는 찬성한다. 그렇다면 시의 입장에서 최대한 훌륭히 해맞이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같이 많은 비용과 장비를 들여 어느 곳에서나 할 수 있는 난장의 싸구려 해맞이 행사를 하는 것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그야말로 시가 내세우는 천성산의 스토리텔링을 잘 살려야 한다. 왜냐하면 천성산의 해맞이 행사는 천성산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이다.
양산시는 천성산을 ‘내륙에서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장소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럴 수 있겠다. 더구나 해맞이 하는 장소가 원효봉 정상과 습지복원지역이니 그 이름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원효봉 주변은 온통 원효스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원효암이 그렇고, 천성산의 이름과 관련 있는 화엄벌과 원효바위가 그렇다. 원효스님은 이곳에서 천명의 스님에게 화엄경을 가르쳐 모두 깨달음을 얻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천성산이다. 또한 스님은 자신을 낮춰 법명인 원효(元曉)라는 한자어 대신 첫새벽, 혹은 아침이라는 뜻의 당시 신라말로 자신을 불렀다고 한다. 참으로 원효스님이야말로 해동의 첫새벽, 해동이 낳은 해동의 주체적 불교를 세우고 중생구제의 보살운동에 뛰어든 한국 불교의 샛별 아닌가? 의천이 해동교주 원효보살로 추앙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바로 이런 곳에서 해맞이를 한다고 하니 천성산 해맞이 행사는 얼마나 뜻 깊은가? 수 천 명의 시민들이 새 해 첫 볕을 보며 천명의 성인이 태어나듯 새롭게 태어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천명의 성인 전설이 매년 현재화되는 것이다. 또한 원효 스님이 펴신 화쟁의 가르침을 따라 좌우, 남북, 상하의 대립을 화해로 낳고, 습지복원지역인 원효봉 정상에서 자연을 보호하고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문화를 약속하고, 중생구제의 삶에 뛰어든 스님의 보살정신을 되새기며 이기주의로 찌든 삶을 혁신할 수 있다면 원효봉에서의 천성산 해맞이만큼 좋은 행사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북치고 장고치고 밴드 울릴 일이 아니다. 거기에 따뜻한 물 한잔, 커피 한잔 을 나누며 경건한 일출을 맞이한다면 그야말로 대한민국 제1일의 해맞이 행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천성산 원효봉의 해맞이일 것이다. 원효암 주자창에 차를 세워두고 20여분 걸어 오르는 산길 또한 몸과 마음을 씻는 의례로서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굳이 습지복원지역을 훼손할 일이 무엇인가? 그 뜻을 기리고 따르는 것이야말로 조상의 유산을 보전하는 길이다. 양산시가 정말 그토록 내세우는 천성산과 원효스님을 제대로 기리고 또 해맞이 행사를 만들고 싶다면 모든 국민 나아가 세계에 내놓을 해맞이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자동차를 통제하고, 조용히 걸어 올라가 천성산과 원효스님의 의미를 개인적으로 또 국가적으로 되새기며 거듭날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가 되도록 시에서 앞장서 주길 바란다.
행사 치를 때의 예(禮)는 뜻을 기리고 상황에 맞도록 하는 것이다. 고칠 수 있는데 고치지 않는 것은 잘못이고,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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