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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고등학생을 위한 본격적인 통합교육
영화, 노래, 만화, 신문, 잡지, 문학 통합매체 활용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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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 읽고 쓰고 생각하기
송재희․김슬옹 지음
세종서적
<제목차례>
생각 열기 논술 열기 : 논술을 두려워 말라4
하나. 논돌이와의 대화- [ 왜 논술인가 ]4
둘. 삶에서 출발해서 삶으로 돌아오는 논술 9
첫째 마당. 청소년15
[영화] 청소년들의 삶의 문제 : 위험한 아이들15
[노래] 교육 문제 : 조관우의 모래성19
[만화] 변신하기 : 달의 요정 세일러문23
[신문] 자살 문제27
[문학] 헤르만헷세의 ‘수레바퀴 밑에서’36
둘째 마당 문화43
[영화] 상업주의 문화 : 34번가의 기적43
[노래] 소수문화 : 패닉의 왼손잡이46
[만화] 스포츠 문화 : 슬램덩크49
[잡지] 보신탕 문제: 브리지도 바르도와의 대화52
[문학] 공동체 문화 : 안도현의 관계60
셋째 마당 환경과 과학63
[영화] 기계 문명 :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데이라잇63
[노래] 과학문명 : 신해철의 The age of god68
[만화] 환경과 과학 : 김준범의 기계전사 10971
[연설문] 공존과 환경 : 어느 소녀와 추장 연설74
[토론문] 나누리시 공해 문제 : 깨끗한 물을 먹기 위해서는81
넷째 마당 사회와 경제86
[영화] 현대사회와 가족, 여성 : 로빈 윌리암스의 미세스 다웃 파이어86
[노래] 고독 : 장사익의 섬89
[만화] 언론과 언어 : 이우일의 도널드닭 93
[잡지] 청소년 보호법에 대한 인터뷰98
[문학] 원칙과 융통성: 오헨리의 20년 후110
다섯째 마당. 역사117
[영화] 노동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17
[노래] 미국역사 : 밥 딜런의 Oxford Town121
[만화] 속담의 긍정성과 부정성 : 박광수의 광수생각126
[평론] 홍길동전129
[전기] 고난 시대의 삶 : 신채호에 대한 청문회138
- 책 머리에
이 책은 무엇이 다른가
- 책읽기를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보통 아이들에게 고기를 던져 주는 것보다 고기 낚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올바른 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고기 낚는 방법보다 더 소중한 것은 왜 고기를 낚아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입니다. 우리는 고기 낚는 방법을 배워 아무 때나 아무 고기가 마구 낚는 아이를 원치 않습니다. 때와 고기를 가려 고기를 낚는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함께 읽고 고민하고 싶습니다.
우리 두 명의 저자들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왜 고기를 낚아야 하는지 물음을 던질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해 왔습니다. 그런 물음을 던질 수만 있다면 고기 낚는 방법도 고기에 관한 지식도 좀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책보다 텔레비전이 더 재미있다는 아이들에게 책이 더 재미있다고 우기는 어른이 아닙니다. 왜 책을 읽어야 하고 왜 텔레비전을 봐야 하는지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아이들은 책과 텔레비전을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기존 책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첫째 요즘 열린 교육의 핵심인 매체 활용을 적극적으로 살렸습니다. 신문, 영화, 만화, 잡지, 문학 등 다양한 매체를 일정한 주제로 학생들의 삶의 한복판으로 끌어오도록 했습니다.
