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한 사람이 많은 군대보다 강하다!(대하32:20-23)
2018.6.10 김상수목사(안흥교회)
과거나 지금이나 깨어있는 한 사람의 기도가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살려낸다. 그래서 설교의 황태자라고 불렸던 영국의 찰스 스펄전(C.H. Spurgeon, 1834~1892)은 이런 말을 했다.
“십년 걱정하는 것보다, 십분 기도하는 것이 더 낫다!”
스펄전의 이러한 말을 가장 실천한 사람 중의 하나가 영국에서 스펄전과 동시대를 살았던 조지뮬러(1805~1898)다. 평생 동안 5만 번 이상의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고아의 아버지 죠지뮬러의 전기를 보면, 그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계획을 위해 믿음으로 기도했다. 그의 기도응답의 비결 중에 한 가지가 “먼저 기도하라”이다. 조지뮬러는 어떤 일을 저지른 후에 하나님께서 책임지라는 식의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든지 그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선한 동기를 갖고 기도부터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가 60년 동안 기록한 빼곡히 기록한 기도노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고아들에게 다음 날 아침에 줄 빵이 없었다. 그래서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새벽 3시에 갑자기 그 지역의 어느 빵공장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 오늘은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잠을 자려고 하면 자꾸 누가 저를 깨우는 것 같습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공장에 나가 빵이나 구우려고 합니다. 제가 오늘 아침 목사님에게 빵 좀 갔다 드려도 되겠습니까?"
또 어느 날은 고아원에 우유가 떨어졌다. 그때도 간절히 기도하는데,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그래서 나가 보니 어떤 트럭 운전기사가 서 있었다. 그는 말했다.
"목사님! 제 트럭이 고아원 앞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고장이 나서 꼼짝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우유를 싣고 가던 중이었는데 이러다가 우유가 다 상할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우유를 좀 가져갈 수 있습니까?"
성경에도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수없이 나온다. 그들 중의 이 시간에 함께 은혜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남유다의 13대 왕이었던 히기스야다. 그 당시에 북왕국을 멸망시킨(B.C 722년) 앗수르가 남유다도 공격해 왔다. 열왕기하 18-19장, 역대하 32장 그리고 이사야36-37장에 이 당시의 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북왕국을 멸망시킨 앗수르 왕 산헤립은 185,000명의 대군을 보내 예루살렘을 공격했다.
그때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군대가 몰려오는 것을 감지하고 미리 성 밖에 있는 기혼 샘의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긴 지하터널(수로)을 파게했다. 그리고 앗수르 군대가 기혼 샘의 입구를 알지 못하도록 기혼 샘의 입구는 막아 버렸다(대하32:2-3). 우리교회 성도들이 성지순례를 갔을 때, “히스기야의 터널”이라는 곳을 들어간 적이 있었다. 수로의 길이는 약 533미터 정도고, 터널 끝에 실로암 연못이 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히스기야왕 시대에 예루살렘성은 전체 성벽둘레가 약 5-6km 정도였다(해미읍성의 둘레 1.8km). 이런 성읍을 무려 185,000명의 대군이 중무장을 하고 겹겹이 쌌다. 그렇기에 아무리 수로를 파놓고 전쟁을 대비했다 할지라도 전세는 점점 더 힘들어져 갔다. 앗수르왕은 히스기야를 비웃으면서 랍사게라는 신하를 통해서 항복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때 히스기야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그 편지를 펴 놓고 간절히 기도한 것이다. 역대하 32장 20절에서는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했다고 했다.
“14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사 37:14-15)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대하 32:20)
그랬더니 그 새벽에 하나님께서 한 천사를 보내서 앗수르 군대 185,000명을 일시에 죽게 하셨다(사37:36).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응답하신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사37:36)
그래서 본 설교자도 새벽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성도들을 위해 믿음으로 중보기도를 한다. 우리들이 기도하지 않고 그냥 있으면 단지 연약한 어린아이나 시골 촌부(村夫)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기도의 손을 모으면, 그 순간부터 한 나라의 군대보다 강한 핵무기들이 된다. 정말 그렇다!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드리는기도가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폭탄이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순간부터 마그마보다 더 강렬한 하나님의 능력이 분출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만들어 주신다(대하32:23).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대하 32:23)
히스기야의 기도에서 보듯이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많은 군대보다 강하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천군천사를 보내주신다!”
“기도할 때 문제의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옥문이 열린다”
“기도하는 것이 애국하는 것이다!”
이번 한 주간은 국내외적으로 국가적인 큰일들이 있다. 6.13지방 선거가 있고, 싱가포르에서는 북미정상회담도 있다. 얼마 후에는 6.25 한국전쟁기념일도 있다. 그야말로 급변하는 국내외 상황들은 마치 그 옛날 히스기야 시대에 하루가 다르게 긴박하게 돌아가던 예루살렘의 상황을 보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애국은 먼저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한국전쟁 때, 이승만대통령은 부산에 피난 온 목사님들을 임시 관저를 불러서 간절히 기도 했다. 또한 해군창설자 손원일제독과 홍은혜권사를 비롯한 수많은 성도들은 눈물로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 구 소련이 무너질 때도 그랬고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에도 세계 도처에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던 성도들의 숨은 기도가 있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고, 모든 한국교회들이 새벽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한반도의 남녘 끝 소록도에서는 매일 정오에 국가를 위한 기도가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 서쪽 끝에 있는 우리들도 주님의 중보기도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얼마 전 모 신문에서 ‘되다’와 ‘하다’의 차이에 대한 어느 시인의 글을 읽었다. 한 마리의 새가 되는 일은 공중에서 떠서 쉼 없이 날갯짓을 할 때 되듯이, 좋은 시를 쓰려고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좋은 시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요즘 되는 일이 없으면, ‘되려고’ 하지 말고, ‘하려고’ 해보라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지적이다. 이 시인의 지적처럼 ‘하다’는 ‘되다’의 전제사항이 맞다. 잘되기를 바라면서도, 실제는 뭔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의 하나가 “해야 하는데”라는 말이다. 기도해야 하는데… 예배드려야 하는데… 좋은 일을 해야 하는데… 노력해야 하는데… 나가기는 나가야 하는데... 등과 같은 말들이다. 그러나 ‘해야 하는데’가 아니라 ‘해야’ 한다. 금쪽같은 인생을 ‘해야 하는데...’만 연발하다가 마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부터는 ‘해야 하는데 신자’가 아니라, ‘하는 신자, 하는 사람’이 되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 우리도 앗수르의 185,000명과 같은 어려움에 에워싸일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이 생각지 않은 기가 막힌 방법으로 응답해 주신다. 그렇기에 기도하는 한 사람이 많은 군대보다 강하고, 십년 걱정하는 것보다 십분 기도하는 것이 더 낫다. 왜냐하면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영적인 비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슨 일 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자. 내가 서있는 곳에서 이 시대 기도의 히스기야들이 되자.
“나는 대한민국의 히스기야다(I‘m a Hezekiah of Korea)”.
첫댓글 은혜로운 말씀에 기도의 필요성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목사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