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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3일 온고을교회 어버이 주일 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약속이 있는 첫 계명
출20:12
<열 손가락>
사람의 손가락은 모두 열 개입니다. 왼손 다섯, 오른손 다섯.
하나님, 왜 손가락을 열 개로 만드셨습니까? ··· 이 질문의 대답, 성경에 안 나와요.
단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드셨다.’ 그렇게만 말씀하세요.
‘하나님도 손가락이 열 개일까?’ 아직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요.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 돌 판을 주셨습니다. 두 개로 만드시고, 십계명 나누어 새기셨습니다.
“하나님, 왜 하필 계명이 열 개입니까?” ··· 이 질문에도 성경은 대답하지 않아요.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십계명, 우리의 손과 “비슷하다.”
양 손에 열 손가락, 두 돌 판에 열 마디 말씀,
사람들은 수를 셀 때, 손가락을 씁니다. 그렇게 만든 것이 십진법이지요? 일, 십, 백, 천, 만.
다행입니다. 십계명, 우리 손가락 수와 같아요. 헷갈리지 않아요. 단박에 외워집니다.
<수직 계명과 수평 계명>
십계명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수직적 계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이 있습니다. 수평적 계명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 수직 관계이지요? ··· 이웃과의 관계? 수평 관계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로 설명합니다. 십자가는 수직과 수평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 이 두 가지만 잘하면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예수님은 이것을 간단하게 정리하셨어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그리고 몸소 십자가에 매달리셨어요.
이 십자가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영생 얻었습니다. 할렐루야~
< 십계명 >
첫 번째 돌 판, 수직 계명, 하나님 사랑에 대한 계명입니다. 몇 개일까요?
다섯 개가 있어야 균형이 잡힙니다. 수직 계명 다섯 개, 수평 계명 여섯 개,
그런데, 여기에 논란이 있어요.
첫째 계명부터 네 번째 계명이 수직 계명이다. 그러면 다섯이 아닙니다. 넷입니다.
신경이 좀 쓰입니다. ‘다섯, 다섯’이면 그럼 좋겠는데, ‘넷, 여섯’ 이러면 벌써 헷갈려요.
수직계명이 넷인가, 수평 계명이 넷인가?
하나님과 사람과 사이의 계명은 첫째부터 넷째까지다! 이것이 통설입니다. 알아볼까요?
첫째,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 참 욕심도 많아, 자기만 섬기래!” 맞아요,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세요.
다른 신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마세요!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입니다.
다른 신들, 이것저것 섬겨 보세요, 이사 한번 하는데도 손 없는 날 찾고, 요란해요!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것이 어떤 신의 조화인가?
부뚜막 신에게 빌까? 장독대 신에게 빌까? 산속 동굴 신에게 가서 빌어볼까?
얼마나 번거로워요? 그런데, 나 외에 다른 신, 섬길 필요 없다! 하나님께만 예배해라!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만 섬깁시다!”
둘째, 우상을 만들지 말라, 어떤 모양이든 만들어 놓고, 거기 절하지 말라!
얼마나 좋아요? 이것저것 깎아서 만들지도 말고, 그것을 신격화 하지도 말라!
오직? 여호와만 섬겨라! “여호와만 섬깁시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 정도는 해 드려야지요? 부모님 이름도, 입에 올릴 때는 조심하잖아요?
넷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누가 가장 좋아했을까요? 남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노동자들이지요.
하나님의 명령,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복음이다! 너희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해라!
제4계명까지,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관계, 이것이 첫 번째 돌 판입니다.
다섯 번째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명’입니다.
다섯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여섯째, 살인하지 말라! 일곱째, 간음하지 말라!
여덟째, 도적질하지 말라! 아홉째, 거짓증거하지 말라! 열째, 탐내지 말라!
이 여섯 계명이 “두 번째 돌 판에 새겨졌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이 안 돼요.
한 손에 손가락이 다섯 개인데, 십계명도 다섯씩 ‘나누어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섯 번째 계명이 첫 번째 돌 판에 있을 것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 다섯째 계명의 위치가 어디냐?
첫 번째 돌 판이냐? 두 번째 돌 판이냐?
말씀 들으시면서 은혜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웃사람인가, 부모인가?>
(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 계명이 왜 두 번째 돌판이 아니라, 첫 번째 돌 판에 새겨져 있어야 합니까?