둘째 읽기와 쓰기가 서로 디딤돌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읽기/듣기가 말하기나 쓰기로 연결이 안 되거나 쓰기가 읽기/듣기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읽기요 쓰기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특정 고전이나 명작 위주의 읽기가 아닌 학생들에게 친근한 작품들로 구성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고전이나 명작이란 이름이란 굴레에 너무 얽매여 왔습니다. 왜 고전이고 명작인지 고민할 여유도 없이 이 책은 명작이니까 읽어라는 식으로 책을 접해왔습니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넷째 쓰기의 경우 단순한 논술 쓰기가 아니라 다양한 글쓰기 양식을 통해 저절로 논술로 근접하도록 하는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논술만 하더라도 편지로 쓰기, 연설문으로 쓰기 등 기존의 배타적 논술 양식을 벗어날 수 있도록 새로운 논술 쓰기를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한 권의 책이지만 각 장과 각 소단원별로 글 양식을 통일시키지 않아 이 자체가 다양한 글쓰기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섯째 이 세상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였으며 진정 어떤 관점이 올바른 관점인지 세상보기에 많은 관심을 담았습니다. 일단 학생들은 이 세상을 다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그런 다음 어떻게 바라보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삶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많은 어른들이 걱정하고 초조해 합니다. 그러나 걱정하고 초조해하기 전에 우리는 과연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가 되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책읽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읽는가가 중요한 것이며 그보다는 왜 읽어야 하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 책을 재미있게 읽고 진지한 물음을 많이 던질 수 있음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송재희 김슬옹
여는 말
'일상에 널려 있는 텍스트' 읽기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이 '20대 80'의 비율로 양극화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 인구가 19․20세기에 '근대 국가'를 단위로 재편되었다면, 자본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21세기에는 근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인구가 '20대 80'의 비율로 재편되리라는 것이다. (마르틴과 슈만, 1997. [세계화의 덫] 서울: 영림 카디널) '20대 80의 사회'란 노동 가능한 인구 중에서 20%만 있으면 세계 경제가 굴러갈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다시 말해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상층부 20%에 드는 사람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경제나 문화생활 면에서 주체적인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반면, 나머지 80%는 만성적인 실업에 시달리면서 불안정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결국 새 시대에는 20%만 '살아남고' 80%는 '빠져 죽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러한 예측 앞에 우리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어 20%가 독재하는 체제로 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우리 자신이, 우리의 학생이, 그리고 우리의 자녀가 그 80% 안에 들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두 아이를 기르면서 3가지를 강조해왔다. 첫째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좋지만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정말 큰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능력이 아주 뛰어나서 최상 1%에 드는 사람이 되든 80%에 속하는 '보통' 사람이 되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단은 세상을 '잘' 살아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스스로 체험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어릴 때는 다소 버거운 양의 설거지를 시킨다거나 혼자 지하철을 타게 하는 등의 기회를 주었고, 사춘기가 된 후로는 위험해 보이는 방황도 마음껏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그들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확실히 알게 되고, 앞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시대를 살아갈 저력도 기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세 번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잘' 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찾을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누구를 통해서, 또는 무엇을 통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일찍부터 알려줘야 한다.
사실상 이 3가지 모두는 '경험의 정보화'라는 말로 축약된다. 최근 지적되고 있는 '하드웨어만 있고 소프트웨어는 없는' 위기 상황도 바로 경험이 정보화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문제이며,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는 '신지식인 캠페인' 역시 그 핵심은 경험의 정보화에 있다.
만약 현실의 경험이 지식으로 축적되고 유통되는 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백년 하청의 상태를 면치 못할 것이며,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앞서자'는 말 또한 한낱 구호로 수그러들고 말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앞서려면 정보사회적 시민이 많아져야 한다. '정보사회적 시민'이란 일단 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앞서 정보사회적 시민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은 결국 유의미한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뜻으로, 유의미한 정보는 개인적 열정과 관심어린 경험, 그리고 훈련된 사유를 통해 만들어진다.
