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2018. 11. 9. 0:53)
처음으로 영화를
하루에 두 번 연달아 관람하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집으로, 일상으로, 현실로는
그가 그랬지
비는 시간이 두려워
뒤로 밀쳐둔 어둠이 밀려올까
생긴 대로 사는 거지
운명대로
노래를 짓고
또 하고
피아노를 치고
퍼포먼스를 하고
사랑을 하고
파티를 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그의 자신감
하고픈 것
다 할 수 있게 한
열등감
그래도 외로웠던
인간이 좋아
그 족속이
마취 없인 견딜 수 없는
병을 앓는다지만
돈을 나누듯
행복을 나누듯
음악이라는
예술이라는
참된 인생이라는
양질의 마취제를 서로 나눌 수 있으니
almost everything (2018. 11. 19. 16:57)
7번 봤다. 그런데도 지금 제일 부러운 사람이 10분 후 이 영화를 비로소 만나게 될 현장의 그들이다. 미쳤다 할까봐 가족, 친구들에게도 차마 7번이란 말은 하지 못했다. 학창 시절부터 진저리쳤던 영어가 새삼 모국어처럼 정겹고 학원 갈 시간만 되면 배가 아파 바이엘도 다 못 떼고 그만둔 피아노도 아쉽기만 하다. 아무리 목석같은 인간이라 해도 음악이 뒤흔들지 못할 위인이란 이 세상에 없음을 나로부터 알았다. 또한 프레디의 삶과 죽음 앞에서 노대통령을 잃었을 때만큼의 저린 슬픔을 주체 못하겠다. 아웃사이더로, 마이너로 나고 자라 어렵게 성공했으면 좀더 약게 살아도 좋았을텐데 하고, 안타까움에 부질없는 꼰대짓까지 서슴치 않는다. 그나마 7번이었으니 망정이지 10번, 20번이었으면 죽은 프레디가 실은 죽은 게 아니라 런던 어딘가에 살고 있다 믿고 설치진 않을런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보고싶다. 보헤미안 랩소디!
앓이 (2018. 11. 20. 19:02)
보헤미안 랩소디
원대로
오늘 8차 관람
허나
가일층 타는 목마름
누군가
영원토록 내리지 않았음 바란다고
매주 한번씩 볼수있게
미투
미투
간절히 미투
오늘을 유독 장악한
그의 뒷모습
또 기침 소리
점점 아픈 곳으로 향하는
시선
기억
왜 하필 이맘때 (2018. 11. 22. 14:03 )
춥다.
땅에도
허공에도
시방의 내 집착과 닮은 나뭇가지에도
온통 마른잎 뿐
수진이 만나러
경전철 타고 김해 가는 길
수진이는 보헤미안을 보았을까
떨리는 마음에
차마 묻지 못했다.
떨리는 손으로
김해 cgv 상영시간표를 검색하니
거긴 싱어롱 상영관이 있다.
여덟 번 동안
당연히 스크린X도, 아이맥스도 경험했지만
싱어롱은 아직.
하지만 거긴 선뜻
마음을 못 내겠다.
온전히 프레디의 목소리만
그의 피아노 소리만
징징대며 원하는 까닭이다.
어차피
6시까진 화명동으로 돌아와
아이를 아빠 탁구장까지 데려다 줘야 하지만
그래도
아홉 번째 관람이 또 오늘이었으면
수진이와 함께였으면
수진이가 뚝뚝 울었으면
그런 수진이에게
실존한 프레디의 양볼엔 보조개가 있음을
엄지, 검지로만 마이크를 감싸고
나머지 세 손가락으론 마이크 아래를 받치는
그의 독특함이
보는 사람을 얼마나 환장케 하는지를
넌지시 속삭여줄 수 있었으면
그랬으면
바란다.
광시곡 (2018. 11. 24. 15:59)
금요일
이미 남친과 보랩을 보았다는 수진이에게
차마 재관람 얘긴 꺼내지도 못한 채
혼자 9회차 관람을 했고
어제 토요일
경희가 동래 CGV 스크린X관 싱어롱 타임을
예매해 와서
내 열번 째 관람을 특별하게 해주었다
그것도 표가 없어 빠알간 커플석으로
나같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싱어롱이란 취지가 무색하게
관내 분위기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경희 역시 쉽게 소릴 내지 못하고
발도 손도 줄곧 묶인 상태였다
그러다
나로 하여금
베이스 기타의 가격을 알아보게 만든
존 디콘의 명곡
'Another one bites the dust'가 나오자
이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발로
턱으로
미친 박동을 분산했다
그 장면 속
거만한 표정으로 어깨를 튕기며 노래하는
그를 보며
순식간에 곡을 해석해
자신과 합일하는 그 타고남에
난 그대로 까무라칠 지경이었다
말그대로
죽어도 좋아!
