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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2017.04.12(수) | 장 소 | 2017 봄나들이: 창녕~의령 | |
■참석자: 29명 | ||||
【남】권재기,권종원,김광남,김경화,김대운,김윤중,김이우,김재식,김학성,남정달,류춘기,문수부,박홍,손성일,신대석,안민수,윤상홍,이태호,전신웅,최용식,최태석 등21명 【여】권춘례,김명자,석옥자,신춘지,윤상희,이영자,이정식,최순하 등 8명 | ||||
■협의안건 및 결의사항 | ||||
1. 회장 인사 : 건강한 모습이 너무 좋다. 즐거운 봄나들이가 되길 바란다. 2. 여정 안내 : 총무, 여행 안내 유인물 배포 3. 김대운 : 창녕,의령 등지의 문화 관광 해설 4. 권춘례 하모니카 연주. 남정달 가곡 해설 5. 남정달 : 의령 남씨 문중 소개 6. 12사우회 총회 개최 : 2017. 5. 12(금). 밀양식당. 많은 참석 요망 | ||||
수 입 | 《특별찬조》 류춘기 : 10만원 신대석 : 10만원 윤상희 : 10만원 김재식 : 고급 기념 타올 40장 《월회비》 : 29명×10,000=290,000원 《연회비》 : 1명×30,000=30,000원(신대석) 합계 620,000원 | |||
지 출 | 《버스전세》 600,000원 《유채밭 열차》 87,000원 《점심,석식》 476,000원 《간식,현수막,택시 등 기타》 228,400원 합 계 1,391,400원 | |||
통장잔액 | 통장 잔액 6,007,016원 | |||
회원동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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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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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안내】
재구12사우회 2017 봄나들이.4.12(수)
【일정】반월당(08:30)→69km.남지 유채꽃 (09:40~11:00)→26km.성씨 고가(11:30~12:00)→48km.'의령소바’(12:40~13:30)→1.3km.의병박물관(13:40~14:10)→도보280m.의령구름다리(14:20~14:40)→4km.정암루(14:50~15:20)~0.4km솥바위(15:30~50)→14km.호암 이병철 생가(16:15~16:50)→11.4km 일붕사(추가)→87km.식당 ‘꼬막마을’ (19:00~ 해산)
【창녕 탐방】
▶창녕 낙동강 유채 축제/2017. 4. 14.(금) ~ 4. 18.(화) /남지유채단지(남지체육공원 일원)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 유채단지는 전국에서 단일면적으로 최대 규모인 110ha(33만여평)로, 낙동강의 절경과 어우러진 한 폭의 풍경화이다. 2006년 1회를 시작으로 역사와 생태의 고장 창녕군의 대표축제로 자리잡았다.
▶창녕석리 성씨고가(昌寧石里成氏古家)/창녕군 대지면 석동1길 11/도문화재자료355호
이 건물의 안채와 사랑채는 일제강점기 중반(1929년)에 건축 또는 이전한 것으로, 가구수법과 공간구성, 입면형식 등에서 근대 한옥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성씨 고가는 대지 내에 안채, 사랑채, 창고 2동, 대문채, 화장실 등 총 6동의 건물이 '튼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를 중심으로 앞에 사랑채와 중문채를 두고, 안마당 좌우에 토담집 구조의 곳간 2동을 배치했다.
▶성혜림 생가?
성헤림은 명문가의 3대 독자인 아버지 성유경과 1920년대 민족주의 잡지‘개벽’의 여기자였던 김원주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서울 풍문여중에 다니던 성혜림은 전쟁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따라 북으로 갔다고 한다. 그녀는 평양 예술학교를 졸업한 후 19살에 전 조선작가동맹위원장 이기영의 장남 이평(李平)과 결혼해 ‘옥돌’이라는 딸을 낳고 살던 유부녀였다. 이후 그녀는 빼어난 미모와 교양 있는 예절로 북한 사회에서 인기가 높은 여배우로 성장했다고 한다.