책 읽기가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지금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보면 경험을 한 것이 없어서 '잔머리만 굴리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험한 세상을 살아갈 자신감이 없는 경우도 태반이다. 반면에 가출청소년 쉼터에 가보면 경험은 잔뜩 있는데 그것을 정리해내지 못해서 이리저리 '마구 부대끼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앞으로 21세기를 살아갈 이 아이들이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삶의 진한 체험을 하면서 그 경험들을 정보화․개념화해내고, 이를 통해서 앞으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구상하고 추진해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일류대 졸업장이 생계를 보장해주는 시대는 지났다. 아무 생각 없이, 뚜렷한 주관 없이 대학 입시만 준비해온 이들은 낙후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 예측 불가능한 '위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문화자본이다. 이때 문화는 결과가 아니라 관계이며 의사소통이자 경험이다. 이 책『대중문화 읽고 쓰고 생각하기』는 바로 이 문화자본을 축적하도록 도와준다. 단순 지식을 탈피하여 경험을 지식화하고, 그렇게 경험이 녹아든 지식들을 연결해서 새로운 사유를 할 수 있도록 북돋는 책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새로운 차원에서 사유하는 능력을 길러놓지 않는다면,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대학만이 끝이 아니라 그 이후의 세상에서도 잘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사유할 수 있고 남의 경험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자. '생각 없이 살기'를 권유하는 고도 관리 체제의 '대중'으로 전락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일상에 널려 있는 텍스트'를 읽어내는 훈련을 일찌감치 시작해야 한다.
조한혜정(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추천의 글
바로 여기, 내 옆에 있는 삶의 철학
대학 입학 논술고사의 도입으로 논술에 대한 관심이 점점 고조되어왔다. 하지만 지
금까지 주입식 교육에 젖어 있던 교육 풍토 속에서 논술도 그저 주입식․암기식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교수들이 학생들의 논술 답안지가 천편일
률적으로 비슷비슷하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논술 학원에서는 수능 시험이 끝난 후 2개
월 완성으로 무슨 공식 외우듯이 유형화된 글쓰기 요령을 가르치고 있다. 논술고사의
도입으로 창의성있는 학생들을 선발하려는 기대가 왜곡된 논술 산업으로 인해 빛을 보
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논술이 산업화한 시점에서 올바른 논술 교육의 방향을 개척하기 위해 누구보
다 애를 써오신 분들이 김슬옹, 송재희 선생님이다. 두 분은 논술을 단지 시험을 위한
글쓰기나 시험을 위한 논리 학습에서 해방시켜, 삶을 위한 글쓰기로 전환시키고자 노
력해왔다. 또한 '논술은 삶 쓰기'라는 관점에서 학생들이 삶의 다양한 면에 대하여 문
제 의식을 갖도록 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책『대중매체 읽고 쓰고 생각하기
』도 이런 꾸준한 시도와 노력의 결과다.
우리 아이들이 대중매체에 매우 익숙한 세대라는 점에서, 대중매체를 적극적으로 활
용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재미있어서 자주 보는 만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듣고 흥얼거리던 노랫말 하나에서도 심각한 문제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 사고나 철학이 어디 먼 곳에, 나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바로 우리 현실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는 특히 영화․만화․노래․신문․잡지․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
체에 대한 필자들의 예리한 분석력이 돋보인다. 학생들은 『세일러문』이나 『슬램덩
크』에 대한 분석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문제 의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체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바탕으로 삶에 대해 성찰해볼 수 있는 문제
를 논제로 제기하고, 다시 학생들의 예시 답안을 제시하고 분석해줌으로써 기존의 논
술 참고서에서 볼 수 있는 문맥 교정 수준의 첨삭 지도와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부
디 이 책을 통해 논술 교육이 시험 출제자에 맞게 매끄러운 글을 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현실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안목을 키우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
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늘 좋은 책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별볼일 없는 다른 책들이 화려
한 포장을 하고 늘어선 가운데, 이 책도 나란히 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는 이들의
현명한 판단을 믿고 싶다.
김주환(전국국어교사모임 회장․장위중)
추천의 글
세상의 속내를 발견하는 즐거움
논술을 잘하기 위해서는 '논리학'을 잘해야 한다는 말이 널리 퍼졌던 때가 있었다.
시중에는 따분하고 어려운 논리학을 아이들 수준에 맞게 풀어 쓴 책들이 앞다투어 출
판되었고, 평소에 논리학과는 친할 기회조차 없었던 교사나 부모들은 얼른 이 책들을
사서 읽혔다.
그러다 최근 대학에서 논술 문제를 '고전'에서 내기로 하면서, 동서고금의 고전들을
요약하거나 해설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아직도 예상 문제집이
나 문장 다듬기 책이 널리 읽히고 있다.
