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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내가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갑니다.(갈5:22-23)
2013, 8/11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갈5:22-23절 말씀으로“인내가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갑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선포하겠습니다.
이 말씀, 선포될 때 주의 크신 은혜가 이곳에 충만하길 원합니다.
더위가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해는 안 나고 습도와 기온까지 높으니 매우 무덥게 느껴집니다. 휴가도 막바지인데 건강한 여름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앞뒤, 옆에 계신 분들과 함께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힘냅시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썼던 첫 번째 편지로써(고린도후서 다음 편지로 마케도니아에서 썼다는 설도 있음)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과 은혜에 대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습니다.
특히 본문은 그리스도인을 통해 나타나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인내가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갑니다.(절)
사랑하는 여러분!!!
오래 참음을 다른 말로 인내라 합니다. 요즘 습도가 높고 날씨가 무더워 짜증나기 쉬운데 짜증이 올라와도 한 번 인내해보심이 어떠실런지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 성질대로 다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병신병자 취급을 받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인내는 필수입니다. 인내가 얼마나 중요하면 성령의 9가지 열매에 포함시켰겠습니까? 인내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갑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인내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인내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인내가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갑니다.(22-23절)
본문 22-23절 말씀, 함께 일겠습니다.“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아멘.
예수 안에서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 오래 참음, 다시 말해 인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인내해야하는데 인내는 성령의 열매이고 하나님께서 인내하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내는 하나님을 향한 인내와 사람에 대한 인내기 있습니다.
벧후3:9절 말씀에“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편지가 쓰여진(AD66-67년, 네로) 당시에는 기독교인에 대한 대단히 핍박이 심했습니다. 저들이 그 모진 핍박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곧 오실거라는 소망 때문인데 기다리던 주님은 오시지 않고 핍박은 날로 심해갔습니다.
재림이란 원어가 ‘파루시야’로 이 단어자체가 중요한 방문객의 갑작스런 방문을 뜻했기에 성도들도 주님이 금방 오실 줄 알았지만 기다려도 주님이 오지 않자 믿음 약한 교인들이 재림에 회의를 품고 교회를 떠나기 시작합니다.
결과적으로 재림을 정말 믿는냐 의심하느냐의 차이가 핍박과 유혹 앞에서 신앙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의 분수령이 됐던 것입니다.
마치 양과 염소가 갈라지고, 알곡과 가라지가 갈라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꼭 지금 상항과 비슷합니다. 주님의 재림, 그리고 심판, 천국과 지옥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으면 신앙이 변질되고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항에서 베드로가 주님 재림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2가지로 설명합니다. ① 하나는 재림의 시간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역사 속에, 공간속에 갇혀있는 시간이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역사와 시공을 초월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주께는 (우리의)하루가 천 년 같고 (우리의)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시간표, 다시 말해 이 세상의 시간에 영향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주의 재림이든, 기도의 응답이든, 축복의 역사든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의 시간표에 맡기고 기다려야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카이로스라 하는데 하나님이 언제 역사하실지 그 시간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기다리고, 오래 참고,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내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② 아직도 주님이 재림하지 않는 것은 바로 하나님사랑 때문이라는 겁니다.
너희가 재림의 약속이 더디다고 하는데 더딘 것이 아니라 너희 중에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 얻길 원하시는 하나님사랑 때문이라는 겁니다.
주님 맞을 준비가 아직 안돼 있는데 주님이 오시면 다 지옥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사랑 많으신 하나님입장에서 못하실 일이죠. 그래서 아직 안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 갈 준비가 안 된 우리를 살린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롬2:4절 말씀에“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너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길이 참고 기다리는데 너는 그런 나의 사랑을 무시하느냐는 겁니다.
EX) 어떤 무신론자, 친구에게= 내가 5분 동안 하나님을 저주할뗀데 아무반응 없으면 하나님이 없거나 무능한 증거.➝별 쌍욕, 저주를 퍼부음,➝5분이 지나도 아무 일이 없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함.➝그 자리에 있던 친구, 한마디 함.
하나님의 인내를 단5분으로 줄이려는 네가 무모한 것이다.
여러분!!! 누구나 무신론자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러나 2,000년이 넘도록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출34:6절 말씀에“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입니다.
이 말씀은 꼭 무신론자와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교인에게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오랫동안 인내만하고 계실까요?
고전13:4-7절에 사랑이 어떤 것인지 15번이 나오는데 그중 3번이 인내와 연관 되어있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로 시작해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로 끝납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사랑을 말하면서 인내로 시작해 인내로 마무리할까요?
사랑과 인내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인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못하고 주님을 배신하고 교회를 떠난 이유를 알 것 같은데 왜 떠났을까요?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데마가 인내하지 못하고 주님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고, 가롯유다가 오래참지 못하고 주님을 은 30에 팔았던 이유가 무얼까요?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겼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고비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약속의 말씀을 기다리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도응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형제들의 부족함을 참아주지 못하고 비난하고 불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멀쩡한 것은 하나님의 인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없었다면 어찌되었을까요? 우리는 진즉 아작 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약속한 것은 그것이 더디더라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응답이 더디다고 불평하지 마시고 주님사랑으로 인내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이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필수입니다.