첫째, 부모와 나와의 관계는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 관계입니다.
부모와 조상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나와 수평적 관계이지요.
나를 낳아주신 부모는 결코 수평적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통해서 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다’ ‘이웃 관계다’ 그렇게 말해도 됩니까?
부모님을 어떻게 ‘이웃’의 범주에 넣어요?
하나님이, 이웃이 아닌 것처럼, 부모님도 이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5계명은 첫 번째 돌 판에 들어가야 맞아요!
둘째, 부모님은 하나님 ‘맞잡이’입니다.
우리말에, “장남은 부모 맞잡이다.” 장남은 형입니다. 그러나 “부모에 버금간다.”
부모님은 하나님의 맞잡이, 하나님에 버금갑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십니다. 부모님은요?
하나님의 섭리로, ‘이 세상에 없었던 나’를 ‘이 세상에 있는 나’로 만드셨어요.
출산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유비’입니다.
‘유비’ ··· 하나님이 하신 일에 견줄 수 있는, ‘유사한 사건이다.’
부모님은 ‘사랑으로’ 자녀를 낳으시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온 우주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최소한 자녀에게 있어서만은, 부모님은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다섯째 계명이, 첫 번째 돌판, 맨 밑에 들어가는 것, 전혀 거북하지 않아요.
셋째, 문맥상, 해석상으로 다섯째 계명은 첫 번째 돌 판에 어울립니다.
둘째 돌 판, 제6계명부터는 단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이들 다섯 계명은 어기면, 즉각적으로 제재할 수단과 방법이 있습니다.
나라마다 형법도 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5계명, ‘부모를 공경하라!’ 어겼다고 벌칙을 어떻게 정해요?
물론 부모에게 행동으로 나쁜 일을 했다, 그러면 당연히 처벌합니다.
그러나 ‘공경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요.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다.’ / 흡사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멸시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
처벌해요, 못해요? ··· 이 땅에서는 방법이 없어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내가 맞장 한 번 뜨겠어!” 그랬다고 수갑 채워요?
“우리 부모는 이제 나와 상관없어! 나에게는 부모도 없어!” 이렇게 말했다고 체포해요?
하나님과 부모님 섬기는 방법, 사랑하는 법, 어겼을 때의 처벌, 대단히 유사합니다.
“부모는 하나님 맞잡이입니다.”
<공경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여기에 쓰인 ‘공경하라!’ 이 말은 히브리어로 ‘카베트’입니다.
카베트는 ‘무겁다, 비중이 크다, 영광스럽다, 명예롭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단어가 또 어디에 쓰이느냐? ··· 하나님께 대해서 쓰입니다.
삼상2:30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여기서 ‘존중히 여기다.’ / ‘카베트’입니다.
시22:23에서,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어다”
여기서 ‘영광을 돌리다.’ / ‘카베트’입니다.
잠3:9에서,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공경하라’ / ‘카베트’입니다.
제5계명은 레위기 19장에도 나옵니다. 3절입니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여기서는 “경외하고” 이것을 ‘카베트’가 아니라, ‘야레’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 단어는 ‘신적 용어’입니다. 하나님께 쓰이는 단어예요, ‘두려워하다, 떨다’
“부모 공경” 하나님께 하듯, 두려움으로 하라! “부모 공경, 하나님께 하듯 두려움으로 합시다!”
<‘카베트’의 이중성>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카베트’라는 단어 ‘공경하다.’ 이 단어가 흥미로워요.
카베트는 ‘무겁다, 비중이 크다, 영광스럽다, 명예롭다.’ 말씀드렸지요?
이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쓰이면요, ‘골치 아프다. 귀찮다. 번거롭다. 까다롭다.’
마치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을 때, 드러나는 현상과 같습니다.
‘우리 부모님 까다로워!’ ‘하, 우리 부모님 골 때려!’ ‘우리 부모님? 귀찮아!’
‘카베트’ 이 단어 속에 양 극단이 있어요.
하나님은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자녀들은 머리가 굵어지면, 부모님을 귀찮게 여겨요. 골치 아프다고 말해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길을 가고 계세요? 아니면, 번거롭다. 까다롭다.
‘이번 명절에 또 가? 추도식에 참석해야 돼? 안 가면 안 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지요!