행태는 다양하지만 이들은 모두 '논술을 잘하기 위한 어떤 비법이 있고, 그것만 집
중적으로 익히면 된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논술은 또 하나의 '암
기'가 되고 '찍기'가 되고, 논술 공부는 고통이 되고 만다.
이 책은 논술에 대한 이런 닫힌 사고를 거부한다. 고전을 요약하거나 무작정 예상
문제를 풀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대신 '삶에서 비롯되는 어떤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과정'을 중시하며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것․아이들에게 친근한
것을 생각거리로 삼아, 그처럼 친숙하고 쉬워보이는 것 속에 진지한 삶의 문제가 포함
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논술책이지만, 논술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자유롭게 『왼손잡이』
를 듣고, 『슬램덩크』를 보고, 『34번가의 기적』을 만난다.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
는 '삶의 문제'를 탐구한다. 책을 읽다 보면 '아, 이게 이런 거구나' '아하, 이걸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발견의 즐거움․깨달음의 즐거움을 맛보게 되고, 이런 즐거움을
쌓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의 속내가 보이고 낯선 세계가 보인다.
그리고 이 정도면 논술은 이미 정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려워만 보였던 논술, 논
술을 재미있게 배우고 싶은 학생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박복선(『중등 우리교육』 편집부장)
[추천사 ]
대중 매체 읽고 쓰고 생각하기 출간의 의미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이 ‘20대 80’의 비율로 양극화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 인구가 19, 20세기에 ‘근대 국가’를 단위로 재편되었다면, 자본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21세기에는 근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인구가 ‘20대 80’의 비율로 재편될 것이라는 것이다. ‘20대 80의 사회’란 노동 가능한 인구 중에서 20%만 있으면 세계 경제가 굴러갈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상층부 20%에 드는 사람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경제나 문화 생활 면에서 주체적인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반면 나머지 80%는 만성적인 실업에 시달리면서 불안정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새 시대에는 20%만 ‘살아남고’ 80%는 ‘빠져죽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양극화 현상이 20%가 독재하는 체제로 나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이, 우리의 학생이, 그리고 우리의 자녀가 그 80%에 들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두 아이를 기르면서 세 가지를 강조해 왔다. 첫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는 것이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좋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없으면 가장 큰 일이기 때문이다. 아주 능력이 뛰어나서 최상 1%에 드는 사람이 되든, 80%에 속하는 ‘보통’ 사람이 되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단은 세상을 ‘잘’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스스로 체험을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어릴 때는 자기에게는 좀 버거운 양의 설거지를 하게 한다거나 약간 위험해 보일 나이에 혼자 지하철을 타게 하는 등의 기회를 주었고, 사춘기가 된 후로는 위험해 보이는 방황도 마음껏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그들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확실하게 알게 되고, 앞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시대를 살아갈 저력도 기르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잘’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찾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려주는 것이다. 누구를 통해서, 또는 무엇을 통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사실상 이 세 가지 모두는 ‘경험의 정보화’라는 말로 축약된다. 최근 지적되고 있는 “하드웨어만 있고 소프트웨어는 없는” 위기 상황도 바로 경험이 정보화 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문제이며,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는 ‘신지식인 캠페인’ 역시 그 핵심은 ‘경험의 정보화’에 있다. 사실상 현실의 경험이 지식으로 축적되고 유통되는 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백년 하청의 상태를 면치 못할 것이다.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앞서자.”는 말은 한낱 구호에 그칠 것이라는 말이다. 정보화 시대에 앞서려면 정보 사회적 시민이 많아져야 하는데, 그 시민은 일단은 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결국 유의미한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유의미한 정보란 개인적 열정과 관심 어린 경험과 훈련된 사유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책읽기가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지금 인문고등학교에 가보면 경험을 한 것이 없어서 잔머리만 굴리는 아이들로 가득하고, 이 아이들은 험한 세상을 살아갈 자신감도 없다. 반면 가출 청소년 쉼터에 가보면 경험은 잔뜩 있는데 그 경험을 정리해내지 못해서 이리 저리 ‘마구’ 부딪기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21세기를 살아갈 이들은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삶의 진한 체험을 하면서 그 경험들을 정보화/개념화해내고, 그를 통해 앞으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구상하고 추진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류 대 졸업장이 생계를 보장해주는 시대는 지났다. 예측 불가능한 ‘위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문화자본이다. 이 때 문화는 결과가 아니라 관계이며 의사소통이며 경험이다.