왜냐면 인내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자녀들=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고, 키워줘고 공부시켜주고, 쥐면 꺼질세라 불면 날아갈세라 정성을 다해 키웁니다. 요즘 딸 바보, 아들바보라는 신조어가 생겼는데 자녀가 무슨 짓을 해도 인내하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마누라바보, 남편바보는 왜 없나 몰라요.) 그런데도 자녀는 감사는 커녕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도 부모는 본전생각하지 않아 그냥 쏟아 붓습니다.
아무리 잘못해도 엄마아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집니다.
만약 다른 집 아이가 저렇게 해도 참아줄까요? 아마 안 될 겁니다.
하지만 내 아이이니까 다 용서가 되고 제대로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하면 웬수같은 남편도 속 썩이는 자식도 기다려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가족에게는 되는 이 기다림과 인내가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안될까요? 그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반성할 것이 많습니다.
조금 잘해주면 생글거리고,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상대방의 실수는 용납이 안 되고 오래 참아주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엡4:2-3절 말씀에“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ex) 우화= 빨강개구리 노랑개구리가 날마다 싸움. 그런 중 빨강개구리가 죽자 노랑개구리는 좋다고 난리➝이 연못은 자기 거라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고, 매우 행복해했음➝시간이 흐르자 혼자 외롭고 쓸쓸함.➝썪은 물에 악취나고 혼자보다는 싸워도 둘이 있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노랑개구리도 더 이상 그곳에 살수 없게 됨
개구리들이 서로 참고 사랑하며 이해하고 기다려 줘야했습니다.
호10:12절 말씀에“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는 것은 정의를 뿌리면 반드시 사랑의 열매로 되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작년, EBS에서 하바드대학 서덜렌드교수의 정의가 무엇인가를 방영했는데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입니까? 정의 그러면 보통 나쁜 놈들 보면 분노하고, 의협심을 발동해서 정죄하고 비판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정의는 그 정의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합니다.(고전13:1)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의로운 성품이라도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정의가 아닌 겁니다.
노무현대통령이 서해NLL을 포기했다 안 했다로 국회에서 싸우고 난리가 났는데 사람마다 평가가 달라야 정상임에도 여당은 전부 긍정, 야당은 전부 부정입니다.
이것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기다려주지 않는 종파주의 정의라서 그렇습니다.
미움과 비판과 정죄만이 가득한 종파주의 정의가 대한민국 국회에서 판치고, 집단의식 또래의식이 이 사회와 학교와 교회에서 판치면 이 나라는 대책이 없습니다.
고전13:4절의 사랑은“오래참고”(마카로 튀미야)의 원어적의미가 화가 나기 전에 참는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에게 받는 상처를 견디는 특성을 말합니다.
상처로 말하면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 가족 간에 가장 많이 주고받을 것입니다.
가정이 너무 편하기 때문에 그러는데 그때마다 참지 못하고 교회 옮기듯이 가정을 옮긴다면 세상은 난장판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갈등을 통해 참고 인내하며 나를 죽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눅21:19절 말씀에“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ex) 부부끼리 나와 토크쇼를 하는 모 방송국의 ‘자기야’라는 TV프로가 있었는데 그 프로 출연자들이 짧은 기간에 무려 5쌍이나 이혼했다고 며칠 전 신문에 읽음. 짧은 기간에 그들이 왜 이혼을 많이 했을까요?
결론은 방송국에서 원하는 대로 부부간에 섭섭함을 다 까발렸기 때문입니다. 방송국이야 시청률 때문에 유도를 했겠지만 그래도 서로 상처가 될 말은 하지 말아야 되는데 참지 못하고 서로 다 까발려서 뭔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집에 가면 싸울 것이고 감정의 골이 깊어져 결국 이혼까지 갔겠지요.
세상을 살다보니 내 맘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살겠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화가 될 된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당연히 문제가 있지요. 차별하고, 무시하고, 함부로 말해서 상처를 주고, 받기도하지만 그러나 주님의 사랑 때문에 그 형제에게 바로 대응하지 않고 참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게 고난일지라도 우리는 그걸 통해서 오래참고 덮어주고 인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시119:71절 말씀에“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교회에 문제가 있다고 이교회 저 교회 돌아다니는 것 부질없는 짓입니다.
해아래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내 영이 어른이면 교회문제도 감당할 수 있고, 내 영이 어린아이면 불평불만 문제투성이로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 의지로는 안 되고 성령님을 의지할 때 가능하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로 인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공동체 형제들에게 오래참고 특별히 연약한 자들을 기다려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공의고 정의입니다.
여러분들이 인내로써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 행복한 교회공동체를 이루어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인내를 통해 말씀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인내가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갑니다.(절)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인내가 있었기에 그 수모와 멸시를 극복하고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이룰 수 있었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가 끝까지 천국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삼위하나님의 인내가 감사하다면 우리도 형제들에 대해 인내해야합니다.
더 참고 더 인내하고 더 기다려주는 믿음으로 형제를 세워나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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