퍼포머인 그도 그렇고
보는 나도 그렇고
더할 나위 없이
"AIl~~~Right!"
오늘
그의 기일
서울엔 함박눈이 온다고
이곳 부산은
잔뜩 흐린 하늘만
학교의 일일찻집 행사 스텝으로
일찍 집을 나서는 열두 살 아들에게
라이브 에이드의 프레디 청바지를
기어이 입혀 보내는 것으로
그를 소박하게 추모하며
눈을 맞고
그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로
거리가 넘쳐나기를
그리하여
외로웠던 그를 위해
다같이
"Cheers!"
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2018. 11. 25. 8:10)
행사 참석차 서울 가시는 어머니
아침상을 차리고
여러 준비물을 챙겨 드리느라
새벽 6시에 일어남
작년 이맘때
큰 고비를 넘기신 후의
첫 장거리 출타
어머니를 배웅하러
밖으로 나가니
코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
오래 전
한밤중의 제주도
그 해안도로를 삼켰던
비상등을 켜고
렌트카 핸들을 꽉 붙들고 긴장하던
인서아빠의 숙여진 어깨와
직전까지 쉼없이 재잘대다
어린 맘에도 심상치 않음을 보았는지
침묵 속에 새카만 눈동자로 빛을 내던 아들
오랜만에 거실의 십자고상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께서 어머니와 동행해 주십사
안개는 점점 짙어져
지금은 앞동 외벽의 105란 숫자도 희미해
부산에선 익히 본 적 없다
놀라워하고 있는 중
브라이언과 프레디가
보헤미안 랩소디를 녹음하며 주고받던
열정적이면서도 따뜻했던 말들
문득
프레디 곁엔
드물게도 좋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부모, 형제, 멤버, 친구, 애인
어느 것 하나 빠짐이 없었는데
그는 왜 그토록
외로웠을까
초심으로 돌아가 되묻는다
아닌 사람을 아닌 사람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휘둘릴 수밖에 없을 정도의 지독한 외로움을
그가 왜 겪어야 했는지를
사실 그렇지 않은가
모르고 속거나
속을까봐 피하거나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아무리 외롭다 아우성을 쳐도
결국 둘 중 하나로는 살고있지 않느냔 말이다
모르겠고 헷갈린다
아무리 실화를 바탕으로 했어도
결국 극영화란 픽션일 뿐
조금 전 센텀 롯데시네마에서의 관람까지
도합 열한 번을 만났다 해도
이후에도 더 수십 번을 본다 해도
그가 바로 그는 아니라 인정하며
내 어리석은 질문을 거두어야 할 때이다
결국 불멸에 가깝도록 남는 건
이름이고 노래
도대체 'sex machine'이란
성인용품스러운(?) 가사에서도
헤어날 수 없는 슬픔이 묻어나는 목소리와 멜로디라니!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아니 여왕님처럼
오늘 아침의
그 차고 짙은 안개를 내어줘도
거뜬히 걸쳐 소화할
진정한 복장도착자 프레디
폴 프렌터 뿐만 아니라
단지 제 삶에 지치고 제 설움에 겨워
이처럼
보고 싶은 대로만 보며
마음껏 찧고 까부는
팬이라는 명목의
나에게도
기꺼이 알고 속아줄
자유인
외로움이 아니라 더한 것으로도
나같은 부적응자들을 위로해줄
전설의 뮤지션
그를 위해 오늘은
오늘만은 정말 잔을 채워
"Cheers!"
Too much love will kill you (2018. 11. 27. 15:55)
매주 월요일, 금요일은
어머니 모시고 한의원 다녀오는 날
돌아오는 길
맛있는 점심 사드리고
집에서도 안마 해드리며 말동무로 지내는 날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예전엔 종이 신문도 휴간인 날
그래서 아버지가 심각한 금단증상에
시달리신 날
도서관도 문 닫는 날
덩달아 화명도서관 앞의 단골집
'밀밭국수'도 맛 못 보는 날
하지만 극장은 연중무휴
결국 보헤미안 랩소디가 착하게도
여전히
걸려
'Somebody to love'부터
'The show must go on'까지
애틋하게
감겨 돌아가는 날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 못하다
살짝 낮잠에 빠지신 어머니를 틈타
컴퓨터 방으로
우연히 듣게 된
'Too much love will kill you'
숨이 막히고
갈증이 일도록
눈물을 쏟고
듣고
듣고
또 듣고
보랩이 장송곡이 아니라
바로 이게 그것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아니
다신 오지 않을 거야
사랑조차 힘든
이 빌어먹을 세상으론
"I love you. but..."