하나님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왜 이 말씀을 하실까요?
첫째, “높여야 할 분이 있다. 그 분은 높여라!”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 직장의 상사를 높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줄을 잘 잡아야 합니
다. ‘이 사람이 내 줄이다.’ 그러면, 치켜세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손금이 다 닳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누구를 높여야 마땅합니까? 먼저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그 다음, “부모님이에요!” “하나님을 높이고, 부모님을 높여야 합니다.”
둘째, “감사할 분이 있다. 그 분에게는 반드시 감사해라!”
우리가 감사해야 할 분이 누구입니까? 살다보면 고마운 분들 만날 때 있습니다. 감사해야지요!
그러나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대상, 먼저는 하나님입니다.
왜요? 부모님을 지으신 분, 그리도 나도 지으신 분!
다음으로 부모님입니다. 나를 낳아주셨어요. 키워 주셨어요.
‘감사함’도요, 기초가 있어야 잘합니다. 영어만 기초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 기초가 든든해야 합니다. 감사의 기초는 기억(記憶)입니다. “감사의 기초는 기억이다.”
낳아주시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신 그 정성, 기억해라!
기억이 사라지면, 감사가 사라집니다. 감사가 사라지면, 부모가 귀찮아요, 골치 아파요.
내가 지금, ‘부모와 관계가 나쁘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그 기억, 잊지 않았나? 점검해보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5계명 주신 것, “높일 분은 높여라! 감사할 분에게는 감사해라!”
누구예요? ‘하나님! 부모님!’ 이렇게 나란히 나란히 갑니다.
제5계명, 첫 번째 돌 판에 새겨져 있어야 맞다!
오늘이 어버이 주일입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부모공경으로 목사님들이 설교를 합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부모 공경과 함께,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 할 도리를 같이 말씀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만, 말씀합니다.
부모의 책임을 동시에 설교하면, 부모 공경이 ‘상대적 개념’으로 전락할 수가 있어요.
‘부모가 잘못하면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 이게 아닙니다. 부모 공경은 ‘절대적 개념’입니다.
부모가 잘못해도? 자식은 ‘무조건’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가 간첩이라도, 공경해야지요.
사기꾼, 도둑, 흉악범이라도 자녀는 부모 공경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할렐루야~
<약속이 있는 첫 계명>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약속이 있는 첫 계명’ 그렇게 정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한 말씀입니다.
엡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십계명, 열 마디 말씀 가운데,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 있다.
그 계명이 어떤 계명이라고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제5계명입니다.
그게 어디 나와요? ··· 출애굽기 20장 3절부터 17절에 십계명이 차례로 나와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거 하지 말라, 저거 하지 말라!
그런데, 그 중 딱 한 계명에 ‘그리하면’ 이라는 ‘조건 절을 이끄는 부사’가 있어요.
이렇게 하면 내가 약속 한다! 이것 지키면, ‘내가 이렇게 복 주겠다.’ 조건이 붙어있어요.
그것이 제5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 약속이 딸려 있습니다. 십계명 중에서 단 한 계명, ‘약속이 있는 계명’입니다.
사실 부모공경, 잘했다고, 세상은 보답하지 못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보응하세요.
어떻게요?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할렐루야~
맨 뒤에 ‘생명이 길리라.’ 이 말씀만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그 앞에 있는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오래 살아야 돼요?
예수 믿고, 구원받고 천국 백성으로, 사는 것, 그것이 복입니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백 살까지 살았다?’ 이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부모 공경, 우리에게 첫 번째 시험대입니다.
이 관문, 통과 못하면, 그 다음으로 나아가지 못해요.
부모 공경이 있고, 하나님 공경도 있습니다!
부모 공경 있고, 자식 사랑도 있어요. 부모 공경 다음에 이웃 사랑입니다.
부모 공경이 먼저, 그리고 헌신도 합니다. 봉사도 합니다.
그래서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입니다.”
기록된 순서는 다섯 번째입니다.
그러나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입니다.
여기서부터 믿음도 시작됩니다. 신앙도 출발합니다.
오늘 내 신앙을 점검해 봅니다. 첫 출발을 제대로 했는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면, 지금 얼마든지 고칠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실행하면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앙의 기초, 믿음의 기초,
든든하게 세워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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