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비극
약수터 가는 숲길은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큰 선물이다. 오월이면 갓 데친 나물처럼 비타민이 풍부할 것 같은 신록은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하다. 그리고 더운 여름엔 나무들은 줄을 지어 서서, 숲길 거니는 사람들이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산책할 수 있게 가지를 뻗어준다. 양산이나 모자는 너무나 옹색하여 자기 역할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숲은 그야말로 품질이 좋은 그늘을 만든다. 게다가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쐬고 마시는 시원한 바람과 약수도 일미이다.
게다가 선사시대·신라시대 유적지가 있다. 평범한 동네 숲길이 아니라 중부고속도를 가로지른 육교를 건너 이성산성을 지나 멀리 남한산성으로 가는 국토 순례길이기도 한데 유적을 소개하는 팻말이 세 개나 있다. 그중 하남 덕풍골 제의 유적을 한 가지 소개한다.
"소재지: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 산 64번지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대(540∼576) 한강유역을 점령한 이후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구조와 크기로
볼 때 신분이 높은 사람이 묻혔던 같다.
무덤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평면이 긴 네모꼴[長方形]이고, 무덤방[石室]에
는 주검 받침[屍床]이 있으며 남벽 가운데에 ……”
하긴 산의 규모에 비해 여기저기 크고 작은 바위들이 흩어져 있어 마치 희귀한 자연석 전시장 같아 눈길을 끈다. 모양도 각양각색어서 옛날 사람들도 범상치 않게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제단을 꾸몄을 것이다. 거주지와 바로 가까이 있는, 높지 않은 산이어서 생각만 나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한동안 겨울이 되어 풀이 시들면 돌 사진 작가가 되어 사진을 찍고 바위라는 제목으로 연작시를 지었는데 20여 편이 된다.
바위 1
주말 아침, 선사시대 유적지가 있는 동산
구석기인들이 걷던 길을 따라 약수터에 가자면
길가엔 해면처럼 오랜 세월을 검게 머금은
큰 바위들 덩그러니 조각처럼 앉아 있는데
넘실대는 파도 무늬에 여기저기 갈라졌지만
아득한 시간이 배어든 푸른 이끼는 싱그럽다네
바위 2- 바위를 보며
오전 10시, 청려장 가볍게 짚고 동산에 오르니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 가지 흔들어 열린 숲이
매미 소리를 가득 채워서 오솔길에 쏟아붓는다
시선은 다시, 무심코 지나치던 산길 주변에서
옛이야기 하는 바위들을 향한다, '이것 봐라!'
다음부턴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크고 작은, 깊고 검은 바위들은
오랜 세월이 다듬은 추상주의, '무제無題'
아파트 옆 동산은 조각 전시회가 한창이다.
전설을 지닌 '말바위' 하나는 있지만
다른 것도 이름을 지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 아파트 옆 동산은 우리의 정원, 조각 공원
바위 3
약수터 가는 길은 독서 시간,
한 권 바위를 펼쳐 읽어 본다
넘겨도 끝나지를 않는 쪽수
읽을 거리가 한이 없다네
약수터 가는 길은 미술 시간,
좀 어려운 추상화 작품을
요리조리 꼼꼼 살펴보니
아직도 붓을 놓지 않았네
바위 4
추상 조각 작품 하나
동산 길가에 덩그러니 놓인 채
무심한 산책객들을 부른다오
춤추는 숲을 뒤에 업고
이끼로 덧칠을 하고
낙엽도 얹어 보며
바위 5 - 기념비
상형문자로 촘촘히 긴 나달 새기며
한 자리 잡아 지켜 온 바위에게
다가온 어린 나무 이제는 우람한
고목으로 우뚝 서 찬 바람 막아주네
푸른 이끼 목도리 함께 두르고
이 가을 아침을 미소로 맞이하네
바위 6
이 몸은 무겁지만 생각은 깃털 같아
새처럼 날고 싶은 오랜 꿈 몸에 배어
바위는 활주로 달려 이륙하는 비행기
바위 7 - 가족
숲 속에 자리잡은 대 이은 명당 자리
바위들 모여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네
끝 없는 이야기 거리 헤어질 날 언젠가
바위 8 - 추상화
빛 내는 귀한 이끼 구하기 힘들어도
바위는 쉬지 않고 추상화 그린다네
화가로 살아갈 먼 길, 붓 거둘 날 언젠가
바위 12 - 얼굴 바위
태어나 정든 동산 나무는 이웃사촌
언제나 함께 하며 하늘을 바라보니
희망은 얼굴 바위로 굳은 믿음 되었네
바위 13 - 단짝 친구
나무를 닮았는가 땅 속에 뿌리 내려
발돋움 몸을 세워 하늘을 바라보며
단둘이 지내온 나달 지루한 줄 모르네
바위 15 - 바다 꿈
이 몸이 산 속에서 떠난 적 없었건만
연어와 바다 여행 함께 할 평생 꿈에
돋아난 물고기 비늘 넓은 등을 덮었네
하루는 벤치 앉아 쉬다가 엉뚱한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2022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구석기시대나 신라시대 사람들이 지금도 같은 길은 함께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구석기시대 사람을 만난다면 의사소통이 될까. 신라 사람은 몇 마디쯤은 통하겠지." 하며 상상의 날개짓을 하곤 했다. 그런데 너무 높이 날았는지 다음 이야기를 읽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그날 잠깐 경험했던 또 다른 세상, 인간과 가장 가까웠던 동물과의 만남을 소개하려고 한다.
