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형. 지금 생각하니 1950년 어느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고나니 집앞 개천가에 막사가 세워지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우리집 골방에도 여러 명이 들어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들은 피란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이 어린 저에게는 무척 생경했습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말이라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 지긴했지만 당시로서는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피란민과 함께 쓰나미처럼 거제에 밀려든 현상이었습니다.
이듬해 연초초등학교에 입학, 면사무소(구) 근처와 도로변 그 아래 들녁에 무수한 판자촌이 형성되고 도로변도 성시였던 것을 목격했습니다. 학교에도 피란민이 몰려들어 우리들은 그들에게 교실을 비워주고 근처 묘지에서 공부하던 생각이 납니다. 면사무소 앞에는 시장이 형성되고 극장도 생겼습니다. 우리들은 생전 처음 연극이란 것을 이 극장에서 맞닥뜨렸습니다. 어느 일면에서는 대한민국 최남단 거제가 최북단 함경도 문화를 수용하는 그런 현실이었습니다.
ㅇ형. 역설적이게도 1950년 12월 23일 5년의 공산치하를 맛본 그들은 아무런 기약도 없이 국군의 흥남철수에 편승, 죽음을 담보하면서도 오직 자유를 향한 일념으로 미군수송선 메레디스 빅토리호를 탔던 것입니다. 이 배는 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흥남부두에 정박해 있었던 2000여명이 정원이었던 이 배가 난데없이 밀려든 현지의 피란민 1만4000명을 승선시킨 기적을 연출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2박3일의 항해 끝에 거제에 도착했습니다. 이들로 해서 전쟁이 벌어진 대한민국에서도 그 참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던 거제는 사람으로 인한 격랑에 휘말렸습니다. 전쟁을 실감한 거제군민들은 연이어 몰려든 피난민과 포로수용소 설치로 해서 전쟁의 참화와 그 전쟁이 주는 현실을 실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몸만 빠져나온 피란민의 울부짖음도 거제산하에 메아리가 되어 맴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휴전이 되고 사회가 조금씩 안정되자 새로운 삶을 찾아 뭍으로 이주해갔죠. 일부는 거제에 남아 지금도 상당수가 이곳에 살고 있는데 1세대는 거의 돌아가시고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연초면 사무소(옛) 옆에 자리잡았던 문씨상회는 지금은 상호가 바뀐채로 그때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변함 없이 있는 것을 얼마전에도 확인하고 왔습니다.
자전거 타고 연초면 일원을 돌아다니시던 생전의 그 어르신이 기억납니다. 만나서 인사를 하고 누구의 자식이라고 말씀드리면, “아.. 아무개 아들..” 하시던 그 다정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살아계신 그분의 부인을 찾아뵙지 못하고 온 것이 못내 아쉬운 마음입니다.
ㅇ형.
이들이 맨몸으로 척박한 타향에서 울음을 운 세월이 얼마이겠습니까. 기약 없는 이별 앞에 목 놓아 운 세월은 또 얼마이겠습니까. 최근 거제 포로수용소 공원에 설치한 김백일 장군 동상이 거제의 화두가 되는 것을 보면서, 그 동상을 세운 피란민의 눈물이나 그들의 애환을 미루어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김백일 장군 동상이 화두가 되겠습니까. 이 문제는 친일인명사전에 김 장군이 등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백년전쟁의 현상만 보더라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창작물이라고 우기고 있답니다. 다큐라고, 수백만이 그 유튜브 동영상을 봤다고 자랑하던 그들입니다. 이 연구소는 민간단체로 노무현 정권하에서 상당히 지원받았다고 합니다. 김승교, 임헌영 등 좌편향 인사들과 좌익 세력이 주도한 단체로 이들이 참고한 20세기 중국조선족 역사자료집이나 연변학계자료 등은 주로 중국공산당 및 친북학계자료로서 친일대상자 선정기준이 자의적이고 객관성과 신뢰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학자 신주백이 지은 ‘만주국군속의 조선인 장교와 한국군(2002년)’과 신동아(2007.9.1)등의 자료가 김백일 장군에 관한 반증자료로 상세히 게재되어 있습니다.
ㅇ형.
‘거제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한 김백일동상철거 범시민대책위원회’. 이렇게 긴 단체이름도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거제시의회와 전국공무원노조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공노가 누구입니까. 국민의 혈세로 월급을 받는, 그들을 위한 공무원 아닙니까. 바꾸어 말하면 나라의 기둥인 것입니다. 건축물의 기둥이 편향적인 사고 앞에서 흔들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이들의 수장은 그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참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문재인씨의 국립묘지 참배행태와 최근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국립묘지 참배행태를 비판하는 것도 대한민국 정체성을 폠훼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의원은 또 어떻습니까.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젊은이들 사이엔 "열심히 공부해봤자 겨우 부구청장, 부시장급 예우받는 구의원이나 시의원이 더 낫다"라고 합니다. 기초의원들이 주민자치의 대표자가 아니라 또 다른 권력층으로 자리잡았다는 현실이 못내 서글픕니다.해외연수, 의정활동비, 업무추진비 등에 함몰되어 그들의 직분이 무엇인지, 기능이나 하고 있는지. 거제시의원 전체가 김백일장군 동상철거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니 어안이 벙벙합니다. 그들의 서푼어치도 안되는 역사인식에 우리는 무슨 답변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포퓰리즘의 인기에 연연하는 시의원들의 작태는 일의 선후를 분별 못하는 무뇌아들이 아닌지요. 거제시민 전체의 의견인양 포장하는 그 작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본말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된 현실을 거제시민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역사의식은 공감대 앞에서 싹트는 것입니다. 전쟁의 페허 위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대한민국 65년 역사야말로 국민통합의 구심점이 아니었습니까. 지난 정부들은 이념적으로 편향되거나 아예 무관심한 탓으로 조국의 역사인식에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고, 역사교육의 실패로 미래세대와의 단절의 현상이 지금 거제시에서 미리 분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ㅇ형. 17세기 독일 신학자 멜데니우스는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을"이라고 했습니다. 편향된 역사인식으로 피란민의 눈물과 애환을 말살하려는 그 행위 앞에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요. 또 다른 윤리적 파탄의 가학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율법적으로 완벽했던 바리새인들을 예수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들이 자랑하던 선악 2분법의 잣대는 도덕적 경건의 폭력과 다르지 않았습니다.이제 우리는 편향된 사고로 어느 한쪽으로 함몰되는 현실을 밀쳐야합니다.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의 변신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하기사 백선엽 장군을 민족반역자라고 몰아 세우는 후안무치한 민주당 국회의원 김광진을 보면 씁쓸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오쩌둥의 박해를 받고 목숨까지 잃을 뻔했던 덩샤오핑이 권력을 쟁취하고 마오 쩌둥의 공이 7이고 과가 3이라고 한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쓸모 없는 소모전이 스스로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서푼어치도 안되는 역사인식으로 역사를 재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