이 책은 바로 문화 자본을 축적하게 하는 것을 돕는 책이다. 단순 지식이 아니라 경험을 지식화하고, 또 그 그 지식들을 연결해서 새로운 사유를 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대학 입시만을 준비해온 이들은 낙후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새로운 차원에서 사유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다면 앞으로 시대를 살아가기는 힘들 것이다. 대학도 가지만 그 이후의 세상도 잘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경험을 사유할 수 있고, 남의 경험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자. ‘생각 없이 살기’를 권유하는 고도 관리 체제의 ‘대중’으로 전락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일상에 널려있는 텍스트’를 읽어내는 훈련을 일찌감치 시작해야 한다.
1999년 1월 19일 조한 혜정 씀
추천사
대학 논술고사의 도입으로 논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주입식 교육에 젖어 있던 교육 풍토 속에서는 논술도 주입식 암기식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 많은 교수들이 학생들의 논술 답안지가 천편일률적으로 비슷비슷하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논술 학원에서는 수능 시험이 끝난 후 2개월 완성으로 무슨 공식 외우듯이 유형화된 글쓰기 요령을 가르치고 있다. 논술고사의 도입으로 창의성 있는 학생들을 선발하려는 기대는 왜곡된 논술 산업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논술이 산업화한 시점에서 올바른 논술교육의 방향을 개척하기 위해 누구보다 애를 써 오신 분들이 김슬옹, 송재희 선생님이다. 논술을 시험을 위한 글쓰기나 시험을 위한 논리 학습에서 해방시켜 삶을 위한 글쓰기로 전환시키고자 노력해 온 분들이다. ‘논술은 삶쓰기’라는 관점에서 학생들이 삶의 다양한 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도록 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대중매체 읽고 쓰고 생각하기]도 이러한 시도와 노력의 결과다.
우리 아이들이 대중매체에 매우 익숙한 세대라는 점에서 대중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재미있어서 자주보는 만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듣고 흥얼거리던 노랫가사 하나에서도 심각한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 사고나 철학이 어디 먼 곳에, 나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바로 우리 현실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술 교육이 시험 출제자에게 맞게 매끄럽게 글을 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현실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안목을 키우는데 있다는 사실을 지은이들은 ‘문제설정’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영화, 만화, 노래, 신문, 잡지, 문학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에 대한 필자의 예리한 분석력, 또한 돋보인다. 학생들은 세일러문이나 슬램덩크에 대한 필자의 분석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매체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바탕으로 삶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문제를 과제로 제시했으며 학생들의 예시 답안을 제시하고 분석해 줌으로써 기존의 논술 참고서에서 볼 수 있는 문맥교정 수준의 첨삭지도와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나는 늘 좋은 책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별볼일 없는 다른 책들이 화려한 포장을 하고 늘어선 가운데 이 책도 나란히 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는 이들의 현명한 판단을 믿고 싶다.
1999. 1. 18 김주환 (장위중, 전국국어교사모임 회장)
학부모님과 선생님들께
비디오와 대중음악으로 공부를 한다고?
애들은 왜 책을 안 읽을까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을 TV만 쳐다보는 바보로 만들고 싶지 않은 열성적인 학부모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의 고민은 하나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많이 읽힐 수 있을까?”