성혜림의 인생이 급변하기 시작한 건 김정일을 만나면서 부터다. 당시 성혜림은 33세이고 김정일은 28세였다. 결국 성혜림은 남편 이평과 이혼하고 1969년부터 김정일과 동거를 시작한다. 그 뒤 동거한 지 3년만인 1971년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바로 김정일 위원장의 첫째 아들 김정남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가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 한 김정일은 아들 김정남의 존재에 대해 철저하게 감춰야만 했다. 장석택 김경희 부부가 성혜림의 아들 김정남을 키울 정도였다. 결국 성혜림은 1974년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에 의해 모스크바로 쫓겨난 이후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다.
-북한의 ‘조선향토대백과’에 의하면 [학력] 평양영화대학, [경력]영화배우 데뷔,리평과 결혼(1960),이혼(1967),김정일과 동거(1967),김정남 득남(1971). [기타]월북(1948.7),모스크바에서 사망
[주요활동]영화 ‘안개 흐르는 새 언덕’ 프놈펜 영화축제 참석(1968)
【의령 탐방】
▶충익사 : 충익사는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던 망우당 곽재우 홍의장군과 17장령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의병박물관
▶의병구름다리
▶솥바위 : 남강물 유유히 흐르는 철교아래 가마솥을 닮은 바위이다. 예로부터 의령은 알부자가 많고 인심이 넉넉한 이유가 남강 솥바위, 즉 정암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이곳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보물처럼 여긴다. 솥은 예로부터 곡식, 즉 재물을 뜻하고, 솥바위 아래 세 개의 큰 기둥은 삼정승을 뜻하여 사방 20리 안쪽에 정승에 버금가는 3명의 부자가 날 것이라는 전설이 이 지방에 전해 내려왔다. 이 솥바위에서 8km 정도의 중교리에서 이병철이, 7 km 거리에 LG그룹 구인회 회장이, 5 km 거리에 효성그룹 창업자 조흥제 회장이 태어났다.
이곳은 그 옛날 선인들이 나룻배를 타고 왕래했던 나루터지만 임진왜란 때는 나루에서 곽재우 장군이 왜장 혜경이 이끈 수만의 왜적을 잠복 끝에 몰살시킨 승전지로도 유명하니 지금은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더욱이 정암루에 올라 강물을 내려다보면 풍류가 절로 피어나 여유롭다.
▶탑바위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 : 의령군 정곡면 호암길 22-4
호암 생가는 삼성그룹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끈 대표적 기업가 이병철 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1851년 조암의 조부가 대지 1,900제곱미터에 전통한옥 양식으로 손수 지었으며, 호암은 유년시절과 결혼해서 분가하기 전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터에 穴이 되어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하고,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逆水를 이루어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한다.
호암 이병철 선생은 대대로 유학을 숭상하며, 부유한 선비의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소년시절을 보냈지만 음식을 남기는 것을 아주 싫어했을 정도로 낭비에 대해서는 용인하지 않으며 자랐다. 남서향으로 지어진 일자형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담한 토담과 바위벽으로 둘러싸여 뒷산 대나무와 함께 운치를 더해준다. 호암 선생이 좋아했던 오동나무, 우물, 유품을 둘러볼 수 있다.
▶망우당 생가 : 곽재우 의병장은 본관은 현풍이고 자는 계소로 호가 망우당이며 시호는 충익이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9일째 되는 날 이곳 곽재우 생가가 있는 마을에서 곽재우장군을 비롯한 17장령들과 함께 책과 붓과 가재를 던지고 의병을 일으켰다.
큰 북을 매달아 의병을 모았던 현고수 뒤편의 망우당 곽재우 생가터에는 최근 조선초기 건축양식으로 안채, 사랑채, 별당, 큰 곳간, 작은 곳간, 대문, 문간채등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양반가의 집으로 2005년 복원되었으며, 현재는 나라사랑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10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12사우회 정 때문에 못 간다고 전해라~~”
첫댓글 윤대감수고 많이 했어요 감사따불로