"I love you. but..."
그래도 화요일
새벽 5시40분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어머니 혈압약을 챙겨놓고
미역국을 끓이고
카레를 만들고
스프를 쑤고
가족들을 깨우고
먹이고
내보내고
설거지하고
씻고
그러고 나니
요양사 선생님이 구세주처럼 나타나
이제 어디로
할 만큼 했으니
이젠 또 거기로
상영시간표 확인
스크린 크기 확인
은행 앞에서 하차하며
환승을 위해 카드를 처리하고
급히 이 볼일만 마치면
이제 정말
거기로
home
빗속에서
절망 속에서
중얼거릴
허나
발걸음은 끝내
등을 지고
도서관
누구한테든 당당히 말할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
장송곡의 가사처럼
사이에서 찢길 것 같아
해방은
올 것인지
어떤 모습일지
어둡고 괴로워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부족해
모든 노랫말론 부족해
지금 이순간을 노래해줘
프레디처럼
어제의 일기 (2018. 11. 29. 18:15)
오늘도 굶으면
굶어 죽을 것 같아
11차였던 지난 일요일
센텀 롯데시네마에서 얻어 온
'평일 영화 7,000원 관람 쿠폰'을 들고
무엇에 쫓기듯 다시 그곳으로
허겁지겁한 마음으로
팽팽한 각성의 상태일 줄 알았는데
영화 시작 10분도 안 되어 졸기 시작
한치 앞도 못 보는 게 아무리 인생이라지만
내 머리가 조금만 쓸만했어도
이미 대충의 대사를 싹 외울 정도의
반복 관람임을 감안하더라도
전날 밤, 아이가 새벽 1시 넘어까지 잠들지 못해
함께 뒤척인 일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은
졸다니!
내가
그를 앞에 두고
그럼 이대로 잦아 드는건가
비로소 안도해야 하나
방심은 금물 중의 금물
단발, 콧수염 이후의 프레디
아니, 라미 말렉의 눈빛이 회심의 화살처럼
심장 한가운데를 관통
빗속에 서서 메리가 타고온
택시 문을 닫아줄 때
멤버들에게 사과할 때
짐 허튼과 재회할 때
아버지와 화해의 포옹을 할 때
그리고 라이브 에이드의 피아노에 비친
때마다
미치도록 깊고 푸르렀던
그리고
바둑 학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릴 때
쐐기를 박듯 찾아온
프레디 생전의 인터뷰 영상
아직은 멀었어
벗어나긴 심히 일러
Save me (5시간 전)
어제 못다한 이야기
1984년 뮌헨에서의 단독 인터뷰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 직전의 퀸 인터뷰에서도
혼자 담배를 피워가며 산만하더니
거기선 아예 술까지 곁들여
맥주의 나라 독일이라 싶어 그랬나
차분하고 소박한 목소리와 질문을 구사하는
인터뷰어 얼굴 쪽은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쑥스러워 하는 그를
사람들은
내성적이다가 무대에만 오르면 돌변하는
평소 모습이라 증언하겠지만
거기에 더해
여느 인터뷰어들과는 다른 저 인터뷰어를
그가 잠시나마 흠모한 건 아니었나
혼자 맘껏 상상
그의 외로움에 기대어
이처럼
오늘 하게 된 어제의 못다한 이야기란
김빠진 맥주와 같아서
눈물은 가득 고였으나
내 입꼬린 슬며시 올라가게 했던
풋풋하고 샤이한 소년 그 자체로
노래 부를 때완 또다른 울림을 주던 그의 육성을
도무지 생생히 표현할 길이 없어
그 안타까움에 불을 지르듯
오늘을 덮쳐온 노래
'Save me'
피아노 치는 브라이언 메이
그 낯섦 곁에 슬쩍 다가가
그를 격려하는 듯도
한편 놀리는 듯도 보이는 프레디의 퍼포먼스
이내
그 모든 걸 깨끗이 잊게 만드는 그의 보컬
어쩜 노래를 저렇게 잘할 수 있을까
저 애틋한 노래를
목도 메지 않고
애꿎은 타인의 목만 숨이 막히도록
메이게 할 뿐
본인이 듣는 본인 목소리와
타인이 듣는 목소리가 다르다지
녹음 후
혹은 공연 후
그도 분명 리스너들에게 닿는
그의 목소릴 들어 보았겠지
사돈 남말 하시네, 프레디!
당신이야말로
Save 해줘야할 사람들이 이토록 무수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게 바로
당신이 말한 전설의 실체였구나
입살이 보살임을 진리로 믿는 나
애초에
당신이 그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닌 걸 알았다면
보지 말걸
듣지 말걸
어쩔 수 없이 보고 들었어도
딱 한번만일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