사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너무 간단합니다. 재미도 없고, 유익하지도 않기 때문이지요. 무슨 소리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재미가 없을 수는 있지만 유익하지 않다니? 책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단지 어른들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아니, 어른들 중에서도 아주 일부 어른들의 이야기일 뿐이지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말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를 경험한 어른들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녀들에게 비싼 돈 들여가며 수많은 책을 사주는 어른들도, 정작 스스로는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들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삶의 태도인가를 역설하는 어른들도 정작 자신은 퇴근하자마자, 혹은 저녁 설거지가 끝나자마자 TV앞에 붙어 앉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책을 재미없어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오히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더 이상하지요. 따라서 우리가 아이들의 책 읽기를 말하기 전에 먼저 어른들의 책 읽기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순서일 겁니다.
어른들의 책 읽기
우리 나라 아이들에게 있어서 책 읽는 행위는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공부를 잘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요, 다른 사람에게 잘난 체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요, 남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입니다.
제 말이 조금 과장되었나요? 그러나 아이들에게 있어서 책은 오락이나 취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노동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책읽는 행위를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우리 어른들입니다.
실제로 어른들이 읽는 책을 돌이켜봅시다.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책을 일상적으로 읽는 어른들이 얼마나 될까요. 어른들이 읽는 책의 대부분은 재미있는 책입니다. 여성이라면 소설이나 에세이요, 남성이라면 무협지가 어른들이 읽는 책의 대부분을 이룹니다. 물론 또 한 가지가 있지요. 그것은 여행정보서․법률정보서․생활정보서 등과 같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종의 가이드북들입니다. 이런 책들은 어느집에 가나 한 권쯤은 책꽂이에 꽂혀 있을 겁니다.
결국 어른들이 읽는 책이나 아이들이 읽는 책이나 그리 다를 바가 없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하는 책, 즉 노동 과정으로서의 책 읽기와 먹고 살기 위한 고달픈 삶을 잊어버리고자 읽는 책, 즉 현실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일종의 마약으로서의 책 읽기.
결국 이 나라에 자기 성찰을 위한, 그야말로 마음의 양식으로서의 책 읽기는 아주 실종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실제로 90년대 들어서 인문교양 서적들이 팔리지 않고, 대학에서도 인문과학 과목들에 대한 학생들의 외면이 계속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은 모든 책 읽기가 입시 과목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자리잡았고,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하다못해 논술이라는 입시에 향후 도움이 될 수 있는 책 읽기가 의무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지금 우리 나라의 독서 풍토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현실에서 아이들이 좋은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책이란 재미있는 것 아니면 공부에 도움을 주는 것, 이 두 가지 용도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재미로 말하자면 책보다는 TV나 전자오락이 훨씬 탁월하고, 공부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는 책보다는 문제집이 훨씬 더 유용합니다. 그러니 도대체 우리 아이들이 무엇이 아쉬워서 눈 비벼가며 책 읽기에 몰두하겠습니까?
저는 자신의 삶을 구체적으로 돌아보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구성 원리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독서를 할 줄 아는 아이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물론 필자가 과문한 탓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좋고 유익하고 재미있는 책들이 많고, 그 책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이 시대의 주류 문화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느새 그러한 책 읽기의 풍토는 소수의 문화로 내려앉았습니다.
책읽기의 즐거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질문해봅시다. 정말로 그렇습니까? 정말로 책 읽기는 즐거운 일입니까? 과연 우리는 아이들에게 독서라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가르쳐준 적이 있습니까? 혹시 우리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인데,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까짓 고통쯤이야 참고 견뎌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요하지 않았습니까?
아이들의 삶이 온통 경쟁으로 가득한데, 그래서 그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정보들을 섭렵하는 책 읽기만이 의미가 있는데, 그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야말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물려준 가장 최대의 유산일진대, 도대체 아이들이 어디에서 독서의 즐거움과 마음의 양식을 쌓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필자는 바로 이것이 현재 우리 나라 아이들이 행하고 있는 독서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논술과 독서 지도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만 합니다.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가르쳐주는 것. 따라서 이제 우리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쳐온 선생님들의 자기 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삶은 그렇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만 그러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강요이며 억압이기 때문입니다. 강요와 억압으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한 진리가 아니겠습니까?