약수터로 가려고 벤치에서 일어나는데 옆에 있는 멋지고 큰 바위 위에 죽은 다람쥐 한 마리가 보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손으로 집기는 뭐해서 발로 차서 길 위쪽 풀이 덮인 언덕으로 보내 주검이 보이지 않게 하려고 일어나 보니 앞발 밑에 작은 종이 한 장이 깔려 있었는데 글 쓴 것이 보여 집어 보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바로 죽은 다람쥐의 유서였는데 그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모으기 힘든 도토리를 100개나 모았고 앞으로 1,000개 모은 다음 가정을 이룬다는 목표로 부지런히 도토리를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하루는 누군가 땅속에 묻어둔 전 재산을 훔쳐갔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의욕을 상실했다. 그리고 무의미한 하루하루는 죽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죽은 자는 먹을 필요가 없으니 이 순간부터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자유를 준 민성아 미안해. 다람 씀”
좋은 글씨는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의 글씨는 아니었고 볼펜으로 또박또박 정성껏 써서 읽기도 아주 편했다. 순간, 다람쥐이지만 인간적인 연민의 정이 느껴져 정중하게 매장해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한참 있다가 떠오른 묏자리는 신라 진흥왕대의 적석총으로 밝혀진 묘 건너편이었다. 사람의 옆모습을 닮아 내가 '얼굴 바위'라고 명명한 바위 옆에 묻어 주었다.
‘다람이’는 민성이라는 초등학교 학생이 애완용으로 키우다가 놓아준 다람쥐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 학생 집에 몇 년 살면서 '서당 개 삼 년 풍월을 한다, 당구 삼 년에 폐풍월(吠風月), 독서당 개가 맹자 왈 한다'고 지능이 높았던 그 다람쥐는 삼 년이 되기 전에 어깨 너머로 글도 배우고 텔레비전을 통해 인간의 문화에 접하게 되면서 부의 축적에 관심이 생겼고 자유를 얻은 다음에도 저녁마다 언덕에 앉아 아파트 거실마다, 세워 놓은 바둑판의 바둑돌처럼 반짝이는 텔레비전들을 기웃거리면서 인간 세상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민성이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는 사이에 다람은 인간의 생활 방식에 익숙하게 되었지만 그것도 모르고 다람쥐 세상으로 보내주기를 잘했다고 흐뭇함을 느꼈을 것이고 다람은 이른바 속세를 완전히 떠나지는 못한 것이다.
무한수를 향하는 화폐 단위에도 눈이 뜨게 되면서 점점 하루나 몇 달치 식량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이 자라 무작정 도토리 모으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다른 다람쥐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갖은 고생을 하면서 쉬지 않고 도토리를 모았다. 사람들이 도토리묵을 만든다고 싹쓸이해 가고 청설모와 다른 다람쥐들이 먹는데 그러한 극심한 생존 경쟁 속에서 100개나 모아 땅굴에 저장해 두었는데 누군가 다 훔쳐가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얼마 동안 부자라는 느낌을 갖고 살다가 하루 아침에 가난뱅이가 되고 나니 그 실망감과 허탈감을 극복할 수가 없었다. ‘다람’은 어느새 인간을 닮아 도저히 일용할 양식으론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다람쥐들은 갖고 있지 않았던, 죽지 않고 영원히 살려는 생에 대한 강한 집착만큼 그 영원한 삶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끝이 보이지 않는 수의 도토리가 필요했고 그에 따라 굶주리는 다른 친구들은 안중에도 없이 도토리를 모은 것이 이러한 비극으로 끝을 맺다니. 민성이가 준 자유의 결말이 왜 이러한가.
무엇보다 다행한 것은 '다람'이 독신으로 지냈기 때문에 그를 닮은 다람쥐가 지구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에 그 ‘다람’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후손이 번창했더라면 다람쥐들도 지능이 점점 높아짐에 따라 본능의 테두리를 벗어나 인간들처럼 그들만의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켰을 것이고 자연은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 아닌가. 인류 문화의 유지만을 위해서 많은 천연자원이 소비되어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는데 다람쥐들까지 덩달아 인간을 모방하여 별개의 문화를 추구했다면 지구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첫댓글 뜻 깊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