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요12:1-8) ------
나사로에 관한 말씀은 죽어 무덤에 있을 때 예수님이 살리심으로 오직 예수님만이 죽음에서 그리고 무덤같은 세상에서 사는 인생을 구원할 유일한 소망과 생명이심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고 며칠 후에 나사로가 사는 베다니에 방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유는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커겠습니까?
그리고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가 예수님과 함께 잔치에 함께 앉아 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이처럼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다는 것은 신자가 장차 예수님과 함께 천국잔치에 앉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엡2:5-6)을 봉독합니다.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 약속을 믿고 사는 자들이 신자들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들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 그 어떠한 자리를 탐내기 보다 주님과 함께하는 자리가 최고의 자리인 줄로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죄악과 상관없이 높은 자리, 알아주는 자리에 앉고자 힘을 씁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복있는 신자는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예수님과 함께하는 은혜와 사랑의 자리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신자는 늘 주님이 함께하시는 하늘나라 천국잔치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자가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간다면 세상과 육신의 것들에 목숨을 걸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그런데 이 잔치 자리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비싼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마26:13)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리아의 행동이 어떠한 의미가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마리아의 행한 일이 기억되고 전파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 여인의 행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본문 1절에 보면 유월절 엿새 전이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유월절이 지나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알고 예수님의 죽으심인 장례할 날을 준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죽으심을 알기 전에는 세상의 것으로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마치 가룟유다와 같은 태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죽으심의 이유를 잘 모르면 가룟유다처럼 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돈을 쓰고 힘을 모아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자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가장 소중한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300데나리온의 향유는 오늘 날 환율로 계산한다면 약 삼천만에 이르는 큰 돈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이 가장 소중한 분으로 믿는다는 고백으로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것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는 예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 되기 때문에 주님을 위한 것은 아깝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백세에 얻은 아들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예수님보다는 돈이 더 소중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는 가룟유다의 마지막 죽음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돈궤를 맡은 가룟유다는 예수님보다 가난한 자들이 더 귀하다고 여겼습니다. 아니 실제로는 돈에 탐심을 가졌습니다. 세상 중심으로만 판단했던 가룟유다는 결국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행동에 대해 예수님은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자는 복음으로 복음을 위해 사는 자들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을 위한 섬김의 삶을 위해 부르시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위한 삶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신자가 걸어야 하는 길이 마리아의 길입니까 아니면 가룟유다의 길을 걸어야 합니까?
복음은 이처럼 예수님을 가장 소중한 분으로 믿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신자된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까? 정말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도 아깝지 않으십니까?
함께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부르시겠습니다.
가롯 유다는 마리아의 행위에서 예수님을 보기보다는 돈을 봤습니다. 평소 돈을 더 소중히 한 마음이었기 때문에 돈을 훔쳤던 것이고 그런 마음이기 때문에 향유가 허비되는 것으로만 봤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분은 예수님입니다. 돈이 우리를 무덤에서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를 사망에서 일으키시고 새로운 생명으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돈을 보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예수님보다 돈을 더 소중히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신자가 돈이 있든 없든 그리스도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가장 소중하고 귀한 분임을 보여야 할 자로 살아가는 것이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도 예수님으로 기뻐하고 돈이 많다고 해도 돈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귀한 분임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까울 것이 없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값비싼 향유를 소유하고 있다는 기쁨보다는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향유를 부은 행위로 보여준 것처럼 돈을 가지고 있는 기쁨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기쁨을 보여줘야 할 사람이 신자인 것입니다.
마리아가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긴 행위에서도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었는가가 보여집니다.
여자에게 머리털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간에게서 가장 낮다고 할 수 있는 발을 씻기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낮은 자이고 반면에 예수님이 얼마나 높으신 분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알았다면 과연 지금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시며 주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