준비된 선생님만이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읽었던 책의 경험, 예컨대 소설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해볼 수 있고, 인문교양 서적을 통해서 인간의 삶이 도대체 어떠한 진리들을 은유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고, 과학교양 서적을 통해서 우주와 인간에 내재된 궁극적인 의문에 대해서 현대 인류는 어디까지 해명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고, 음악․미술․건축 등 예술비평 서적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미적인 개념과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미적인 개념들은 서로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볼 수 있고, 신문과 잡지들을 통해서 사회의 전반적 흐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생각해볼 수 있고,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뿌리는 어디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뿌리는 어떻게 이어져왔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사람만이, 그러한 여러 가지 고민들이 스스로의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만드는지 아는 사람만이,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과 토론의 즐거움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아이들에게 독서와 논술 지도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방안은 선생님들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테크닉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생님들의 진지한 자기 성찰과, 그 진지한 자기 성찰을 도와줄 수 있는 훌륭한 책 읽기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훌륭한 선생님은 아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비추어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순간적인 즐거움이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노동 과정으로서의 책 읽기가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 정말 설득력있게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그러한 문제점들을 이미 극복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독서와 논술 지도를 위한 제언
거듭 말하건대, 독서와 논술 지도를 하는 선생님들의 과제는 아이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즐거움’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결코 노동 과정으로서의 책 읽기를 교묘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강제하는 선생님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작은 기술적인 요령은 필요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원칙과 열정만으로 아이들을 지도한다는 것은 또다른 차원에서의 무책임한 행위일 테니까요. 이제 몇 가지 작은 기술적인 방법 중 하나를 사례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사례가 시사하는 의미는 큽니다. 실제로 필자는 이 사례에서 시사하는 의미를 모아 이 책의 반을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재차 강조하지만 이 기술적인 방법은 그냥 기술적인 방법일 뿐입니다.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 스스로가 책 읽기의 즐거움과 자기 성찰의 보람을 알지 못한다면, 결국 교묘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책 읽기의 괴로움만을 강제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슬램덩크』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책은 청소년들 사이에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책입니다. 필자는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토론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토론의 내용은 하나의 글로 정리되어 이 책의 한 부분에 실렸습니다. 어쨌든, 아이들과 함께 『슬램덩크』를 읽고 난 뒤 필자가 한 일은 이 만화책에 대한 비평적인 접근이었습니다. 먼저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요구했지요.
첫째, 『슬램덩크』는 왜 재미있는가?
둘째, 우리 나라 청소년들이 『슬램덩크』를 재미있어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슬램덩크』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그러한 의식을 분석함으로써 혹시 우리 나라 청소년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가지고 있는 욕망의 정체를 밝힐 수는 없을까?
셋째,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 즉 채치수․강백호․ 서태웅 중에서 내가 되고 싶은 성격의 소유자는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동시에 내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친구로 사귀고 싶은 사람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독자는 대단히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아이들이 대답하지 못했을 거라고 예상하는 독자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아이들은 그다지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견해를 충분히 밝힐 수 있었습니다. 비록 위의 질문에서 다루어진 것처럼 세련된 언어를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아이들은 『슬램덩크』에 대해서 확실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요즘 아이들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가 전제돼야겠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면서 아이들과 저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은 『슬램덩크』를 읽었을 때 느꼈던 자신들의 감성이 서로의 토론 속에서 객관화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토론이 끝난 뒤에 아이들 스스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떤 특정한 작품에 대한 ‘문제 제기’와, 그 문제 제기에 대한 답변을 이끌어내는 ‘토론 과정’과, 토론이 끝난 뒤에 각자 자신의 몫으로 내려지는 ‘자기 결론’이야말로 바로 그 어렵다는 ‘비평’과 다르지 않음을 아이들스스로 알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예컨대, 대중음악․영화․패션․건축․연극․만화․게임과 같은 장르)에 대한 비평적 토론을 몇 차례에 걸쳐서 진행한 뒤, 아이들은 아주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기성 세대도 어렵거나 재미없어서 읽기 귀찮아하는 갖가지 대중문화 비평잡지의 글들을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필자는 그 중 한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리뷰』라는, 계간으로 발행되는 대중문화 비평지를 보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잡지는 대중문화에 대한 비평서이기는 하지만 어른들이 보기에도 꽤 어려운 책입니다.
필자는 그 아이에게 농담 비슷하게 “야, 니가 그거 읽으면 무슨 소린지 아냐? 어렵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웃으면서 대답했지요.
“어려워요. 단어나 문장이 이해가 안되는 게 많아요. 그치만 무슨 소리하는 건지는 알겠어요. 음… 그냥…. 느낌이 그래요. 아, 이 영화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구나. 아, 이런 음악은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었구나, 그래서 이렇게 해석되는구나. 사실은요, 그냥 이해되는 문장을 중심으로 읽어요. 헤헤.”
그래서 필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재미있냐?” 아이는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더군요. “그럼요!” 필자는 그날 이후 그 친구에게 책을 읽으라는 잔소리를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단순한 관심에서 지적 호기심으로
요즘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TV와 오락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읽어대는 책들도 재미있을 만한 것으로는 무협지․만화․스포츠 신문이고, 유익한 것으로는 참고서와 문제집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그래서 모두가 걱정하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가르친다는 것은 사실 여간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힘든 일입니다.
그 노력의 첫 번째는 우선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폭넓은 이론적 지식을 쌓는 것이고, 세 번째는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이론적 지식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들이 관심있어 하는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 후부터는 아이들의 지적인 호기심을 채워 줄 수 있는 몇 권의 책들을 소개해주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의 평론글들을 모아서 아이들에게 읽혀봅니다. 예컨대 만화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만화 평론을 찾아서 읽히고, 영화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에게는 영화 평론을 찾아서 읽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은 자기가 재미있어 하는 분야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비판적인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즐겁게 접하는 분야의 주변적인 것들, 예컨대 작품의 시대적 배경․작가의 연보․작가의 성격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요즘 아이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만사를 제쳐놓고서라도 공부하고 배웁니다. 이 사실을 학부모님과 선생님들께서는 단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만일 H.O.T에 관심이 있는 아이라면 이 그룹에 대한 평론글을 읽히는 것이 좋겠지요.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읽을 만한 좋은 평론글이 많지는 않거든요. 영화는 그렇다 쳐도 대중음악이나 스포츠, 게임 장르에 관한 좋은 평론들은 정말 찾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찾아보기 시작하면 가끔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평론이지만, 그다지 어렵지 않은 글이라 아이들이 함께 읽어도 좋을 만한 글들이 있습니다. 좋은 글을 찾아내는 수고로움은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해야 할 당연한 노력일 것입니다.
만일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분이 아이의 부모님이거나, 아이의 선생님이거나, 아이가 존경하는 주위의 어른이라면 그 아이는 너무나 행복해할 겁니다.
“야, 니가 듀스(해체된 지 오래. 에초티가 한번 나왔으므로 젝스키스로 교체. 그런데 젝스키스가 힙합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가...)를 좋아한다고? 그럼 너 힙합이 뭔지 알아? 짜식, 그것도 모르면서 팬은 무슨 팬이냐? 좋아, 내가 한 가지 문제를 내지. 힙합은 춤의 양식일까, 패션의 양식일까, 아니면 음악의 양식일까? (아이는 대개 묵묵부답) … 힙합은 패션의 양식으로부터 출발했어. 거지 패션이라고 서구에서 등장한 패션인데 … 치초쿠 치초쿠. 알겠니? 이런 지식을 가지고 팬레터를 쓰면 멋있을 것 같지 않아? 다른 애들은 그냥 오빠 좋다고 떠들어대는데 너는 오빠의 춤과 패션과 음악에 대해서 비평하는 거야. 그러고 싶다면 배워야지. 있잖아. 서점에 가면 이런 책이 있거든. 빨리 사서 봐. 나도 사실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사실을 알게 됐어.”
그 아이가 진짜로 젝스키스를 좋아한다면, 아마 그 아이는 그날 밤잠도 안 자고 그 책을 읽어낼 것입니다. ‘관심’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